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KBO리그는 새 역사를 쓰고 있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후 처음으로 정규시즌 1000만 관중을 돌파한 것이다. 경기장에 가지 않더라도 TV와 모바일로 야구를 즐기는 팬들은 그 몇 배다.
프로야구는 지난 40여 년 동안 한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였다. 올해는 스포츠를 뛰어넘어 한국 최고의 콘텐츠로 도약하고 있다.
1000만 명은 단지 관객이 아니다. 야구장에서 응원가를 만들어 부르는 가수이며, 함께 춤추는 댄서다. 그리고 기발한 응원 문구를 쉴 새 없이 생산하는 카피라이터다. 불같은 열정을 내뿜으면서도 매너는 쿨하다. 야구 종주국 미국과 야구가 국기(國技)로 여기는 일본에서도 깜짝 놀라는 응원 문화다. 일간스포츠는 세계 최고의 스포츠팬으로 불러도 좋을 이들을 만나 'K-볼'의 매력에 대해 들었다. <편집자 주>
구단이 주도하는 응원뿐 아니라 팬들의 응원 방식도 다양해졌다. 외야 빈자리를 활용해 응원하는 선수의 유니폼을 여러 장 모아 큼지막한 등번호를 만들어 깔아 놓는 응원도 생겼다.
LG 트윈스 투수 임찬규는 지난 8월 선발 등판 때 잠실 외야에 깔린 자신의 등번호 대형 'No.1' 유니폼 응원을 받은 바 있다. 그는 "마운드에서도 더그아웃에서도 보일 정도로 큰 응원이다. 정말 감사하다"며 "팬들이 유니폼을 테이블이나 여러 곳에 걸어두시는 데 볼 때마다 힘이 난다. 그런 걸 보면 더 잘하고 싶고, 자부심도 생긴다.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다"라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삼성 라이온즈의 홈구장인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의 외야엔 아예 '라팍 세탁소'라는 명소가 생겼다. 외야 철망에 팬이 모은 수십 장의 유니폼을 세탁소처럼 걸어 놓는 응원 장소다. 삼성 외야수 구자욱은 "외야 수비를 항상 나갈 때마다 본다. 볼 때마다 힘이 정말 많이 된다"라며 팬에게 감사를 전했다.
2007년부터 삼성을 응원하고 있는 김보선(41) 씨는 이 유니폼 세탁소 '단골 주인장'이다. 여러 명의 주인이 번갈아 세탁소를 찾는 가운데, 김보선 씨가 이번 시즌 평일 마지막 홈 경기(예비일 제외, 9월 4일)의 마지막 주인이 돼 수십 장의 유니폼을 걸어 놓았다.
김 씨는 수천 개의 사인볼과 수백 장의 유니폼을 보유하고 있는 '찐팬'이다. 그러던 중 누군가 잠실구장 외야를 오승환의 '21번'을 유니폼으로 도배해 놓은 걸 보고 따라 해야겠다고 다짐, 유니폼 세탁소를 찾았다. 마침 라팍 외야에 여러 팬이 구자욱, 원태인 등 다양한 옷을 걸어두고 응원하는공간이 생겼다. 김보선 씨도 자신이 모은 유니폼들을 걸어두고 응원하기 시작했다.
김 씨는 "선수들이 잘 볼 수 있으면서 응원하는 힘도 제대로 느낄 방법이라고 생각해 따라 하기 시작했다. 옛날부터 모으다 보니 어느덧 수십 장의 유니폼이 모였다. 선수들도 오가며 고맙다고 해줘 뿌듯하다. 선수들이 더 힘을 받았으면 좋겠다"라며 미소 지었다.
김보선 씨의 유니폼도 특별하다. 2007년에 산 올드 유니폼에는 우승 기념 패치가 잔뜩 박혀있다. "이 유니폼을 입고 직관 오면 승률이 5할 이상은 된다"고 환하게 웃으며 "나만의 직관 징크스다. 오늘도 승리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김 씨의 기운을 받은 걸까. 삼성은 4일 두산 베어스전에서 승리했다.
두 팀의 유니폼으로 만든 '반반 셔츠'도 종종 눈에 띈다. 민광진(48) 씨와 박재경(39) 김윤중(44) 씨는 나란히 삼성과 롯데를 섞은 유니폼을 입고 라팍과 부산 사직구장을 번갈아 찾는다. 민 씨가 부산 사는 롯데팬, 김 씨가 대구 사는 삼성팬인 반면, 민 씨의 아내 박 씨는 울산 출신의 '중립팬'이다.
박 씨는 "이 유니폼을 입고 나서부터는 홈 관중석과 원정 관중석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어서 좋다"라며 웃었다. 민 씨는 "이 유니폼을 입고 나서부터는 편하게 눈치 보지 않고 응원가를 부르며 응원하고 있다"라고 웃었다. 박 씨도 "삼성도, 롯데도 응원가가 정말 흥이 나지 않나. 부르고 싶은 응원가가 있을 때 편하게 따라 부를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민 씨는 "롯데는 화끈한 매력이 있는 팀이다"라고 어필했다. 박 씨는 "삼성이 지난 몇 년간은 잠깐 주춤했지만, 요새 다시 홈런 군단의 면모를 회복하지 않았나. 화끈한 홈런에 탄탄한 수비가 매력 있는 팀이다"라며 삼성의 매력을 설명했다. 박 씨는 "꼭 한 팀을 응원해야 하는 법이 있나. 지금 이 반반 유니폼처럼 둘 다 응원하고 싶다"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