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되고 있나요?” 다음 홀로 이동하는 뱁새 김용준 프로에게 경기위원이 물었다. 의례 하는 인사일 터였다. 뱁새 김 프로는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펴서 아래를 가리켰다. ‘2언더파’라는 뜻이었다.
그랬다. 뱁새 김용준 프로는 이날 13홀까지 2언더파를 기록하고 있었다. 뱁새 손짓을 본 경기위원은 오른손 엄지를 치켜 들었다.
지난 6월 25일 일이다. 뱁새는 ‘레전드 클래식 시리즈 3차 대회’에 참가하고 있었다. 한국프로골프협회(KPGA)가 전북 군산컨트리클럽(CC)에서 연 이날 시합은 챔피언스투어(시니어투어) 예선전이었다. 그 다음날부터 이틀간 치를 본 대회에 진출할 선수를 가리는 시합 말이다.
뱁새는 2024 시즌에 챔피언스투어 시드가 없다. 뱁새가 어떻게 시드전을 망쳤는지도 안다면 진정한 애독자이다. 칼럼만 보면 한가락 할 것 같은 뱁새인데 시드전에는 왜 떨어졌을까?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그 이야기는 이미 지나간 칼럼에 실었다.
KPGA 챔피언스투어 예선은 보통 120명이 참가한다. 그 중에서 본선에 올라가는 선수는 단 15명이다. 올 시즌 챔피언스투어는 총 열 두 경기를 치른다. 올해 1.5번 예선을 통과하면 시니어 프로 골퍼 가운데 실력이 보통은 되는 셈이다. 뱁새는 올해 예선을 몇 번이나 통과했느냐고? 흠흠! 그 이야기는 시즌이 끝난 다음으로 미루자.
다시 6월 25일로 돌아간다. 그날 뱁새는 컨디션이 좋았다. 티샷은 번번이 페어웨이 한복판에 떨어졌다. 그것도 같은 조 선수가 부러워할 만큼 멀리 날아가서 말이다. 아이언 샷도 깔끔해서 몇 번은 핀에서 두어 발짝에 붙었다. 그런 샷 중 절반 정도는 버디로 이어졌다. 대여섯 발짝에 붙은 샷도 여러 개였다.
그 중 하나가 바로 14홀 파5에서 세 번째 샷으로 친 어프로치였다. 경기위원에게 자랑을 하고 난 바로 그 다음 홀 말이다. 남은 퍼팅은 다섯 발짝 짜리였다. 내리막에 슬라이스 브레이크였다. 2언더파면 무난하게 예선을 통과할 것이라고 뱁새도 생각했다.
그래도 혹시 남은 홀에서 실수를 할 수도 있는 일 아닌가? 그래서 14홀 버디 퍼팅은 꼭 성공하고 싶었다. 뱁새는 이리저리 오가며 브레이크를 열심히 살폈다. 그리고 셋업을 하고 백스윙을 했다. 그 때 갑자기 머릿속에서 ‘홀을 지나가게 쳐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스트로크를 하기 직전에 잡념이 끼어든 것이었다. 살짝 세게 쳤다고 생각한 순간 공은 홀 왼쪽을 스치고 두 발짝쯤 더 내려갔다.
아뿔싸! 두 발짝 짜리 퍼팅을 성공할 확률은 반반쯤 되었다. 지금이라도 자신 있게 퍼팅을 해야 했다. 그러나 후회가 밀려왔다. ‘안 들어가면 탭인 해서 쉽게 파를 할 수 있게 살살 칠 걸’하는 후회 말이다.
파 퍼팅을 성공하지 못하면 1언더파가 될 판이었다. 1언더파면 예선은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불안한 점수라는 생각도 들었다. 남은 홀에서 실수를 안 한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 짧은 시간에 이런 저런 상념이 머릿속을 오고 갔다. 그랬으니 어디 퍼팅인들 단단하게 할 수 있었겠는가? 죽도 밥도 아닌 스트로크를 하고 말았다. 1언더파인채로 남은 홀은 네 홀이었다. 1언더파만 지키면 예선을 통과할 수 있다고 뱁새는 판단했다.
마음을 다소 가볍게 먹자 남은 티샷은 전부 매끄러웠다. 파3인 17홀에서 친 아이언 샷도 깔끔했고. 그렇게 남은 네 홀에서는 모두 네다섯 발짝짜리 버티 퍼팅을 남겼다. 그 중 하나라도 떨어뜨리면 남은 경기가 아주 수월할 판이었다. 그러려면 더 집중해야 했다.
그러나 뱁새는 빨리 긴장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과감하게 버디를 노리다가 또 한 번 3퍼팅을 하는 실수를 범하면 공들인 라운드가 날아가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도 있었다.
아니 그게 뭐라고 그렇게 긴장을 하느냐고? 겪어 본 사람은 안다. 차라리 내기 골프가 낫지. 한 타는 그냥 한 타일 뿐이니까. 컷 오프가 있는 예선전이라면 한 타는 때로는 전부를 의미한다. 이븐파로 탈락하나 90타로 탈락하나 마찬가지이니까 말이다.
컷오프 경계선에 걸려 있는 뱁새 속마음은 어떠했겠는가? 입술이 바싹 탔다. 뱁새는 그렇게 네 번이나 되는 찬스를 맥없이 흘려 보내고 말았다. 그냥 툭툭 쳐서 투 퍼트로 파만 기록했다는 이야기이다.
1언더파짜리 스코어 카드를 제출하면서도 뱁새는 싱글벙글했다. 아쉽지만 예선전은 통과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걸! 오후에 나온 결과를 보고 뱁새는 입이 벌어졌다. 그날 컷오프 기준은 2언더파였다. 그것도 백카운트로. 2언더파를 치고도 탈락한 선수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백카운트’란 동점자가 나왔을 때 순위를 가리는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후반을 잘 친 선수가 이기는 방식이다.
1언더파를 치고도 예선에서 탈락하다니! 뱁새는 지레 결과를 짐작하고 서둘러 경기를 마치는 데만 급급했던 자신을 원망했다. 챔피언스투어의 높은 벽도 다시 한 번 실감하고. KPGA 영감들 진짜 잘 친다.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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