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특급’ 스롱 피아비(블루원리조트)가 기나긴 슬럼프를 끝내고 여자프로당구(LPBA) 새 역사를 썼다. LPBA 통산 7승으로 최다 우승 대기록을 세웠다. 지난 2차 대회 우승 이후 한 팬의 소란 이후 슬럼프를 겪다 가까스로 이뤄낸 우승이라 더욱 값졌다.
스롱 피아비는 11일 경기도 고양 킨텍스 PBA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24시즌 8차 투어 웰컴저축은행 웰뱅 PBA-LPBA 챔피언십 결승에서 임정숙에 4-2(9-11, 3-11, 11-8, 11-10, 11-4, 11-6) 대역전승을 거두고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초반 두 세트를 내준 뒤 내리 네 세트를 따내는 집념의 우승이었다.
지난해 7월 시즌 2차 투어(실크로드&안산 챔피언십) 우승 이후 7개월 만에 시즌 두 번째 정상에 오른 스롱 피아비는 LPBA 통산 7승으로 김가영(하나카드)을 제치고 최다 우승 단독 1위로 올라섰다. 우승 상금 3000만원을 더해 시즌 상금랭킹은 2위(5412만원)로 올라섰다. 누적 상금은 2억 5292만원으로 김가영(2억 7015만원)과 격차를 좁혔다.
반면 임정숙은 초반 두 세트를 먼저 따내고도 컨디션 난조 속 고배를 마셨다. 통산 6승과 다섯 번째 웰컴저축은행 웰뱅 챔피언십 우승 기회도 다음으로 미뤘다.
PBA에 따르면 스롱 피아비는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고생한 끝에 우승했다. 너무 기뻐서 말도 잘 안 난다. 힘든 일이 많았다보니 이제 눈물도 말랐다. 너무 기쁘다”며 “우승하면 자신감이 올라서야 하는데, 그 이후에 테이블 앞에 서면 마음이 혼란스러웠다”고 돌아봤다. 시즌 2차 투어 이후 불거졌던 논란에 대한 설명이었다.
앞서 스롱 피아비는 2차 투어 정상에 오른 뒤 남자부 우승자인 프레데리크 쿠드롱과 사진 촬영 과정에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함께 사진을 찍던 스롱 피아비가 쿠드롱에게 조금 더 다가오라는 손짓을 하자 쿠드롱이 고개를 저었고, 이에 감정이 상한 스롱 피아비가 자신을 개인적으로 도와주던 팬 A씨에게 서운하다고 말한 게 화근이었다.
스롱 피아비의 팬 A씨는 쿠드롱에게 항의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아 쿠드롱과 언쟁까지 벌였고, 급기야 기자회견장까지 난입해 목소리를 높였다. 쿠드롱은 기자회견에 참석하지 않고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스롱 피아비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거리를 유지했던 것이고, PBA 차원에서 기자회견에 참여할 상황을 만들어주지 않았기에 기자회견에 불참했다는 게 당시 쿠드롱 측 입장이었다. 이에 스롱 피아비는 “저희 부족함으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사과했고, PBA 사무국은 자체 조사를 거쳐 스롱 피아비에게 주의를, 해당 팬은 영구 추방 조치를 내렸다.
공교롭게도 당시 우승 이후 스롱 피아비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투어마다 조기에 탈락하며 우승권과 거리가 멀어졌다. 당시 사건이 슬럼프로 이어지는 듯 보였다.
스롱 피아비는 “사실 당시 힘든 일이 있었는데, 그런 일까지 겹쳐 더 힘들었다. 무서웠다. 모르는 사람들도 저를 욕했다. 이상한 사람들 만나지 말라고 욕을 많이 했다. 너무 무서웠다. 악플을 많이 봤다. 사실 댓글이나 저에 관한 글을 잘 안 보고, 뜻도 모르지만 가끔 본다. 많이 아팠다”며 “그래도 하나 감사한 부분이 있다.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옛날에 저를 아무도 모를 땐 느끼지 못했지만, 이제 어느 정도 당구도 저도 유명해지고 보니 이해해야 한다. 고국 지인들과의 대화나 멘털 코칭으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예로 파리는 쓰레기 냄새를 좋아한다. 벌은 아름답고 예쁜 꽃을 좋아한다. ‘파리’ 같은 말을 듣지 않고, ‘벌’ 같은 말만 보고 들으려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다행히 이번 대회에선 결승까지 올라 슬럼프를 극복한 듯했으나, 1, 2세트를 내리 내주며 궁지에 몰렸다. 첫 세트부터 19이닝 장기전 끝에 임정숙이 첫 세트를 따냈다. 초반 3이닝 연속 뱅크샷을 시도하며 테이블 점검을 마친 임정숙은 4이닝째 첫 득점을 시작으로 8~9이닝에서 연달아 3득점을 따냈고, 6득점에 머무르던 스롱 피아비를 7-6으로 앞질렀다. 이후 19이닝까지 9-9 접전 끝에 임정숙이 남은 2득점을 채워 11-9로 승리했다.
이어 2세트에서도 임정숙이 분위기를 잡아 한 세트를 더 달아났다. 임정숙은 2-2로 맞서던 8이닝째 하이런 4점으로 6-3, 10이닝부터 2이닝 연속 득점으로 10-3으로 각각 격차를 벌렸다. 결국 14이닝에서 마지막 한 점을 더해 11-3으로 승리, 세트스코어 2-0. 스롱 피아비 입장에선 궁지에 몰린 상황이다.
그는 “오늘 게임은 멘탈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결승전에서의 느낌과 감각을 다 잃어버린 듯했다. ‘이렇게까지 멘탈 관리가 되지 않을 수도 있구나’ 싶었다. 2세트 졌을 때 사실 포기하고 싶었다. 생각대로 공이 움직이지 않았다. 공만 집중하려 했는데 상대방이 의식되다 보니까 그런 것 같다”며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가서 지난 결승전을 생각했다. 2021~22시즌에 열린 에버콜라겐 챔피언십 대회 결승전 때 이뤄냈던 역전승을 기억했다. 한 세트만 따면 조금 더 편해질 테니까 ‘한 세트만 잡자’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고 했다.
실제 3세트부터 스롱 피아비의 반격이 시작됐다. 스롱 피아비는 3세트 1이닝째 1점, 2이닝째 뱅크샷을 포함한 하이런 6점으로 7-3으로 앞서갔다. 여기에 5이닝째에도 2득점을 더해 9-6으로 승기를 잡았다. 이후 임정숙이 1점 차까지 추격했으나 스롱 피아비는 11이닝째 2득점으로 11점에 도달, 한 세트를 만회했다.
분위기를 뒤집은 스롱은 4세트에서도 8이닝째 세 차례의 뱅크샷으로 하이런 8점을 만들며 8-2로 크게 앞서는 등 14이닝 만에 11-10으로 승리해 세트스코어 원점을 만들었다. 이후 경기 흐름은 스롱 피아비 쪽으로 기울었다. 10이닝 동안 나란히 임정숙이 2득점, 스롱이 4득점을 낸 가운데, 스롱이 11이닝째 뱅크샷 2득점에 이어 곧바로 다음 이닝서도 2득점 뒤 시도한 뱅크샷이 행운의 득점으로 연결되며 10점에 도달했다. 스롱은 14이닝째 1득점으로 11-4, 세트스코어 역전에 성공했다.
스롱 피아비는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임정숙이 4이닝까지 5-0으로 앞서있었으나 스롱 피아비는 5이닝째 하이런 7점, 6이닝째 2득점으로 순식간에 9-5로 뒤집었다. 임정숙이 8이닝째 1득점을 추가했으나 9이닝째 스롱이 남을 2득점을 채워 11점에 먼저 도달했다. 세트스코어 4-2, 스롱 피아비의 역전 우승이었다.
스롱 피아비는 “이번 우승 역시 이제는 지난 일이 됐다. 안주하지 않고 연습만 하겠다. 매일 연습하고 새로운 것을 알다 보니까 하루를 보내는 것이 재미있고 좋다. 돌이켜보면 힘든 일이었고, 우승했지만 다 지난 일이다. 내일은 다시 새로 시작이다. 남편이 데이트 신청을 하는데 매일 연습하느라 거절했는데, 내일은 바다에 회를 먹으러 가야겠다”고 웃어 보였다.
반면 1, 2세트를 따내고도 역전 우승을 허용한 임정숙은 “경기력이 너무 안 나왔다. 실망하셨을 분들께 죄송하다. 5세트부터 집중력이 거의 없다시피 경기했다. 너무 힘들었다. 왜 더 컨디션 관리를 잘하지 못했을까, 조금 더 집중하지 못했을까 후회가 많이 되는 경기였다”며 “어제도, 오늘도 잠을 잘 못했다. 숙소를 잘못잡았다.(웃음) 새벽에 술에 취하신 분들이 많다 보니 소음에 잠을 여러 번 깼다. 4시간 정도 밖에 잠을 못 잤다. 제 불찰이다. 좋은 숙소를 골랐어야 했다. 이미 일어난 일이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 4-0으로 승리하지 못하면 진다는 생각으로 왔다”고 했다.
이어 “3세트까지만 해도 평정심이 있었는데 4~5세트 계속 이어져서 ‘오늘은 나의 날이 아닌가 보다’라는 생각을 했다. 4세트부터 체력적인 부분도 부담이 됐다. 스코어 10-10에서 원뱅크 실수를 한 것이 패인이 됐다.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 편인데, 끝나고 보니 후회가 많이 남는다. 사실 이번 대회 내내 컨디션이 좋았는데, 어제와 오늘만 컨디션 관리에 실패했다. 우선 잠을 좀 푹 자고 싶다. 잠이 올 진 모르겠지만”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