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인사만 나누던 공태현 프로와 처음 말을 섞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3년이 조금 안된 어느 날이었다.
그 날 뱁새 김용준 프로는 인천시 청라베어즈베스트CC 10번 홀 그린 근처에 있었다. 심판 카트를 타고 말이다. 그렇다. 뱁새 김 프로는 그날 KPGA투어(당시 코리안투어) 경기위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 대회는 2021 시즌 막바지 대회였다. 시즌 마지막 대회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대회까지 포인트 순위 120등 안에 들어야 시즌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 다음 대회는 120명만 참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포인트는 상금 규모와 대회의 의미 따위를 감안해 대회마다 다르게 매기는 점수를 기준으로 계산한다. 120명만 나갈 수 있는 다음 대회 말고도 시즌 마지막 대회가 더 있기는 했다. 그 마지막 대회는 참가 선수를 더 줄였다. 상금이나 포인트 순위 중 하나라도 70등 이내인 선수만 참가할 수 있었다. 70여 명은 다음 시즌 시드권을 확보한 선수이다. 시드권이란 한 시즌을 예선전을 치르지 않고 전부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말한다.
뱁새 김용준 프로는 챔피언스투어(시니어투어)를 뛰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 올해 시드권이 없다. 그래서 매번 예선전을 치르는 비루한 신세이다. 예선을 치러 본 사람은 안다. 얼마나 비참한지. 청라베어즈베스트CC에서 여는 대회는 여러 선수에게 그 시즌 마지막 기회였던 것이다.
시드권을 얻지 못한 선수는 퀄리파잉 스쿨로 내려가야 한다. 줄여서 큐스쿨이라고 부르는 퀄리파잉 스쿨은 누구도 통과를 장담할 수 없다. 내로라하는 선수도 큐스쿨을 통과하지 못해 한 시즌을 쉬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한 시즌이면 다행이다. 큐스쿨에서 몇해 연속 고배를 마시고 KPGA투어로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선수도 많다.
이런 의미를 가진 막바지 대회이고 보니 참가하는 선수는 예민했다. 시드권을 얻기 위해서는 기적 같은 성적을 거둬야 하니 작은 일에도 민감할 수밖에.
뱁새가 카트를 타고 그린 근처에 진을 치고 있던 그 10번 홀은 파 4였다. 티잉 구역에서 선수들이 티샷을 했다. 세 선수 중 하나가 친 공이 몇 번 튕기더니 뱁새가 있는 그린 근처까지 와서 깊지 않은 러프에 들어갔다.
뱁새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KPGA투어이기는 해도 이렇게 멀리 보내는 선수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윽고 공을 찾으러 나선 선수와 캐디가 저만큼 앞에서 헤매고 있었다. 뱁새 근처까지 공이 온 것을 모르는 눈치였다. 뱁새는 소리를 질렀다. “누구 공 찾아요”라고. “제 공이요”라며 손을 드는 선수가 있었다. 공태현 선수였다.
“공 여기 있어요”라며 뱁새는 러프를 가리켰다. 공태현은 가뜩이나 밝은 얼굴에 웃음을 띠며 뱁새 쪽으로 성큼 성큼 걸어왔다. 더 멀리서 다른 두 선수가 세컨드 샷을 하는 동안 뱁새가 너스레를 떨었다. “공태현 프로,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지 말아요”라고. 공 프로가 씨익 웃었다. 그가 친 공은 300m 가까이 날아온 뒤에 몇 번 튕겨서 몇 십 미터를 더 굴러온 것이다.
“오늘 잘 풀어가고 있어요?”라고 뱁새가 물었다. 공 프로는 “저 오늘 진짜 잘 쳐야 해요. 이번 대회에서 20위 안에는 들어야 다음 시합에 나갈 수 있어요”라고 답했다. 공 프로가 그 대회에서 톱 20위 안에 들려면 데일리 베스트 가까이 쳐야 했다. 긴장한 상태에서도 그는 더없이 밝았다. 그날 공 프로는 어떻게 되었느냐고? 어떻게 되기는 어떻게 되었겠는가? 잘 못 쳐서 시드권이 물 건너 갔지! 그리고 늦가을에 참가한 큐스쿨에서도 낙마해서 KPGA투어에서 내려갔고. 뱁새는 제 일도 아니면서 안타까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공태현 프로가 지투어(G-Tour)에 나타났다. 지투어는 시뮬레이션 골프 업체인 골프존이 주관하는 시뮬레이션 골프 대회이다.
공태현 선수는 승부에 집중하느라 긴장한 다른 선수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스케치북에 글을 써서 팬과 소통하며 시합을 했다. 주저하지 않고 유머도 날렸다. 재치 넘치는 몸짓도 마다하지 않았다. 컴퓨터 골프 게임에서나 시도할 만한 말도 안 되는 샷도 선보였다.
대회를 거듭하면서 그의 성적은 빠르게 올라갔다. KPGA투어를 뛰던 기량에 어마어마한 파워를 밑천으로 말이다. 그리고 우승 턱밑까지 여러 번 갔다. 놀라웠다. 아무리 기량이 뛰어나도 채 1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지투어의 퍼팅 로직을 완전히 익혀서 우승을 다툴 정도가 되다니.
믿을 수 없는 그의 선전에 골프 세상도 응답했다. 신한투자증권이 그를 후원하기로 한 것이다. 그가 지투어에서는 생각하지도 못한 큰 스폰서로부터 후원을 받자 술렁거렸다. 선수들이 남다른 모습을 보이면 지투어에서도 든든한 스폰서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 뒤로 지투어는 너무 재미있어졌다. 여러 선수가 팬과 소통하기 시작한 것이다. 유머와 재치와 도전적 샷은 이제 공태현 선수만 하는 것이 아니다.
공태현 한 사람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지투어를 활기차게 만든 것은 놀랍다. 그는 KPGA투어에도 복귀하기 위해 올 가을 큐스쿨에도 참가할 예정이다. 필드와 시뮬레이션 골프 두 가지를 다 잘 하는 진기한 일을 그가 이뤄내기를 기대한다.
‘뱁새’ 김용준 프로와 골프에 관해서 뭐든 나누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메일을 보내기 바란다. 지메일 ironsmithki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