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은 ‘밟으면 미끄러진다’ 입니다. 바나나는 지난해 우여곡절을 겪은 잼버리 대회 해프닝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당시 화장실 청소 이슈부터 온갖 말썽이 벌어지자, 국무총리가 도시락 메뉴에서 바나나를 빼라는 지시까지 했죠. 혹시 먹다 버린 바나나 껍질을 밟은 참가자들이 미끄러져 다칠 수 있다며 그리했다고 알려졌는데, 운영과 관리에 대한 이슈가 쏟아졌기에 코미디라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당시 바나나 소동에 대한 뉴스를 당시 보며 저는 야구장에 흩어진 야구공을 생각했습니다. 저도 구단에 있을 때 공 밟으면 미끄러진다는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습니다. 기사를 검색하면 봄 캠프나 마무리 훈련 때 공 밟아 다친 선수 이야기가 빠지지 않습니다.
곧 있으면 프로야구 팀들이 전지훈련을 시작합니다. 사소하지만 야구공 정리가 시즌 준비에 왜 중요한지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수비코치가 날려 보내는 펑고, 타자들이 여러 방법으로 쳐내는 타구에 이르기까지 캠프에는 야구공이 넘쳐납니다. 바닥을 뒹군 선수들 유니폼에서 흙먼지가 풀풀 날리고, 선수들 옆에는 엄청난 훈련량을 보여주듯 굴러다니는 공이 쌓여 갑니다.
잠시 주어지는 짧은 휴식 시간. 세상이 멈춘 듯 선수도, 야구공도 정지합니다. 만약 야구팬인 여러분이 전지훈련에 초대받아 이 장면을 바라볼 때 어떤 기분일까요. 매우 낭만적일 겁니다. 보통 캠프지는 비교적 따스하고 온화합니다. 좋은 날씨와 풍광 속에 새로운 시즌의 목표를 향해 담금질하는 선수들의 노력이 감동스럽기도 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초보 프런트 시절, 미국 애리조나 전지훈련을 처음 갔을 때 그런 감정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사진의 한 장면 같은 그 순간뿐이었습니다. 흩어진 야구공과 그라운드는 지뢰밭이라는 걸 배우게 됐습니다. 훈련하는 선수 주위에 공이 흩어져 있지 않도록 정리하고 치우는 것이 캠프 기간 프런트의 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업무였습니다.
당시 NC 다이노스의 김경문 감독님이 엄격하게 훈련장을 관리하는 걸 가르쳐 주셨습니다. “선수가 한 시즌 치르려 저렇게 땀 흘리고 노력하는데 공을 밟아 발목을 다친다면 얼마나 허망한가. 선수가 부상 당한다면 팀도 큰 손해다. 프런트 직원들도 각자 업무가 있겠지만 훈련 때는 그라운드 공이 쌓이지 않게 잘 치워달라”고 당부하신 게 떠오릅니다. 공을 밟아서 다치면 시즌의 절반 이상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김경문 감독님은 그라운드 상태도 꼼꼼히 따졌습니다. 선수들 스파이크에 패인 내야 그라운드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고르고 다지고 물을 뿌려 정비했습니다. 당초 계약보다 더 많은 정비 업무를 요구한 것인데, 감독님이 현지의 구장 관리인들에게 따로 수고비와 선물을 챙겨 주셨기에 여러 번 부탁해도 별문제 없었습니다.
훈련장 관리는 도시락의 바나나까지 높으신 분이 챙긴다며 호들갑 떨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었습니다. 구단 프런트가 준비하고 챙길 업무 매뉴얼이자 노하우로 정리됐습니다. 공 치우는 게 별거 아닌 듯싶지만, 선수가 온전히 훈련에 집중하게 구단의 모두가 나와 돕는다는 진심을 보여주는 효과도 있었습니다.
물론 팀마다 캠프 때 훈련을 지원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그렇지만 어떤 환경인지 팀들이 서로 비교합니다. 야구팬 여러분도 주의 깊게 한번 보세요. 어느 팀 캠프 그라운드 정비가 잘 돼 있는지 말입니다. 어쩌면 시즌을 예측하는 척도일 수도 있습니다. 지난해 말 어느 팀에서 감독님이 전훈 야구장의 그라운드 이슈를 제기하셨다고 합니다. 당연하게 해야 할 일을 지적받는 건 프런트로선 부끄러운 일입니다. 구단의 실력을 보여주는 것이니까요.
최근 미국에서 알래스카 항공 비행기의 비상 출입구가 운항 중 뜯겨 나갔습니다. 비상문의 좌우 위아래를 결속하는 볼트 4개가 제대로 설치되지 않았다는 미 당국의 중간조사 결과 나왔습니다. 사소하고 작은 부품이 큰 사고를 불러온 것이죠. 제작사 보잉은 “품질관리의 위기”라는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흩어진 야구공도, 그라운드의 패인 구멍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한국코치협회 인증코치 김종문 coachjmoon 지메일
김종문은 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2011~2021년 NC 다이노스 야구단 프런트로 활동했다. 2018년 말 '꼴찌'팀 단장을 맡아 2년 뒤 창단 첫 우승팀으로 이끌었다. 현재 한국코치협회 인증코치(KPC)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