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에 있어 아직 확신은 없어요. 그렇다고 의심할 건 아니지만, 확신이 생긴다면 재미없어질 거라 생각해요. 확신은 죽어서도 안 생길 것 같아요.”
배우 염혜란은 어떤 캐릭터가 주어져도 그에 따라 얼굴을 완전히 바꾼다. 그래서 염혜란의 연기에서는 기시감을 느끼기 어렵다. 그럼에도 염혜란은 연기에 아직 확신이 없다고 했다. 심지어 죽어서도 안 생길 것 같다고 했다.
다만 확신 대신 다른 게 있었다. 연기에 대한 열정, 낮은 자세로 칭찬을 받아들이는 겸손함 등이다. 여유가 깃든 답변과 적절한 재치는 덤이었다.
염혜란은 최근 서울시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일간스포츠와 만나 영화 ‘시민덕희’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시민덕희’는 보이스피싱을 당한 평범한 시민 덕희(라미란)에게 사기친 조직원 재민(공명)의 구조 요청이 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염혜란은 잃어버린 돈을 찾는 덕희의 친구 봉림 역을 맡았다.
염혜란은 “‘시민덕희’에는 덕희를 중심으로 사랑스러운 친구들이 나온다. 덕희의 여정을 함께하는 친구로 나오는 게 재미있었다”며 출연 이유를 밝혔다.
이어 “봉림은 덕희에게 도움을 받았기에 심적으로는 바로 덕희를 돕고 싶지만, 현실적인 걸 무시할 수 없는 인물”이라며 “도움을 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에서 현실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친구의 몫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염혜란이 연기한 봉림 역은 중국어와 연변 사투리가 능숙하다. 염혜란은 “중국어가 주 언어인 인물을 연기해야 하니 부담스러웠다”고 토로했다. 이어 “줄줄 외우는 걸 못 해서 단어 하나하나에 성조 표시까지 하니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 중국어 선생님이 영화 제작사에서 말한 기간보다도 더 많이 도와줬다”고 밝혔다.
‘시민덕희’는 덕희 역의 라미란을 비롯해 ‘덕벤져스’라 불리는 장윤주, 안은진의 호흡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염혜란은 ‘덕벤져스’의 호흡에 대해 “이렇게 대기시간이 즐거웠던 게 몇 작품 안 된다”며 “시끄러울 때도 있었다. 우리끼리 ‘음향 감독님 힘들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 주축은 라미란이었다. 라미란이 노래를 부르면 안은진이 화음을 넣었다”고 전했다.
염혜란은 ‘걸캅스’ 이후 5년 만에 라미란과 재회했다. 염혜란은 “한 번 합을 맞춘 배우들을 다시 캐스팅하기 어렵지 않나. 신선한 조합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텐데 이번에 (라미란과) 많은 분량의 호흡을 맞추게 돼 너무 행복했다”고 고백했다.
이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많이 배웠다. 라미란에게 듣고 싶은 게 많았다. 지금 이렇게 우뚝 선 라미란이 그동안 어떤 과정을 지나왔는지, 어떤 고충이 있었는지 등을 물어보고 싶었다”며 “훌륭하게 해나가는 게 대단하다. 나보다 앞서 그 길을 간 것에 대한 존경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염혜란은 임용고시와 연기 사이에서 고민이 길었다. 염혜란은 “대학교 1학년 때 무대에 처음 서고 나라는 보통의 존재가 특별한 존재가 되는 마법 같은 순간을 경험했다. 그러나 나 같은 사람은 (연기를) 못할 것 같았고 이걸 업으로 할 수 있나 싶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래서 임용고시와 연기 사이에서 고민이 길었다. 뒤늦게 시작해 간절함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연기에 있어 아직 확신은 없다. 그렇다고 의심할 건 아니지만, 확신이 생긴다면 재미없어질 것 같다. 확신은 죽어서도 안 생길 것 같다”며 “연기 외에는 그냥 일반인이다. 특별할 게 없다. 연기라는 걸 하는 순간 내 삶이 판타지가 되는 것 같다. 내 삶에 판타지를 주는 게 연기”라고 털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