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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야구계 속설 얼마나 깨졌나, 팩트체크해드립니다

포츠계처럼 많은 속설과 징크스가 있는 세계도 찾기 드물다. 심지어 메이저리그에서도 지금은 깨졌지만 '밤미노의 저주(베이브 루스를 1919년 뉴욕 양키스에 판 뒤 86년 동안 우승하지 못한 보스턴 레드삭스), '염소의 저주(1945년 한 팬이 염소를 데리고 야구장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 뒤 71년간 우승하지 못한 시카고 컵스)' 등이 유명했다. 과연 야구판에서 이어지던 각종 저주와 징크스는 지금도 유효할까. 새해를 맞아 '팩트 체크'해봤다. 이영민 타격상의 저주? 깨졌다 프로야구 드래프트가 다가오면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이영민. 일제강점기인 1905년 태어난 그는 훌륭한 야구선수이자 축구선수였고, 행정가로서도 활약했다. 1958년 대한야구협회는 그를 기려 최고의 고교 타자에게 주는 '이영민 타격상'을 만들었다. 현재는 고교야구 성적 타율 1위에게 수여된다. 그러나 이영민 타격상을 받은 선수들이 묘하게도 성인 무대에선 큰 활약을 펼치지 못해 '이영민 타격상의 저주'란 말이 만들어지기도 했다.이영민 타격상의 저주가 거론된 건 90년대 이후로 알려져 있다. 그 전까지는 백인천(1959년), 최관수(1960년), 이광환(1965년), 정현발(1971년), 김일권(1973년), 이만수(1977년) 등이 실업과 프로에서 활약했다.'저주'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프로야구에서 드래프트의 중요성이 커진 1990년대부터다. 기대를 걸고 지명한 선수들이 꽃을 피우지 못한 사례들이 등장했다. 프로야구 출범을 앞두고 1981년 수상한 구윤이 대표적이다.구윤은 경북고 시절 성준, 류중일, 문병권과 함께 고교야구 3관왕을 이끌었다. 강한 어깨 덕에 투수로도 나섰던 그는 중앙대 진학 후 큰 빛을 보지 못했다. 1986년 1차 지명으로 연고구단 삼성에 입단했지만 잦은 부상 탓에 이렇다할 모습을 보이지 못했고, 1993년 태평양 돌핀스로 이적한 뒤 이듬해 은퇴했다.이후에도 김경기(1989년)를 제외한 이영민 타격상 수상자는 기대에 걸맞는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1987년 수상자 김훈은 1993년 해태 타이거즈 입단과 동시에 개막전부터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최강 해태에서 신인이 1군 선배들과 나란히 선 것만으로도 그에 거는 기대는 대단했다. 하지만 입단동기 이종범, 이대진과 달리 큰 인상을 남기지 못하고 12년만에 은퇴했다.1991년 수상자 강혁은 '비운의 선수'로 통한다. 좌타자 강혁은 신일고 시절 '천재'로 불렸으나나 OB 베어스(현 두산)와 한양대 사이 이중계약 파문에 휘말리며 프로로부터 영구제명됐다. 한양대 시절엔 2사 만루에서 고의사구를 얻어냈다는 일화도 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도 국가대표로 나섰다. 프로에 갈 수 없었던 강혁은 당시 특급 선수를 쓸어담은 실업팀 현대 피닉스로 향했다. 뒤늦게 징계가 풀려 두산으로 향했지만 꽃을 피우진 못했다.강혁의 신일고 후배 조현도 엄청난 유망주였다. 조현은 1993년 봉황대기 결승에서 홈런 3개를 터트린 거포였다. 1995년 LG 트윈스에 입단한 조현은 미래의 홈런왕으로 꼽혔고, 그해 전반기에만 9개의 홈런을 쳤다. 하지만 이후 급격하게 정확도에서 문제를 드러냈고, 해태와 한화 이글스를 거쳐 은퇴했다. 통산 기록은 타율 0.232, 14홈런.그러나 이제 '이영민 타격상'을 말하는 이는 많지 않다. 2004년 수상자 최정(SSG 랜더스), 2005년 수상자 김현수(LG 트윈스) 덕분이다. 인천고를 졸업한 최정은 2005년 SK 와이번스(SSG 전신) 데뷔하자마자 두자릿수 홈런을 쳐 '소년 장사'로 불렸다. 이후에도 홈런왕에만 세 차례 오르며 통산 홈런 2위(403개)에 올랐다.김현수는 신일고 당시 어느 팀에도 지명받지 못했다. 하지만 신고선수로 두산에 입단했고, 2년차가 되자마자 1군에서 활약했다. 2008년 최연소 타격왕에 오른 김현수는 KBO리그를 대표하는 좌타자로 우뚝 섰다. '타격만 잘한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타격 기계'로 성장했다. 2008 베이징올림픽을 시작으로 국제대회에만 9번 출전한 국제용 타자이기도 하다.최근 들어 이영민 타격상 징크스는 좀처럼 거론되지 않는다. 이후에도 하주석(한화), 박민우(NC 다이노스), 송성문(키움 히어로즈), 최원준(KIA), 김혜성(키움) 등 대다수 선수들이 프로에 안착했기 때문이다. 사실 수상자를 고교 대회 한 시즌 기준으로 타율만 가지고 선정하기 때문에 '이영민 타격상=최고의 타자'란 등식이 성립하기도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엘롯기 신인왕 징크스, 아직 한 팀 남았다 프로야구 팬이라면 '엘롯기'란 단어를 모르는 이가 없다. 대표 인기구단인 LG, 롯데, KIA를 합친 말이다. 세 팀을 한데 묶어 부르는 이 말은 2001년부터 2008년까지 세 팀이 최하위를 번갈아 하면서 부정적인 의미로 자주 쓰였다.세 팀에겐 또 하나의 공통분모가 있었다. 바로 신인왕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었다. LG는 전신인 MBC 청룡(김건우, 이용철)을 포함해 90년대 중반까지는 5명이나 수상했다. 김동수(1990년), 유지현(94년), 이병규(97년)는 신인상 수상 이후에도 팀을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병규 이후엔 20년 넘게 수상자를 내지 못했다. 옆집 두산이 '화수분'으로 불리며 신인들을 잘 키우는 것과 대조적이었다.롯데와 KIA도 마찬가지다. 롯데는 1992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역 염종석이 유일한 신인왕이다. 해태도 1985년 이순철 이후엔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롯데의 경우 연고지 부산에서 특급 선수들이 여럿 나왔지만 신인왕을 받은 선수는 없었다.결론부터 말하면 엘롯기 신인왕 징크스는 '일부 유효'다. 깨져가고 있지만, 아직 남아있는 팀도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탈출한 팀은 LG다. 2019년 잠수함 투수 정우영이 데뷔하자마자 활약하면서 당당히 신인왕을 받았다. 구원투수라는 점에서 불리했지만 순수 고졸 신인이라는 점이 크게 반영돼 중고신인 이창진, 전상현보다 더 많은 표를 얻었다.KIA는 36년 만에 왼손투수 이의리가 '타이거즈 신인왕' 계보를 이었다. 광주일고를 졸업한 이의리는 지난해 19경기에서 4승 5패 평균자책점 3.61을 기록했다. 부상 탓에 시즌 막판엔 결장하기도 했으나 비율 기록이 워낙 좋고, 2020 도쿄올림픽에서도 활약한 것이 표심에 반영됐다. 이순철 해설위원에게 '신인왕 징크스를 깨겠다"고 했던 약속도 지켜졌다.롯데는 아직까지 염종석 이후 신인왕이 없다. 지난 시즌 20홀드를 올린 셋업맨 최준용이 이의리와 접전을 벌였으나 유효표 115개 중 1위 표 61개를 받은 이의리(최준용 42개)에 밀렸다. 구원투수란 점, 그리고 데뷔 2년차란 점이 발목을 잡았다. 어느덧 롯데의 마지막 우승, 신인왕도 30년째를 채우게 됐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2022.01.31 08:29
스포츠일반

KBL, 새 캐치프레이즈 발표 '리:바운드(Re:Bound) KBL'

KBL이 김희옥 총재 취임 50일을 하루 앞둔 18일 새 캐치프레이즈 ‘리:바운드(Re:bound) KBL’과 함께 임기 3년 로드맵을 내놓았다. ‘리:바운드(Re:bound) KBL’은 프로농구가 오랜 침체를 딛고 다시 튀어오른다는 뜻과 함께 ‘포스트 코로나’를 능동적으로 준비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이와 함께 KBL은 3단계(회복-쇄신-중흥) 핵심과제를 제시했다. 2021-2022 시즌은 리그를 정상적으로 치르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한편 ▲시즌 개막 이전 신인 선수 드래프트 ▲심판‧경기부 개선 및 팬과의 소통 강화 ▲뉴미디어 콘텐츠 및 마케팅 파워 고도화 ▲유소년 육성체계 확립 등에 힘쓰기로 했다. 2단계인 2022-2023시즌에는 본격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KBL컵 대회 확대 및 국제대회 격상 ▲아시아쿼터 확대 ▲외국선수 연봉 상한 조정‧소프트캡 활용도 제고 ▲재정건전성 및 행정효율성 증대 ▲문화와 협업 등을 중점 추진할 계획이다. 김 총재 임기 마지막인 2023-2024시즌에는 중흥을 목표로 ▲국제적 위상 증대 ▲프로-아마 공동마케팅 ▲프로농구 역사 세우기 ▲기부 및 사회공헌 활성화 ▲KBL센터 가치 증대 등을 핵심 과제로 삼기로 했다. 김우중 기자 2021.08.18 15:06
스포츠일반

줄줄이 취소되고 연기되는 국내대회…여자농구 3X3 국제대회 참가도 취소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에 따라 국내대회들이 줄줄이 취소되거나 연기되고 있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은 24일 열린 관리위원회의에서 코로나19 예방 및 확산 방지를 위해 스피드스케이팅 국내대회를 연기하기로 결정했다고 25일 밝혔다. 이번 결정에 따라 오는 27일과 28일 양일간 태릉 국제스케이트장에서 진행 예정이었던 2020 전국남녀 종별종합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대회, 그리고 3월 7일과 8일로 예정된 제55회 빙상인 추모 전국남녀 스피드스케이팅대회 개최가 잠정 연기됐다. 대한빙상경기연맹 측은 "23일 정부가 코로나19 위기경보단계를 '심각' 단계로 격상, 다수가 밀집하는 행사 자제 등 권고사항을 고려하여 결정한 사안"이라며 "이번에 연기된 스피드스케이팅을 포함한 종목별 국내대회 일정은 코로나19 추이를 지켜본 후 결정하여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3월로 예정되어 있던 부산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역시 이날 브리핑을 통해 대회 개막을 3개월 연기하기로 발표했다. 코로나19 확산자가 급증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대회를 정상적으로 개최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따라 부산 세계탁구선수권대회는 3개월 뒤인 오는 6월 21일부터 28일까지 벡스코에서 개최된다. 국제대회 참가를 아예 취소한 종목도 있다.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은 이날 당초 출전하기로 한 3X3 국제대회 참가를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WKBL은 국제 경쟁력 강화 및 선수 기량 발전을 위해 3X3 유망주 4명으로 팀을 구성해 오는 29일과 3월 1일 양일간 일본 고베 하버랜드에서 열리는 ‘2020 3X3 프리미어 월드 게임 인 고베'에 출전시킬 예정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으로 선수들의 안전을 위해 대회 출전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으며 소집 훈련도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김희선 기자 kim.heeseon@joongang.co.kr 2020.02.25 14:42
스포츠일반

[창간 50 특별기획]한국스포츠 50년, 슈퍼스타 50인, 환희의 50신

일간스포츠는 한국스포츠 반세기를 함께 했다.1969년 창간해부터 2019년까지 50년 동안 한국 스포츠에는 수많은 스타가 등장했다. 그중 시대를 풍미한 독보적인 슈퍼스타들이 존재했다. 일간스포츠와 스타들을 돌아보면 한국 스포츠의 역사가 보인다. 스타들이 만들어낸 환희의 장면들을 통해 역사를 되돌아보고자 한다.일간스포츠는 중앙일보-일간스포츠의 스포츠 담당 기자들을 통해 50년의 기간을 10년 단위로 나눠 각 세대별 최고스타 10인을 선정했다. 이어 한국 스포츠전문가들의 자문 등을 두루 구해 총 50인을 확정했다. 지도자와 행정가는 제외했다. 오직 당시 현역으로 뛴 선수로만 구성했으며 또 각 시대별 같은 종목 선수들은 최대한 배제했다.50년을 수놓은 영광의 슈퍼스타 50인을 소개한다. <1969~1979 : 배고팠던 시절 국민들을 위로한 영웅>1960년, 70년대 한국은 힘들고 배고팠던 시절이었다. 국민들이 위로를 받을 수 있었던 거의 유일했던 쉼터가 스포츠였다. -김일(프로레슬링)김일은 1960년대부터 70년대 중반까지 한국과 일본에서 박치기왕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린 스타였다.박치기를 특기로 극동 헤비급 챔피언·올아시아 헤비급 챔피언·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오르는 등 활약을 펼쳤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 프로레슬링 전설로 위용을 떨쳤다. 국민들은 김일의 경기가 열리는 날에 흑백 TV 앞에 모여 열렬히 응원했다. 김일의 움직임으로 인해 용기와 희망을 얻을 수 있었다. 김일은 배고팠던 시절 조국의 영웅이었다. -홍수환(복싱)4전5기의 신화. 두 체급에 걸쳐 세계 타이틀을 거머쥐며 국민적 영웅으로 등극한 복싱 선수다.197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WBA(세계복싱협회) 밴텀급 타이틀매치에서 세계 정상에 섰다. 당시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는 한 마디는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또 1977년 파나마에서 열린 WBA 주니어페더급 타이틀결정전에서 헥토르 카라스키야를 상대로 2회 4번 다운당한 뒤 3회에 KO승을 거뒀다. 4전5기 신화. 국민들은 홍수환의 투혼을 보며 힘겨운 삶을 포기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양정모(레슬링)1976년 8월 1일. 한국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이 나왔다. 주인공은 양정모였다.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레슬링 자유형 62kg급에서 양정모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광복 후 참가한 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이 등장하는 순간. 한국은 첫 금메달 소식에 열광했다. 당시 한국은 일요일. 신문이 발행되지 않는 휴일이어서 전국에 호외가 깔렸다. 양정모는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과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까지 2회 연속으로 금메달을 차지하며 최고의 레슬링 영웅으로 군림했다. -조오련(수영)'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은 한국 수영의 아버지다.1970년 방콕아시안게임 자유영 400m와 1500m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한국스포츠 역사상 최초의 아시안게임 2관왕이 탄생했다. 무명의 18세 고교생이었던 그는 자연스럽게 국민적 영웅으로 등극했다. 이어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에서도 400m, 1500m 2관왕에 올랐다. 조오련은 한국신기록 33개, 대회신기록 17개를 갈아치웠다. 한국 수영은 그렇게 조오련으로부터 출발했다. -김진호(양궁)양궁 최강국 한국. 그 시작은 고교생 신궁 김진호였다. 1970년대 세계양궁은 김진호의 시대였다.그는 1979년 베를린 세계양궁선수권에서 5관왕을 차지하며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18세 고교생이었던 김진호를 위해 카퍼레이드 행사까지 열며 국민들은 뜨겁게 환영했다. 이어 김진호는 1983년 LA세계선수권에서 또 다시 5관왕에 올랐다. 여자 신궁 계보의 시조. 한국 양국의 위대함을 세계무대에 처음으로 이름을 알린 전설이다. -이에리사(탁구)한국 탁구의 어머니라 불리는 이에리사다.그는 1973년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에서 단체전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구기 종목 사상 처음으로 세계대회에서 우승을 일궈낸 것이다. 정현숙과 박미라 그리고 이에리사가 팀을 이뤘고, 19세 막내 이에리사가 에이스였다. 우승을 결정짓는 마지막 스매싱도 이에리사의 손에서 나왔다. 이 쾌거는 '사라예보의 기적'이라 불렸고, 한국에는 탁구 열풍이 불었다. 전국의 탁구장은 발디딜 틈이 없었다. -백옥자(육상)1970년대 '아시아의 마녀'라 불리며 아시아 육상을 지배한 선수가 있었다. 바로 백옥자다.그는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포환던지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대회 신기록을 작성하며 한국 여자 선수 최초의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로 이름을 올렸다. 그의 행보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에서 16m28cm, 아시아 신기록을 세우며 한국 육상 최초로 아시안게임 2연패를 달성했다. 육상 불모지 한국에서 등장한 영웅이었다. -김응용(야구)프로야구가 출범하기 전 한국야구 최고의 선수는 김응용이었다.1966년부터 1972년까지 한일은행 소속으로 한국 야구를 주도한 주인공이다. 김응용이 있기에 한일은행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그는 홈런황 3회를 차지하는 등 실업야구 최고의 거포였다. 통산 타율 3할7리를 기록했다. 또 김응용은 국가대표 4번 타자였다. 1971년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에서 일본을 누르고 우승을 이끌었다. 아시아선수권 2번째 우승. 김응용 이름 앞에 '영원한 국가대표 4번 타자'라는 이름표가 붙은 이유다. -신동파(농구)1960년대와 70년대 한국 농구를 이끌었던 슈퍼스타 신동파다.그는 1967년 중소기업은행에 입단해 1974년 은퇴할 때까지 3만 득점 이상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는 라이벌이 없었다. 그의 위상은 해외까지 퍼졌다. 1969년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 결승 필리핀과 경기에서 50점을 넣으며 한국의 우승을 이끌었다. 신동파의 활약에 반한 필리핀에 신동파 신도롬이 일어나기도 했다. 1970년 유고슬라비아 세계선수권에서 평균 30득점을 넘기며 득점왕에 올랐고,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조혜정(배구)'작은 새'라 불린 한국 여자배구의 전설 조혜정이다.그는 165cm의 단신이었지만 엄청난 점프와 파워로 한국 배구의 간판 공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조혜정이 이끄는 배구대표팀은 3위 결정전에서 헝가리를 3-1로 꺾고 동메달을 차지했다. 한국 구기 종목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메달이 탄생하는 명장면. 올림픽과 함께 조혜정은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과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에서 연속으로 은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 여자배구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1979~1989 : 구기종목에서 등장한 불세출의 스타 그리고 1988년 서울올림픽>이 시대에는 유독 구기종목에서 불세출의 스타들이 등장했다. 축구와 야구 그리고 농구와 배구까지 역사상 최고의 선수들이 이름을 날렸다. 또 1988년 서울올림픽의 감동이 찾아왔다. -차범근(축구)1970년대와 80년대, 한국 축구에는 불멸의 슈퍼스타가 등장한다. 바로 차범근이다.차범근은 한국 선수 최초로 유럽 무대를 밟았다. 세계 최고의 프로축구리그로 꼽혔던 독일 분데스리가. 그는 다름슈타트를 시작으로 프랑크푸르트, 레버쿠젠 등에서 활약했다. 차붐은 UEFA(유럽축구연맹) 컵 우승을 2회를 이끌며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또 당시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골 신기록(98골)도 세웠다. 한국 대표팀에서도 136경기 출장, 58골로 최다출전, 최다골 기록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영웅이자, 아시아 역대 최고의 선수로 꼽히고 있다. -선동렬(야구)야구에는 국보급 투수가 탄생했다. 한국야구는 선동렬 시대에 돌입했다.프로야구가 출범한 뒤 1985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한 선동렬. 이후 프로야구는 해태 왕조가 지배했다. 그 중심에 '무등산 폭격기' 선동렬이 있었다. 3년 연속 투수 3관왕(다승·승률·평균자책점) 정규리그 MVP 3회·골든글러브 6회·7년 연속 평균자책점 1위 등을 기록하는 등 해태를 6번 우승으로 이끌었다. 통산 146승, 132세이브, 방어율 1.20이다.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는 평가에 이견이 없다. -최동원(야구)선동렬이 등장하기 전 프로야구의 유일한 전설, 최동원이다.그는 1984년 다승왕·탈삼진왕·골든글러브에 이어 MVP까지 수상하며 프로야구를 평정했다. 그해 7전4선승제의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만나 홀로 4승을 따내며 롯데 자이언츠를 사상 첫 정상에 올려놨다. 강속구와 폭포수 커브를 장착한 무쇠팔 최동원이었다. 이후 1985년 20승·1986년 19승·1987년 14승까지 해마다 10승 이상을 기록하며 최고 투수로 명성을 이어갔다. 선동렬과 라이벌 구도는 프로야구 최대 빅이슈였다. -이충희(농구)신동파의 뒤를 이은 최고의 슈터, 이충희의 등장은 한국 농구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농구대잔치 출범 후 3시즌 동안 두 차례 팀 우승과 MVP를 동시에 석권했다. 현대전자의 상징. 한 경기 69점을 기록하며 팬들을 열광시켰고, 최초로 4000득점 돌파 그리고 5시즌 연속 득점왕 등 슛도사를 막을 자 없었다. 그의 영향력은 대표팀까지 번졌고, 19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 1986년 스페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홀로 45점을 성공시키며 세계적 주목을 받기도 했다. -강만수(배구)타고난 힘과 기술 그리고 센스까지, 모든 것을 다 갖춘 최고의 공격수. 강만수를 정의하는 말이다.1970년대와 80년대를 풍미한, 배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 공격수다. 1972년 17세의 나이로 국가대표에 발탁됐다. 한국은 강만수로 뜨거웠다. 한국 구기종목 사상 최연소 국가대표였기 때문이다. 이후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 우승과 1979년 멕시코유니버시아드 우승을 이끌며 '아시아의 거포'로 불렸다. 컴퓨터 세터 김호철과 최고의 호흡을 자랑하기도 했다. 1984년 LA올림픽에서는 5위를 기록했다. -현정화(탁구)한국에서 처음 개최된 올림픽. 1988년 서울올림픽 최고 스타는 현정화였다.한국 여자탁구의 상징.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을 시작으로 1987년 뉴델리세계선수권 복식 금메달을 차지했다. 조국에서 열리는 올림픽 메달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기대는 현실이 됐다. 서울올림픽 복식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선수로 최초로 2010년 국제탁구협회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현정화라는 이름으로 한국 여자탁구의 황금기가 시작됐다. 그가 은퇴한 뒤 한국 여자탁구는 단 한 번도 세계 정상에 서지 못했다. -김수녕(양궁)한국 양궁 역사상 최고의 신궁, 단연 김수녕이다.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 실력, 카리스마 그리고 냉정함까지, 김수녕 그 자체가 한국 양궁의 얼굴이었다. 1987년 16세의 나이로 국가대표에 발탁됐고,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개인전과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최초의 올림픽 2관왕 탄생. 이어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단체전 금메달, 개인전 은메달을 품었다. 한국 최초의 올림픽 2회 연속 금메달의 주인공도 김수녕이다. 세계신기록을 무려 35회나 달성했고, 한국 역대 올림픽 메달 횟수(6개) 공동 1위다. -손미나(핸드볼)우생순의 시작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었다.1984년 LA올림픽에서 여자 핸드볼대표팀은 은메달을 차지했고, 4년 뒤 조국에서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소련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21-19로 승리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구기 종목 역사상 첫 번째 금메달은 그렇게 나왔다. 금메달 멤버는 총 15명. 그중 골키퍼로 한국 골문을 든든히 지켰고, 서울올림픽 개회식에서 대표로 선서를 한 손미나가 국민들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있다. -이만기(씨름)예능에 나오는 친근한 옆집 아저씨가 아니다. 이만기는 한국 씨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였다.이만기는 1980년대 씨름 황금기를 이끈 스타였다. 1983년 첫 천하장사를 차지한 뒤 총 10회 정상에 올랐다. 역대 1위. 또 백두장사 19회, 한라장사 7회를 차지했다. 기술씨름을 도입한 최초의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압도적 실력과 준수한 외모로 국민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만기의 경기를 보기 위해 대통령이 경기 시간을 늦췄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이만기가 수놓은 씨름은 한국 최고 인기스포츠였다. -장재근(육상)한국 육상의 전설이 등장했다. 한국 육상 역대 최고의 스프린터, 장재근의 등장이다.그는 20세의 나이로 19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에 출전해 200m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시안게임 최초 육상 트랙 금메달이었다. 육상 천재 장재근에 한국은 열광했다. 그는 이어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도 200m 금메달을 따내며 아시안게임 2연패에 성공한다. 1985년 자카르타아시아선수권에서 장재근은 20초41이라는 한국신기록을 작성했다. 이 기록은 이후 33년 동안 한국신기록으로 남아있었다. <1989~1999 : IMF로 실의에 빠진 국민들 희망을 안긴 영웅>1997년 한국에 불어닥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실의와 고통에 빠진 국민들에게 용기를 안긴 스포츠 스타들이 있었다. 이들의 존재가 곧 희망이자 위로였다. -박찬호(야구)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 그는 IMF 위기 당시 전성기를 구가하며 한국 국민들에게 희망을 안긴 영웅이었다.1994년 미국 메이저리그 LA다저스에 입단한 박찬호는 1997년 14승을 거두며 주목을 받았고, 1998년 15승을 수확하며 정상급 선수로 성장했다. 2000년 18승을 달성하며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으로 꼽혔다. 메이저리그 통산 124승. 아시아 최다승이다. 또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금메달, 2006년 월드베이스볼 클래식 동메달 등을 이끌며 야구대표팀에서도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했다. -박세리(골프)IMF 위기의 시절 국민들을 위로했던 또 한 명의 슈퍼스타, 박세리다.미국 LPGA 개척자. 1998년 LPGA 무대에 뛰어들었고, 데뷔 4개월 만에 맥도널드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US오픈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며 국민적 영웅으로 등극했다. 특히 US오픈 연장 18번 홀에서 양말을 벗고 맨발로 연못에 들어가 샷을 한 장면은 한국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위기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박세리의 모습에 국민들은 힘을 얻었다. LPGA 25승으로 한국인 최다 우승자 역시 박세리다. -황영조(마라톤)'몬주익의 영웅'의 등장으로 한국 육상은 다시 한 번 세계적으로 위용을 떨쳤다.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황영조는 몬주익 언덕에서 모리시타 고이치를 따돌린 뒤 홀로 몬주익 스타디움에 들어섰다. 그리고 두 팔을 힘차게 들고 골인했다. 한국 정부 수립 이후 육상 첫 올림픽 금메달. 1936년 베를린올림픽 손기정의 금메달 이후 첫 번째 금메달이었다. 이후 황영조는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며 다시 한 번 포효했고, 1994년 미국 보스턴마라톤에서는 당시 한국 최고 기록인 2분8초09를 기록했다. -심권호(레슬링)심권호라는 이름은 세계 최고라는 의미다.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48kg급 금메달을 목에 건 뒤 1995년 프라하세계선수권, 1996년 애틀란타올림픽까지 정상을 차지했다. 48kg급이 폐지되자 54kg급으로 체중을 늘려 다시 한 번 똑같은 코스를 밟았다. 1998년 예블레세계선수권·1998년 방콕아시안게임·2000년 시드니올림픽까지 금메달을 일궈냈다. 하계올림픽 최초 올림픽 2연패, 한국 올림픽 사상 첫 두 체급 석권 그리고 세계 레승링 최초 두 체급 그랜드슬램 달성. 기록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전기영(유도)한국 역사에서 가장 뛰어는 유도선수를 꼽으라면 단연 전기영이다.유도 천재, 업어치기의 달인으로 불린 그는 20세의 나이로 참가한 1993년 해밀턴세계선수권 78kg급에서 우승했다. 한국 역대 최연소로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995년 지바세계선수권에서는 86kg급에 도전해 금메달을 차지, 두 체급을 석권했다. 1996년 애틀란타올림픽에서는 1회전을 제외하고 모두 한판승으로 이기며 정상에 섰다. 1997년 파리세계선수권에서도 1위에 오르며 세계선수권 3연패를 달성했다. -박주봉(배드민턴)배드민턴의 교과서 박주봉. 그는 한국을 넘어 세계 배드민턴의 전설이었다.1980년 17세의 나이에 대표팀에 발탁됐고, 1982년 덴마크오픈에서 이근구와 한 조로 역대 최연소로 국제대회 우승을 일궈냈다. 1985년 캘거리세계선수권 우승·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3관왕·1989년 자카르타세계선수권 금메달·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 금메달·1991년 코펜하겐세계선수권 1위 등 승승장구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차지했다. 1996년 '배드민턴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허버트 스칠 상을 수상했다. -전이경(쇼트트랙)'쇼트트랙 여제'라 불리는 유일한 선수, 전이경이다. 그보다 압도적인 선수는 없었다.1988년 12세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국가대표로 발탁된 그는 1994년 릴레함메르올림픽 1000m와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석권, 2관왕에 올랐다. 이어 1995년 요빅세계선수권을 시작으로 1996년 헤이그, 1997년 나가노까지 개인종합 3연패를 일궈냈다. 1998년 나가노올림픽에서도 1000m와 3000m 계주를 석권하며 한국 여자 최초로 올림픽 2회 연속 2관왕에 오르는 영광을 품었다. -허재(농구)농구대통령이 당선됐다. 농구 9단이라 불리며 한국 농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선수, 허재다.중앙대 1학년 시절 농구대잔치에 나서 평균 24득점을 올리며 신인왕을 수상했다. 이어 기아자동차에 입단하자 기아 왕조가 구축됐다. 기아의 에이스로 농구대잔치 5연패 등 7회 우승을 일궈냈다. 3번 MVP를 수상했고, 베스트 5에 6회 포함됐다. 압도적인 실력과 카리스마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스타. 국가대표팀에서도 에이스였다. 1990년 아르헨티나세계선수권 이집트전에서 62점을 넣으며 세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홍명보(축구)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다.그는 1992년 포항제철 아톰즈에 입단해 K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신인 최초로 MVP를 수상하는 영광을 품었다. 이후 일본 J리그에서 진출하며 베스트 11에 선정되는 등 활약을 이어갔다. 한국 대표팀 전설이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을 시작으로 1994년 미국월드컵,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 이어 2002년 한·일월드컵까지 아시아 최초로 4회 연속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다. 홍명보는 A매치 136경기 출전으로 한국 최다 출장 기록을 가지고 있다. -강호동(씨름)이만기를 1인자에서 내려앉히고 새로운 1인자로 등극한 괴물, 강호동이다.이만기의 은퇴는 곧 강호동이라는 새로운 황제의 등극과 연결된다. 1989년 일양약품에 입단한 20세 강호동은 첫 백두장사 타이틀을 차지했다. 당시 4강에서 이만기와 첫 공식전에서 맞붙어 2-0으로 승리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1990년 역대 최연소의 나이로 천하장사에 올라섰다. 이후 백두장사 7회, 천하장사 5회를 차지했다. 최단기간 천하장하 5회라는 신기록을 가지고 있다. 강호동이 은퇴하자 씨름의 황금기도 끝났다. <1999~2009 : 불모지에서 태어난 올림픽 스타 그리고 붉은물결 2002년>불모지 한국. 그동안 한국에서 약했던 종목에서 슈퍼스타들이 등장해 행복했던 시기다. 또 한국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영광이었던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가 탄생했다. -박태환(수영)박태환의 등장. 한국스포츠는 새로운 역사를 맞이했다.수영 불모지에서 세계 1등이 탄생했다. 15세 나이로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 참가했던 그는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을 차지했다. 2007년 멜버른세계선수권 남자 자유형 400m 금메달을 따더니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아시아 최초로 400m 정상에 섰다. 200m에서도 은메달.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3관왕, 2011년 상하이세계선수권 금메달 등 세계 정상급 기량을 이어갔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400m, 200m에서 은메달을 땄다. -장미란(역도)한국 역도 역사의 새로운 신화, 장미란이 썼다.2002년 국가대표에 발탁된 그는 2005년 카타르세계선수권부터 2006년 산토도밍고·2007년 치앙마이·2009년 고양까지 4연패를 일궈내며 세계 역도계에 독주체제를 구축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 압권이었다. 여자 +75kg급 경기에서 인상 140 kg·용상 186 kg·합계 326kg을 기록, 세계신기록을 수립하며 우승했다. 이 과정에서 세계신기록을 두 번이나 경신했고, 2위와 격차가 무려 49kg이나 났다. 압도적인 우승, 압도적인 선수였다. -진종오(사격)한국은 세계최고의 권총 사수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한국에는 진종오가 있다.2008년 베이징올림픽 50m 권총에서 금메달을 딴 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2연패를 달성하더니,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세계 사격 역사상 최초로 3연패를 일궈냈다. 2010년 뮌헨·2014년 그라나다·2018년 창원 등 세계선수권에서도 연이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올림픽에서 금메달 4개, 은메달 2개로 김수녕과 함께 역대 한국인 올림픽 최다 메달 공동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유승민(탁구)한국 탁구의 마지막 자존심, 유승민이다.2000년 18세의 나이로 국가대표에 발탁된 유승민은 2004년 이집트오픈에서 우승하며 기대를 받았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남자탁구 단식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며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16년 만에 금메달이 나왔다. 이 금메달은 21세기 올림픽에서 유일한 비중국인 탁구 금메달이었다. 이후 2012년 런던올림픽 단체전 은메달, 2018년 베이징올림픽 단체전 동메달 등을 목에 걸며 한국 탁구의 간판 역할을 했다. 유승민 이후 한국은 단 한 번도 올림픽 정상에 서지 못했다. -이승엽(야구)국민타자. 이승엽이 아니면 붙을 수 없는 이름이다.한국을 넘어 아시아 최고의 홈런왕. 1999년 54홈런을 기록하며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50홈런을 돌파했다. 2003년에는 한국 역대 최다인 56홈런을 때렸다. KBO 통산 465개의 홈런으로 역대 1위에 오른 이도 이승엽이다. 타점(1495점) 득점(1351점) 등도 1위다. 홈런왕 5회·MVP 5회·타점왕 4회·골든글러브 10회 등 기록이 이승엽의 위대함을 말해주고 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과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주역이기도 하다. -안현수(쇼트트랙)쇼트트랙 여제가 전이경이라면 황제는 안현수다.많은 선수들이 세계 정상에 선 경험이 있지만 안현수보다 압도적인 선수는 없었다. 쇼트트랙 역사상 가장 이상적인 선수. 16세에 국가대표에 발탁된 그는 2003년 바르샤바부터 2004년 예테보리·2005년 베이징·2006년 미니애폴리스·2007년 밀라노까지 세계 최초로 세계선수권 5연패를 달성했다. 2006년 토리노올림픽에서 1000m·1500m·5000m 계주까지 3관왕을 차지했다. 500m 동메달도 추가했다. 한국 올림픽 역사상 단일 대회 최다 메달 신기록이다. -김세진(배구)한국 배구에 등장한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스타, 김세진이다.1995년 실업배구 삼성화재의 창단멤버로 합류해 삼성화재 왕조를 이끈 스타였다. 김세진이 활약하던 시기 배구는 폭발적 인기를 받았다. 김세진을 앞세운 삼성화재는 리그 9연패를 일궈냈다. 배구대표팀에서도 에이스였다. 2001년 창원아시아배구선수권과 2003년 톈진아시아배구선수권 우승을 이끌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도 목에 걸었다. 특히 1994년 월드리그에서 베스트 6에 오르며 월드스타라는 칭호를 얻었다. -서장훈(농구)한국 농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빅맨, 단연 서장훈이다.1994년 연세대를 대학 최초로 농구대잔치 우승을 이끌 때부터 그는 국보급 센터였다. 공격과 수비 외곽능력까지 갖춘 전천후 선수. 1998년 청주SK 입단 후 서울 삼성·전주 KCC·인천 전자랜드 등에서 활약했다. 1999년 리바운드 상 수상. 프로농구 사상 외국인 선수를 제치고 리바운드 왕을 차지한 최초의 선수가 됐다. 프로통산 1만3231득점·5235리바운드 기록, 역대 1위.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야오밍이 이끄는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최경주(골프)한국 남자 골프의 세계화를 이끈 선구자, 최경주다.1999년 한국 남자 선수 최초로 PGA투어 자격을 획득했다. 2001년부터 꾸준한 성적을 내기 시작했고, 2002년 5월 뉴올리언즈 콤팩 클래식에서 한국 첫 PGA 투어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 탬파베이 클래식에서 2승을 챙겼다. 이후 AT&T 내셔널 등 PGA에서 6회 우승을 더 차지하며 통산 8회 우승을 기록했다. 한국 남자 선수로는 최고의 기록이다. 잡초 골퍼라 불리며 열악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로 한국 골프의 자존심을 높인 영웅이다. -박지성(축구)한국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환희,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그 중심에는 두개의 심장을 가진 박지성이 있었다.한국은 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 등을 꺾고 아시아 역대 최고의 성적인 4강에 진출했다. 거리는 붉은물결르 뒤덮혔고, 선수들은 국민영웅으로 등극했다. 그중 핵심은 박지성. 그는 2005년 잉글랜드 최고 명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유니폼을 입었다. 한국 최초의 잉글랜드 진출. 이때부터 맨유는 국민클럽이 됐다. 박지성은 맨유에서 리그 우승 4회 등 총 13개의 우승트로피를 수집했다. <2009~2019 : 동계스포츠의 비상 그리고 100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하는 천재들>과거 한국의 동계스포츠는 쇼트트랙으로 모두 설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달랐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다른 종목에서 세계 1등이 탄생했다. 프로스포츠에서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하는 천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김연아(피겨)한국 동계스포츠의 역사는 김연아가 있을 때와 없을 때로 나눌 수 있다. 피겨스케이팅 불모지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 김연아가 나온 건 기적이다.김연아는 한국을 넘어 세계 피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힌다. 하이라이트는 2010년 밴쿠버올림픽. 김연아는 쇼트 78.50점, 프리 150.06점 총합 228.56점으로 압도적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 올림픽·세계선수권·4대륙 선수권·그랑프리 파이널 등을 모두 제패하며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최초의 선수로 역사에 기록됐다. 11번 세계신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이상화(스피드스케이팅)'빙속여제' 이상화를 빼놓고 한국 동계스포츠를 논할 수 없다.2010년 밴쿠버올림픽 여자 500m에서 76초09로 우승, 한국 여자 최초로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 74초70, 올림픽 신기록으로 2연패에 성공한다.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은메달을 기록하며 아시아 선수 최초로 3개 대회 연속 메달을 딴 선수로 남았다. 2013년 미국 솔트레이크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나온 36초36의 세계신기록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깨뜨리지 못하고 있다. -윤성빈(스켈레톤)한국을 넘어 아시아 최초로 올림픽 썰매 종목 금메달을 딴 주인공, 윤성빈이다.한국 스켈레톤의 간판인 그는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압도적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평창올림픽 남자 스켈레톤 1∼4차 레이스에서 무려 3차례나 트랙 신기록을 갈아치우면서 1∼4차 합계 3분20초55로 정상을 차지했다. 한국과 아시아 동계스포츠의 새로운 역사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스켈레톤 불모지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윤성빈. 그의 헬멧에 그려진 아이언맨처럼 그는 한국 스포츠의 영웅이었다. -양학선(체조)한국 체조의 새로운 역사, 도마의 신이 창조했다. 양학선이다.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에 이어 2011년 도쿄세계선수권 우승으로 큰 기대를 받았던 양학선.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신의 경지를 보여준다. 지구에서 단 한 명만 할 수 있는 최고난위도 기술 '양학선'을 앞세워 도마 금메달을 차지했다. 16.533점. 압도적 우승이었다. 한국 체조 역사상 첫 번째 올림픽 금메달은 그렇게 탄생했다. 이후 2013년 앤트워프 세계선수권에서도 우승하며 세계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다. -황경선(태권도)태권도 종주국 한국. 수많은 선수가 세계 정상에 섰다. 그중 가장 많은 최초의 수식어를 가지고 있는 이는 '태권여제' 황경선이다.18세 나이로 2004년 아테네올림픽 여자 67kg에 나서 동메달을 차지한 그는 2005년 마드리드세계선수권과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그리고 2007년 베이징세계선수권까지 재패한다. 남은 건 올림픽.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멈추지 않고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태권도 최초의 올림픽 2연패. 최초의 올림픽 3회 연속 진출을 일궈냈다. -박인비(골프)미국 LPGA에는 한국 여성 열풍이 불었다. 그 열풍 최선봉에 자리를 잡은 스타, 박인비다.골프 여제의 2008년 US오픈 우승. 박세리의 최연소 우승 기록을 깨면서 정상을 차지했다. US오픈 총 2회 우승 등 메이저대회에서 7회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최고 기록이다. LPGA 통산 19승으로 박세리에 이은 2위다. 56주 연속 세계랭킹 1위를 유지했고, 4개 메이저대회 타이틀을 모두 거머쥐는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아시아 최초로 달성하기도 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금메달 역시 박인비 품에 안겼다. -정현(테니스)2018년 1월, 한국에 테니스 열풍이 불었다. 그 바람은 정현이 일으켰다.정현은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대회 4강에 진출하는 역사를 썼다. 2018년 호주오픈 1~3라운드에서 미샤 즈베레프·다닐 메드베데프·알렉산더 즈베레프를 연이어 꺾으며 기대를 받았다. 16강 상대는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인 노박 조코비치. 꿈같은 일이 벌어졌다. 정현이 조코비치를 꺾고 8강에 진출한 것. 한국에 정현 신드롬이 일어났다. 8강에서 테니스 샌드그렌마저 넘으며 4강에 올라섰다. 4강에서 로저 페더러를 만나 부상으로 기권했다. -김연경(배구)한국 여자배구에 이렇게 독보적인 선수는 없었다. 김연경이다.흥국생명에 입단한 2005년. 득점상·공격상·서브상·신인왕·정규리그 MVP·챔피언결정전 MVP까지 싹쓸이한다. 얼마나 압도적인 선수인 지 알 수 있는 기록. 이후 3년 연속 정규리그 MVP에 올랐다. 2009년 일본 JT마베라스 유니폼을 입은 뒤 2011년 터키 페네르바체로 이적했고,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거듭난다. 가는 팀마다 우승으로 이끌면서 가치는 올라갔다. 2012년 런던올림픽 4강,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 등 배구대표팀에서도 기둥이었다. -류현진(야구)21세기 한국야구 최고의 선수라 불리는 그의 이름은 류현진이다.2006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자마자 다승·탈삼진·평균자책점 1위로 신인왕과 MVP를 동시석권한 프로야구 최초의 선수가 됐다. 2013년 미국 메이저리그 LA다저스로 이적한 첫해 14승 올리며 기대를 충족시켰다. 이후 꾸준함을 보이다 2019년 평균자책점 전체 1위를 기록, 올스타전 선발로 나서는 등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 중 한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 등 야구대표팀 역사와도 함께 했다. -손흥민(축구)지금 한국 축구는 '손흥민의 시대'다.2010년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를 시작으로 레버쿠젠을 지나 2015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으로 이적했다. 세계 톱클래스 공격수로 거듭났다. 특히 2018~2019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경기에서 3골을 넣으며 우승후보 맨체스터 시티를 침몰시켰다.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손흥민을 앞세운 토트넘은 최초로 결승에 올랐다. 축구대표팀에서도 에이스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 독일전 승리 주인공.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도 품었다. 최용재·김지한 기자 2019.09.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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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백목화, V리그 여자부 인기 자신…흥국생명 경계

사진=KOVO"커피를 내릴 때처럼 차분하기보다 성격상 악 하고 소리를 지르고 땀을 흘리는 게 내게 더 맞다."즉석에서 커피를 전문적으로 만들어 주는 '바리스타'로 생활했다. 그러다 코트가 그리워 2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IBK기업은행의 백목화(29)에게 오는 22일 개막하는 2018~2019 V리그 여자부 개막이 더욱 특별한 이유다. 백목화 "새롭고 기대된다"백목화는 2015~2016 시즌이 종료된 뒤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서울 북촌의 한 커피전문점에서 바리스타로 전업했다. 마음은 홀가분했다.그래도 15년 넘게 땀과 눈물을 흘린 코트다. 오후 5시, 카페에서 TV 중계를 통해 배구를 챙겨 보곤 했다. GS칼텍스의 홈구장인 장충체육관에 들러 관중석에서 경기를 본 적도 몇 차례 있다. 어느 날 카페로 구단 직원이 찾아와 입단 계약을 제안했고, 백목화는 고심한 끝에 코트로 복귀하기로 결심했다. 백목화는 18일 열린 여자부 미디어데이에서 "지금까지 훈련이 힘들어서 '괜히 돌아왔나' 싶을 때는 없었다. (쉬었던 만큼) 마음대로 안 되면 괜히 복귀해 '사서 고생하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면서도 예전같이 밝고 행복한 미소를 보였다.레프트 공격수인 백목화는 2007년 프로에 입단했다. 2014 그랑프리 세계여자배구대회 국가대표로 뛰었고,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2~2013시즌에 기량발전상을 수상했고, 2013~2014시즌에는 서브득점 1위에 올랐다. 지난 8월 여자부 컵대회를 통해 코트 적응과 컨디션 점검을 마쳤다. 그는 "2년간의 공백기가 있어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면서 "데뷔 팀은 아니지만 7시즌 동안 뛴 KGC 인삼공사가 아닌 새로운 팀에서 시즌을 맞아 새롭고 기대된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6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 진출을 이끈 IBK기업은행의 이정철 감독은 훈련을 많이 시키는 것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백목화는 "그런 소문에다 적지 않은 나이에 복귀한 거라 걱정이 많았다. 실제 겪어 보니 정말 필요한 만큼의 훈련량이다. 그 이상 실시하지 않는다"며 "IBK기업은행이 좋은 성적을 꾸준히 내 왔다. 내가 일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부터 실시된 경기 시간 변경과 관련해서 "오후 5시 경기 시작 당시에는 팬들께서 퇴근한 뒤 경기장을 찾기 어려웠는데, 오후 7시로 바뀌는 만큼 관중에게 더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챔피언 도로공사·꼴찌팀 흥국생명 우승 후보이번 시즌 경계팀 1순위로 흥국생명이 떠올랐다. 18일 미디어데이에서 박미희 감독을 제외한 5개 팀 사령탑이 '우승하기 위해 가장 경계해야 하는 팀'으로 흥국생명을 손꼽았다. 지난 시즌 최하위에 그친 흥국생명은 비시즌 동안 센터 김세영과 윙스파이크 김미연을 FA로 영입했다. 김종민 한국도로공사 감독과 이정철 IBK기업은행 감독은 "흥국생명이 전력 보강을 알차게 했다. 공격력과 높이가 좋아졌다"고 했다.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은 "5개 팀 감독이 말을 맞춘 것 같다"면서도 "예상이 빗나가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지난해 통합 우승을 차지한 한국도로공사도 여전히 우승 후보로 지목됐다. "김종민 감독이 엄살을 부리는 것 같다"고 한 이정철 감독을 비롯, 차상현 GS칼텍스·서남원 KGC인삼공사 감독·박미희 흥국생명 감독이 우승 후보로 손꼽았다. 한편 지난 시즌 봄 배구를 경험한 3개 팀(도로공사·기업은행·현대건설)은 비시즌 동안 소속팀 선수들의 대표팀 차출로 손발을 맞출 시간이 부족, 시즌 초반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내다봤다.오후 5시→7시 경기 시간 변경지난 시즌 처음으로 남자부와 여자부를 분리 운영한 KOVO(한국배구연맹)는 이번 시즌엔 경기 시간도 변경했다. 지난 시즌까지 평일 오후 5시에 시작했던 여자부 경기가 올 시즌부터 7시로 바뀌었다. 수요일에 남자부(주 6일)는 휴식을 갖는 반면, 여자부(주 3일)는 2경기를 소화한다. 주말은 기존대로 오후 4시에 열린다. 배유나(한국도로공사)와 한수지(KGC인삼공사)는 "경기 종료 시간을 고려하면 다소 부담은 있지만, 더 많은 팬들이 경기장을 찾을 수 있어 좋다"고 반겼다. 쌍둥이 이재영(흥국생명)-이다영(현대건설)은 "평소 야간 운동을 하면 컨디션이 더 좋은 날이 많았다"며 "점프력도 더 좋아지지 않을까 싶다"고 공통 의견을 냈다. 이런 변화는 여자 배구의 인기와 흥행 확인과 직결된다. 선수들은 자신감을 보였다. 이다영과 한수지는 "아기자기한 여자 배구가 파워풀한 남자 배구와 경쟁에서 조금 더 앞서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배유나는 "비시즌 국제대회를 보면 여자배구의 인기가 높아졌다고 실감했다"고 덧붙였다. 이형석 기자 lee.hyeongseok@jtbc.co.kr 2018.10.19 06:00
스포츠일반

'챔프 등극' 최태웅 감독 "우승+경험, 1석 2조 효과 얻었다"

한·중·일 클럽 최강자 자리에 오른 최태웅 현대캐피탈 감독이 우승 소감을 전했다. 현대캐피탈은 17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2016 MG새마을금고 한·중·일 남자클럽 국제배구대회'에서 중국 대표 상하이 골든에이지(이하 상하이)를 풀세트 접전 끝에 세트스코어 3-2(25-23, 25-19, 22-25, 22-25, 15-8)로 꺾었다. 지난 15일 일본 대표 제이텍트를 꺾은 현대캐피탈은 2연승으로 대회 초대 챔피언이 됐다. 우승 상금은 2만 달러를 받았다. 대회 MVP는 두 경기에서 맹활약을 펼친 현대캐피탈 문성민(32)이 차지했다. 최태웅 감독과 일문일답. - 우승 소감은."이기니까 좋다(웃음). 국내 선수끼리 경기를 해서 이겼다는 점이 중요한 것 같다. 4세트 젊은 선수들 위주로 구성을 했는데, 잘 풀리지 않아 아쉬웠다. 2세트 초반 세터 이승원을 투입했는데, 패턴 플레이를 잘 풀어갔다. 문성민이 살아나면서 팀이 안정됐다. 젊은 선수들은 이번 대회를 통해 처음으로 국제대회를 경험했다. 하계 훈련 때 환경을 바꿔주는 훈련을 많이 하는데, 이번 대회는 우승과 경험 면에서 1석 2조 효과를 봤다." - 젊은 선수의 성장을 목표했는데."레프트 송준호가 기대 이상의 활약을 했다. 김재휘가 오늘 조금 주춤했는데, 속공 블로킹에 참여하는 동작은 중국선수에게 밀리지 않았다. 미래가 밝았다. 무엇보다 세터 이승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이제 기지개를 폈으면 좋겠다. 현재 몸 상태는 좋다. 부상은 다 털어냈다. 그러나 훈련을 시작한 지 2주 밖에 되지 않아 경기 체력이 부족하다. 몸 상태 천천히 끌어 올렸으면 좋겠다." - 이번 대회가 팀에 좋은 영향을 끼쳤나."중국팀이 어제보다 경기력이 올라왔다. 좋은 경기를 했다. 내년에 2회 대회를 한다면 미리 계획을 세워서 준비를 잘 했으면 좋겠다. 우승 팀을 초대해 대회 수준을 격상시키고, 더 많은 팀을 참여시켰으면 좋겠다. 적어도 홈에서 두 팀이 나와 하루 두 경기씩 진행된다면 좋을 것이같다. 외국인 없이 자국 선수로 경기를 뛰기 때문에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 같다." - 향후 계획은."여름 휴가를 줄 계획이다. 대표 선수는 오자마자 이번 대회에 참여했다. 휴가가 끝나면 하계 훈련이 시작된다. 외국인 선수가 8월초 합류하는데, 그때부터 시즌 준비를 본격적으로 할 계획이다." 인천=유병민 기자 2016.07.17 18:06
연예

비발디파크에서 국내 최대 규모 승마 페스티벌 열려

국내 최대 규모의 ‘승마 페스티발 메이온어호스(MAY ON A HORSE) 2016 대명컵 국제 승마 대회 CSI3*(이하 2016 대명컵)’가 오는 23일부터 29일까지 홍천 비발디파크 메인센터에서 개최된다.이번 대회는 대명그룹과 대한승마협회가 주최하고 대명홀딩스, 국제승마연맹이 주관, 대명라이프웨이, 농림축산식품부, 강원도, 홍천군이 후원한다.특히 28일 진행되는 대명컵 국제 승마 대회 결승전은 KBS 1TV에서 녹화 중계되며, 대명컵 국제대회 전경기를 유투브와 메이온어호스 홈페이지(mayonahorse.com)를 통해 실시간 중계된다.‘2016 대명컵’은 지난해 행사에 비해 대회 규모가 한단계 격상됐다. ‘CSI(Concours de Saut International, 국제장애물대회)’는 대회의 규모를 나타내는 국제승마연맹의 규정으로 ‘CSI1*’부터 최대 규모인 ‘CSI5*’로 나뉜다. CSI3*의 경우 최대 1.45m의 장애물을 넘고 최대 3억 원 규모의 상금이 걸려야 승인 받을 수 있는 국제공인 경기로 등급이 높을수록 수준 높은 국내외 선수들이 참가한다.이번 대명컵의 총 상금은 3억 3000만원으로 청소년 경기 2000만원, 생활체육인 경기 1200만원, 마장마술과 국제 경기 등에 2억9700만원 규모의 상금과 트로피, 그리고 메달이 수여돼 국내서 열린 승마대회 가운데 최고 상금이 걸렸다. 2016 대명컵에는 국내를 대표하는 승마 선수와 해외 유명 선수 등 11개국 30여명이 사전 등록을 마쳤다. 참가 선수들 가운데는 지난해 대명컵 국제 승마 대회 그랑프리 3위와 애리조나 그랑프리 1위를 차지한 카일킹(Kyle King, 미국)과 에슈바일러 승마대회 2위와 토스카나 승마대회 3위를 차지한 토마스 홀츠(Thomas Holz, 독일) 선수가 눈에 띈다.이 외에도 2014 스웨덴 그랑프리 대회에서 우승한 린 위드마크(Linn Widmark)와 2016 웰링턴 대회 5위입상자 리엔 블루만(Ilan Bluman) 등 우수한 기량을 보유한 세계 선수가 참석할 예정이다.2016 대명컵에는 승마 대회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다양한 문화 콘텐츠도 있다.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마장마술 경기를 통해 선발된 최우수 선수가 마장마술 갈라쇼를 선보일 예정이며, 스턴트 치어리딩 공연, 태권도 퍼포먼스, 세계 춤 퍼레이드, 군 의장대 시범, 도그 쇼, 도그 레이싱, 마술 쇼, 미디어 파사드 쇼, 불꽃 쇼 등이 있다.이에 2016대명컵에는 총 1000여명이 앉을 수 있는 일반 관람석 배치해 많은 사람들이 승마를 즐길 수 있도록 구성하고 피크닉 공간이 마련된다. 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나 승마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빌리지를 활용해 다양한 체험 공간도 구성될 방침이다.이번 대회는 렉서스, 하나카드 등이 협찬해 대회가 더욱 풍성해졌다. 입장권은 티켓몬스터, 쿠팡, 인터파크, 11번가에서 20% 할인된 금액에 판매되고 있으며, 치킨, 피자, 베이커리 패키지 등은 대명리조트 리조트 패키지 사이트(me2.do/G69EKtUO)에서 구입이 가능하다. 또 ‘넵스 헤리티지 2016’ 대회를 방문하는 갤러리에게는 메이온어호스 입장권 20% 할인혜택을 준다. 비발디파크는 5월 26일까지 ‘메이온어호스 푸드패키지’ 한정 판매한다. 2016대명컵 페스티벌 개최를 기념해 승마페스티벌 입장권과 식사, 간식, 음료 등을 묶은 ‘4종 메이온어호스 푸드패키지’도 함께 출시했다. 메이온어호스 푸드패키지는 국제경기, 그랑프리 1,2차전, 스턴트치어리딩, Spring Fantasy, 체험프로그램 등이 진행되는 5월 28일 페스티벌 입장권 2인, 치킨, 불고기피자, 박스박스 2인 식사권, 빠네쿠치나 베이커리 세트 중 1가지 선택 메뉴로 구성되어 있다.치킨패키지 7만4000원(입장권 2인, BHC 프라이드 치킨, 음료 2인), 피자패키지 7만4500원(입장권 2인, 도미노 불고기 피자, 음료 2인), 박스박스패키지 7만5000원(입장권 2인, 박스박스 식사권 2인, 음료 2인), 베이커리패키지 6만6000원(입장권 2인, 아메리카노 2잔이 포함된 빠네쿠치나 베이커리세트)이다. 2016.05.18 13:11
야구

‘국민우익수, 국민노예…’ 3회 WBC 깜짝 스타는 누구?

2006년 1회, 2009년 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는 깜짝 스타들이 탄생했다. 1회 때는 '국민우익수' 이진영(LG)이, 2회 때는 '국민노예' 정현욱(LG)이 '국민'이 들어가는 영광스런 별명을 얻었다. 2013년 제3회 WBC에서는 과연 어떤 깜짝 스타가 나올 지 흥미롭다. 과거 깜짝 스타를 보자. 이진영은 2006년 때만 하더라도 타격이 정교한 편인 외야수라는 평가였다. 2002~2004년 3년 연속 3할을 기록했고 2005년에는 2할9푼1리를 쳤다. 이진영은 1라운드 도쿄에서 열린 일본과의 경기에서 환상적인 다이빙캐치로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0-2로 뒤진 4회말 2사 만루 위기에서 우익선상을 가르는 장타를 기가 막힌 캐치로 잡아냈다. 단번에 '국민우익수'라는 별칭을 얻었고, 이후 국제대회의 단골 우익수로 선발됐다. 2009년에는 불펜 투수 정현욱이 조명을 받았다. 군 복무 후 2007년 삼성에 복귀한 정현욱은 2008년 처음으로 규정이닝을 넘기며 꽃을 피운 선수였다. 불펜과 선발을 오가며 전천후로 활약, 10승 4패 11홀드를 기록했다. 선발 로테이션에 구멍이 나면 임시 선발로 나서고, 롱릴리프 역할도 하고 때로는 셋업맨이 되기도 했다. 삼성팬들은 53경기에서 127이닝을 던진 정현욱을 '노예'라고 불렀다. 뛰어난 활약과 함께 안타까움이 담긴 별명이었다. 정현욱은 2회 WBC 대표로 뽑혔을 때만 하더라도 이기는 경기보다는 지는 경기 투입으로 예상됐다. 정현욱 자신도 "나는 13명의 투수 중 13번째 투수"라고 말했다. 1라운드 일본과의 경기에서 선발 김광현이 난타당해 순식간에 0-8로 뒤졌을 때 정현욱이 마운드에 올랐다. 패전처리로 여겼던 정현욱은 일본 타선을 5 1/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는 호투를 펼쳤다. 이후 정현욱은 대회 내내 필승조로 등판, 5경기에서 10 1/3이닝 2실점으로 평균자책점 1.74로 '믿을맨' 역할을 해냈다. 야구팬들은 그에게 별명을 '국민노예'라고 격상시켜줬다. 제3회 대회에서 이승엽(삼성) 이대호(오릭스) 김태균(한화) 윤석민(KIA) 등은 기본적으로 잘 해야 할 선수들이다.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선수들에서 깜짝 스타가 나올 수 있다. 과거 예를 보면 일단 타자는 주전급으로 출장해야 기회를 잡을 수 있다. 투수로는 WBC는 투구수 제한이 있어 불펜 투수의 역할도 선발 못지않게 중요하다. 라인업에 들어갈 최정(SK) 강정호(넥센) 등이 후보로 꼽힌다. 최정은 2회 대회 때 대수비 등으로 출장해 7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3회 대회를 벼르고 있다. 최정은 2010년부터 3년 연속 3할 타율을 기록하면서 20개 이상 홈런도 쏘아올리는 장타력을 과시했다. 대표팀의 주전 3루수로 유력한 그는 세계 무대에서 스타가 될 잠재력이 있다. 유격수 자리를 손시헌과 함께 책임질 강정호도 기대해볼 만 하다. 강정호도 지난해 3할 타율과 25홈런으로 유망주 틀을 벗어났다. 투수 중에서는 왼손 차우찬(삼성) 박희수(SK)와 우완 노경은(두산) 윤희상(SK) 등이 WBC 무대를 처음 경험하게 된다. 상대적으로 데이터가 적은 이들 중에서 제2의 정현욱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선수가 나올 수도 있다. 한용섭 기자 orange@joongang.co 2013.01.29 15:34
스포츠일반

신세계, 컬링에 향후 7년간 100억원 집중 지원

신세계그룹이 겨울스포츠 종목인 컬링에 대해 전폭적인 지원을 결정했다. 향후 7년 간 총액 100억 원 이상을 투자한다. 겨울올림픽 메달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장기 육성 프로젝트의 일환이다.신세계그룹은 4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대한컬링경기연맹에 대한 후원협약식을 열고 2018년까지 매년 10억 원씩 총액 70억 원을 지원키로 했다. 뿐만 아니라 내년부터는 '신세계컵 전국컬링경기대회(가칭)'를 신설하고 대회 운영비와 훈련지원금 등으로 매년 5억 원씩 총 30억 원을 투자한다. 이 대회에서 남녀 각각 3위 이내에 입상한 팀에게는 5000만 원씩 지원하는 등 선수 육성에도 적극 나선다. 외국 우수팀을 초청해 국제대회로 격상시키는 방안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다.신세계가 컬링을 집중 육성 종목으로 점찍은 건 성장 잠재력이 뛰어난 스포츠기 때문이다. 컬링은 빙판 위에서 19.96kg의 원형 돌덩이(스톤)를 밀어 28m 떨어져 있는 지름 3.66m의 표적지(하우스)에 최대한 가깝게 보내는 것으로 승부를 가리는 겨울 종목이다. 상대와 번갈아 경기하는 데다 상대팀의 스톤을 밀어낼 수도 있어 정확한 손놀림과 효율적인 전략이 승패를 가른다. '빙판 위의 체스'라 불리는 이유다. 두뇌 회전이 빠르고 손재주가 뛰어난 한국인에게 잘 어울리는 스포츠로 평가받고 있다. 김윤섭 신세계 경영전략실 홍보팀 과장은 "한국 컬링은 국제경쟁력이 있는 종목으로, 남녀노소 모두 쉽게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대중화 가능성도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한국 컬링의 성장 속도 또한 매우 빠르다. 이렇다 할 저변 구축이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벌써부터 국제대회에서 주목할 만한 성적을 내고 있다. 2월에 열린 세계여자컬링선수권대회에서 4강에 오른 것이 대표적이다. 이와 관련해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컬링이 스포츠팬들에게 호응을 받는 스포츠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신세계는 앞으로도 겨울스포츠 발전을 위해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2012.10.04 17:40
연예

주부 승마인 정유진 “아이들에게 ‘하면된다’ 보여주고 싶어”

최근 승마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전문 선수출신이 아니지만 국가대표에 도전하는 선수들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중에는 유럽 유학을 다녀온 사람도 있을 정도로 열의가 대단하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주부 승마인인 마장마술 선수 정유진(42)씨다. 정유진씨는 전문 선수들도 어려워하는 마장마술 S-2·S-1클래스에 출전하고 있다. S-2클래스는 국내 최고급 레벨로 전재식·최준상·황영식 등이 연기한다. 아마추어 선수들의 프로 전향은 국내 승마계 발전을 견인할 수 있는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 대표에 도전하는 정유진씨를 만났다. -아시안게임에 도전 하는 이유. 내 기량을 시험해 보고 싶어서다. 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국제대회에서 평가받고 싶은 마음이다. 아시안게임 선발전은 실력이 발전되는 과정이다. 또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가정주부가 사회에 나와서 활동 하는 것에 대한 불평등이 존재한다. 그것을 이겨내고 싶고 아이들(1녀1남)에게 열심히 하면 결과물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선발전에도 참가했으나 말 상태가 좋지 않아 포기했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는 준비를 열심히 해서 꼭 출전하고 싶다. -승마 시작은 언제. 2000년 겨울 처음 건강상의 이유 때문에 시작했다. 어려서 부터 약한 편이었고 심장 쪽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상태가 좋지 않았다. 말을 탄 첫 느낌은 하늘을 날아가는 것 같았다. 성격상 말이 잘 맞았는데 말과의 교감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이 행복감을 준다. 성격이 내성적이었고 사람 만나는 것이 힘들었는데 승마를 시작한 이후 적극적으로 바뀌고 자신감도 생겼다. -승마 선수 시작은. 남편이 승마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고 2003년 좋은 말을 선물해 줬다. 이후 말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 시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겼다. 2004년까지는 국민생활체육승마전국연합회 대회에 출전했고 2005년 더 고급 기술을 배우고 싶어서 대한승마협회 대회에 출전하게 됐다. 마장마술 D클래스는 2005년 바로 우승했고 C·B·A클래스를 차근차근 마스터 하고 현재는 S-1·S-2에 도전하고 있다. -승마유학을 했다. 2008~2009년 2년간 독일 하겐의 카슬만 마장에서 마장마술 트레이닝을 받았다. 2010년에 충분히 아시안게임 국가대표에 선발될 수 있다고 자신했는데 말이 부상당해 포기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큰 교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하게 된다. 2014년을 장담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난 아시안게임 선발전이 큰 경험이 됐다. 당시에는 조급함이 있었지만 지금은 조급함은 사라지고 여유가 생긴 편이다. 결과에 상관없이 담대하게 다가설 수 있을 것 같다. -말을 타면서 어려웠던 것. 말은 기계가 아니라 그날그날 생각과 컨디션이 있다. 말이 내가 지시한 것을 따라줘야 하는데 지시만 해서는 안 되고 달래고 어르고 기다려줘야 하는 것을 수없이 반복해야 한다. 말위에서 도를 닦아야 한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말과 대화를 해야 하는 것이 처음에는 어려웠다. 또 비선수 출신의 어려움이다. 비선수 출신이라는 선입견을 깨는데 시간이 걸리고 엘리트 출신 선수들이 인정을 받기도 어렵다. 채준 기자 &#91;doorian@joongang.co.kr&#93; 2012.04.13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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