베켄바우어 유족 측은 9일 오전(한국시간) 독일 DPA 통신에 “베켄바우어 바이에른 뮌헨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고 알렸다”라고 전했다. 가족들은 “남편이자 아버지인 베켄바우어가 가족들에게 둘러싸인 채 평화롭게 잠들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하게 돼 깊은 슬픔을 느낀다”면서 “조용히 애도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고, 질문은 자제해 주시길 부탁드린다”라고 전했다.
독일 뮌헨에서 태어난 베켄바우어는 선수는 물론 코치와 감독으로서 독일 축구 역사에 획을 그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특히 뮌헨은 그에게 ‘황제’라는 의미를 가진 ‘카이저’라는 별명을 붙였다. 과거 브라질의 축구 황제 펠레는 베켄바우어에 대해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베켄바우어는 뮌헨 소속으로 지난 1972년과 1976년 발롱도르를 품은 바 있다. 주 포지션은 홍명보 울산 HD 감독의 선수 시절 위치와 같은 리베로였다. 베켄바우어는 독일 국가대표로도 103경기 뛰었고, 1974년 독일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베켄바우어는 브라질의 마리오 자갈로, 프랑스의 디디에 데샹과 함께 선수와 감독으로서 월드컵을 거머쥔 세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하다.
한편 같은 날 뮌헨은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뮌헨의 세계는 갑자기 어둡고, 조용하고, 불행해 졌다”면서 “독일의 챔피언은 ‘카이저’ 베켄바우어를 잃은 것을 애도한다”라고 전했다.
베켄바우어와 함께 뮌헨과 독일에서 활약한 울리 회네스 명예 회장 역시 “베켄바우어는 뮌헨이 가진 가장 위대한 인물이다. 선수·감독·회장으로서 인간으로서 잊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 누구도 그를 따라갈 수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베켄바우어는 선수시절 막바지 펠레와 함께 미국에서 뛰며 세 번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기도 했다. 이어 1980년엔 함부르크로 돌아와 마지막 우승을 차지했고, 1983년 38세에 선수 유니폼을 벗었다.
이후엔 독일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고, 두 차례나 월드컵 결승에 올랐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1-0으로 꺾고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당시 공격수로 활약한 루디 푈러는 “베켄바우어를 알고 경험한 건 인생의 큰 특권 중 하나였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은 그의 뛰어난 지도력 떄문”이라고 치켜세웠다.
1990년 독일 대표팀의 주장이었던 로타어 마테우스는 “베켄바우어가 건강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충격은 컸다. 그의 죽음은 독일 전체에 큰 손실이다”라고 애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