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대한탁구협회장은 2024 파리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오랜 시간 발 벗고 뛰었다. 2019년 첫 당선 이후 올해까지 5년. 탁구협회가 넉넉히 운영될 수 있도록 앞장서서 나섰고, 선수들이 보다 편하게 뛸 수 있도록 이야기도 귀 기울여 들었다. 파리 올림픽 역시 그랬다. 그리고 대표팀은 동메달 2개(혼합복식, 여자 단체전)로 보답했다.
10일(한국시간) 프랑스 사우스 파리 아레나4에서 열린 204 파리 올림픽 탁구 여자 단체전 동메달 결정전에서 한국은 독일을 3-0으로 꺾고 동메달을 따며 대회를 마감했다.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서 선수들이 취재진을 만난 뒤 유승민 회장이 나타났다. 얼굴엔 밝은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
유 회장은 "저도 힘들었는데 선수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잘해줘서 너무 고맙다"며 "지도자들이 좋은 리더십을 발휘해 잘 끌고 와준 것도 감사하다"고 운을 뗐다. 유 회장은 "일정이 길다보니 선수들의 기복이 있기 마련이다. 실망스러운 경기력도, 좋은 경기력도 있었는데 여자 단체전 동메달 결정전에서 모습은 여태 본 것 중에 가장 완벽했다"며 "3명 모두 완벽했다. 하나로 똘똘 뭉친 결과"라고 엄지를 세웠다.
동메달 2개는 은메달 1개(남자 단체전)를 따낸 2012년 런던 대회 이후 12년 만에 최고 성적이다. 한국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2021년 열린 도쿄 대회에서는 '노메달'에 그치며 '침체기'라는 비평을 받았다.
그 침체기를 벗어나기 위해 온몸으로 노력해 온 게 유승민 회장이다. 유 회장에게 협회의 노력에 대해 묻자 "협회가 변화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며 "이번 대회에서는 선수들은 대회 참가 때 각자 방을 쓸 수 있도록 한 것에 가장 만족하는 것 같다. 2인 1실을 많이 썼는데 선수들의 의견을 존중해 각자 방을 제공했다"며 "비용은 많이 들어도 선수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살짝 소개했다. 협회는 이외에도 선수들을 대신해 셔틀 시간을 재조정했고, 대한체육회가 배정한 AD카드가 부족해 훈련 파트너가 없을 땐 유 회장 등 스태프들이 직접 나서서 선수들 훈련에 힘을 보탰다.
하지만 유승민 회장은 결코 "협회 덕분에 성적이 나왔다"고 하지 않았다. 질문은 협회의 노력에 대해 물었는데, 유 회장은 답변을 "운이 좋았다"고 끝마쳤다. 그는 "협회가 소소하게 보이지 않는 곳을 챙긴 것이 작은 영향이 있었겠지만, 결국 선수들이 잘 견뎌준 것"이라며 "더반 세계선수권 때도 이야기했지만, 아시안게임과 올림픽까지 기운(흐름)이 잘 연결됐다. 그 순간 제가 있었던 것이다. 한국에 돌아가자마자 여러 컨셉을 잘 잡아 2028, 2032년 대회도 잘 준비해야 하겠다"라며 자신의 역할을 낮췄다.
유 회장은 "어떻게 딱 내가 회장직을 맡았을 때 선수들이 세계 대회에서 결과를 낸 것이다"라며 "최상의 결과라고 만족할 수 없지만, 결과를 얻어냈다는 것, 한 단계 발전했다는 것이 큰 수확"이라고 평가했다.
신유빈의 성장을 확인했다는 건 한국 탁구의 현재가 아닌 미래로 이어질 수 있는 대목이다. 유승민 회장은 "신유빈은 경기를 치를 때마다 성장한다. 이번에는 정신적으로 많이 성장했다"며 "굉장히 안정적이 됐다. 기술적으로도 흔들림이 없다. 원래 멘털이 무너지면 급해지거나 불안해했는데 이번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고 기뻐했다.
대회 초반부터 종반까지 꾸준히 경기를 치러야 했는데도 이겨낸 것도 높이 샀다. 유승민 회장은 "피로가 누적됐는지 중국과의 단체전 4강전에서 몸이 무거워보였는데, 하루 쉬니까 다시 제 실력이 나왔다. 지난해 아시안게임과 비교해 삼박자인 정신, 체력, 기술에서 모두 고르게 성장했다"고 칭찬했다.
단체전에서 신유빈 이상의 활약을 펼쳐준 이은혜와 전지희에 대한 칭찬도 잊지 않았다. 유 회장은 "이은혜의 가능성을 봤다. 저렇게 저돌적으로 잘 쳤던가 싶더라. 완벽한 경기를 펼쳤다"며 "전지희는 무릎 등 부상이 있었지만, 스스로 몸 관리를 잘 했다. 이전까진 개인적인 성향이 강했지만, 갈수록 후배들을 챙기며 리더가 됐다. 단식에서 조기 탈락했는데, 잘 이겨내고 맏언니로서 훌륭한 역할을 했다"고 짚었따.
신유빈이라는 스타가 탁구로 '흐름'을 가져온 걸 놓치지 않는 게 유승민 회장의 목표다. 유 회장은 "스타 마케팅을 하려는 게 아니다. 현재 아마 종목들은 모두 위기다. 이럴 때 한 명의 스타가 있으면 우리 종목에 다양한 지원이 들어온다. 종목을 다시 살릴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며 "신유빈이라는 스타가 등장한 것을 고무적으로 생각한다. 이전에도 이런 몇 번의 (스타 기반으로 부흥할) 기회가 있었는데 살리지 못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된다"고 다짐했다.
김택수 대한탁구협회 부회장이 말을 보탰다. 김 부회장은 "신유빈이 도쿄 올림픽 때만 해도 실력보다는 귀여움 등 외적인 관심도가 높았다. 그래서 우려도 했다. 하지만 유빈이가 항저우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 올림픽에서 실력을 증명했다. 이제는 진정한 스타"라고 기뻐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기도 한 유승민 회장의 임기는 이번 대회가 마지막이다. 유 회장은 그 마지막 임무로 여자 단체전 시상을 선택했다. 유 회장은 "원래는 아니었는데, 내가 하고 싶다고 (경기 전부터) 밀어붙였다. 우리나라의 동메달 획득을 확신했다"며 "오후 8시에 선수위원 총회 일정이 있는데 나가지 않고 시상자로 시상식에 참석할 계획"이라고 기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