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높이뛰기 간판 우상혁(26·국군체육부대)은 '후천적 짝발'이다. 8살 때 택시 바퀴에 오른발이 깔리는 사고를 당한 뒤 그 후유증으로 오른발(265㎜)이 왼발(275㎜)보다 1㎝ 작다. 일상생활에는 큰 지장이 없지만 '운동선수' 우상혁에게는 큰 핸디캡이다. 20년 넘게 한국 육상을 담당한 성봉주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수석연구위원은 "짝발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건 밸런스"라고 말했다.
높이뛰기는 도약의 힘을 통해 수평으로 설치된 바를 뛰어넘는 종목이다. 큰 보폭을 이용해 도움닫기 한 뒤 도약 후 정점에서 어깨를 뒤로 눕히는 아치 자세(배면뛰기)로 전환해야 한다. 이상적인 도약을 위해선 도움닫기 때 강한 추진력이 필수다.
김도윤 인천스포츠과학센터장은 "짝발이면 쉽게 말해 뒤뚱뒤뚱 걷는 걸 연상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밸런스가 흔들린다. 짝발이 오래됐으면 골반도 조금 틀어졌을 수 있다"며 "좌우 밸런스가 딱 맞아야 도약 후 좋은 자세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이 부분에서 우상혁은 리하다"고 했다. 이어 "짝발이라면 공중 동작에서 균형을 잡아 뜨는 게 쉽지 않았을 거다. 안정적으로 경기하는 걸 보면 몸이 (짝발에 맞게) 보정된 것 같다"고 말했다.
대전 중리초 4학년 때 육상에 입문한 우상혁은 윤종형 코치의 제안으로 높이뛰기를 시작했다. 그때부터 '밸런스와의 전쟁'이 시작됐다. 도움닫기 동작에서 밸런스가 흔들리면 공중에서 수평의 바를 넘기 힘들다. 그는 지난해 도쿄 올림픽 당시 "아무래도 발 크기가 다르니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 균형감에 문제가 있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한 발로 서서 다른 발로 장기알을 옮기는 훈련 등을 통해 약점을 보완했다. 반복된 훈련 덕분에 세계 최고 수준의 도움닫기와 아치 자세를 만들어냈다. 성봉주 수석연구위원은 "높이뛰기가 (도약 직전) 두 발이 아닌 한 발로 점프한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만약 두 발로 점프하게 되면 밸런스가 맞지 않아 좋지 않은 영향이 더 클 수 있었다"고 말했다.
높이뛰기 선수들은 키가 크다. 도쿄 올림픽 높이뛰기에 출전한 남자 선수들의 평균 신장은 1m90.6㎝로 원반던지기(1m93.6㎝)에 이어 육상 종목에선 두 번째로 컸다. 키가 크면 무게 중심이 높게 형성돼 유리하다. 그런데 우상혁은 키가 1m88㎝로 크지 않다. 대신 강한 발목 힘을 이용해 부족한 '키의 밸런스'를 맞춘다. 김도윤 센터장은 "높이뛰기 선수들은 발목이 중요하다. 정말 잘 뛰는 선수들을 보면 발목이 가늘다. 모든 체중이 한 스폿(발목)에 집중돼 더 좋은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며 "높이뛰기는 도약거리가 길지 않아 순간적으로 치고 올라가는 게 중요한데 우상혁이 이걸 잘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성봉주 수석연구위원은 "우상혁은 이전에 발목을 많이 다쳐서 고생했다. 그래서 (김도균 코치와 함께) 발목 힘을 강화하기 위해 트레이닝을 많이 했다"며 "효율적으로 점핑해서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기술에 대해 운동 역학 분석자들이 (선수 옆에) 붙어서 연구도 계속했다"고 전했다.
발 사이즈가 작다는 평가도 있다. 프로야구 A 구단 수석 트레이너는 "발바닥이 크면 지면 반력을 많이 사용할 수 있다. 너무 작아도 안 되고 커도 문제지만 키가 크면 클수록 보통 발이 커진다. 1m88㎝에 265㎜면 작은 편에 속한다"며 "건물에 비유하면 지지대가 작은 거다. 발이 작으면 무게를 받치는 힘이 부족할 수 있다. 더욱이 짝발이면 밸런스가 깨질 수 있는데 우상혁의 도약 발이 (더 작은 오른발이 아닌) 왼발이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우상혁은 지난 19일 한국 육상의 역사를 새롭게 썼다. 미국 오리건주 유진에서 열린 2022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높이뛰기 결승에서 2m35를 넘어 은메달을 차지했다. 한국 선수가 실외에서 열리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메달을 딴 건 2011년 대구 대회에서 경보의 김현섭(동메달) 이후 11년 만이었다. 성봉주 수석연구위원은 "키도 작고 팔 길이도 짧았지만 훈련을 통해 불리함을 극복했던 박태환(수영)이 생각났다. 우상혁도 핸디캡을 넘어서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을 많이 한 의지의 한국인"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