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뚬칫냐용’, ‘슈퍼 이끌림’ 등 매번 독특한 신조어로 ‘Z세대’ 감성을 겨냥했던 아일릿이 이번엔 “자신들을 귀엽게만 보지 말아달라”며 묘한 반항아 기질을 보인다. 신곡 ‘낫 큐트 애니모어’는 ‘메가 히트’를 기록한 ‘마그네틱’보단 슴슴하고, 숏폼 챌린지를 제대로 겨냥했던 ‘빌려온 고양이’보단 얌전한 노래지만, 아일릿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히기엔 충분하다.
지난 24일 공개된 아일릿의 싱글 1집 타이틀곡 ‘낫 큐트 애니모어’는 레게 리듬 기반의 팝 곡으로, 기존의 사랑스러운 이미지와 달리 시크하고 키치한 스타일로 변신한 멤버들의 비주얼이 눈에 띈다. 신곡 발매 전부터 업계에서는 “이번 아일릿 신곡이 다른 의미로 파격적”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그 변화는 과장된 표현이 아니었다. 사진= ‘낫 큐트 애니모어’ 뮤직비디오 캡처. 사운드·가사·퍼포먼스 전반에서 ‘귀여움’의 틀을 벗기 위한 의지가 뚜렷했고, 멤버 개개인의 보컬 톤도 이전보다 거칠고 건조하게 배치되면서 무드를 완전히 새로 짰다. 실제로 아일릿은 ‘낫 큐트 애니모어’를 준비할 때 새로운 장르라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쿨한 애티튜드를 유지하는 것과 보컬 표현에 신경을 많이 썼으며, 최근 일문일답을 통해 “‘낫 큐트 애니모어’는 평양냉면 같은 노래”라며 “무표정으로 춤을 춘다”는 퍼포먼스 관전 포인트를 밝히기도 했다. 특히 가사가 흥미롭다.
“용감한 내 가방 / 노 키링, 노 핸드 미러”라는 구절은 여학생 하면 떠오르는 귀여운 소품 없이도 “난 나야”라는 당찬 자신감을 드러낸다. 여기에 “록 윌 네버 다이 / 린다 린다 자장가”로 이어지며 일본 펑크 밴드 ‘더 블루 하츠’의 대표곡을 자장가로 듣는다는 예상 밖의 취향을 냅다 공개한다. 이 외에도 “한정판 콩국수 맛챠(말차의 일본식 표현)보다 고소해”, “데이트 내내 젤리슈즈”와 같은 가사들은 사물과 취향을 통해 자신을 보여주는 Z세대식 자기 표현으로 읽힌다.
이번 ‘낫 큐트 애니모어’의 크레딧을 보면 ‘왜 노래가 기묘하게 중독성 있는지’ 납득간다. 작사·작곡에 재스퍼 해리스, 샤샤 알렉스 슬론, 유라가 이름을 올렸는데 먼저 재스퍼 해리스는 미국 팝 프로듀서 중에서도 트렌디하기로 유명한 인물이다. 켄드릭 라마, 리조, 잭 할로 등과 작업한 글로벌 프로듀서로 미니멀하고 중독적인 후크에서 강점을 보인다. 아일릿 신곡 가사에는 산만하게 귀여운 소품들이 가득한데, 재스퍼 해리스의 ‘쿨한 팝 사운드’ 덕분에 세련되게 느껴진다.
샤샤 알렉스 슬론은 미국 팝·포크 기반으로 작업하는 싱어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로 ‘댄싱 위드 유어 고스트’, ‘올더’ 등에서 드러나듯 1인칭 내면 독백·자조적 유머·자기 아이러니가 시그니처다. 아일릿의 ‘낫 큐트 애니모어’가 보여주는 쿨한 태도와 능청스러운 반항은 바로 이 슬론식 감정 톤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킥’(kick)은 유라다.
유라는 한국 인디팝 신에서 몽환적·감각적 이미지로 사랑받는 싱어송라이터다. R&B·드림팝·일렉트로닉 요소를 섞은 음악적 색깔이 강하며, 감정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사물·온도·색·음식·상황을 통해 우회적으로 묘사한다. “발끝에 닿는 이불이 내 친구(세탁소)”, “이마에 미끄러진 먼동의 싹(미미)”, “내 코는 높은 회색 빌딩(나이트 러닝)”등이 대표적이다. 이번 ‘낫 큐트 애니모어’의 “한정판 콩국수”, “젤리슈즈”, “느슨한 해파리” 같은 문장도 이런 유라식 이미지 조합이 그대로 드러난 부분이다. 사진=빌리프랩 제공.
‘낫 큐트 애니모어’는 25일 기준 유튜브 트랜딩 뮤직 6위, 멜론 핫100 38위, 벅스 실시간 차트 15위(오전 10시 기준)을 기록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알렸다. 국내 음원차트 상위권을 휩쓸었던 ‘마그네틱’과 비교하면 평이한 성적이지만, 이번 싱글은 아일릿이 앞으로 보여줄 ‘무궁무진한 음악 세계’에 기대감을 높인다.
한 가요 관계자는 “‘낫 큐트 애니모어’는 히트 성적을 노린 곡이라기보다 아일릿이 앞으로 어떤 결의 음악을 펼칠 수 있는지를 먼저 보여준 ‘방향성 제시형 싱글’에 가깝다”며 “귀여움에 머무르지 않고 개성과 취향을 전면으로 드러낸 만큼, 이후 활동에서 더 다양한 색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