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링컨과 함께 100대 영웅에…한국전쟁 누빈 군마 '아침해'
1997년 미국의 라이프지는 100대 영웅을 선정했다. 조지 워싱턴·아브라함 링컨·마틴 루터 킹·마더 테레사 등 역사 속 위인들과 함께 사람이 아닌 군마 ‘레클리스’가 선정돼 화제가 됐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 해병대 소속인 이 군마는 서울 신설동 경마장에서 경주를 준비하는 경주마 ‘아침해’다. 산악지역이 대부분인 한반도의 지리적 특성상 신속히 고지를 점령하는 쪽이 전략적으로 우세하다. 한국전쟁에 투입된 미군이 산길로 물자를 이동하기에는 지프차는 무용지물이었다. 미군은 물자 이동을 위해 군마를 활용키로 한다. 이를 위해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52년 10월 미군 해병대 소속 프레더슨은 군마 수급을 위해 신설동 경마장에서 경주마 아침해를 만나게 된다. 몽골계 혈통을 이어받은 암말 아침해는 140cm의 작고 단단한 체구로 산길을 다니기에 적합한 체형이었다. 당시 아침해의 마주는 김학문이라는 어린 소년이었다고 전해진다. 지뢰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은 여동생의 의족이 필요했기 때문에 정든 말을 눈물로 떠나보냈다. 구입 가격은 250달러에 달했다. 당시 1인 연평균 소득이 67달러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총탄과 포성이 빗발치는 전장에 투입된 아침해는 고지대로 탄약과 물자, 부상병을 수송하는 임무를 맡았다. 청각 발달로 큰 소리에 지레 겁을 먹는 다른 말들과는 달리 아침해는 우렁찬 포성 소리와 여러 번의 총상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산길을 오를 때에는 탄약을, 내려올 땐 다친 병사들을 실어 날랐다. 포탄이 날아올 때는 몸을 바싹 눕기도 하며 철조망도 피해 다닐 수 있었던 아침해는 사람의 동행 없이도 완벽하게 단독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특히 53년 3월 연천지역에서 중공군과 치른 대규모 전투인 일명 ‘네바다 전투’에서는 닷새간 하루 평균 51차례나 물자를 옮기며 승리의 일등 공신이 됐다. 미 해병대는 아침해의 공로를 인정해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다’는 뜻의 레클리스로 이름을 붙였고, 1954년에는 병장으로 진급시켰다. 레클리스는 한국전쟁 종전 후 1954년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송환됐다. 성대하게 치러진 환영식에서도 레클리스는 단연 스타 대우를 받았다. 무공훈장 등 5개의 훈장을 수여받고 1959년 하사관으로 진급한 레클리스는 이듬해인 60년 공식 은퇴하며 퇴직금을 대신해 평생 동안의 먹이를 보장받았다. 은퇴 후에도 동료 전우들의 가정을 방문하는 등 활발한 퇴역군인 활동을 하며 지내던 레클리스는 1968년 노환과 부상으로 세상을 떠났다. 성대하게 치러진 레클리스의 장례식은 미국 전역의 언론에서 대서특필하며 용맹함의 아이콘이 된 영웅을 기렸다. 2013년 버지니아주 국립 해병대 박물관 및 2018년 켄터키 경마공원에 레클리스의 동상이 건립됐다. 한국에서는 2016년 경기도 연천군에 레클리스 공원이 조성됐다. 한국마사회는 전쟁 영웅이 된 한국의 경주마 아침해의 용기와 호국정신을 기억하기 위해 2015년부터 말과 함께하는 뮤지컬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김두용 기자 kim.duyong@joongang.co.kr
2020.06.05 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