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미국 메이저리그(MLB)의 최대 이슈는 마이크 무시나의 은퇴였다. 무시나는 그해 20승을 따낸 뉴욕 양키스의 에이스였지만 시즌 뒤 "지금이 떠나야 할 적기"라며 그라운드와 작별을 고했다. MLB 역사상 은퇴 시즌에 20승을 기록한 건 1966년 샌디 쿠펙스(당시 LA 다저스·27승) 이후 무시나가 처음이었다. 쿠펙스가 팔꿈치 부상으로 유니폼을 벗었다는 걸 고려하면 무시나의 은퇴는 더욱 파격적이었다.
주변에선 그의 결정을 만류했다. 불혹의 적지 않은 나이였지만 '이상 징후'가 감지된 것도 아니었다. 무시나가 20승을 달성한 건 1991년 빅리그 데뷔 후 처음이었다. 5년 만에 200이닝을 소화할 정도로 그의 경쟁력은 여전했다. 무엇보다 월드시리즈(WS) 우승이라는 꿈을 이루지 못한 상태였다. 10년 동안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에이스였던 무시나는 WS 우승을 위해 2001년 양키스로 이적했다. 공교롭게도 양키스는 무시나가 몸담은 8년 동안 '무관'에 그쳤다.
2022년 프로야구 최대 화두는 이대호(40·롯데 자이언츠)의 은퇴다. 시즌 개막에 앞서 '예고 은퇴'를 선언한 이대호는 전반기를 타격 1위(0.341)로 마쳤다. 스트라이크존 확대로 타자들의 성적이 급락했지만, 녹슬지 않은 기량으로 버텨냈다. 지난 6일 리그 역사상 두 번째로 긴 14시즌 연속 10홈런-100안타를 달성했고 15일에는 개인 통산 세 번째 올스타전 홈런 레이스 우승을 차지했다. 시즌을 치를수록 그의 은퇴를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이대호의 커리어는 화려하다. 2010년 9경기 연속 홈런을 때려내며 그해 전인미답의 타격 7관왕에 올랐다. 2013년 12월에는 일본 프로야구(NPB)에 진출했고, 2015년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끌며 한국인 사상 첫 일본시리즈 최우수선수(MVP)에도 선정됐다. 2016년에는 MLB 무대를 밟아 한 시즌 준수한 성적(104경기·타율 0.253, 14홈런)을 남긴 뒤 '친정팀' 롯데로 돌아왔다.
국제대회에서 보여준 존재감도 대단하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5년 WBSC 프리미어12에선 후배들을 이끌고 우승을 이뤄냈다. 수년간 국가대표 중심타자로 활약한 그의 이름 앞에는 '조선의 4번 타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러나 이루지 못한 목표가 하나 있다. 바로 고향 팀 롯데의 한국시리즈(KS) 우승이다. 올 시즌 전반기를 6위로 마친 롯데의 남은 여정이 만만치 않다. 당장 내년부터 이대호마저 없으면 롯데의 KS 우승 꿈은 더 멀어질 수 있다. 몇몇 팬들이 "KS 우승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1~2년 정도 더 뛸 수 있지 않냐"고 말하는 이유다.
프로야구에서 은퇴는 민감한 단어다. 더 뛸 수 있다는 선수와 기회를 줄 수 없다는 구단이 팽팽하게 맞선다.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를 대표하는 간판스타였던 이병규와 김동주는 선수 생활 말년 구단과 마찰을 빚었다. 리그 역사상 최고의 포수로 평가받는 박경완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선수는 자발적 선택이 아닌 구단 권유로 유니폼을 벗는다. 이만수 전 SK 와이번스 감독은 "미련 없이 선수 생활을 끝내야 하는데 타의에 의해 그만두면 아쉬움이 남는다"고 전했다.
무시나는 "99%의 선수들은 (은퇴에 대해)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대개 누군가 '이제는 그만둘 때'라고 말하면 은퇴하기 때문"이라며 "그런 면에서 난 정말 운이 좋은 선수였다. 왜냐면 야구를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을 때 스스로 그만두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그런 면에서 이대호의 은퇴는 의미가 있다. 그는 '스스로' 은퇴를 선택했다. 그리고 누구보다 많은 박수를 받으며 마지막을 만들어가고 있다. 저점이 아닌 고점에서의 은퇴, 이대호가 KBO리그와 작별하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