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오프(PO) 2차전 우천 순연이 아직 결정되지 않은 지난 14일, 이날 선발 등판 예정이었던 원태인이 황동재와 함께 라커룸 복도를 거닐고 있었다. 하지만 원태인의 패션이 다소 의외였다. 황동재를 비롯한 선수들이 삼성의 파란색 유니폼과 트레이닝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반면, 원태인은 미국 메이저리그(MLB) 로스앤젤레스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등번호는 17번. 오타니 쇼헤이 유니폼이었다.
이유가 있었다. 원태인만의 루틴이자 징크스였다. 15일 경기 전에도 오타니의 유니폼을 입고 출근했다는 원태인은 "시즌 전반기 때 워낙 안 좋아서 뭔가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오타니의 유니폼을 해외 배송으로 구했다"면서 "홈 경기 때 오타니 유니폼을 입고 출근한 뒤 8승 1패 정도를 했다. 좋은 기운을 받고 싶었다. 스파이크도 오타니와 같은 것이다. 미신 아닌 미신인데 대단한 선수의 기를 받았다. 좋은 결과가 나와서 다행"이라고 전했다.
오타니의 기는 가을야구에서도 계속됐다. 원태인은 15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24 신한은행 SOL 뱅크 KBO리그 포스트시즌(PS) 플레이오프(PO·5전3선승제) 2차전에 선발 등판, 6⅔이닝 동안 104개의 공을 던져 7피안타 2볼넷 3탈삼진 1실점으로 호투하며 팀의 10-5 승리를 이끌었다. 아울러 원태인은 PS 두 번째 등판 만에 생애 첫 가을야구 승리를 거뒀다.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1회 1사 1, 3루 위기를 자초한 뒤 병살에 실패해 실점했고, 2회엔 안타와 볼넷으로 1사 2, 3루 위기를 맞으며 고전했다. 7회에도 마운드에 올라 퀄리티스타트+(QS+·선발 7이닝 이상 3자책 이하)를 노렸으나 만루 위기를 내주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하지만 원태인은 이 모든 위기를 단 1실점으로 막아내며 위기 관리 능력을 보였다. 나머지 이닝은 LG 강타자들을 압도했다.
원태인은 "오랜만에 실전이라 힘은 넘쳤지만 정교함이 떨어졌다. 2회 김범석을 삼진으로 잡으면서 자신감이 올라왔고 정규시즌 때 피칭으로 돌아온 것 같다"고 말했다. 7회 자신이 초래한 만루 위기에 대해선 "만루 오스틴 타석 때 (김)윤수 형이 올라와 막아줄 거라 믿고 있었다. 정말 중요한 상황이었는데 상대 흐름을 끊고 승기를 굳혀줘서 고맙다"고 전했다.
원태인은 PO 준비 기간 합숙을 하면서 김윤수, 황동재와 보드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고 전했다. 그는 "어제도 보드게임을 하면서 이런(경기 중 위기) 상황이 오면 꼭 막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진짜 윤수 형이 막아줬다. 욕심을 부리다 위기 상황을 만들고 내려와서 미안했는데, 막아줘서 고맙다. 이젠 3차전에서 (황)동재가 잘할 일만 남았다"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