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KFA)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회조차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감독에게 등을 돌렸다. 정몽규 KFA 회장 등 집행부에 클린스만 감독의 해임을 건의하기로 했다.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과 정 회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시위가 오전 내내 이어질 만큼 여론마저 싸늘한 상황. 클린스만 감독 거취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가진 정 회장으로서는 사실상 유임을 택할 명분이 사라지게 됐다.
KFA 전력강화위는 15일 오전 11시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전력강화위원회를 열고 대표팀 감독을 교체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예정됐던 시간보다 훌쩍 늦은 다섯 시간에 걸친 회의 결과였다. 다만 전력강화위는 대표팀 운영에 대한 조언 및 자문을 목적으로 설치된 KFA 이사회 자문기구라 직접 해임을 결정할 수는 없다. 이날 모인 전력강화위의 ‘해임’ 의견이 정몽규 회장 등 집행부에 보고된다. 정 회장은 이르면 다음 주 최종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이날 회의에는 마이클 뮐러 위원장을 비롯해 8명의 위원과 클린스만 감독이 참석했다. 미국 자택에 머무르고 있는 클린스만 감독과 동계 전지훈련을 이끌고 있는 박태하(포항)·조성환(인천)·최윤겸(충북청주) 감독은 화상으로 의견을 냈다. 회의는 지난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 대한 평가가 이뤄진 뒤 클린스만 감독의 거취 문제에 대해 전력강화위원들끼리 의견을 모았다.
황보관 KFA 기술본부장은 전력강화위가 끝난 뒤 브리핑에서 “지난 아시안컵 참가 결과 보고, 클린스만 감독과 위원들 간 질의응답, 대표팀 운영과 감독의 관련된 논의가 있었다. 위원들과 질의응답을 마친 클린스만 감독이 화상 회의에서 나간 뒤 뮐러 위원장 주재로 위원들끼리 대표팀 감독의 역할에 대해서 논의를 했다. 대표팀이 북중미 월드컵 예선에 임하는 단계에서 감독 교체와 관련해 중점적으로 논의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회의에선 클린스만 감독이 아시안컵 준결승에서 전술적인 준비가 부족했다거나, 재임기간 중 선수 선발과 관련해 직접 선수를 보고 발굴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는 평가, 팀 분위기나 내부 갈등을 파악하지 못했고, 체류 기간이 적은 근무 태도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반면 클린스만 감독은 선수단 내에 불화가 있었고, 그 부분이 경기력에 영향이 있었다고 말했다. (자신의 전술 부재 등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다”며 “이러한 이유로 클린스만 감독이 더 이상 대표팀 감독으로서 리더십을 계속 발휘하기 힘들다는 판단에 전력강화위는 감독 교체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고 설명했다.
가뜩이나 클린스만 감독을 경질하라는 여론이 들끓고 있는 가운데 전력강화위마저 여론과 의견을 같이하면서 정몽규 회장은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됐다. 실제 이날 오전 축구회관 앞엔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확성기를 활용해 “클린스만 경질하라”, “정몽규 사퇴하라”고 외치거나 ‘무능한 클린스만, 비겁한 정몽규, 손잡고 나가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1인 시위를 하는 등 팬들이 분노를 표출했다.
이같은 팬심에 전력강화위의 경질 의견마저 반하는 결정을 정 회장이 내리기는 쉽지 않은 상황. 가뜩이나 클린스만 감독 선임 당시 전력강화위 등 정상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선임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 이에 대한 책임 차원에서도 이제는 결단을 내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사실상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이 임박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클린스만 감독 경질 시 다음 달 있을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대비는 “전력강화 내용을 협회에 보고를 한 뒤, 최대한 빨리 다음 단계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 내달 21일 홈, 26일 원정에서 태국과 2연전을 치를 예정이라 새 감독과 계약은 물론 대표팀 명단 구성 등도 빠듯한 상황. 3월 이후 다음 A매치 기간은 6월인 만큼 새 감독을 선임할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 우선 3월 A매치는 임시 감독 체제로 치른 뒤 새로운 감독을 선임하는 방안도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3월 부임한 클린스만 감독은 부임 후 줄곧 이른바 재택·외유 논란 탓에 비판을 받았다. 부임 6경기 만에 가까스로 첫 승을 따내는 등 이렇다 할 전술적인 색채조차 보여주지 못했다. 급기야 역대 최고 전력으로 평가받던 대표팀을 이끌고도 아시안컵 내내 졸전을 거듭한 끝에 4강에서 탈락했고, 손흥민과 이강인의 충돌 등 대표팀 선수단 관리마저 실패한 것으로 알려져 공분을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