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 선수가 많거나 팀이 내림세를 나타낼 때 사령탑이 으레 '버티기'를 언급한다. 위기 때 잘 버틴 이후 전력이 갖춰진 뒤에 반등 기회를 엿보겠다는 판단에서다.
지금의 KIA는 상황이 다르다. 후반기 첫 경기인 9일 LG 트윈스전에서 장단 17안타를 몰아치며 11-4로 크게 이겼다. 10일 경기에선 상대 선발 디트릭 엔스의 구위에 눌려 8회까지 0-2로 끌려가다 9회 초 2-2 동점을 만들더니, 연장 10회 승부 끝에 5-2 짜릿한 역전승을 챙겼다. 최근 5연승을 달린 KIA는 10일 기준 삼성 라이온즈(승률 0.536)-LG(0.535)-두산 베어스(0.535)에 5.5경기나 앞서 있다. KIA가 올 시즌 선두에 오른 뒤 2위 팀과 벌린 최대 격차다.
시즌 막판까지 순위표 맨 꼭대기를 점령하면 우승이라는 목표를 이룰 수 있다. 이범호 감독이 밝힌 '버티기'는 지금의 순위를 끝까지 지키는 것이다. 일반적인 '버티기'의 성격과는 다른 셈이다. 이범호 감독은 후반기 경기 운영에 대해 "우리 선수들의 컨디션이 나쁘지 않다. 시즌 초반과 마찬가지로 이기는 경기에서 확실히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선택과 집중'에 신경 쓴다. 이범호 감독은 "팬들께서 좀 화가 나더라도, 지는 경기는 확실히 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크게 열세인 경기에서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으며 무리하진 않겠다는 의미다. 점수 차가 크거나, 뒤집기 어렵다고 판단될 때 과감히 포기할 수 있음을 사전에 알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선 불펜 승리조가 아닌 추격조를 투입하고, 주전 야수는 제외해 체력 안배를 도모할 계획이다.
이범호 감독은 "제가 혼나더라도 (우리 팀이 뒤진 상황에서) 점수 차를 좁히고자 하는 투수 기용은 더 신중하게 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초보 감독으로서 쉽게 꺼낼 수 없는 이야기. 그러나 목표 달성을 위해 자신이 책임지고 팀을 운영하겠다는 의지를 엿보였다.
올 시즌은 올스타 휴식기(나흘)가 특히 짧았다. 팀마다 부상 선수도 많아 선수단 운영이 더 중요하다. 어깨 염증으로 빠진 KIA 마무리 투수 정해영을 무리해서 1군에 올리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범호 감독은 "경기가 대등한 양상으로 흘러가면 벤치에서 잘 판단해야 한다. '이겨야 한다'는 계산으로 밀어붙였는데 패하면 팀을 더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그런 점을 가장 피하고 싶다"며 "(벤치에서) 판단 미스만 없으면 후반기에도 우리 선수들이 충분히 잘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날씨도 고려 대상이다. 이범호 감독은 "다음날 비 예보가 100% 확실하다고 판단되면 오늘 경기에서 쓸 수 있는 선수는 모두 투입할 것이다. (장마철은) 2~3일 정도 (날씨를) 체크하면서 운영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