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율 브리너(1915~1985) 조부가 울릉도 삼림 채벌권을 획득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다.
러시아 출생인 율 브리너는 깨끗이 면도한 대머리와 이국적 용모로 명연기를 펼쳤던 영화배우. 그가 출연했던 영화 ‘십계’(56)·‘대장 부리바’(62)· ‘나레르바 전투’(69) 등은 지금도 국내 방송에 방영될 정도로 그의 인기는 여전하다.
홍순칠 독도의용수비대 대장의 수기 ‘이 땅이 뉘 땅인데’(1997년·혜안)에는 율 브리너 조부가 울릉도에서 어떻게 채벌을 했는지 과정이 생생히 수록돼 있다.
러시아는 경성(서울)에서 1896년 울릉도 원시림 채벌 협정을 체결했을 때, 율 브리너 조부는 러시아 당국으로부터 벌채를 하청 받아 울릉도의 500년 이상 된 나무들을 수없이 베어 러시아로 실어 갔다. 홍 대장은 “이 과정에서 울릉도 사람들은 윤선을 조작하는 뱃놈들과 나무를 베는 러시아 산판 놈들의 행패에 시달려야 했다”고 주장했다.
블라디보스토크 장사꾼인 율 브리너 조부가 울릉도 삼림 채벌권을 획득한 배경은 뭘까.
1890년대 세계 열강의 제국주의가 기승을 부릴 때, 울릉도가 해상 안전망 확보의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최문형 한양대 사학과 명예 교수의 저서 ‘제국주의 시대의 열강과 한국’(1990년·민음사)에는 율 브리너 조부가 어떤 과정을 통해 울릉도 채벌권을 획득했는지 잘 드러나 있다.
1896년 러시아 로바노프 외상이 주한 외교진을 통해 블라디보스토크 상인 브리너 조부에게 울릉도와 압록강·두만강 삼림채벌권 얻어 줬다. 최 교수는 “러시아 정부가 울릉도 삼림채벌권을 율 브리너 조부에게 넘긴 것은 영국과 일본으로부터 러시아 정부가 울릉도를 지배하고 있다는 의혹을 피하고, 일본 해군에 대항하면서 울릉도를 러시아의 해군기지로 활용하려 했던 위장 전술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당시 조선이 묵시적으로 이를 허용해 줬다는 데 있다. 명성황후가 살해된 을미사변(1895) 이후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과 왕세자가 왕궁을 버리고 러시아 공관에 옮겨 거처한 아관파천 때, 러시아공사 베베르와 그의 처형 손탁은 고종황제를 꼭두각시처럼 움직였다. 이 때 러시아는 손탁을 내세워 두만강과 울릉도의 삼림채벌권을 조선으로부터 넘겨받았다.
1896년 8월 28일 이완용과 조병식이 울릉도 임차계약서에 서명함으로써 울릉도와 압록강 두만강 채벌권이 러시아로 넘어갔다. 울릉도 임차계약서 제16조는 조차 기간을 20년으로 명기했고, 그 후에는 채벌 권한자인 율 브리너 조부가 마음대로 채벌권을 양도할 수 있도록 규정해 놓았다.
한편 율 브리너 아버지 쥴리어스 이바노비치 브린너도 한국의 목재 채벌권을 얻어낸 사람으로 전해진다. 부친은 대한제국 말기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대규모의 수출입상사를 했던 인물이다. 율 브리너 가문은 조선의 삼림을 기반으로 막대한 부를 챙겼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