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 야구 선수들은 모자 안쪽에 의미를 담은 문구를 새기곤 한다. 좌우명이나 각오를 적어 마음을 다스린다. 평소 박영현(21·KT 위즈)은 그렇지 않다. 마운드에 올라 명상하고 투구 자세를 취할 때마다 간단히 마음속으로 되뇌는 게 전부다.
하지만 박영현도 모자에 목표를 새길 때가 있다.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과 한국시리즈 때 '우승'이라는 글자를 모자에 쓰고 마운드에 올랐다. "(목표에 대한) 확신이 생길 때 적는다"는 게 그의 설명. 최근 박영현은 펜뚜껑을 조심스레 다시 만지고 있다.
KT는 후반기 승률 1위(0.667, 12승 6패)를 달리며 최하위에서 중위권까지 점프했다. 올 시즌 50승 51패 2무로 지난 6월 중순 -12까지 벌어졌던 '승패 마진'을 거의 회복했다. 지난해 최하위에서 정규시즌 2위까지 치고 올라간 '마법'을 올 시즌에도 재현하고 있다.
그 중심엔 마무리 투수 박영현이 있다. 박영현은 지난달 23일부터 29일까지 4경기에 출전해 4세이브 평균자책점 '0(4와 3분의 1이닝 1피안타 2탈삼진 무실점)'으로 주간 세이브 1위를 달렸다. 조아제약과 본지는 7월 마지막 주 최우수선수(MVP)로 박영현을 선정했다.
7월 한 달로 범위를 넓히면 박영현의 활약은 더 도드라진다. 박영현은 7월 11경기에서 단 1점도 내주지 않았다. 멀티 이닝을 6번이나 소화하면서도 그의 피칭은 굳건했다. 13과 3분의 2이닝 동안 내준 안타는 5개에 불과했고, 48명의 타자를 상대하면서 삼진을 15개나 잡아냈다. 7월에만 8개의 세이브를 작성한 그는 이 부문 리그 5위(18개)에 올랐다.
시즌 초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순위였다. 팀의 연이은 패배로 인해 박영현에겐 세이브 기회조차 별로 없었다. 그 자신도 흔들렸다. 지난해 최연소 홀드왕(32개)에 오른 그는 올 시즌 새 마무리 투수라는 중책을 맡았다. 부담감이 상당했다. 첫 세이브도 정규시즌 개막 후 거의 한 달 만(4월 17일 키움 히어로즈전)에 올렸다. 시작이 늦었기에 구원 타이틀은 포기하다시피 했다. 세이브 순위표는 그저 매일 부문별 1위 주인공이 달라지는 재미로 볼 뿐이었다.
하지만 최근 팀의 호성적과 함께 박영현의 세이브도 무섭게 쌓이고 있다. 이제 그가 "내 기록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보고 싶어서 순위표를 확인한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정도다. "시즌 시작할 땐 (세이브) 타이틀 욕심이 있었다"라고 말한 그는 "지금은 어려워졌다. 타이틀보단 내 기록(투구)에만 신경 쓴다. 팀의 승리를 지키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다. 시즌 초반 안 좋았던 모습을 지금 다 극복한 것 같아서 뿌듯한 시즌"이라고 덧붙였다.
박영현은 "지난해 (KS 준우승이라는) 아쉬운 경험을 했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지난해와 올해의 난 많이 다르다. 성장한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마운드에서 더 집중해서 던지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팀과 자신을 향한 확신도 조금씩 생기고 있다. 성적에서 증명했듯이, 지금 부진해도 언젠가 다시 올라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 모자에 문구를 적는다는 그는 "조만간 모자에 '우승'이라는 단어를 써야 할 것 같다"라며 웃었다. 최하위에서 포스트시즌 가시권까지 오른 팀의 마법, 무더운 여름 평균자책점 '0'의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자신의 마법을 믿었다.
박영현은 "팀이 상승세인 상황에서 주간 MVP라는 좋은 상을 받았다. (마무리 투수로서) 팀에 도움이 많이 됐다는 의미인 것 같아 기쁘다. 앞으로도 팀을 위해서 더 헌신하는 선수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소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