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위기까지 몰렸던 지난 봄, 박병호가 은퇴까지 불사하면서 이적을 요청한 데엔 '400홈런'의 갈망과도 맞닿아 있었다.
당시 박병호의 리그 통산 홈런은 383개. 17개를 더 때려야 했지만, 시즌 초반 부진에 출전 기회까지 줄어든 그에게 시간이 많지 않았다. 은퇴 전 KBO리그 400홈런 만큼은 꼭 이루고 싶었던 그는 더 많은 출전을 위해 팀에 이적을 요청했다.
38세의 적지 않은 나이. 누군가에겐 욕심으로 비춰질 수 있었지만, 박병호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자신을 믿었다. 그리고 그는 트레이드로 새롭게 둥지를 튼 곳에서 400홈런 대위업을 달성했다.
박병호는 지난 4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24 신한은행 SOL 뱅크 KBO리그 두산 베어스와 홈 경기에 4번·지명타자로 선발 출전, 2회 홈런을 쏘아 올리면서 KBO리그 400호 고지를 밟았다. 이날 라이온즈파크를 찾은 2만4000명의 만원 관중 앞에서 대기록을 작성했다.
KBO리그에서 통산 400개의 홈런을 때려낸 선수는 이승엽(467개) 최정(491개) 다음으로 박병호가 세 번째다. 이날 박병호는 KBO리그 최초로 400홈런을 달성한 이승엽 두산 감독 앞에서 대기록을 세우는 기염도 토했다.
시즌 초반 페이스만 봤을 땐 그의 400홈런 도전은 '무리수'와 같았다. 박병호는 5월 말 트레이드 전까지 KT 위즈에서 44경기에 나와 3홈런을 때려내는 데 그쳤다. 삼성 이적 직후 연일 홈런을 때려내긴 했지만, 여름이 되자 다시 주춤했다. 대기록 달성은 요원해보였다.
그러나 한여름반에 반전이 일어났다. 8월 한 달 동안 7개의 아치를 그리더니, 9월 1일 KIA 타이거즈전 멀티 홈런에 이어 3일 롯데 자이언츠전까지 3경기 연속 홈런을 쏘아 올리며 400홈런을 눈앞에 뒀다. 그리고 4일 두산전에서 4경기 연속 홈런을 완성하며 400고지를 밟았다. 그토록 바랐던 400홈런을 해를 넘기지 않고 달성한 것이다.
박병호는 "생각보다 400홈런이 빨리 나와서 다행이다. 내겐 큰 의미가 있는 400홈런이라 굉장히 기쁜 마음으로 그라운드를 돌았다"라고 했다. 그는 "야구를 하면서 홈런왕도 많이 해봤지만 통산 홈런 개수가 300개 후반으로 들어오면서 400개를 달성 못하고 은퇴하면 아쉽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장 큰 목표였는데 이뤄져서 기쁘다"라고 말했다.
시즌 20홈런이라는 점에서도 이 홈런은 박병호에게 의미가 컸다. 박병호는 히어로즈 시절이었던 2012년(31홈런)부터 KT 위즈 소속이던 2022년(35개)까지 'KBO리그 최초' 9년 연속 20홈런을 때려냈다. 하지만 지난해 18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기록이 끊겼다. 에이징커브(나이가 들수록 기량이 떨어지는 현상) 이야기가 당연히 나오는 가운데, 다시 20홈런을 때려내며 부활했다.
박병호는 "작년에 연속 20홈런 기록이 깨져 많이 아쉬웠다. (20홈런은) 아직 장타를 더 때려낼 수 있다는 증거라 의미가 크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안타를 잘 못 쳐서 타율이 낮은데, 중요한 순간 (홈런을 통한) 대량 득점으로 팀이 이기는 데 내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아 괜찮다고 생각한다. 트레이드 후에 햄스트링 부상도 당했지만 후반기 복귀해서 팀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 다행이다"라고 정했다.
은퇴를 불사하면서까지 원했던 400홈런 고지를 밟았다. 박진만 감독은 "박병호는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선수"라며 "500홈런을 기록할 때까지 응원하겠다"라고 했다. 앞으로 수 년 이내 이승엽의 홈런 기록(467개)을 넘을 수 있을 거란 예측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하지만 박병호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FA 계약 기간이 끝난) 내년 시즌에 내 거취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승엽 감독님 기록을 넘는다는 생각은 없다"며 "단순히 원했던 400홈런을 돌파했다는 것만으로 큰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개인적인 목표는 솔직히 다 끝났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시리즈(KS) 우승이 없긴 한데, 이 팀 선수들과 함께 KS에 가서 우승하면 좋을 것 같다. 다음 목표는 우승을 생각하고 있다"라며 앞으로의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