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프로야구(NPB)에선 최고 인기 구단 소속 선수들이 불법 스포츠 도박에 연루됐다. 사안의 경중은 다소 다르다. 하지만 아시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두 프로야구리그에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프로야구 선수들의 직업 윤리와 각 구단의 선수단 관리 방식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했다.
일간스포츠 특별취재팀은 한 일본 NPB 구단의 고위 관계자를 직접 만나 일본 프로야구의 현실에 대해 물었다. 평소 NPB 구단들이 어떻게 선수단을 관리하는지, 프로야구 선수들과 폭력 조직의 접촉을 막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이 관계자는 자신의 이름과 직함, 소속 구단 모두 익명을 요청했다. 타 구단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자칫 일본 구단 관계자 전체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오해를 살까봐 염려도 했다.
이 관계자는 "승부조작과 불법 스포츠 도박은 사안의 심각성이 조금 다르다. 요미우리 사태는 선수가 고의로 승부를 조작한 일은 아니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폭력 조직이 선수들에게 접근하면서 생기게 되는 폐해와 위험성에 대해서는 깊이 공감했다.
-한국은 최근 현역 프로야구 선수들의 승부 조작 사태로 몸살을 앓았다.
"최근 일본에서 벌어진 사건은 선수가 야구 경기 결과에 돈을 걸어서 도박을 한 형태였다. 선수가 경기 중에 승부를 조작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냥 돈을 걸고 불법 도박을 하는 것도 물론 나쁘지만, 선수가 직접 승부를 조작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고 본다. 일본 프로야구에선 오랫동안 그런 일은 없었다."
-KBO리그의 승부조작 사건을 일본에서도 알고 있나.
"많이 알려지진 않았다. 신문에서 기사로 봤다. 다른 나라 리그라서 대대적으로 보도되진 않았다, 승부 조작은 과거 대만프로야구에서 많이 벌어졌던 일 아닌가. '아, 한국에서도 그런 일이 생겼구나'라고 안타까워했다."
-요미우리 사건에 대한 현지 반응은 어땠나.
"불법 야구 도박이 적발된 선수들은 2군 선수들이었다. 1군 경기에 거의 안 나왔다. 그래서 생각보다 야구 팬들이 관심을 가진 큰 이슈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사건은 팬들이 야구에 대해 나쁜 인상을 받게 만든다. 장기적으로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진다고 본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데에 모두 공감했다. NPB 커미셔너가 12개 전체 구단에 '관련 사안을 빠짐없이 조사하라'는 지시를 했다. 우리 구단도 선수 전원을 1 대 1로 만나 얘기를 들어보고 조사했다. 요미우리 외에 다른 구단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다는 발표가 나왔다. 그러나 다른 구단이나 선수들 사이에서 '과연 없었을까' 하는 의문은 많이들 갖고 있다."
-불법 스포츠 도박과 승부 조작 모두 기본적으로 '검은 손'의 접근에서 시작되는 일이다. 일본도 폭력 조직이 프로 선수들에게 접근하는 일이 종종 생기는가.
"요미우리나 한신처럼 인기가 많은 구단에는 소위 불량한 인물들이 선수들과 관계를 만들기 위해 손을 내미는 일이 있다. 처음에는 다 똑같다. 선수에게 '내가 팬이다, 같이 식사하고 싶다' 하면서 접근한다. 그래서 좋은 마음으로 식사 자리에 가보면 야쿠자가 앉아 있는 식이다."
-한국도 그런 자리가 사건의 시발점이었다.
"그렇게 관계를 만들고, 용돈도 주고 하다가 좋지 않은 일에 끌고 들어가는 것이다. 불법 베팅으로 적발된 요미우리 선수들 역시 중간에 낀 브로커에 대해 '처음에는 아주 좋은 사람이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그러다 조금씩 폭력 조직의 면모를 드러내는 것이다."
-NPB와 각 구단은 그 사건 이후에 어떤 방지책을 마련했나.
"NPB에서 선수단 교육에 나섰다. 도박에 대한 팸플릿을 만들었다. 글자만 써 있으면 안 읽을까봐 일러스트를 많이 포함했다. 몇 달에 걸쳐 여러 차례 교육을 하고 조사도 했다. 평소에는 신인 선수가 들어올 때 NPB가 신인 강습회를 한다. 구단들도 올스타 브레이크나 시즌이 끝났을 때 1년에 한 두 번 정도 경찰관을 초빙해 강연을 한다. 특별히 야쿠자 담당 경찰이 와서 선수들에게 어떤 부분을 주의해야 하는지를 많이 얘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일이 관리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 것이다.
"사실 선수들의 사생활은 구단이 관리하기 어려운 문제다. 24시간 같이 있을 수는 없으니까. 구단은 선수를 잘 교육해서 개개인이 스스로 조심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 가장 어려운 부분은 젊은 선수가 계약금이나 연봉을 많이 받은 직후다. '난 이제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생기면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결국 학생 야구 때부터 도덕성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나왔다. 일본 학생 야구의 현실은 어떤가.
"일본 선수들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수업은 많이 듣지 못한다. 대신 고등학교 야구팀이 3000~4000개 정도 된다.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프로야구 선수가 되려는 엘리트 선수들만 야구를 하는 게 아니라는 의미다. 일본 야구팀에서 뛰려면 머리도 다 짧게 깎아야 한다. 그 정도로 '학생다움'과 예의를 중요시한다. 큰 대회가 1년에 두 번밖에 없어서 마지막 여름 대회 때는 고3 학생들이 많이 울면서 뛴다."
-한국 스카우트들은 선수를 뽑을 때 인품이나 성실성, 부모님의 성격 같은 야구 외적인 부분도 많이 본다. 고교 시절 전과가 있는 선수를 가능성 때문에 뽑았다가 실패한 한국 구단도 있어서다. 일본은 어떤가.
"일본도 당연히 여러 부분을 종합해 판단한다. 정말 좋은 선수인데 아버지가 야쿠자라면 드래프트에서 선택하지 않는다. 실제로 실력이 있는데도 그런 문제로 계약을 못해 미국 진출을 꾀해야 했던 선수도 있었다.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프로 구단에 오너 회사(모기업)가 있다. 그래서 구단 이미지가 중요하다. 야구단 뿐만 아니라 모기업 이미지가 나빠지니까 인성에 문제가 있는 선수는 계약하기 어렵다."
-선수들의 '품위 유지'를 위한 교육에는 어떤 내용이 포함되나.
"일본은 파친코라는 합법적 도박장이 있다. 그 부분은 제한할 수 없다. 대신 좋은 식사를 마다하고 파친코에 가서 라면으로 때운다든지 하는 건강 문제는 구단에서 신경을 쓰고 있다. 무엇보다 신인 때나 2군에 있을 때, 구단 숙소에서 교육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SNS도 문제다. 감독에 대해 나쁜 글을 쓴다든지, 선발 로테이션이나 부상 선수에 대해 외부에 비밀로 해야 하는 것을 쓴다든지 하는 실수도 나온다. 그런 부분도 주의를 시킨다. 계약서에 SNS에 구단 내부 사정을 쓰지 못하게 명시한다."
-일본도, 한국도 갈수록 프로야구 선수가 구설수에 휘말리기 쉬운 환경이 돼가고 있다.
"요즘에는 경기에서 실수한 선수가 밤에 나가서 술을 먹고 있으면 팬들이 사진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린다. 그런 날 술집에 있으면 괜히 옆에서 지적하는 주변 손님들과 분쟁에 휩싸일 수도 있다. 아까도 말했지만 요미우리나 한신과 같은 인기 구단 선수들은 더 조심해야 한다. 요미우리는 지난 사건 이후 원정 경기 때 선수들이 호텔 밖에 웬만하면 나가지 못하게 규제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주전 선수들에게도 모두 해당되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