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무엇을 떠올리나요. 기적 같은 결말, 짜릿하고 소름 돋는 야구의 한 장면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가슴 설레게 합니다. 인생 역전의 찬스에도 우리는 종종 이 표현을 씁니다. 그래서 야구는 삶과 연결된 친숙한 동반자라고 할까요. 야구 용어나 속설에 빗대 현실을 간단히 정리할 수도 있습니다. 듣는 사람이 금세 알아듣습니다. 야구를 사랑하는 팬으로서 저 역시 일상에서 들리는 야구의 비유가 반갑습니다.
끝내기 한방과 관련, 야구를 통한 비유법이 선거철을 맞아 정치 뉴스에 종종 등장하는군요. 어느 정당 대표는 “9회 말 투 아웃 투 스트라이크 상황”이라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긴박감 있게 표현합니다. 다른 당 대표는 “나는 9회 말 구원 투수”라며 선거에 임하는 각오를 밝힙니다. 한쪽은 끝내기를 치겠다, 다른 쪽은 끝내기를 막겠다는 의지가 각축을 벌입니다. 가상화폐 시장 등 투기성 자산시장에서도 한방 끝내기에 대한 기대가 여기저기 표출되는군요.
여기서 잠깐, 타임을 걸어 봅니다. 야구의 비유는 환영합니다만 이대로 괜찮을까 싶어서입니다. ‘마지막 타석이니 시원하게 한번 휘두르겠다’는 접근법은 통할 수 있는 걸까요. 야구팬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현실성 있는 메시지를 알려줘야 한다는 분들이 계시더군요. 이런 주문 역시 야구에 대한 애정이겠죠. 무턱대고 덤벼선 안되는 걸 우린 알잖아요. 9회 말 2아웃에서 삼진율이 리그 평균의 두 배라는 데이터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그래서 전화를 걸었습니다. 숨 막히는 압박감을 뚫고 끝내기를 친 주인공에게요. 그때 어떤 심정이었고, 무슨 생각이었을까요. 끝내기의 조건을 그에게 물었습니다.
2019년 8월 7일 창원 NC파크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NC 다이노스전. NC팬에겐 한여름 밤의 꿈 같은 장면이 벌어집니다. 드라마틱한 피날레 주인공은 경기 후반, 교체 투입된 포수 정범모(현 한화 이글스 퓨처스 코치). 연장 12회 말 1-1 동점이던 1사 후 타석에서 타율 2할 초반의 정 선수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솔로 홈런을 날립니다. 프로 11년차의 첫 끝내기.
당시 NC는 3연패였고, 여름 들어 순위도 5위권 밖으로 밀려 위기였습니다. 중심 타자 양의지, 나성범 선수도 큰 부상으로 빠져 있었고요. 무승부라도 연패는 이어지는 것이고, 선수 투입이 많았던 여파를 고려할 때 벤치 분위기가 무척 어두웠습니다. 삼성은 마지막 이닝을 지키려 새 투수를 올립니다.
이동욱 감독이 대기 타석의 정 선수에게 묻습니다. “어떻게 칠 거지?” 정 선수는 바로 대답합니다. “커브 노리겠습니다.” 이 감독님은 이렇게 기억합니다. “스스로 확신 갖고 대비했다는 게 느껴졌어요. 여러 데이터가 있지만 이럴 땐 선수에게 자신감 실어주는 게 낫겠다 싶었죠. ‘그래!’ 한마디 했죠.”
초구에 정말 커브가 날아와 홈 플레이트 가운데 낮게 떨어집니다. 방망이가 가볍게 돌았고, 타구는 좌중간 담장을 넘습니다. 아래는 정 코치와의 문답.
-그때 기억납니까. "그럼요. 구단에서 만들어 주신 끝내기 기념 액자도 잘 갖고 있습니다. 평생에 한번은 끝내기 치고 싶다는 꿈을 꿨고, 하이라이트의 멋진 주인공 모습을 상상해 왔는데 그때 이뤘죠. 그래선지 긴장하지 않은 것 같아요."
- 예상이 맞았군요. "감독님께 말은 했는데 상대가 제 앞의 김성욱 선수에게 직구 승부로 삼진 잡았어요. 고민됐죠. 상대 배터리가 제게 변화구를 많이 던지는 게 생각나 계획대로 갔죠."
- 큰 걸 노렸나요? "그럼 안되죠. 그냥 편하게 돌렸어요. 제가 스윙을 조절할 수 있는 타자도 아니고요. 풀 스윙했다면 힘들어가 헛스윙했거나 타이밍 늦어 파울 됐을 겁니다."
- 끝내기 한방의 경험자로서 조언한다면요? "어떤 상황인지, 내 역할이 뭔지 살펴야죠. 9회 말 2아웃이어도 만루라면 투수가 더 떨려요. 홈런 못 치는 타자라면 무작정 큰 스윙은 안돼요. 잘 판단해야죠. 후배가 그런 상황이라면 저도 아무 말 안 할 겁니다. 프로라면 당연히 준비할 거고요. 그 친구와 다른 생각을 말해주면 결단하지 못하고 주춤거릴 수 있어요."
끝내기 한방은 짜릿하고 극적입니다. 운명처럼, 행운의 선물처럼 여깁니다. 그러나 거저 얻어지지 않습니다. 조건이 있습니다. 야구를 인용하는 세상에 드리는 메시지입니다.
한국코치협회 인증코치 김종문 coachjmoon 지메일
김종문은 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2011~2021년 NC 다이노스 야구단 프런트로 활동했다. 2018년 말 '꼴찌'팀 단장을 맡아 2년 뒤 창단 첫 우승팀으로 이끌었다. 현재 한국코치협회 인증코치(KPC)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