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섬의 타격은 올 시즌 초반 삐걱거렸다. 2일 인천 두산 베어스전에서 홈런 2개 포함 7타점을 쓸어 담았지만, 경기 전 타율이 1할대였다. 지난해까지 기록한 통산 타율(0.272)과 비교해 차이가 컸다.
현장에선 그의 부진 원인 중 하나로 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ABS·Automatic Ball-Strike System)이 거론됐다. 구단 관계자는 "유섬이는 타격할 때 몸을 낮추는 스타일인데 상하 높낮이 차이가 큰 ABS와 잘 맞지 않는 거 같다"고 말했다.
올해 KBO리그에는 ABS가 적용되고 있다. '로봇 심판'으로 불리는 ABS는 타자 키에 따라 각기 다른 스트라이크존이 적용된다. 선수 신장의 56.35%, 하단은 선수 신장의 27.64% 위치가 기준이다. 키가 1m80㎝인 선수라면 상단은 101.43㎝, 하단은 49.75㎝, 1m90㎝는 상단과 하단이 각각 107.7㎝, 52.52㎝다. 타격 자세에 따른 보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타자들이 혼란스러워하는 지점이다. 한유섬의 프로필상 키는 1m90㎝로 구자욱(삼성 라이온즈·1m89㎝)과 큰 차이 없다. ABS 존도 비슷하게 설정된다. 그런데 두 선수의 히팅 포인트가 다르다. 허리를 꼿꼿이 세워 타격하는 구자욱과 달리 한유섬은 무릎을 굽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타격 자세가 낮은 한유섬으로선 스트라이크존 상단이 높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A 구단 타격 코치는 "한유섬처럼 키가 큰데 타격할 때 숙여지는(기마 자세) 선수들은 ABS 체제에선 불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키가 1m63㎝로 최단신 듀오인 김지찬과 김성윤(이상 삼성 라이온즈)도 상황이 비슷하다. B 구단 관계자는 "경기하는 걸 보면 두 선수의 키가 같더라도 김지찬의 타격 자세가 더 낮은데 ABS는 동일하게 적용하는 건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C 구단 관계자는 "선수들 사이에서도 ABS 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불만이 많다"고 귀띔했다.
지난 7일 열린 2024 한국야구위원회(KBO) 규정·규칙 변화 미디어 설명회에선 타자의 타격 자세가 다르면 ABS를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한 취재진 질문이 나왔다. 발표자로 나선 한인국 KBO 운영1팀 대리는 메이저리그(MLB)도 신장을 재서 비율을 도출한다고 말한 뒤 "타격 자세별로 적용해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더 많은 오류가 발생하고 악용될 소지가 있어서 MLB와 같은 시스템으로 운영한다"고 덧붙였다.
ABS 체제에선 스트라이크존의 좌우 기준이 홈 플레이트(43.18㎝)에서 좌우 2㎝씩 확대 적용된다. 의도와 다르더라도 타자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C 구단 타자는 "구장마다 ABS존이 약간 다른 것도 있다. 스트라이크존을 상하에 좌우까지 살펴야 한다. 여러 상황이 겹쳐 쉽지 않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