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의 전세계적 위상이 높아진 지금, K콘텐츠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선 경쟁력 있는 스토리는 필수다. 참신함으로 무장한 신인작가의 중요성이 거론되는 이유다. 이들의 차별성 있는 아이디어는 콘텐츠 전반의 다양성에 일조하는 동시에 K 콘텐츠의 토대를 단단히 뒷받침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최문석 에이스토리 제작총괄본부장은 신인작가를 발탁하는 데 최선봉에 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 ‘빅마우스’, ‘모래에도 꽃이 핀다’, ‘유괴의 날’부터 지난 6월 인기리에 종영한 ‘크래시’까지. 국내 대표 드라마 제작사인 에이스토리는 그 어느 곳보다 신인 작가를 발굴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일간스포츠 창간 55주년을 맞아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에이스토리 본사에서 만난 최 본부장은 먼저 창간 축하 인사를 건네며 “만화가 고(故) 고우영 선생님이 일간스포츠에 만화 ‘일지매’(1975~1977)를 연재하신 것을 보고 자랐다. 그 이후에도 지하철에서 일간스포츠를 구매해 보면서 다녔다. 족히 30여 년을 일간스포츠와 함께 했다”고 특별한 기억을 떠올렸다. 이어 “어떤 창구로든 독자가 뉴스를 소비하더라도, 뉴스가 있는 한 일간스포츠가 언제나 곁에서 독자를 만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일간스포츠의 창간 테마 ‘빌드업코리아’를 위해선 경쟁력 높은 IP(지적재산권)는 물론, 이를 뒷받침할 신인작가의 발굴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신인작가들에겐 기회가 무척 필요하다. 그리고 그 기회의 문은 넓어야 한다. 이들이 드라마 업계에 첫 발을 내디딜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역할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최 본부장은 34년간 콘텐츠 업계에 몸담고 있다. SBS PD 공채 2기로 입사해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 ‘온리 유’, ‘크리스마에 눈이 올까요?’, ‘초인가족 2017’ 등을 연출했고 기획, CP 등을 맡다가 2018년 에이스토리로 이적했다. 이곳에서 드라마 제작의 출발점을 맡고 있는 최 본부장은 터를 옮긴 후 가장 처음 시작한 프로젝트가 한국콘텐츠진흥원과 손 잡고 개최한 신인작가 발굴 및 육성을 위한 공모전이다. 최근엔 에이스토리가 독자적으로 공모전을 개최하고 있는데 올해 400여 편의 작품이 지원작이며 그 중 6편이 선정됐다.
에이스토리는 이들에게 작품 개발을 지원하는 동시에 취재 및 자문 지원, 창작지원금 지급 등을 제공한다. 과거 신인작가들의 주요 등용문이었던 방송사들의 입지가 전반적으로 줄어들면서 신인작가 등장의 토대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터라, 에이스토리의 이 같은 프로젝트는 작가를 꿈 꾸는 이들에게 소중한 기회이자, K 콘텐츠의 저변을 넓히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최 본부장은 “1년간 약 4만 페이지 정도를 본다”며 신인작가를 발굴하는 데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비단 공모전뿐 아니라 다양한 루트로 신인작가를 발굴하는 데 애쓰고 있다. ‘우영우’의 문지원 작가처럼 영화계에 먼저 발을 들인 작가를 찾아내는 것은 물론, 타 방송사들의 공모전에서 탈락한 작품까지도 살펴본다.
“업계에 있는 사람들의 눈은 비슷하더라도 결국 제작 여부의 판단은 주관적이에요. 저는 제 기준에서 재밌다면 그 작가와 계약해요. ‘30여 년간 이 업을 하고 있다는 건 내가 정답이다’라는 확신이 그 밑바탕이고요. 후배들에게도 항상 재밌는 걸 하라고 하죠. 다만, 대중이 싫어할 만한 작품은 하지 말라고도 강조하고요. 드라마는 대중문화예요. 우리와 대중의 취향이 항상 일치할 수 없지만 이를 절대 놓치면 안 되죠. 전국민이 뉴진스를 좋아하는데 자신만 싫으면, 다시 한번 뒤돌아 봐야 하는 것처럼요. 이 실력을 키우기 위해선 작품의 소재, 캐릭터, 대사 등을 보고 발전의 여지가 있는지 없는지 끊임없이 읽어봐야 하죠. 저 또한 매일 하는 일이 이 작업입니다.”
최 본부장의 사무실 책상과 책장에는 대본이 적힌 A4 용지가 가득 채워져 있는데, 인터뷰 전까지도 검토하고 있던 대본은 무려 14번의 수정이 이뤄진 상태였다. 자신을 옛날 사람이라고 칭하며 프린트된 활자로 읽어야 대본이 눈에 들어온다고 웃은 그는 “잘 읽히는 작품을 일단 모아두고, 안 읽히는 작품은 다시 읽는 작업을 하는데 그 횟수가 많아질수록 아웃될 가능성이 높다”고 작업 과정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최 본부장은 작품 선정 기준을 ‘재미’라고 밝혔는데, 그 밑바탕은 당연히 ‘공감’이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그는 “드라마 제작은 혼자 하는 게임이 아니다. 대중과 함께 느끼지 못하면 그건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무척 슬픈 것”이라고 말했다. 늦게 빛을 보고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작품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크래시’다. 교통범죄수사팀의 활약을 그린 ‘크래시’는 약 6년 만에 시청자를 만났다. 최 본부장은 이를 “냉동시켰다”고 표현했다.
“제작사의 작품도 결국 방송사 등 플랫폼의 선택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거절 당하는 것들도 있죠. 크래시도 그랬죠. 하지만 ‘크래시’는 소재든, 공감 포인트든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작품이에요. 중산층 기준으로 한 가족에 자동차 두 대 이상이 있는 것처럼 시청자 대부분이 운전자라서 도로 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고, 자동차와 관련된 범죄만 다룬다는 팀이 있다는 작품의 출발점도 차별성이 있었죠. 냉동시켜 놨다가 신선한 것처럼 꺼내 보일 수 있는 작품이라 믿었죠.”
최근 편성권을 지니고 있는 방송사들이 광고 수익 감소로 큰 타격을 입으면서 방송가의 상황은 그닥 좋지 않다. 에이스토리 또한 이러한 시장 분위기에 영향을 받고 있는데, 최 본부장은 새로운 시장 개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시청자와 공감대를 형성하며 메시지를 던지는 좋은 작가와 좋은 작품이 계속 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제작자로서 우리의 목표점은 분명해요. 드라마를 잘 만들고, 시청자들에게 사랑 받는 거죠. 그 과정은 쉽지 않고, 신인 작가 또한 고된 작업을 거쳐야 하죠. 사실 제작사로서는 이미 검증이 된 작가들과 계약해 작업하는 게 흥행의 성공률을 높이는 데 가장 쉬운 방법이에요. 하지만 그랬다면 ‘우영우’ 등과 같은 작품들이 시청자를 만나기 쉽지 않았겠죠. 신인작가의 발굴이 그래서 중요해요. 개인적으로도 이 작업이 무척 즐겁고요. 제가 발굴한 작가가 처음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나중엔 입지를 다져가는 모습을 같은 업계에서 지켜보는 것에 무척 보람을 느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