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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일반

‘NFL 손흥민’ 구영회, 때가 왔다

미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 프로풋볼(NFL)에 한국인 수퍼스타가 뜬다. 주인공은 애틀랜타 팰컨스의 키커 구영회(27)다.2021시즌 NFL이 10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의 레이먼드 제임스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탬파베이 버커니어스와 댈러스 카우보이스의 경기로 막을 올린다. 챔피언결정전인 수퍼보울(Super Bowl)은 내년 2월 14일 네바다 엘리지언트 스타디움에서 열린다.구영회는 올 시즌 NFL이 주목하는 선수다. 개막을 앞두고 미국 언론이 분석한 포지션별 랭킹 상위권을 휩쓸었다. USA투데이는 구영회를 키커 랭킹 2위로 꼽았다. ESPN에선 3위였다. 현지 팬은 백발백중의 킥을 자랑하는 그에게 ‘킥 마스터’라는 별명을 붙였다.구영회는 지난 시즌 39개의 필드골을 시도해 37개(성공률 94.9%·리그 1위)를 성공하며 애틀랜타 구단 역사를 새로 썼다. 팀 레전드 키커 매트 브라이언트의 34개(2016·17년)를 뛰어넘는 신기록이었다. 특히 50야드(45.72m) 이상 거리의 필드골을 8번 시도해 모두 성공했다. 구영회는 지난해 12월 한국인 최초로 NFL 올스타에도 선발되기도 했다. 시즌이 끝난 뒤엔 애틀랜타의 핵심 선수로 분류돼 1년 재계약했다.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열두 살이었던 2006년 미국 뉴저지로 이민했다. 2017년 LA 차저스에 입단하며 한국인 최초로 NFL 무대를 밟았다. 하지만 부진을 이유로 한 달 만에 방출됐다. 그는 아마추어 리그 격인 애틀랜타 레전드에서 뛰며 NFL 재도전의 발판을 다졌다. 줄기차게 테스트에 참가한 끝에 2019년 10월 애틀랜타에서 기회를 다시 잡았다. 팀 입단 3년 차를 맞은 올 시즌 이후엔 자유계약선수(FA)가 된다.국내 팬은 구영회를 ‘NFL 손흥민’으로 부른다. 손흥민처럼 날카로운 오른발 킥이 주 무기인 데다 등 번호도 같은 7번을 달아서다. 해외 리그에서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둘은 지난 3월 소속팀이 마련한 화상 대화를 통해 처음 만났다. 지난 6월엔 손흥민이 구영회에게 사인 유니폼을 보내며 우정을 이어갔다.ESPN에 따르면 애틀랜타는 10월 10일 토트넘의 홈구장인 영국 런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뉴욕 제츠와 NFL 시범경기를 치른다. 구영회는 “새 시즌이 무척 기대된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개막에 맞춰 모든 것을 끌어올리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2021.09.08 08:51
스포츠일반

한국서만 못 본 ‘지상 최대 스포츠 쇼’ 수퍼보울

제54회 미국 프로풋볼(NFL) 수퍼보울이 3일(한국시각)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하드록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미국 내 열기는 뜨거웠다. 티켓 재판매 사이트의 1층 관중석 입장권 가격은 2000만원을 훌쩍 넘겼다. 30초짜리 광고 단가는 최고 560만 달러(약 66억원)였다. 캔자스시티 치프스가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에 31-20으로 역전승하며 50년 만에 정상에 섰다. 외신도 실시간으로 수퍼보울 소식을 전했다. 그 시각, 한국은 무관심했다. ‘지상 최대 스포츠 쇼’라는데 TV 중계는 없었다. 주요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도 ‘수퍼보울’은 보이지 않았다. 스포츠 커뮤니티에 해외 실시간 스트리밍 사이트를 통해 경기 중계를 보는 법이 올라오는 정도였다. 국내 팬의 관심은 프리미어리그(축구)나 메이저리그(야구)에 비할 바가 못 됐다. 수퍼보울을 시청한다는 전 세계 230여개 국 중에 한국은 없었다. 국내 수퍼보울 중계가 사라진 건 낮은 시청률 탓이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수퍼보울을 3년간 중계했던 MBC스포츠플러스 관계자는 “지난해 시청률이 0.323%였다. 프로농구 시청률이 보통 0.2% 안팎이고, 프로야구가 1%대다. 수퍼보울의 상징성을 생각하면 아쉬운 시청률”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광고도 기대만큼 들어오지 않는다. 수퍼보울 광고 단가가 가장 비싸다는 말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통하지 않는 말”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NFL은 정규리그와 수퍼보울이 패키지 판매다. 수퍼보울 한 경기만 보고 시즌 전체를 중계하는 건 무리다. NFL 중계권료 자체가 저렴한 편이지만, 그마저도 광고 수입으로 충당이 어려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스포츠 채널 관계자도 “시청률이 높아도 광고 수입으로 직결되지 않는 게 현실인데, 시청률도 안 나오는 수퍼보울 중계는 위험 부담이 커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고 잘라 말했다. NFL의 국내 경쟁력이 떨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한국인 스타의 부재다. 올 시즌 NFL의 한국인은 애틀랜타 팰컨스 키커 구영회(26)뿐이다. 2년 만에 NFL에 복귀한 그는 아직 스타 반열에 오르지 못했다. 스포츠 중계권 업계 관계자는 “시청률이 어느 정도 나오는 종목이나 리그는 대개 한국인 스타가 활약한다. 프리미어리그(손흥민), 메이저리그(류현진)가 대표적이다. 한국 스포츠 팬은 단순히 경기를 보기보다 한국 선수의 해외 적응과 활약상을 보고 싶어한다. 그런데 NFL에는 한국인 스타가 없는 게 단점”이라고 지적했다. 업계에선 시청률이 오를 잠재력은 충분하다고 평가한다. MBC스포츠플러스 관계자는 “경기가 주로 새벽에 열리는 데도, 구영회가 나오는 경기는 순간 시청률이 0.2%까지도 오른다. 한국 선수가 잘하면 관심이 커진다는 건 희망적인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NFL 3년 차 쿼터백 패트릭 마홈스(25)는 캔자스시티의 50년 한을 풀어줬다. 캔자스시티는 수퍼보울 첫 우승이던 1970년에 이어 두 번째 정상에 섰다. 마홈스는 패스 시도 41번 중 26번을 정확하게 연결했고, 터치다운 패스 2개를 포함해 286 패싱 야드로 활약했다. 특히 10-20으로 뒤져 패색이 짙던 4쿼터에 극적인 터치다운 패스 2개를 성공시켜 역전승을 이끌었다. USA투데이는 “마홈스가 우승 마법을 부렸다”고 표현했다. 지난 시즌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였던 마홈스는 MVP와 수퍼보울 우승을 모두 차지한 최연소 선수(24세 138일)가 됐다. 수퍼보울 하프타임 공연도 주목받았다. 톱스타가 나오는 하프타임 공연에는 지금까지 마이클 잭슨(1993년), 레이디 가가(2017년), 마룬파이브(2019년) 등 당대 스타가 출연했다. 올해는 경기 장소인 마이애미가 라틴계 문화의 중심인 만큼 라틴팝 스타 제니퍼 로페즈와 샤키라가 합동 공연을 펼쳤고, 역대 최고의 쇼였다는 극찬이 쏟아졌다.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2020.02.04 08:49
스포츠일반

NFL 인종차별 허문 데이비드 레이더스 구단주 별세

지난 8일 오클랜드에서 82세 일기로 사망한 오클랜드 레이더스의 앨 데이비스 구단주는 NFL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명이었다. 그는 구단주에 앞서 스카우트, 보조코치, 감독, 단장, 커미셔너로도 활동했는데, NFL에서 이처럼 방대한 역할을 소화한 인물은 그가 유일했다. 데이비스는 1929년 7월 4일 매사추세츠주 브락튼에서 의류 사업을 하던 로즈 커셴범 데이비스와 루이스 데이비스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다지 운동을 잘하지는 않았지만 어려서부터 스포츠 팀 구단주가 되는 게 그의 꿈이었다. 시라큐스대 영문과를 졸업한 그는 문학과 재즈에 조예가 깊었고, 군사 역사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그러면서 전쟁과 가장 흡사한 스포츠인 풋볼에 푹 빠졌다. 그는 1950년 롱 아일랜드의 아델피 칼리지에서 라인코치로 임명되며 풋볼에 본격 입문했다. 2년 뒤 징병된 그는 군사학교에서 풋볼팀 감독을 맡았고, 1954년에 전역한 뒤 볼티모어 콜츠(현 인디애나폴리스)로부터 스카우트직을 제의받아 프로풋볼에 들어섰다. 그 뒤 1957년 바닥권을 맴돌던 USC의 공격코치직을 받아들였고, USC의 공격 작전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쳐 팀을 부활시켰다. 이후 AFL 소속 LA 차저스의 공격코치로 활약, 차저스가 정상급팀으로 거듭나는데 기여한 뒤 1963년에 역대 최연소(33세)로 오클랜드의 감독겸 단장직을 맡았다. 그는 다른 팀들이 노쇠했다고 버린 베테랑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며 재미를 봤다. 레이더스의 상징이 된 은색/검정색 유니폼과 해적 로고도 그가 짜낸 아이디어였다. 종전 42경기서 33패를 기록했던 오클랜드는 그의 지휘 아래 첫해에 10승4패를 기록하며 궐기했다. 그 해 데이비스는 AFL 올해의 감독으로 선정됐다. 그리고 3년 뒤, AFL 커미셔너가 되며 프로풋볼 역사를 새로 쓰게 된다. 선수 영입에 탁월한 재능을 지녔던 데이비스는 라이벌 리그인 NFL의 스타 쿼터백들을 대거 뺏어오며 AFL-NFL 합병을 성사시켰다. NFL이 미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로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이후 그는 1만8500달러를 지불하며 레이더스 지분의 10%를 사들여 구단 경영권에 뛰어들었다. 1972년에는 팀의 대주주가 돼 전권을 행사하게 됐다. 오클랜드는 그의 통치하에 1976, 1983시즌에 수퍼보울 우승을 거두면서 최고 인기팀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오클랜드-알라미다 카운티 콜로시엄이 구장 재건축에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데이비스는 1982년에 팀을 LA로 이전시키는 파격적인 결단을 내렸다. 레이더스는 1983시즌에 워싱턴 레드스킨스를 꺾고 프랜차이즈 세 번째 빈스 롬 바르디 트로피를 거머쥐는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선수들의 인체성장 호르몬과 약물 복용, 알코올 중독 문제가 불거져 나와 논란이 일기도 했다. 또 데이비스는 홈 구장인 LA 콜로시엄에 대한 불만을 터트리며 LA시와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콜로시엄이 1932년과 1984년에 올림픽을 개최하는 등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구장이지만 럭셔리 박스가 없고, 매주 9만2000석을 매진시키기 힘들다며 새 구장을 찾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데이비스는 레이더스 홈 구장을 할리우드 파크로 옮기는 방향도 모색했으나 LA시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지 못하자 팀을 다시 오클랜드로 복귀시켰다. ▶그루덴 감독을 잡았더라면…고향인 오클랜드로 돌아왔지만 이후 레이더스의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지금까지 5할 승률 이상을 올린 게 불과 세 번. 존 그루덴 감독을 내보낸 것은 그의 가장 큰 실수 중 하나로 꼽힌다. 그루덴이 이끌던 레이더스는 2000년에 AFC 챔피언십에, 2001년에 2년 연속 디비전 우승을 차지했다. 그런데 데이비스는 그루덴의 공격이 화끈하지 않다면서 그를 쫓아냈다. 또 그루덴에게 높은 연봉을 주기도 싫었다. 그는 팀의 새로운 ‘호프(hope)’로 여겨졌던 그루덴을 탬파베이 버커니어스에 내보내며 2002ㆍ2003 1라운드, 2002ㆍ2004 2라운드 드래프트 지명권을 가져왔다. 빌 칼라한 사령탑으로 갈아탄 레이더스는 2002시즌에 수퍼보울에 진출했으나 당대 최고의 수비수들이었던 워렌 샙, 티키 바버, 존 린치 등이 버틴 탬파베이 버커니어스를 상대로 졸전 끝에 21-48로 참패했다. 쫓아낸 그루덴에게 막혀 우승을 놓친 셈이었다. 데이비스는 사망하기 전까지 그루덴의 우승에 대해 “NFL의 음모”라고 믿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레이더스는 겉잡을 수 없는 몰락을 거듭, 9년 동안 6명의 감독이 왔다 갔다. 2003~2009시즌까지 NFL 최초로 7년 연속 11패 이상의 불명예도 안았다. ▶인종차별을 가장 싫어해유태인인 데이비스는 풋볼내 팽배해 있던 인종차별 문화를 혐오했다. 1963년에는 앨라배마주에 인종차별법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시범경기를 급작스럽게 취소시켰고, 65년에는 같은 이유로 뉴올리언스에 열리기로 돼있던 AFL 올스타 경기 불참을 선언했다. 당시 올스타전은 결국 휴스턴으로 옮겨 치러졌다.NFL 사상 최초의 흑인 감독(아트 셸)과 최초의 라틴 감독(탐 플로레스)을 영입한 것도 그였다. 뿐만 아니라 최초의 여성 프런트 멤버(에이미 트래스크)를 두기도 했다. 밖에서는 냉혈한으로 알려졌지만 레이더스 은퇴 선수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 “한 번 레이더는 영원한 레이더다”라면서 아낌없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던 것으로 알려졌다.로스앤젤레스=원용석 중앙일보USA 기자 [won@joongang.co.kr] 2011.10.11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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