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여에 걸친 심도 깊은 취재가 빛을 발했다.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로 한국형 오컬트의 새 길을 연 장재현 감독이 영화 ‘파묘’로 누적된 포텐을 제대로 터뜨렸다.
‘파묘’는 확실히 실험적이다. 김고은이 “뭐가 나왔다고 거기서. 겁나 험한 게”라고 하는 그 ‘겁나 험한 것’의 정체가 꽤 직접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숨겨진 존재’를 탐닉하는 게 베이스인 오컬트 장르에서 과감한 시도라 할 수 있다.
◇‘파묘’를 ‘역사’와 연결한 영리함
‘파묘’에서 ‘겁나 험한 것’의 존재를 분명하게 그린 데는 이유가 있다. 파묘란 옮기거나 고쳐 묻기 위해 무덤을 파내는 것을 의미한다. 장재현 감독은 20일 진행된 ‘파묘’ 언론 시사회에서 “묘에서 관을 꺼내 태우는 과정에서 영화의 주제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며 “과거에서 잘못된 무언가를 꺼내서 그걸 깨끗이 없애는 정서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파묘’에서 주인공들은 묫자리가 이상함을 느끼고 파묘에 나서게 되는데 그러면서 한국과 일본의 역사가 등장한다. 장 감독은 “우리나라의 과거를 돌이켜 보면 상처와 트라우마가 많다. 그걸 파묘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파묘’의 이 같은 지점은 ‘검은 사제들’, ‘사바하’와 분명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클래식한 오컬트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불호’ 표를 던질 수도 있겠지만, 오컬트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게 한다는 점에서는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특히 ‘파묘’와 과거의 트라우마 해소를 연결 지어 스토리라인 속에 매끄럽게 녹여낸 부분에서 장재현 감독의 영민함이 돋보인다.
◇ 장의사, 풍수사와 동행하며 얻은 생생함
‘검은 사제들’부터 ‘사바하’에 이어 ‘파묘’까지 장재현 감독은 늘 각본과 연출을 겸해왔다.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 사이에 4년여의 공백이, ‘사바하’와 ‘파묘’ 사이에 또 약 5년의 공백이 있었다는 점에서 장 감독이 신작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치밀한 취재를 하는지 짐작케 한다.
이런 장 감독의 노력 덕에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 모두 ‘살아 있는 디테일’로 호평을 받았다. ‘금기’를 소재로 하는 오컬트는 종교와 밀접한 연관을 갖는 경우가 많다. 종교적인 부분은 많은 이들에게 예민하게 받아들여지기에 섬세하게 다뤄야 하는데 장재현 감독의 디테일한 연출은 대중에게 불편하지 않게 다가간다는 평가다.
‘파묘’를 위해서도 장재현 감독은 약 1년에 걸쳐 장의사, 풍수사와 함께 이장 작업을 다녔다. ‘검은 사제들’이나 ‘사바하’에서 했던 귀신과 퇴마 이야기를 한 번 더 반복하는 대신 파묘라는 한국의 문화를 가지고 와 역사와 엮었다. 장 감독의 말을 빌리면 “그냥 재미있는 유령 영화”가 아닌 자신이 구축해온 오컬트 장르를 한 걸음 더 확장하고 싶었던 셈이다. 장재현 감독은 “불편하더라도 한 발짝 더 나아가서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장 감독이 보여준 오컬트의 새로운 가능성. 과연 관객들은 어떻게 응답할까. ‘파묘’는 22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