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리그 사장단이 올겨울 초미의 관심사였던 뉴미디어 중계권 사업자 선정을 놓고 적극적인 의사 표명을 시작했다. 10개 구단 사장은 18일 비공개 이사간담회를 소집해 "뉴미디어 중계권과 관련해 10개 구단 단장들로 구성된 KBOP 이사회 의견보다 각 구단 마케팅 팀장들의 결의 내용을 따르는 게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조만간 한 차례 더 이사간담회를 소집해 이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하기로 뜻을 모았다.
긴급 이사간담회가 소집된 배경은 이렇다. KBOP 이사를 맡고 있는 각 구단 단장들은 지난달 23일 제5차 이사회에서 올해 계약이 만료되는 뉴미디어 중계권 사업자 선정 문제를 논의했다. 이어 ▶포털과 비포털의 실제 운영사 및 에이전시 모두 입찰 참가가 가능한 중계권 입찰 진행 ▶입찰 평가 시 업체의 KBO 리그 기여도에 따라 가산점 부여 ▶입찰 선정사는 2020년 KBO닷컴을 통한 통합 중계권 입찰 진행 시 가산점 부여 등의 내용에 합의했다. 정운찬 KBO 총재가 올해 주요 실행 전략으로 공언했던 '중계권 공개 입찰'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결의안이 정작 각 구단의 실무자 의견과 정면으로 배치해 논란이 됐다. 한 관계자는 "구단 실무자들은 모바일 권리를 구단이 직접 계약하고, 나머지 뉴미디어와 관련해선 공개 입찰을 했으면 좋겠다는 입장이었다"며 "꽤 오랜 기간 논의해 왔고, 이 부분이 최적의 내용이라는 합의도 했다"고 했다. 이어 "반면 KBOP는 '모바일 시장에 비해 나머지 뉴미디어 시장이 너무 작으니 이대로 추진하면 입찰할 업체가 없을 것이다. 뉴미디어 권리에 모바일을 포함해야 한다'고 줄곧 주장했다"며 "실제로 이 논리에 설득당한 일부 구단의 단장들이 반대 의견으로 돌아서면서 이 합의 사항이 뒤집어졌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각 구단의 사장으로 이뤄진 KBO 이사들의 뜻에 관심이 쏠린 것은 자명한 일이다. 사장단은 이날 회동을 통해 자칫 방임으로 흐를 수 있는 무제한 공개 입찰 대신 실무자들의 의견이 적극 반영된 새로운 대안을 찾는 쪽에 무게를 뒀다. KBO나 KBOP에 일방적으로 키를 맡기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 대개 단장회의 의결 사항이 사장단의 이사회에서 큰 이견이 없는 한 통과됐음을 상기해 보면, 매우 이례적인 변화다. 구단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권리를 최대한 찾을 수 있는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지다. 중계방송사나 중계권 대행사의 횡포에 이리저리 휘둘리던 과거와 비교하면 의미 있는 결정이기도 하다. 일간스포츠는 이번 뉴미디어 심층기획을 통해 '무한' 공개 입찰이 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담보하지 못한 채 자칫 '쩐의 전쟁'으로 흐를 가능성이 농후함을 지적해 왔다. 실제로 지상파 케이블 3개 사의 컨소시엄 움직임이 상당 부분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각 구단들은 이번에 '제작+유통 재판매'까지 맡는 제2의 초갑질 대행사가 탄생할 수 있음을 감지하고, 이에 제동을 걸었다고 할 수 있다.
이사간담회에 참석했던 A구단 사장은 "마케팅 팀장들의 회의에서 나온 내용을 토대로 각 구단의 대표자들이 논의를 이어 가기로 했다. 대표자 역시 단장이 아닌 실무자가 나서게 될 것"이라며 "큰 틀에서 가장 이상적인 합의점을 찾기 위해 조율하는 단계다. 업체 선정 과정의 공정성과 리그 발전을 위한 수익성 제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또 "뉴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가장 이상적인 방법을 신중하게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며 "방향성을 제대로 잡고 최대한 공정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B구단 사장 역시 "이사간담회에서 컨설팅에 대한 결과 보고를 들었고, KBOP 이사회에서 의결된 내용도 확인했다"며 "사장단은 (이달 말로 예정됐던) 뉴미디어 중계권 입찰 시기까지 시간이 촉박하더라도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다시 논의하는 게 맞다고 결정했다"고 말했다.
단장들보다 마케팅 팀장들의 의견을 선택한 이유도 설명했다. "그동안 사장단에서는 어떤 사안이든 절차나 형식의 방향성을 두고 많은 얘기를 나눴다"며 "현재 선수단의 운영에 전문화된 단장들이 많지만, 중계권은 비즈니스 영역이다. 각 구단의 전문가들이 모여 의견을 내고, 그렇게 구성된 전문가 집단이 최종 결론을 내리면 KBO 이사회도 따라야 한다는 취지의 얘기가 나왔다"고 했다.
KBO 리그 중계권을 둘러싼 뿌리 깊은 병폐는 이미 올해 초 일간스포츠 기획 특집 보도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뉴미디어 중계권 사업자 선정은 그런 과거에서 탈피해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출발점이다. C구단 관계자는 "이전처럼 독점적 대행사를 선정해 새로운 병폐를 만든다면 새로운 계약도 의미가 없다. 더 이상 발전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구단의 마케팅 관계자는 그간 뉴미디어 논의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불협화음도 이번 논의 원점 회귀의 한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구단이 배제된 채 방송사가 주도적으로 만들어 낸 최근의 움직임에 대해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공개 입찰이라는 명분하에 또 다른 대행사, 특히 제작을 맡고 있는 회사가 유통까지 거머쥐겠다는 움직임을 잘 알고 있다. 실제로 케이블 3개 사를 대표해 중계권과 관련된 설명을 하면서 '우리가 중계하지 못하면 프로야구는 공멸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까지 야구 관계자들 앞에서 서슴지 않고 말하는 데 있어 불쾌함마저 들었다"며 에피소드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