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대반전 드라마’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맨체스터 시티를 완파하고 잉글랜드 축구협회(FA)컵 정상에 우뚝 섰다. 객관적인 전력상 맨유의 열세가 점쳐진 경기에서 거둔 ‘대이변’이었다.
에릭 텐하흐 감독이 이끄는 맨유는 25일 오후 11시(한국시간)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24 FA컵 결승전에서 맨체스터 시티를 2-1로 꺾고 대회 정상에 올랐다. 이번 시즌 유일한 우승 타이틀이다.
이번 우승으로 맨유는 지난 2015~16시즌 이후 8년 만에 통산 13번째 FA컵 우승을 차지했다. 최다 우승팀 아스널(14회)과 격차는 1회로 줄였다. 1년 전 FA컵 결승에서 맨시티에 1-2로 져 우승을 눈앞에서 놓쳤던 아쉬움도 고스란히 설욕했다. 다음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 진출권도 따냈다.
객관적인 전력상 맨시티의 우승을 바라보는 시선이 지배적이었다는 점에서 ‘이변’에 가까운 결과이기도 했다. 실제 맨유는 이번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8위에 머물렀다. EPL 출범 이후 역대 최저 순위였다. 득실차도 사상 처음 –1(57득점·58실점)에 그쳤다.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선 조별리그 최하위로 일찌감치 탈락했다. FA컵 우승을 차지하더라도 텐하흐 감독이 경질될 것이라는 현지 보도가 쏟아졌던 것 역시 이번 시즌 전반에 걸친 부진이 워낙 심했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맨시티는 EPL 정상에 오른 팀이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EPL 4연패를 달성하는 등 잉글랜드 축구를 대표하는 최강팀 입지를 다진 상태였다. 이미 이번 시즌 두 차례 EPL 맞대결에서도 모두 맨시티가 ‘완승’을 거뒀다. 맨유 원정에서 3-0으로, 그리고 홈에서도 3-1로 승리했다. 이변보다는 맨시티의 무난한 승리와 우승을 점치는 시선이 지배적이었던 이유였다.
그러나 정작 경기 양상은 예상과는 정반대로 흘렀다. 경기는 맨시티가 초반부터 월등하게 높은 볼 점유율을 앞세워 경기를 지배했다. 맨유는 빠른 역습으로 활로를 찾았다. 전반 30분 맨유가 먼저 균형을 깨트렸다. 후방 롱패스 한방으로 상대 수비 뒷공간을 완전히 허물었다. 슈테판 오르테가 골키퍼와 요슈코 그바르디올, 알레한드로 가르나초가 경합을 펼쳤다. 그바르디올이 골키퍼에게 헤더로 패스한다는 게 오르테가 골키퍼 키를 넘겨 그대로 골문으로 향했다. 가르나초가 집중력을 잃지 않고 밀어 넣었다. 맨유의 선제골이었다.
기세가 오른 맨유가 전반 39분 격차를 벌렸다. 왼쪽 측면에서 반대편으로 정확한 롱패스가 전달되면서 공격이 시작됐다. 오른쪽 측면을 파고들던 가르나초가 브루누 페르난데스에게 패스를 건넸고, 페르난데스의 날카로운 패스가 2005년생 코비 마이누에게 연결됐다. 마이누는 정확한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해 맨시티 골망을 흔들었다. 결국 전반은 맨유의 2-0 리드로 마무리됐다. 점유율은 25%에 그쳤으나 슈팅 수는 오히려 5-3으로 맨유가 더 많았다. 패스 횟수는 3배 이상 차이가 났다.
궁지에 몰린 맨시티는 빠른 교체를 통해 반전을 노렸다. 하프타임 마누엘 아칸지와 제레미 도쿠가 투입됐고, 후반 11분엔 케빈 더브라위너 대신 훌리안 알바레스가 투입됐다. 3분 뒤 카일 워커의 강력한 중거리 슈팅이 맨유 골문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보였으나 안드레 오나나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다.
경기가 후반부로 갈수록 맨시티의 파상공세가 이어졌다. 엘링 홀란을 비롯해 필 포든, 알바레스 등의 슈팅이 연이어 맨유 골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맨유의 골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맨유의 2골 차 리드가 경기 막판까지 이어졌다.
맨시티는 후반 42분에야 도쿠의 만회골로 추격의 불씨를 지폈다. 아크 왼쪽에서 찬 강력한 오른발 슈팅이 오나나 골키퍼의 손에 맞고 그대로 골망을 흔들었다. 맨시티가 1골 차로 추격하면서 경기는 알 수 없는 양상이 됐다. 7분의 추가시간. 마지막 집중력에서 앞선 건 맨유였다. 맨시티의 파상공세를 끝내 버텨냈다. 결국 경기는 맨유의 2-1 승리로 막을 내렸다. 맨유가 FA컵 정상에 오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