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욱의 별명은 '몬스터 검객'이다. 뛰어난 신체 조건을 활용한 공격력이 워낙 무시무시하기 때문이다.
오상욱은 28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의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남자 사브르 개인전 결승에서 파레스 페르자니(튀니지)를 15-11로 물리치고 금메달을 땄다.
세계 정상급 유럽 선수들과 비교해도 오상욱의 체격은 전히 밀리지 않는다. 키 1m92㎝인 그는 이날 결승에서 맞붙은 페르자니보다 17㎝나 크다. 키와 비례해 팔도 길어서 공격에 유리하다. 오상욱의 윙스팬(양팔을 벌렸을 때 길이)은 2m가 넘는다.
대개 신장이 크면 민첩성이 떨어진다. 그러나 오상욱은 큰 키뿐 아니라 스피드와 유연성까지 갖췄다. 빠른 발놀림을 이용한 '발 펜싱'이 한국 대표팀의 색깔인데, 오상욱도 이러한 강점을 잘 흡수했다.
어린 시절 큰 형을 따라 펜싱장에 놀러갔던 오상욱은 재미 삼아 펜싱 칼을 잡았다. 당시 감독과 코치의 눈에 띄어 중학교 1학년 때 본격적으로 펜싱에 입문했다. 당시 오상욱의 키는 또래보다 작았다.
오상욱은 불리한 체격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스피드와 민첩성을 키웠다. 기본기를 착실하게 다지는 사이 신장이 훌쩍 크기 시작했다. 송촌고 1학년 때 그의 키는 1m90㎝를 넘겼다. 오상욱은 무서운 신예로 전국 무대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오상욱은 2014년 12월 한국 사브르 역사상 처음으로 '고교생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그리고 국가대표 2개월 만에 이탈리아 파도바 월드컵에서 동메달을 차지하며 국제무대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2019년 세계랭킹 1위에 오르자 세상은 그를 '몬스터 검객'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다리를 쭉 뻗어 길게 찌르는 '팡트(Fente)'. 오상욱이 세계를 호령한 기술이다. 파리 올림픽 경기에서도 뛰어난 신체 조건과 민첩성, 기술을 조합한 '투 스텝 롱 런지' 동작이 빛을 발했다.
오상욱의 기술은 자신의 우상이자 대표팀 선배 김정환의 영향을 받아 완성됐다. 여러 국제대회에 참가하며 김정환과 룸메이트를 이룬 후배는 선배의 노하우를 습득했다. 일례로, 2016년 세네갈 대회에서 한국 사브르 대표팀이 단체전에서 패한 적이 있다. 오상욱은 "당시에 제가 따라 들어가는 동작을 잘 못했다. 그때 정환이 형이 외국 선수들이 다 있는 데서 '너 지금 (잘 안 되는) 동작을 100번 반복하라'고 시켰다"면서 "남들이 다 보는 데서 (벌서는 듯한) 동작을 반복하는 게 솔직히 조금 창피했다. 그런데 그 후에 조금씩 잘 되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됐다' 싶은 느낌이 오더라"고 했다. 이는 지금의 오상욱을 올림픽 챔피언에 올려놓은 주 무기가 됐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여자 사브르 개인전 금메달리스트 김지연 SBS 스포츠 해설위원은 "오상욱의 전성기는 지금부터다. 한국 펜싱의 역사를 써 내려가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오상욱은 이번 개인전 금메달로 세계 랭킹 4위서 1위로 올라섰다. 28일 현재 남자 사브르 개인 세계 랭킹 10걸 중 오상욱보다 젋은 선수는 미국의 19세 신예 콜린 히스콕(7위)이 유일하다.
오상욱과 함께 '어펜져스'의 멤버였던 김정환·김준호 KBS 해설위원은 "오상욱이 막고 찌르는 것을 잘해서 투 스텝으로 한 번 더 들어가서 공격했다. 지금 스텝으로는 오상욱을 이길 수 있는 선수가 없는 거 같다. 오상욱의 한국 남자 펜싱 사브르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라고 높이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