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라 김지현. (사진=본인 제공) “딸 같은 후배들이 룰라의 ‘3!4!’를 리메이크 해줬다는 게 너무 고마워요. ‘3!4!’는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자부심을 갖고 있는 곡인데, 후배들이 다시 불러주는 걸 보며 큰 힘이 났죠. 그 곡과 함께 우리도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이제는 후배들을 응원하고, 더 잘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까마득한 후배 가수인 ‘5세대 걸그룹’ 앳하트의 ‘3!4!’ 리메이크에 대해 원곡 가수인 룰라 김지현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김지현은 창간 57주년을 맞은 일간스포츠와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나 앳하트의 ‘3!4!’ 리메이크 관련 이야기부터 시작해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음악을 남긴 소속팀 룰라에 대한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다.
1994년 첫 앨범 ‘루츠 오브 레게’로 데뷔한 룰라는 ‘백일째 만남’과 ‘비밀은 없어’를 연달아 히트시킨 뒤 이듬해인 1995년 정규 2집 ‘날개 잃은 천사’로 화려하게 비상했다. 이후 발표한 앨범의 표절 논란으로 잠시 주춤했지만 1996년 ‘3!4!’로 재기에 성공하고 명실상부 최고의 혼성그룹으로 시대를 풍미했다.
앳하트. (사진=타이탄콘텐츠 제공) 특히 이 곡은 완성도 높은 프로듀싱과 음악성으로 당시는 물론, 발매된 지 3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오랫동안 사랑받은 명곡 중의 명곡으로 앳하트가 진행 중인 ‘타임 트래블 프로젝트’를 통해 2026년 버전으로 재탄생했다. 이에 MZ 리스너들에게는 신선한 자극을, 4050 리스너들에게는 아련한 향수를 주고 있다. 김지현은 “후배들이 리메이크해서 곡이 잘 되고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룰라를 모르는 세대까지도 알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거니 너무 고맙다”며 연신 고마움을 전했다.
하지만 상상 이상으로 큰 사랑을 받았던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은 복합다단했다. “그 땐 너무 스케줄이 워낙 힘드니까 차에 타거나, 미용실 의자에만 앉으면 무조건 잤어요. 주어진 스케줄만 소화하기에도 벅차고 힘들었거든요. 너무 빠르게 큰 사랑을 받아서, 20대라는 나이가 너무나 좋은 나이인데, 그게 감사한 줄도 모른 채 왠지 모르게 힘들었던 것 같아요. 오직 무대에서만 행복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감사한 시절이었죠. 지금은 무슨 스케줄이든, 감사한 마음으로 나가고 있답니다.(웃음)”
지금도 다양한 옴니버스 콘서트나 행사에서 룰라의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는 김지현은 “사실 무대에 서는 게 쉽진 않다. 한 해 한 해 다르더라. 히트곡 레퍼토리가 많다 보니 다 들려드리려면 여러 곡을 묶어서 메들리로 하는데, 한 파트 끝나고 나면 정말 힘들다. 이상민씨는 진짜로 쓰러질뻔 한 적도 있다”며 혀를 내둘렀다.
룰라 김지현. (사진=본인 제공) 그러면서 “그 시절 김지현 하면 떠오르는 (외적인) 이미지들이 있겠지만, 지금 이 나이까지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겠나”면서 “지금은 편하게 내려놓고, 동네 언니, 옆집 언니 같은 느낌으로 하고 있다. 그래야 보시는 분들도 편하게 받아들이시는 것 같다”고 쑥스럽게 웃었다.
활동 초창기부터 ‘라이벌’로 주목 받았던 혼성그룹 투투와의 숨겨진 비화도 꺼내놨다. “운이 좋게 혼성그룹 두 팀이 비슷한 시기에 나와서, 관심을 많이 받았죠. 당시 음악방송이 끝나면 우리는 투투의 무대를 모니터링하면서 ‘왜 투투처럼 못 하냐’ ‘왜 황혜영처럼 못 하냐’ ‘왜 귀엽게 못 하냐’고 엄청 깨졌었는데, 나중에 들으니 투투도 똑같았다더라고요. ‘왜 룰라처럼 못하냐’고요.(웃음)”
김지현에 따르면 투투의 ‘일과이분의일’과 룰라의 ‘백일째 만남’이 붙었을 당시엔 룰라가 늘 판정패 했단다. “신인 30초 코너에 ‘투투VS룰라’로 대결이 붙었는데, 당시에 황혜영씨가 너무 귀엽고 임팩트가 큰 반면 저는 노안이라는 얘기를 들으며 꼭 투투에게 졌어요. 나만의 스타일을 해야겠다 생각하며 파마머리에 빨간 립스틱을 바르니 관심을 받기 시작했죠. 웨이브 춤을 추니 섹시하다는 얘기도 들었고요. 세상에. 저는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어요. 저는 섹시하다는 생각을 못 했었는데 VS에서 이기기 위해 ‘비밀은 없어’ 때부터 점차 차별화된 스타일로 변신을 했고, 이후 전세가 기울다가 ‘날개 잃은 천사’ 때 확 올라간 거죠.” 그는 “당시 수학여행 장기자랑에서 여자애들끼리 룰라의 무대를 준비할 때면 다들 김지현 역할을 하고 싶어 했고, 이상민 역할 하라고 하면 울었다더라”고 그 시절의 에피소드를 꺼내놨는데, 당시 중학생이었던 기자의 기억 또한 동일해 인터뷰 도중 동시에 웃음보가 터졌다.
앳하트와 챌린지에 나선 룰라 이상민과 채리나. (사진=유튜브) ‘날개 잃은 천사’부터 ‘3!4!’까지 90년대 중반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 이들의 음악을 30년이 지난 현재 소비하는 리스너들의 댓글은 하나같이 뭉클하다. 김지현은 이같은 대중의 ‘향수’에 대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 시절을 돌아보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다 행복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 때는 우리나라가 한창 좋아지던 시절이었고 정서적으로도 여유가 있었는데, 지금은 물질적으로는 훨씬 더 풍족하지만 정서적으로는 피폐해지고 메마른 시기라 그 시절에 대한 향수가 더 커지는 것 같다”고 짚었다.
세대를 관통하며 사랑받는 룰라 노래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낸 김지현이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노래로 꼽은 두 곡은 ‘3!4!’와 ‘날개 잃은 천사’다. “누가 뭐래도 ‘3!4!’는 룰라에게 의미가 큰 곡이에요. 동창인 (이)현도가 준 곡인데, 우리가 정말 힘든 상황일 때 3전4기라는 의미를 담아 만들어 준 곡이죠. 그 때 그 시절을 생각해도 너무 고맙고, 지금 들어도 참 고급스러운 곡이에요. ‘3!4’가 우리 팀에게 너무 큰 의미라면, ‘날개 잃은 천사’는 김지현이라는 가수를 만들어준 곡이라 저에게는 잊을 수 없는 곡이죠.”
지난 6월 개최된 ‘제35회 서울가요대상’에서 레전드 상을 수상했을 당시 남긴 눈물의 수상 소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당시 이상민은 “여기 계신 분들이 룰라를 잘 알지는 못하겠지만 K팝 역사에는 존재한다”고 말했고, 김지현은 “오래 살고 버티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싶다”며 눈시울을 붉힌 바 있다.
룰라 김지현. (사진=본인 제공) “진짜 딱 그 감정이었어요. 오래 살고 버티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31년 전 대상을 받았던 그 무대에서 또 상을 받는다는 게, 너무너무 감사한 일이죠. 많은 분들이 ‘레전드’라 말씀해주시는 걸 들으면서도 별다른 느낌 없이 살았는데, 최근 시상식에서 레전드 상을 받고 나니 실감이 나더라고요. 지금까지는 그 표현이 단순한 수식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레전드 팀이라는 걸 인정해주셨구나 하는 걸 느껴 너무 감동이고 벅찼습니다. 지금까지 힘들어도 잘 해왔다 싶고, 특히 우리 팀을 위해 고생한 이상민씨 그리고 채리나씨에게도 정말 칭찬을 전하고 싶어요.”
현재 김지현이 꿈꾸는 목표는 담백했다. “60(살) 되려면 5년 남았는데”라고 너스레 떤 그는 “최장수 혼성그룹이 되는 건 어떨까 싶다”고 또렷하게 말했다. “솔로도 해보고 다 해봤지만, 저한테는 여전히, 룰라일 때가 가장 빛나고 가장 멋있었죠. 지금도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해요.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주고 사랑해주시는 분들을 보며, 이제는 보답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예전의 향수를 생각하면서 웃으며 즐겨주시는 무대를 하고 싶어요. 룰라에게 해체는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