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관객들이 몰리고 연일 SNS에 이 영화에 대한 감상 후기가 오르면서 지적 호기심, 역사의식, 정치적 올바름을 다룬 영화가 돈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지난 6월5일 개봉한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19일까지 약 12만명의 관객을 모았으며 매출액으로는 11억8000만 원 가량을 벌어 들였다. 이런 류의 영화로는 소위 대박이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지난 2020년에 개봉됐던 프랑스 예술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흥행기록 15만 명을 넘어서거나 근접할 것으로 보인다. 예술영화가 15만명을 모은다는 것은 ‘파묘’가 500만을 모으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1940~1945년 사이에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벌어진 유대인 학살을 다룬다. 이때 유대인 400만명이 죽었다. 그러나 사람들을 경악시킨 것은 수용소 내부가 아니라 수용소 담장 밖, 수용소장 루돌프 회스의 관사 풍경을 그리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 영화에서 유대인 학살의 장면은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수용소장의 조용한 가정은 어떻게 유지됐으며, 정원은 어떻게 관리됐고, 아이들은 어떻게 풀장에서 수영을 하며 놀았는가, 회스 중령의 가족은 얼마나 평화로운 삶을 즐겼느냐에 초점이 모아져 있다.
독일의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얘기했지만 이 영화를 보면 그건 철학자의 반어법일 뿐이라는 것이 명징하게 드러난다. 악은 결코 평범하지 않으며 매우 비범하고 정교하고 그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가스실에서 한번에 400명씩 죽어 나가더라도)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철면피 여야 하는 가를 보여준다. 이런 얘기들이 지금 SNS에 넘쳐나고 있고 영화를 본 반응들, 정당한 역사적 울분들이 이 영화의 흥행에 가솔린을 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열화상 카메라로 찍은 한 소녀의 모습이다. 이 소녀는 어두운 밤에 수용소 철조망이나 담벼락 어딘가에 먹을 것을 숨겨 놓고 다니는데, 마음을 울리는 느낌이 너무 리얼해서 숨이 막힐 정도다. 실제로 이 ‘사과 소녀’는 아우슈비츠 유대인들을 위해 한밤중에 먹을거리를 몰래 숨겨뒀던 실존 여성을 소재로 한 캐릭터라고 한다. 이 소녀는 그 위대한 영웅적 행동의 답례로 한 유대인이 직접 작곡한 노래 악보를 선물로 받기도 했다. 이 폴란드 사과 소녀의 실명은 알렉산드라 비스트콘-코워지이칙으로 당시 18살이었다. 이 소녀는 2016년 8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영화 속 ‘사과 소녀’가 사는 집과 타고 다니는 자전거는 모두 실제 고인의 집과 자전거다. 아이가 몰래 전달받은 악보는 요제프 뵐프가 작곡한 것으로 제목은 ‘햇살’이다. 사과 소녀와 햇살, 희망을 등치시킨 곡이다. 요제프 뵐프와 ‘햇살’ 모두 아우슈비츠에서 끝까지 살아남았다.
이 ‘사과 소녀’ 캐릭터는 수용소장 루돌프 회스가 자신의 아이들에게 ‘헨델과 그레텔’를 읽어 주는 장면과 대구(對句)를 이루며 선악의 극명한 실체를 드러낸다. 그레텔도 한 밤중에 길을 잃지 않으려고 빵 조각으로 표시했는데 사과 소녀가 먹을 것을 감추면서도 유대인들이 그걸 잘 찾아내게끔 하는 모습은 실로 감동이 아닐 수 없다. 영화의 이런 대목은 감독 조나단 글래이저의 연출이 얼마나 섬세하면서도 면도날처럼 모든 것에 정확한 역사적, 심리적 근거를 만들어 내려 했는 지를 보여 준다. 그런 점에서 글래이저가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아카데미에서 국제장편영화상을 탄 것은 오히려 모자란 감이 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 칸 황금종려상에 절대로 모자란 작품이 아니다.
특이한 것, 그래서 더욱 더 전율스러운 것은 조나단 글래이저가 영화 속 모든 것을 아우슈비츠 수용소 공간과 똑같이, 기계적이라고 할 만큼 당시 모습 그대로 재현해 냈다는 것이다. 수용소 관사 촬영이 허가를 못 받아 근처에 똑 같이 만들기도 했는데 그 미장센, 소도구나 미술, 색감 등등은 기록 영상과 사진을 토대로 회스 사령관 가족이 살던 집과 정원의 풍경 그대로를 완벽하게 재현해 낸 것으로 알려졌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그 주제의식도 주제의식이지만 미술 프로덕션, 음향 등 연출 외적 요소의 탁월함으로도 극찬을 받고 있다.
루돌프 회스는 종전 후 숨어 지내다 발각돼 체포된 후 교수형으로 처형됐다. 루돌프의 아내 헤트비히(산드라 휠러)는 끝까지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 했지만 남편이 헝가리로 전출을 가 거기서도 유대인 학살 작전을 기획한 후 헤트비히에게 전화로 “이번 일은 회스 작전이야 당신도 회스야”라고 말하는 장면은 아내도 모든 일을 모를 리 없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헤트비히 회스는 80 대에 자연사했다.
지식과 역사, 정치와 경제, 사회적 이슈를 다룬 영화가 돈이 되는 시대다. 큰 돈을 들여 큰 돈을 벌려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방식을 고집할 것인가. 올바르지만 적게, 차곡차곡 버는 길을 택할 것인가. 작금의 한국 영화계가 놓인 고민의 갈림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