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 순간, 삼성 라이온즈 선수들 모두가 그라운드로 쏟아져 나왔다. 이들의 목표는 단 한 명. 포수 강민호(39)를 향했다. 이날 결승 홈런의 주인공이자, 데뷔 21년 만에 한국시리즈(KS)에 진출하는 선배를 위해 후배들이 한 데 모였다.
2004년 프로에 입단한 강민호는 데뷔 21년 만에 KS 무대를 밟는다. 2004년부터 롯데 자이언츠의 주전 자리를 꿰차며 국가대표에도 승선했던 그는 삼성에서 두 번째, 세 번째 FA(자유계약)까지 하면서 롱런했다. 그가 1군에서 뛴 경기만 해도 무려 2369경기. 역대 KBO리그 선수들 중 가장 많은 경기에 출전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오래 뛰었음에도 강민호는 단 하나의 갈증을 풀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KS다. 강민호는 지난 20년 동안 단 한 차례도 국내 최고의 무대를 밟지 못했다. 2011년과 2012년 롯데에서, 그리고 2021년 삼성에서 플레이오프(PO) 무대를 밟았지만 문턱에서 멈췄다. 강민호는 2000경기 이상 소화한 현역 야수들 중, 가장 오래 KS에 진출하지 못한 선수라는 불명예 타이틀을 얻었다.
강민호는 직접 자기 손으로 한을 풀었다. 지난 19일 열린 LG 트윈스와의 PO 4차전에 선발 출전한 강민호는 0-0으로 팽팽하던 8회, 결승 솔로 홈런을 쏘아 올리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이 승리로 시리즈 전적 3승 1패를 만든 삼성이 KS에 진출했다. 강민호는 홈런뿐 아니라, 투수들을 무실점으로 이끌며 스스로 KS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준비도 마인드도 베테랑다웠다. 강민호는 PO기간 LG의 발빠른 주자들을 철저히 대비한 결과, 이날 2개의 도루를 저지하며 실점 위기를 지워냈다. 또 홈런 후에는 마인드 컨트롤을 위해 혼자 락커룸으로 들어가 조용히 마음을 다잡았다는 후문이다. 아직 수비 2이닝이 더 남아있어 냉정해지려고 노력한 결과, 꿈에 그리던 KS에 도달했다.
경기 후 "이 자리(PO 승리 인터뷰)에 오고 싶었다"고 말한 강민호는 "울컥했다. KS에 가기까지 정확히 21년 걸렸다. 열심히 하다 보니 좋은 기회가 왔다"라며 웃었다. 이어 그는 "후배들에게 정말 고마웠다. 1~2차전 동생들이 잘해줬는데, 3차전 지고 나서는 '이제는 형이 해야 한다'고 하더라. 나는 포수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라고 전했다.
원태인의 말에 따르면, 강민호는 4차전 전날(18일) 사우나에서 선수들을 만나 "나 좀 KS 보내줘"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튿날(19일) 경기를 앞두고는 강민호가 "내가 해내겠다"라며 결연한 의지를 다졌다고. 그리고 그의 말대로 4차전 주인공은 결승 홈런·무실점을 일군 강민호의 몫이 됐다. 원태인은 "정말 형의 말대로 됐다. '올해는 되는 해구나'라며 놀랐다"고 말했다.
내친 김에 강민호는 '우승 없는 선수'라는 꼬리표도 떼고 싶다. 강민호는 "기회가 왔다. 분위기가 좋은 만큼, 하늘에 맡기고 후회 없이 싸우겠다"고 KS 각오를 다졌다. 상대 KIA 타이거즈에 대해선 "강팀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LG도 어려운 상대였다. 한 번 흐름을 끊으면 할 수 있다. KS도 한 번 흐름만 끊으면 우리에게 기회가 올 수 있다고 본다"라며 필승을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