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 패션의 중심은 ‘퍼’(Fur)다. 패셔니스타를 자부하면서도 아직 털코트를 장만하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한 벌쯤 눈여겨볼 만하다. 국내 패션업계에서 밍크·무스탕·양털 느낌의 부클레 등 ‘퍼 아우터’의 인기가 이어지고 있다. 몽클레르와 버버리 등 명품 패딩 열풍이 한풀 꺾이자 대체 아이템으로 보온성과 존재감을 갖춘 퍼로 시선이 옮겨가는 분위기다. 기술력 발전으로 진짜 모피처럼 보이는 ‘페이크 퍼’가 대중화된 데다 진도와 태림 등 전통 하이엔드 밍크 브랜드까지 매출이 동반 상승하며 퍼 전성기가 본격화하고 있다.
페이크퍼 아우터를 착용한 기은세. 기은세 SNS 진짜 같은 페이크퍼 전성기 3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아이보리 컬러의 페이크 퍼 재킷을 구매한 뒤 “비싸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고 있다. 해당 제품의 가격은 10만원 선이지만 촉감과 디자인은 수백만원대 리얼 밍크에 뒤지지 않는다. 그는 “겉으로 봐서는 진짜인지 가짜 모피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며 “요즘 브랜드 패딩도 40~90만원은 줘야 한다. 가성비를 따지면 페이크 퍼가 낫다”고 말했다. 이 같은 흐름은 패션과 이커머스 업계가 먼저 체감하고 있다. 여성 SPA 브랜드 미쏘는 겨울 시즌 페이크 퍼 아우터를 선보인 이후 관련 상품 매출이 크게 늘었다고 밝혔다. 미쏘의 페이크 퍼 아우터 매출은 2025년 전년 대비 약 7배 증가했다. 대표 상품인 ‘페이크 퍼 후드 재킷’은 입고 3일 만에 초도 물량이 완판됐다. 29CM도 지난해 11월 1일부터 보름간 판매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퍼 아우터 거래액이 전년 동기 대비 380% 급증했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스웨이드 소재와 퍼 디테일이 강조된 무스탕 거래액도 130% 늘었다. 브랜드 ‘108파운드’의 ‘몰리 리버시블 시어링 코트’는 29CM 여성 아우터 월간 베스트 랭킹 1위에 올랐다. 29CM 관계자는 “퍼 코트가 연말연시 파티룩뿐 아니라 데님 팬츠나 스니커즈와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데일리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며 “퍼 코트부터 퍼 부츠까지 퍼 소재를 활용한 겨울 신제품이 늘며 수요가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LF 질스튜어트뉴욕 퍼코트를 착용한 모델 이미지. 토종 밍크 브랜드도 매출 우상향 페이크 퍼만 강세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진도와 태림 등 토종 하이엔드 밍크 브랜드도 품질 경쟁력과 젊어진 디자인을 앞세워 매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진도는 젊은 소비자와 프리미엄 고객으로 타깃을 세분화하며 2025년 전체 매출이 전년 대비 20% 이상 성장했다. 태림모피는 2024년 매출 74억원을 기록한 데 이어 2025년에는 100억원대 매출을 달성했다. 태림모피는 올해 자체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하고 남성 모피 시장 공략에 나설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캐주얼 무드가 강해지면서 크롭 기장의 세이블 재킷과 풀스킨 재킷이 인기를 끌고 있다”며 “밍크에 패딩이나 세이블과 캐시미어를 결합한 믹스 매치 제품도 잘 팔린다”고 전했다.
영앤리치와 명품 패딩 피로감 패션업계는 퍼 코트 인기를 이끄는 배경으로 영앤리치 트렌드와 명품 패딩 시장의 피로감을 꼽는다. 영앤리치는 젊은 나이에 경제적 성공을 이룬 계층을 뜻하는 신조어다. K팝 스타들이 대표 주자로 떠오르며 이들처럼 럭셔리한 스타일을 지향하는 소비 심리가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5~10년간 국내 아우터 시장을 장악했던 300~500만원대 명품 패딩이 한물간 점도 퍼 유행에 힘을 보탠다. 고가임에도 국민 패딩으로 불렸던 몽클레르는 최근 각종 패러디 이후 상징성이 약화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체 브랜드로 제냐·브루넬로 쿠치넬리가 거론되지만, 가격대가 더 높아 진입 장벽이 높다. 40대 주부 B씨는 “800~900만원짜리 패딩을 사느니 300~500만원대 밍크 코트가 낫다고 판단했다”며 “패딩은 몇 년 입고 끝이지만 밍크 코트는 관리만 잘하면 오래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보온성 면에서도 한겨울에는 밍크 코트가 확실히 낫다는 말을 실감한다”고 덧붙였다. 업계 관계자는 “퍼를 찾는 연령대가 낮아지면서 전통 하이엔드 브랜드들도 SNS 마케팅을 강화하고 입문형 럭셔리와 데일리 제품 비중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