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 오판으로 그동안 쌓은 모든 게 무너질 판이다. '볼 판정 조작 담합' 중심에 있는 이민호(54) 심판 얘기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지난 15일 “허구연 총재 주재로 긴급 회의를 진행하고 14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 NC 다이노스-삼성 라이온즈전 경기의 심판 팀장 이민호 심판위원, 주심 문승훈 심판위원, 3루심 추평호 심판위원에 대해 금일 부로 직무 배제하고 절차에 따라 인사위원회에 회부하기로 했다. 사안이 매우 엄중하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엄정하게 징계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KBO 관계자는 "상벌위원회가 아닌 인사위원회 회부로 결정한 배경에는 리그 규정 벌칙 내규로 제대로 심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경기 출장정지가 아닌 직무 배제로 결정한 이유에 대해서도 "직무 배제 상태에서 인사위원회를 진행해 최종 징계를 심의하는 것이 절차상 더 적합하다는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그럴만했다. 자신들의 실책을 감추기 위해 새로 도입된 시스템의 기능성을 훼손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무엇보다 야구팬 모두 그걸 지켜봤다.
상황은 이랬다. 14일 대구 경기 3회 말 2사 1루 삼성 이재현의 타석에서 NC 투수 이재학이 던진 2구째가 스트라이크존(S존)을 통과했지만, 문승훈 주심은 스트라이크 콜을 하지 않았다. 구단이 갖고 있는 태블릿을 통해 이 공이 스트라이크였다는 그래픽을 본 강인권 NC 감독은 이재학이 공 3개를 더 던지고 풀카운트가 됐을 때, 앞선 2구째 볼 판정에 대해 항의했다.
NC 어필을 받은 심판들은 그라운드에 모였다. 이 상황에서 귀를 의심케 하는 대화가 전해졌다. 조장이었던 이민호 1루심이 문승훈 주심에게 "음성은 분명히 볼로 인식했다고 들으세요(들은 걸로 하세요). 우리가 빠져나갈…그거밖에 없는 거예요"라고 말한 것. 중계를 통해 이 말이 흘러나왔다. 앞서 이민호 조장이 "안 들렸다면 사인을 줘야 하는데 그냥 넘어가버린 거잖아"라고 다른 심판들을 나무라는 말도 흘러 나왔다. 쉽게 말해 인이어를 착용하고 ABS 판정 콜을 들을 수 있는 문승훈 주심과 추평호 3루심이 이재학의 2구째 공 판정을 놓친 것이다.
이미 상황이 지나갔고, ABS 규정상 다음 투구가 이뤄지기 전 어필을 해야 정정할 수 있다. 원래 시효가 지났기 때문에 원심이 유지될 수밖에 없었다. 심판진은 이런 상황 속에 자신들이 콜을 놓친 실수를 감추려고 했다. 문승훈 주심은 "(인이어가) 지직거리고 볼 같았다"라고 말을 맞추려고 했고, 이민호 조장은 "'같았다'가 아니라 볼이라고 하시라고요. 우리가 안 깨지려면"이라고 다그쳤다. 이후 이민호 조장이 마이크를 잡고 "음성으로 전달될 때는 볼이었다. ABS 모니터 확인 결과 스트라이크였지만, 어필 시효가 지나서 원심대로 진행한다"라고 설명했다. 중계 화면을 보고 있었던 야구팬은 분개할 수밖에 없었다. 사안이 이렇다 보니 직무 배제에 인사위원회 회부까지 간 것이다.
현장에선 ABS 기능성, 즉 볼 판정에 대한 불만이 꽤 많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출력 기능' 오류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인간의 판단이 개입해 일어난 일이다. 여러 가지 심리가 작용했을 것 같다. '그라운드의 포청천',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던 존재에서 로봇이 내놓은 결괏값을 그저 전달하는 존재가 됐다. '도대체 그것도 못 하면 어떻게 하느냐'라는 말을 듣고 싶진 않았을 것이다.
분명한 건 이 심판들은 잃은 게 너무 많다는 것이다. 가장 이력이 적은 추평호 위원도 20년 넘게 그라운드를 누빈 베테랑이다. 문승훈 위원은 역대 3번째로 2500경기 출장을 해냈다.
이민호 위원에 대해선 야구팬 배신감이 더 클 것 같다. 심판의 볼 판정과 경기 운영 능력 평판이 야구팬 사이에서도 잘 알려진 시대, 이민호 심판은 상대적으로 믿을만한 심판으로 인정받았다. 그가 내린 판정으로 비디오 판독을 신청했을 때 번복률도 낮은 편이었다. 이 위원은 연말 시상식에서 2013~2016시즌 연속으로 심판상을 받기도 했다. 최소한 그의 전성기에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결과적으로 이 상황을 주도한 건 이민호 심판이다. "빠져나갈 방법은 그거밖에 없다", "우리가 안 깨지려면"이라는 말을 한 것도 그였다. 그토록 무리수를 둬야 하는 상황이었는지 의문이다. 3000경기 출장을 향해 가는 심판이 그동안 쌓은 신뢰를 한순간에 스스로 무너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