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는 문화재 못질 논란에 촬영 분량을 전량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그 외에 별다른 조치를 염두에 두지 않은 듯하다는 것이다. KBS가 사안의 심각성에 대해 제대로 인지를 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알맹이 없는 사과만으로 끝내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KBS는 지난 15일 안동시청, 국가유산청 측과 논의해 배우 서현과 옥택연 주연의 KBS2 드라마 ‘남주의 첫날밤을 가져버렸다’(이하 ‘남주의 첫날밤’)의 병산서원 촬영분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촬영 당시 못질 훼손 논란이 지적된 만대루, 동재 보아지 등을 포함해 병산서원에서 촬영한 영상을 모두 폐기한다. 안동시는 지난 6일 해당 촬영분에 대해 폐기를 요청했고, KBS는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논란의 시작은 지난달 30일 경북 안동의 문화재인 병산서원에서 진행된 ‘남주의 첫날밤’ 촬영 현장에서 제작진이 만대루, 동재 보아지 등에 촬영 소품을 설치하기 위해 총 10곳에 못질을 한 것이다. 결국 기둥에는 두께 2~3㎜, 깊이 약 1㎝의 못 자국이 남았다. 논란이 불거지자 KBS는 두 번의 공식 사과를 하며 피해 복구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병산서원은 사적 제260호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문화재다. KBS는 피해 복구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으나, 문화재는 훼손된 부분의 복구가 쉽지 않은 동시에 복구 과정에서 추가 훼손될 위험도 크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문화재훼손 행위를 강력 처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법원은 최근 1심에서 지난 2023년 발생한 경복궁 담벼락 사건을 사주한 이른바 ‘이 팀장’은 징역 7년, 이 사건을 모방한 또 다른 낙서범은 징역 2년을 선고하며 엄중한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KBS의 이번 문화재 훼손 논란에 대해서는 정작 책임을 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공동 제작사 몬스터유니온과 스튜디오N 중 몬스터유니온이 KBS 자회사이고 연출, 책임프로듀서 모두 KBS 소속이며 편성도 KBS에 확정이 된 만큼 촬영 현장 관리감독의 책임은 KBS에 있다. 하지만 KBS에 확인을 한 결과 이들에 대한 문책은 예정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KBS의 사과에 대한 진정성도 의심된다. KBS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문화재 촬영 가이드라인도 전면 개정할 예정이라고 밝혔으나, 지난 2007년 KBS1 대하사극 ‘대조영’ 촬영 때 문화재 훼손 논란이 일었을 당시에도 책임을 통감한다며 복구 및 재발 방지를 약속했던 바 있다. 결국 당시 약속은 지켜지지 않은 셈이다.
유지희 기자 yjhh@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