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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일반

[단독] 쇼마 “스리랑카 내전으로 한국行, 100만 유튜버가 꿈” [IS인터뷰]

“정말 이건 무에서 유를 창조한 거예요.”퇴근하고 가볍게 찍은 먹방 영상으로 ‘급떡상’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아마 타고난 재능을 알아본 대중의 선택 일 것이다. 스리랑카 국적의 크리에이터 쇼마는 “먹방 영상으로 한 달 만에 틱톡 팔로워 10만 명, 유튜브 구독자 6만 명,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만 명이 늘었다”고 밝혔다. 쇼마는 본인을 ‘외국인 노동자’라고 소개했다. 또렷한 눈코입에 시원시원한 ‘기럭지’를 보유한 그는 “모델 같다”는 소리도 종종 듣는다. 최근 일간스포츠와 인터뷰를 진행한 쇼마는 밝고 명쾌했다. 영상에서 보이던 모습 그대로였다. 쇼마는 “요새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꽤 알아본다”라며 “저보다 제 주위 사람들이 더 좋아해 준다”고 근황을 전했다. 쇼마의 주된 콘텐츠는 ‘먹방’이다. 엽떡부터 비빔밥, 치킨, 간장게장 등 주로 한식을 먹는다. 그의 먹방이 특별한 이유는 ‘외국인’이라서다. 이국적인 얼굴을 하고 유창한 한국어와 솔직한 감정표현을 보여주니 구독 버튼을 안 누를 수가 없다. “어릴 때 배우가 꿈이었어요. 부모님이 반대하셔서 그 꿈을 펼치지 못했죠. 그런데 아직 그 끼가 남아있나 봐요. 사실 저희 어머니도 엄청난 끼쟁이예요. 역시 유전의 힘은 무서워요. (웃음)”원래 유튜브 타깃이 ‘한국’은 아니었다고 한다. 쇼마는 “처음엔 스리랑카를 타깃으로 콘텐츠를 올렸다. 6개월 정도 하다가 한국 비빔밥 먹는 영상을 올렸는데, 이게 대박이 났다”며 “새로고침 할 때마다 구독자 수가 늘더라”고 말했다. 트레이드 마크인 ‘맛있다’와 일명 ‘김정은 박수’도 자연스럽게 탄생한 거라고 설명했다. “제가 맛있는 것 먹을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손뼉을 치는데, 이게 웃음 포인트가 됐어요.” 쇼마는 먹는 양도 심상치 않다. 큰 대접에 최소 3인분은 돼 보이는 음식도 금방 먹어치운다. 치킨 한 마리와 피자 한판은 기본이다. 여기서 의문점이 생긴다. 이렇게 잘 먹는데 모델 같은 몸매는 어떻게 유지하는지, 이는 팬들도 궁금해하는 점이다. “저는 2~3일만 잘 먹어도 바로 찌는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먹방 할 때를 제외하곤 식단을 하는 편이에요. 운동은 거의 매일 해요.” 역시, 공짜는 없었다. 쇼마가 한국에 왔을 당시 나이는 고작 9살이었다. 스리랑카 내전 때문이었다. 쇼마는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땅바닥이 다 폭탄이었어요. 군인 아저씨들이 총 들고 시내 한복판을 다니는 건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었죠. 어릴 때 내전을 겪다 보니 작은 소리에도 놀라는 습관이 생겼어요.” 한국 생활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당하기 부지기수였다. 길 가는데 뚫어져라 쳐다보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쇼마는 그럴 때마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아 그냥 내가 좋아서, 예뻐서 그런가보다” 하고 말이다. 쇼마가 가지고 있는 그런 ‘긍정의 힘’은 팬들이 그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늘 좋은 텐션을 유지하는 비법이 있다면 무엇일까.“사실 항상 긍정적이지는 않아요. 그런데 스스로 약속한 게 있다면 ‘어둠에만 갇혀있지 말자’에요. 또 다른 하나는 자신감을 가지는 거예요. 누가 뭐라든 나만 행복하면 된다는 마인드가 중요한 것 같아요.” 현재 쇼마는 크리에이터 뿐만 아니라 마케팅 일도 같이하고 있다. 스스로 ‘워커홀릭’이라고 표현할 만큼, 일중독이다. 어릴 때부터 남다른 근성을 지니고 있었다. 18살 때부터 고기 뷔페, 당구장, 휴게소, 편의점, 카페 등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살아왔단다. 앞으로는 크리에이터 일에만 집중할 계획이다. 개인적인 목표도 있었다. 바로 ‘10억 모으기’다. 쇼마는 “저희집 형편이 좋지 않다. 제가 가장 역할을 해야 한다. 크리에이터 일을 시작하면서 조금씩 돈을 모으고 있는데, 2029년까지 10억원을 모으고 싶다”라고 밝혔다. 크리에이터로서 목표는 2027년도까지 100만 유튜버 되기다.“그냥 ‘웃긴 외국인’이 아니라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요. 제가 먹는 음식이나 옷 등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는 그날까지 열심히 달려보겠습니다.”김지혜 기자 jahye2@edaily.co.kr 2025.02.12 06:05
스포츠일반

펜 대신 큐 잡고 '최연소 우승'…김영원 "당구 올인 후회 없다, 쿠드롱 기록 넘는 게 목표" [신년인터뷰]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취재진 질문에 답할 땐 떨리는 목소리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지난해 6월, 조재호와 김가영, 스롱 피아비 등 내로라하는 당구 스타들 옆에 앉아 2024~25시즌 프로당구 개막 미디어에 참석했던 ‘2007년생’ 김영원(18)의 모습은, 프로선수보다는 여전히 어린 학생에 더 가까웠다. 다른 선수들이 저마다 ‘우승’을 목표로 외칠 때도 그는 128강 통과를 목표로 답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김영원은 어린 나이에 프로무대에 당차게 도전한 10대 선수로만 보였다.시즌 첫 투어 준우승 돌풍에 이어, 겨우 17세 23일의 나이로 프로당구 역대 최연소 우승까지. 시즌 개막 후 선보인 김영원의 경기력과 성적은 그래서 더 센세이셔널했다. 처음 큐를 잡은 시기까지 정확하게 기억할 만큼 구력은 짧지만, 타고난 재능에 엄청난 노력까지 더해지면서 단숨에 프로당구 정상급 선수 반열에 올랐다. 고등학교 진학 대신 일찌감치 당구선수의 길에 ‘올인’한 자신감을 직접 증명한 결과이기도 했다.최근 서울 도봉구 창동의 한 당구장에서 본지와 만난 김영원은 “너무 과분할 정도로 많은 걸 얻은 해라서 너무 감사하고 또 자랑스럽다”며 지난 2024년을 돌아봤다. 그는 “사실 우승까지는 전혀 예상을 못 했다. 운이 다 저를 따라온 것 같다. 당구를 사랑하는 마음에 연습을 많이 하고, 진심으로 고민하며 더 열심히 한 결과였던 것 같다”고 겸손하게 말했다.다만 그저 운으로 치부하기엔 데뷔 시즌 투어 성적이 워낙 좋았다. 개막 투어(NH농협카드 PBA 챔피언십)부터 준우승을 차지하며 무서운 10대 돌풍을 일으키더니 이어진 2차 투어(하나카드 PBA 챔피언십)에서도 8강에 올라 상승세를 이어갔다.그리고 지난해 11월, 시즌 6번째 투어였던 NH농협카드 PBA 챔피언십에서 다비드 마르티네스(스페인), 오태준 등을 꺾고 역대 최연소 기록과 함께 투어 최정상에 섰다. 이어진 하이원리조트 챔피언십에서도 4강에 오르는 등 김영원은 이번 시즌 PBA 포인트 랭킹(19만 4500점)과 상금 랭킹(1억 5100만원) 모두 전체 3위에 올라 있다. 이제 막 프로당구 1부 투어에 입성한 '2007년생'의 성적이다. 게임 좋아하던 소년, 필연이었던 당구와의 인연처음 큐를 잡았을 때를 기억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2019년 7월”이라고 단번에 기억할 정도로 ‘짧은 구력’에 이뤄낸 성과라 더욱 놀랄 수밖에 없다. 사실 김영원과 당구는 필연에 가까웠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낸 그는 축구나 야구 등 다양한 스포츠나 게임 등을 함께 즐겼다. 당구와 인연을 맺은 것 역시도 아버지 김창수 씨를 따라 당구장으로 향했던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김영원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PC방에 가는 걸 되게 좋아했다. PC방에서 함께 밤을 새우기도 할 정도로 아빠랑 게임하는 걸 엄청 좋아했다”면서 “2019년 7월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당구장에서 처음 큐를 잡았다. 처음에는 당구가 답답하고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고 떠올렸다. 아버지 김창수 씨는 “당구를 치는 아버지로서, 아들과 함께 당구를 치는 건 최고의 로망 아니겠느냐”며 웃었다.물론 처음 큐를 잡은 초등학생에게 당구가 쉬울 리는 없었다. 김영원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많고 또 답답했다”며 그때를 떠올렸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당구의 매력을 알게 됐다. 그는 “계속 어려운 걸 하다 보니까, 어려운 걸 제가 직접 풀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들었다. 연습을 통해 안 풀리던 게 풀리면 기분이 그렇게 좋았다. 당구를 친 이후부터는 어릴 때 그렇게 좋아하던 게임에도 흥미가 사라졌다”고 웃어 보였다.이후 김영원은 당구에 완전히 빠졌다. 학교를 마친 뒤엔 당시 강남에 있던 당구장으로 향해 큐를 잡았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오롯이 본인의 의지였다. 그리고는 무서울 정도의 집중력을 보였다. 어린 시절 산만했다던 김영원이지만, 당구대에서 큐만 잡으면 눈빛부터 달라졌다.아버지 김창수 씨는 “자기가 알아서 연습을 너무 열심히 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2배는 했다고 보시면 된다”며 “처음엔 ‘저러다 말겠지’ 했다. 그런데 코피를 흘려가면서도 큐를 놓지 않을 정도로 집중했다. 혼자서 10시간씩 쉬지도 않고 연습을 했다. 중간중간 제가 ‘쉬는 시간’을 만들어줘야 했을 정도다. 그래도 안 쉬고 당구를 쳤다. 연습하는 건 타고난 거 같다”고 했다. 고등학교 대신 택한 당구선수의 길자연스레 비슷한 세대와 비교해 실력이 늘어나는 속도는 월등히 빨랐다. 중등부 당구 대회는 일찌감치 제패했다. 한창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을 시기, 김영원의 꿈은 일찌감치 ‘당구 선수’가 됐다. 김영원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당구 선수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마침 제가 당구를 너무 좋아하다 보니 아버지도 ‘당구 선수 해볼래?’라고 물어보셨고, 그때부터 당구 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했다.다만 학업을 병행하면서 선수의 길을 걷는 게 쉽지는 않았다. 김영원은 “중학교 수업을 들으면서 당구 선수를 하기엔 시간이 너무 모자란다고 생각했다”며 “이후 중학교는 1교시만 듣고 조퇴한 뒤 연습에 몰두했다. 중학생 때부터 아버지와 ‘학교는 별 의미가 없는 거 같다’고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결국 김영원은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 진학을 하지 않았다. 대신 오롯이 당구 선수의 길을 걷기로 결단을 내렸다. 결코 쉽지 않았을 이 선택은 당구에 대한 열정, 그리고 부모님 등 가족들의 든든한 지원과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당구 선수로서의 길을 아버지가 함께 걷는다면, 어머니는 뒤에서 묵묵히 응원과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아버지 김창수 씨는 “저 개인적으로 어린 시절 가족사 탓에 ‘건강이 최고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 게 최고’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영원이에게도 공부가 다는 아니라는 생각이 있었다. 공부보다는 뛰어놀고 같이 노는 게 첫 번째였다”며 “공부를 하려면 학교를 가는 게 맞겠지만, 그저 졸업장을 따기 위해 학교에 가는 건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영원이가 학교에 계속 다니면서 당구를 치는 것도, 다른 친구들에겐 오히려 피해가 될 수도 있었을 거 같았다”고 했다.결국 고등학교 진학을 하지 않은 김영원은 친구들이 등교할 때 매일 당구장으로 출근하며 연습량을 대폭 늘렸다. 김영원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9시쯤 당구장에 나와 저녁 7~8시까지 연습한다. 당구장이 11시 30분에 오픈하는데, 내가 가장 먼저 당구장 문을 열고 들어와서 연습을 시작해 저녁까지 계속 연습을 이어간다”고 했다.당구뿐만 아니라 자기 관리에도 조금씩 시간을 들이고 있다. 그는 “저녁 8시쯤 연습이 끝나면 따로 운동도 한다. 당구는 자세가 무너지면 어려워지기 때문에 하체가 중요해 10㎞ 정도씩 달리기도 한다”면서 “여기에 영어 공부도 하고 있다. 외국인 선수들이 정말 당구를 잘 치는데, 선수들을 만났을 때 친해지고 또 공도 직접 물어보고 싶은 마음에 영어 회화를 공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김영원은 특히 쉬는 날도 없이 매일같이 연습과 훈련을 이어가는 중이다. 아직 어린 10대 소년에겐 지치고 힘든 루틴일 수 있다. 김영원은 그러나 “힘들지만, 그렇게 힘들게 해야 올라갈 수 있다는 걸 느꼈기 때문에 감내해야 한다”며 “고등학교 대신 당구 선수의 길을 걷기로 한 결심에 후회는 전혀 없다”고 했다. 역대 최연소 우승, 센세이셔널한 데뷔 시즌남다른 노력에 엄청난 연습량이 더해지니, 실력은 더 가파르게 늘었다. 2022년 3부 투어를 시작으로 2023년 2부 투어, 그리고 2024년 1부 투어까지 매년 승격을 거듭해 2024~25시즌엔 17세에 불과한 나이에 당당히 프로당구 1부 투어 선수가 됐다. 어린 나이가 아니라 ‘실력’으로 주목받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24~25시즌 투어 첫 투어부터 준우승 돌풍을 일으켰다. 당시 결승 상대였던 강동궁은 “앞으로 20번은 우승할 선수”라며 김영원의 잠재력에 박수를 보냈다.2차 투어에서도 8강에 올랐지만, 이후 슬럼프도 찾아왔다. 3~5차 투어에선 64강~128강에서 탈락해 초반 돌풍이 사그라드는 듯했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찾아온 슬럼프에도 김영원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독기’를 품고 연습에 매달렸다. 김영원은 “그때 3경기를 힘들게 지고 나서 마음적으로 되게 힘들었다”면서도 “독기를 품었다. 연습량도 많이 늘렸고, 운동도 많이 했다. 머리도 짧게 깎으면서 의지를 다졌다”고 말했다.그리고 지난해 11월 6차 투어 NH농협카드 PBA 챔피언십. 김영원은 그야말로 프로당구 새 역사를 썼다. 128강을 시작으로 승승장구하더니 4강에서 마르티네스를 4-2로, 결승에선 오태준을 4-1로 각각 꺾고 투어 정상에 올랐다. 17세 32일의 나이로 우승, 지난 2020~21시즌 여자프로당구(LPBA) 김예은이 세웠던 종전 최연소 우승(20세 11개월 13일)의 기록을 무려 4년 가까이 앞당긴 대기록을 썼다.김영원은 “우승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운이 많이 따랐다. (4강 상대였던) 마르티네스도 자기 기량이 별로 안 나왔다고 느꼈다. 나도 잘 못쳤는데 오히려 편안하게 이겼다. 대회 운이 굉장히 많이 따르고 있구나라는 걸 느꼈다”면서 “우승이 확정된 뒤엔 엄청 신나고, 막 날아갈 것 같았다. 내가 세운 최연소 우승 기록은 안 깨질 것 같다”며 웃어 보였다. 아버지 김창수 씨는 “주위에서 다들 부러워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아버지라고 말씀들을 많이 해주셨다”면서 “3부에서 1년, 2부에서 1년 있었다. 이번 시즌 처음 1부에 들어왔는데 우승까지 할 줄은 몰랐다. 아들은 제 예상을 항상 계속 뛰어넘었다”고 했다.투어 우승 상금은 1억원. 김영원은 “통장에 숫자로만 돼 있으니 실감은 안 났다”면서도 “부모님 건강검진 선물부터 해드렸다. 뿌듯했다. 하나의 목표였기 때문이다. 목표 하나를 이뤄낸 제 자신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크다. 아버지는 나를 위해 일도 포기하셨고, 어머니도 묵묵히 기다려 주시면서 뒷바라지해주셔서 너무 감사한 마음”이라고 했다. 이어 “남은 상금으로는 주위 분들께 많이 베풀고 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기부도 해보고 싶다. 기부 역시도 어렸을 때부터 마음속에 담아뒀던 목표이자 꿈”이라고 덧붙였다. 무한한 가능성, 계속 이어질 김영원의 도전 해가 바뀌었지만, 김영원은 여전히 ‘18세’에 불과하다. 이미 투어 우승으로 증명한 실력에 엄청난 노력, 그리고 앞으로 계속 쌓일 경험까지 더해지면 선수로서 그의 성장 가능성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김영원은 차분하게 당구선수의 길을 걸어가면서도, 이미 한 번 올라선 정상에도 계속 도전하겠다는 의지다.그는 “제 자신이 자랑스럽다. 더 열심히 해서 더 많이 우승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많은 주목에) 부담은 안 된다. 선수 경험이 많지 않다 보니, 부담 대신에 '최대한 즐기자'는 느낌으로 치고 있다”고 했다.이어 김영원은 “당구 테이블에 제가 들어가 있어야 한다. 그동안 집중을 못하는 경우가 꽤 있었는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저만의 당구에만 신경 쓰고 연습을 했던 게 도움이 많이 됐다. 다른 선수들은 (긴장한 탓에) 팔을 떠는 것도 보인다. 상대에 신경 쓰지 않고 저만의 당구를 잘치기 위해 계속 집중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했다.일찌감치 당구 선수의 길을 택해 보란 듯이 성공을 이룬 만큼, 자신의 발걸음이 다른 선수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도 잘 알고 있다. “힘든 길이지만, 당장만 버티고 이겨내면 다른 어린 선수들도 저처럼 우승할 수 있을 것”이라는 조언을 남긴 그는 “지금보다 훨씬 더 잘 치는 모범적인 선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저랑 같은 나이의 친구들이 저를 보고 많이 배울 수 있도록, 모범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프로당구 선수로서의 목표도 그려가고 있다. 역대 최연소 우승에 이어 프로당구 역사에 또 다른 획을 긋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는 각오다. 김영원은 “계속 연습하고 준비를 잘해서, 앞으로도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면서 “프레데리크 쿠드롱 선수가 4회 연속 우승했을 때가 있었다. 나는 그 이상을 목표로 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당구계를 뒤흔들고 있는 '2007년생' 김영원의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진다. 창동=김명석 기자 2025.01.04 07:03
스포츠일반

'당구 여제' 김가영 "3쿠션 선수의 길, 이제 시작일 뿐…조금씩 더 성장하고 있다" [IS 인터뷰]

“제 나이에 ‘시작’이라는 말, 너무 재미있지 않아요?”‘당구 여제’ 김가영(41·하나카드)은 자신의 3쿠션 커리어를 ‘시작’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프로당구 남·여 최초의 4회 연속 우승에 최다 우승(11회), 그리고 최다 연승(24연승) 신기록까지. 2019년 프로당구 출범 이후 그야말로 새 역사를 거듭 써 내려가고 있는데도, 3쿠션 선수로는 스스로 갈 길이 멀다는 의미다.최근 경기도 고양시의 개인 연습실에서 만난 김가영은 “3쿠션 선수로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3쿠션을 제대로 친 지 이제 3~4년 정도밖에 안 됐다. 그래서 사실 아직 목표도 없다. 포켓볼은 너무 잘 아는 종목이니까 계획이 그려졌다면, 3쿠션은 아직 청사진을 못 그리겠다. 그저 선수로서 올인할 뿐”이라고 말했다.그러면서 김가영은 “이 나이에 성장이라는 단어를 쓰기는 좀 그렇지만, 3쿠션 선수로 조금씩, 또 한 스텝씩 잘 성장해 나가고 있는 것 같다”고 웃어 보였다. ‘김가영 천하’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의 프로당구 3쿠션 무대에서 눈부신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지만 최정점에 오른 건 아니라는 뜻이다. 그가 써 내려가고 있는 프로당구 3쿠션 대기록들은 그래서 더 대단하다.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기대감 역시 더 커질 수밖에 없다. '4구 2000점' 목표로 시작된 김가영의 당구 인생실제 30년 가까운 김가영의 당구 인생에 3쿠션이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일부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운영하던 당구장에서 자연스럽게 당구를 접했다. 처음 접한 건 4구였다. 김가영은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했다. 아버지께 매일 1~2시간씩 레슨을 받았다. 400~500점을 치면서 2000점을 목표로 삼았다. 특기 정도로 만들어놓으려 했는데, 중학교 1학년 때 목표가 바뀌었다”고 했다.당시 한국계 미국인 포켓볼 선수 자넷 리(미국)의 방한이 화제가 되고, TV 광고도 찍는 걸 보면서 자연스레 김가영의 시선이 쏠렸다. 공부보다 당구에 더 흥미를 느끼며 당구 선수의 길을 고심하던 그는 4구로는 먹고살 수 없다는 걸 깨닫고는 포켓볼 선수로 전향을 결심했다. 그리고는 포켓볼 선수로 정식 등록해 본격적으로 당구 선수의 길을 걸었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김가영은 “사실 당구 재능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비교대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중학생 때) 처음 선수로 등록했을 때 바로 윗 선배도 20대 중반이었다”며 “자넷 리를 보면서 미국에서 프로 하면 되게 좋은가 보다라는 막연한 생각만 들었다. 그래서 4구 2000점에서 포켓볼 세계 챔피언으로 목표가 바뀌었다”고 했다.본격적으로 당구 선수의 길을 걸으면서 혹독한 훈련도 받았다. 유도선수 출신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아 일반 남자 운동부처럼 매일 훈련했다. 오전에는 유산소 운동을 하고 낮에는 수업을 받았다. 오후에 당구 훈련을 하다 훈련이 끝나면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다. 여중생인 김가영에게는 특히나 힘든 시간들이었다.김가영은 “제 인생에서 제일 고통스러웠던 5년이었다. 훈련을 혼자 다 버텨내야 하니까 기댈 곳도 없었다”며 “남자 선수들도 그렇게 안 하는데, 매일 아침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뛰거나 사이클을 타야 했다. 꾀를 부리거나 성실하지 않으면 혼도 났다. 당시엔 내가 뭘 하는지도 모르고 매일이 괴로웠다”고 돌아봤다.그러면서 김가영은 “다들 10대로 돌아가고 싶다고, 학창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는데 나는 절대 아니다.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면서도 “다만 결과적으로 당시 경험들은 뒤에 있었던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발판이자 밑거름이 됐다. 어떤 일을 겪더라도 그때보다는 고통스럽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포켓볼 세계 챔피언에게 찾아온 첫 번째 시련혹독한 훈련 속 김가영은 각종 대회를 휩쓸며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대만 국적이던 아시아당구연맹 회장의 권유로 고교 졸업과 동시에 대만 무대로 향했다. 고교 졸업과 동시에 대만행을 택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김가영은 “(처음 제안을 받고) 무조건 가겠다고 했다. 고된 훈련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하나, 그리고 또 하나는 류신메이(대만)라는 선수의 존재였다”며 “유일하게 테크닉에 반했던 선수이자 우상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쯤 만났을 때, 단 한 번의 실수로 역전패를 당했던 적이 있다. 한국에 있으면 1년에 한 번을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 몰랐다. 그래서 대만에 가서 다시 붙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안 갈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언어도 통하지 않는 혹독한 환경 속 김가영은 오롯이 포켓볼로 승부했다. 남다른 승부욕 속 류신메이에게는 설욕도 성공했다. 대만 진출 이후 6개월 만에 처음 류신메이를 이겼고, 1년 정도 지난 뒤엔 승률이 비슷해졌다. 2년 가까이 된 시점엔 오히려 류신메이보다 승률이 더 높은 선수가 됐다. 세계 챔피언의 영예도 안았다. 2004년과 2006년 잇따라 우승해 세계랭킹 1위 자리까지 올랐다. 세계 최초로 포켓볼 그랜드슬램의 역사도 썼다.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도 나섰다. 2006 도하(카타르) 아시안게임에 나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가영은 “아시안게임 전에 한 나라에서 귀화 제의도 받았다. 훨씬 좋은 조건이었는데 한 마디로 잘랐다. 미국에서 시민권을 딸 기회 역시 신청조차 안 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고 했다.그러나 대만에서 김가영은 결국 외국인 선수였다. 김가영의 실력이 급증한 건 곧 대만 당구계의 시기와 질투로 이어졌다. 특히 도하 아시안게임 직후엔 황당한 이유로 대만당구협회로부터 자격정지 징계까지 받았다. 대만과의 경기에서 한국 선수단의 요청으로 잠시 통역을 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김가영은 “비인기 종목이다 보니 아시안게임 때 통역이 따로 없었다. 한국과 대만의 경기 도중 한국 남자 선수들이 판정과 관련해 나에게 통역을 요청해 한국 선수들의 입장을 대신 통역해 준 적이 있다. 결과적으로는 심판 판정은 대만 선수에게 유리하게 나왔다”며 “그런데 그 판정 이후 승부가 뒤집혔다. 경기가 끝난 뒤 대만 당구계의 모든 화살이 돌연 나한테 돌아왔다. 결국 자격정지 2년의 징계를 받았다”고 했다.이어 김가영은 “대만에서 함께 활동했던 선수들이 누구도 나를 돕지 않았다. 그들에게도 민감한 문제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현지 기자들도 내가 말한 것과는 다르게 보도했고, 인격모독성 내용까지 담겼다. 대만당구협회장에게 항의했지만, 결국 화살을 나한테 돌려야 자기들이 산다고 했다. 심지어 해외에서 이런 일을 겪고 있는데 대한당구연맹에서도 도와주지 않았다. 양쪽에 다 배신감을 느낀 것”이라고 했다. 자격정지는 6개월 만에 풀리긴 했지만, 마음의 상처는 깊었다. 포켓볼 선수에게 내려진 사실상 사형선고대만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한 뒤 김가영은 미국과 한국 등을 오가며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포켓볼 세계 최정상의 자리도 굳게 지켰다. 그러다 지난 2019년, 또 한 번의 시련이 또 찾아왔다. 이번에는 대한당구연맹의 ‘영구 제명’ 징계였다. 당시 새로 출범한 프로당구협회(PBA)의 초청을 받아 3쿠션 대회에 참가했다는 게 중징계의 이유였다.김가영은 “당시 와일드카드를 통해 단 한 번 PBA 3쿠션 대회에 참가했다. 그렇다고 PBA에 정식 가입한 것도 아니어서 서류상 문제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대한당구연맹에서는 ‘영구 제명’ 징계를 내렸다. 음주운전을 해서 사고를 낸 것도, 당구계에 막대한 피해를 끼친 것도 아닌데 그런 중징계를 내려진 것”이라고 했다.당시 새로 출범한 PBA와 대한당구연맹 간 ‘대립’의 본보기 징계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김가영도 “‘PBA로 가면 김가영조차 제명’이라는 걸 보여줌으로써 선수들이 PBA로 가지 못하도록 내린 징계였다고 본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몇 번 우승을 했든, 국위선양을 얼마나 했든 본보기로 징계를 내린 것”이라고 했다.특히 당시 PBA 3쿠션 대회에 참가한 것 역시도 그저 포켓볼과 나아가 한국 당구의 발전을 위한 결정이었던 터라, 김가영이 느낄 배신감과 허탈감은 더 컸다.김가영은 “포켓볼을 더 부흥시키고 발전시키고 싶었는데 결과적으로 쫓겨난 셈이다. 그때 대회에 참가한 것도 3쿠션의 발전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오직 ‘당구 선수들을 위해서는 프로가 생겨야 한다’는 단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며 “프로가 생겨야 당구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거고, 그래야 선수들이 갈 수 있는 길이 더 넓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한당구연맹은 아마추어 단체라 (선수들의 생활엔) 큰 관심이 없었다”고 했다.이어 김가영은 “그동안 프로당구를 만들겠다는 단체들이 몇 번 있었지만 미심쩍었다. 하지만 PBA는 준비 과정이 믿을 만했다. 첫 대회인 만큼 대회 인지도가 있는 내가 참가해 힘을 실어주자는 생각이었다”며 “PBA에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포켓볼 역시 프로를 만들겠다고 했다. 프로가 생겨야 당구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나중에 포켓볼 종목에도 나쁜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 참가하게 된 것이었다”고 덧붙였다.그런데도 돌아온 건 ‘영구 제명’이었다. 이 징계로 김가영은 포켓볼 선수로서 국내 대회 참가는 물론 국제 대회 참가의 길까지 모두 막혔다. 평생을 포켓볼만 해온 김가영에겐 사실상 사형선고였다. 김가영의 등록 말소와 관련해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할 만큼 이슈가 됐으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김가영으로선 자신의 선수 생활의 위기만큼이나 후배 선수 등 포켓볼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점이 더 안타까웠다.그는 “후배 등 포켓볼에 종사하고 계시는 선수분들이나 관계자분들에게는 마음 한편에 미안한 감정이 있다. 내가 배신한 것 같은 느낌도 없지 않아 있다”면서도 “언젠가는 돌아갈 거다. 포켓볼 선수로 돌아간다거나 대한당구연맹에 가겠다는 게 아니라, 포켓볼을 위해 내가 뭔가 할 일이 있을 때 돌아가겠다는 뜻이다. 포켓볼 쪽에 꾸준히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은퇴 기로에서 결심한 3쿠션 선수의 길대한당구연맹의 영구 제명 징계는 김가영의 인생 계획도 바꿔놨다. 사실 김가영은 포켓볼 선수 이후 지도자의 길을 준비하던 참이었다. 그는 “원래 마흔 살 정도까지만 선수 생활에 집중하고, 40대 초반부터는 지도자를 할 생각이었다. 대학원에 다닐 때 지도교수님께서도 ‘경기력도, 이론도 잘 돼 있는 사람이 체육계에서 인정받는다, 너는 가능하지 않느냐’고 해주셨다. 지도자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도 포켓볼 강국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지도자를 준비하려다 제명 징계를 받은 것”이라고 했다.김가영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놓였다. 계획보다 더 이른 포켓볼 지도자의 길, 그리고 3쿠션 선수로의 전향이었다. 포켓볼과 3쿠션은 엄연히 다른 종목인 데다, 적지 않은 나이에 새 종목으로 전향한다는 것 그야말로 큰 도전일 수밖에 없었다. 오랜 고민이 필요했던 이유였다.김가영은 “결정하는 데까지 정말 엄청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실 고민이 많았다. 30대 후반의 나이에 뭘 다시 시작한다는 건 상상도 안 해본 일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될까’ 싶기도 했다. 초보자 때의 기억과 느낌도 없었다. 포켓볼과 3쿠션은 큐 길이나 굵기, 공 크기, 당구대 높이 등 모든 게 다르다. 포켓볼을 칠 땐 최소한 내 실력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게 나를 지탱해 줬다면, 3쿠션은 나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서도 “그래도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한 번 해보자’라는 결심이 섰다. 생판 모르는 걸 새로 시작하는 거니까 지도자와 병행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대학원을 그만두고, 3쿠션 선수의 길을 걷기로 했다”고 말했다.3쿠션 전향 첫 시즌 6차 대회부터 첫 우승을 차지하며 화제가 됐다. 다만 두 번째 시즌엔 단 한 번도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첫 시즌 우승 역시 ‘반짝 우승’으로 비쳤다. 김가영은 “첫 시즌에 왜 우승했는지도 모르고, 사실은 할 실력도 아니었다. (초창기다 보니) 전체적으로 선수들의 수준이 높지 않았고 운도 좋았다”면서 “두 번째 시즌에 혼란기가 왔다. 처음엔 그냥 열심히나 치자고 했다면, 3쿠션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면서 더 어렵게 느껴지고 혼란이 오면서 여러 가지를 바꿨다. 이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었다. 초반에 운이 좋게 포켓볼 스타일로 성적을 냈다면, 두 번째 시즌이 진짜 내 실력이었던 것”이라고 돌아봤다.그래도 ‘선수로서의 경험’이 많은 게 큰 도움이 됐다. 김가영은 세 번째 시즌부터는 매 시즌 2회씩 정상에 오르며 본격적으로 3쿠션에 적응을 마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이번 시즌엔 무려 4회 연속 우승을 차지하면서 프로당구 새 역사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24연승을 달성하며 프레데리크 쿠드롱의 기록을 넘어 프로당구 남·여 투어 최다연승 신기록까지 썼다. 평생을 포켓볼을 치다 3쿠션에 전향한 지 5년도 채 안 돼 이뤄낸 눈부신 성과들이었다.김가영은 “선수 경험이 많았던 게 컸던 거 같다. 3쿠션에 대한 경험은 적어도, 승부사나 경기인으로서의 경험은 남녀 통틀어도 손가락 안에 들 거다. 곧 있으면 선수 생활만 30년 차가 되는데, 그 경험을 완전히 무시는 못 하는 거 같다. 공의 원리에 대한 이해도나 공을 다루는 건 아무래도 습득하는 속도가 빠르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이어 “4회 연속 우승 등 이번 시즌 성적이 좋은 이유는 사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3쿠션에 올인한다고 했을 때나 지금이나 훈련량이나 루틴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대대적으로 수정하거나 뒤집어엎은 것도 없다. 조금씩 루틴을 수정하고 조절하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처음 3쿠션을 시작할 때와 똑같다”며 “그저 한 스텝씩 잘 성장해 나가고 있는 느낌”이라고 웃어 보였다. “오랫동안 잘하면 된다”…김가영이 따라 걷는 레전드의 길지도자까지 준비하며 청사진을 그려가던 포켓볼과 달리, 김가영은 아직 3쿠션 선수로서 목표나 향후 미래를 그리지는 못했다. 김가영은 “포켓볼은 너무 잘 아는 종목이니까 전체적인 계획이 그려지는데, 3쿠션은 아직 안 그려진다. 사실 몇 살까지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포켓볼과 달리 3쿠션은 선수 생명이 길다. 앞으로 어떻게 계획을 세워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계속 올인할 뿐”이라고 했다.그래서 더더욱 체력 등 자기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 특히 오프시즌 때는 당구 훈련보다 체력을 기르는 데 집중하고 있다. 김가영은 “오프시즌 때는 한 시즌을 잘 치르기 위해 체력 훈련에 신경을 쓴다. 당구 연습보다 운동을 더 많이 할 정도다. 그때 몸을 만들어놓고, 시즌이 시작되면 몸을 유지하는 정도로만 운동을 한다. 오프시즌 때는 필라테스와 웨이트를 많이 한다”고 했다.여기에 틈틈이 정신적인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취미 생활도 잊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프리다이빙’에 빠졌다. 김가영은 “동호회는 처음 가입해 봤다. 경기 때 다이버 분들이 응원 피켓을 들고 경기장에 와주신다. 사회 생활하면서 이렇게 좋은 분들을 만날 수 있지 싶을 정도로 좋은 분들을 만났다. 서로 윈윈(Win-Win)하고 있다. 당구장 평생 안 가보신 분들이 이제는 당구룰을 꿰고 계신다. 반대로 당구 선수들은 저 때문에 프리다이빙에 관심을 갖고 계신다”고 말했다.이어 “프리다이빙에 당구에 도움이 되는지 결론은 못 냈다. 다만 확실히 느끼는 건 있다. 열이 받거나 하던 게 잘 될 때, 긴장될 때 숨이 가빠지지 않나. 당구칠 때 역시도 호흡이 가빠지거나 흥분하면 안 된다. 호흡을 가라앉히는 게 좋은데, 프리다이빙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은 하고 있다. 기분 탓일 수도 있다”며 “취미 생활을 할 땐 갈 때부터 기분이 좋다. 잘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당구를 치거나 훈련할 땐 ‘늘 잘해야 돼, 실수하면 안 돼’ 이런 마음이라면, 취미를 할 때는 ‘재미있게 놀자, 못해도 된다’는 마음으로 간다. 스트레스도 풀리고, 다칠 일도 없다. 나쁠 게 없는 거다.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건강하면 자기 관리는 끝”이라고 웃어 보였다.이처럼 김가영이 당구 실력뿐만 아니라 체력 등 자기 관리에 더욱 집중하는 이유가 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세우지 못했지만, 결국은 오랫동안 꾸준히 잘하고 싶다는 마음가짐에서다. 여기에는 김가영이 유독 마음속에 담고 있는 레전드의 조언이 자리 잡고 있다. 과거 포켓볼 레전드 앨리슨 피셔(영국)가 김가영에게 직접 건넸던 조언이다.김가영은 “예전에 피셔에게 ‘나도 당신처럼 레전드가 되고 싶다’고 물은 적이 있다. 그는 ‘오랫동안 잘하면 된다, 잠깐 잘하면 그건 반짝 스타’라고 답해줬다. 그게 되게 기억에 많이 남았고, 지금도 늘 마음에 새기고 있다”고 말했다.이어 “오랫동안 잘하는 게 결코 쉽지가 않다. 다행히도 선수 생활을 하는 28년 동안 우승을 못한 해는 1~2년 정도밖에 안 된다. 그건 운이 아니라 제 노력의 결과였다. ‘오랫동안 잘하면 된다’는 말을 마음에 새기고, 노력하고 있는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당구 여제' 김가영이 걸어가고 있는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고양=김명석 기자 2024.11.22 16:22
연예일반

‘찾아라 마이홈’ 박소영, 럭셔리 실버타운 체험…대리만족 요정 등극

코미디언 박소영이 목요일 밤 힐링 요정으로 등극했다.박소영은 지난 25일 방송된 OBS ‘찾아라 마이홈’에서 여름특집을 맞이해 1년 내내 휴가를 즐길 수 있는 보금자리를 찾아 떠났다.이날 박소영은 호텔 같은 실버타운이 있다는 강원도 동해로 향했다. 바다를 보고 휴가 분위기를 제대로 만끽, 시작부터 보는 이들의 여행 욕구를 자극시켰다.‘찾아라 마이홈’ 최초로 자신도 머무를 수 있는 실버타운이 공개된다는 소식에 설렘을 감추지 못한 박소영. 실버타운 내에 있는 시설을 방문, 당구장에서 만난 어르신들에게 먼저 다가가 인터뷰를 진행하는 남다른 친화력을 발휘했다.이어 박소영은 실버타운 입주민에게는 무료인 온천 체험에 나섰고 “피부가 보송보송해지는 느낌”이라며 체험 후기를 생생하게 전해 대리만족을 선사했다. 더 나아가 박소영은 온천 체험에 대해 MC와 패널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피부 미인 되려나, 빛나나요?”라는 등 유쾌한 리액션으로 텐션을 끌어올렸다.실버타운에 있는 모든 시설과 서비스를 차례대로 소개하던 박소영은 입주 전 알아두면 좋은 유익한 정보까지 설명해 이목을 사로잡았다. 실버타운 입주는 60세 이상부터 되지만, 체험 숙박은 모든 연령에 열려있다는 것. 박소영은 “며칠 동안 놀고 가도 된다”라며 꿀팁도 전수했다.또한 박소영은 실버타운 이용자들을 따라 해변에서 맨발 걷기에 도전하는가 하면 텃밭 채소 체험 장소에 방문했다. 자칭 ‘소식좌’라는 박소영은 텃밭에서 따온 채소로 든든히 식사를 해결해 미소를 유발했다.마지막으로 박소영은 이용자들과 ‘행복한 노후란 무엇인가’에 대한 토크쇼를 실시, 깔끔한 진행력을 선보이며 토크쇼를 주도했다.박소영의 활약은 매주 목요일 오후 9시 방송되는 OBS ‘찾아라 마이홈’에서 만나볼 수 있다.이주인 기자 juin27@edaily.co.kr 2024.07.26 17:21
생활문화

[황교익의 Epi-Life] 당구장 자장면이 맛있었던 이유

라떼에는, 소년이 청년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배워야 하는 것 중 하나가 당구였습니다. 당구장은 대체로 상가 건물 2층에 있었습니다. 실내에 가득한 담배 연기가 당구장은 오직 성인 남자들만의 공간임을 증명해주었습니다. 라떼에는, 여자가 담배를 피우면 말세가 닥쳐서 세상이 멸망하는 줄 알았습니다. 드물게는, 남자 애인을 따라온 성인 여자가 카운터 옆 소파에 조용히 앉아 있기도 했습니다. 담배를 꼬나물고 ‘당구다이’에 한쪽 엉덩이를 걸치면서 매운 담배 연기 때문에 눈을 가늘게 내리뜨고 ‘맛세이’를 찍는 동네 형은 소년에서 막 벗어나려는 우리들의 우상이었습니다. 맛세이를 성공시킨 동네 형은 큐대를 세워서 초크를 바르는 자세로 턱을 살짝 올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300 이하는 맛세이 금지인 거 알지?” 맛세이 한번 찍어보는 게 꿈이었습니다.당구를 치다가 술은 마시러 가지만 밥을 먹으러 가지는 않았습니다. 당구를 치면서 끼니를 때우는 것이 당구장 성인 남자의 멋이었습니다. 물론, 끼니를 때우면서 술을 곁들일 수는 있었습니다. 그때에 배달 앱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카운터에다 이렇게 소리를 치면 됩니다.“여기 3번 다이, 자장면 넷 하고 빼갈 하나요.”자장면 값은 당구장에서 일단 지불을 합니다. 자장면 값을 누가 내야 할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구는 게임이고, 승자와 패자로 나뉩니다. 3명 이상이면 꼴찌가 당구비와 자장면 값을 다 낼지, 등수에 따라 분담을 할지 룰을 정하고 당구를 칩니다. 마지막에는 몰아주기 게임을 할 수도 있습니다. 분담을 한 당구비와 자장면 값을 꼴찌에게 몰아주는 것이지요.자장면을 먹기 위해 당구를 멈추는 일은 없습니다. 자장면을 먹다가 자기 차례가 오면 당구를 치고 다시 자장면을 먹습니다.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는 것인데, 이게 보통 재미난 것이 아닙니다. 당구를 치면서 얻는 쾌감과 자장면을 먹으면서 얻는 쾌감이 서로 부딪치면서 상승 작용을 하는 것이지요. 당구비에 자장면 값이 더해졌으니 승부욕이 더욱 불타오르는 탓도 있을 것이나, 자장면 그 자체가 주는 흥분도가 상당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좀더 옛날의 라떼에, 중국집의 자장면은 특별한 날의 별식이었습니다. 입학식이나 졸업식, 가족의 생일, 아버지 보너스 받은 날 등에 자장면을 먹으러 중국집에 갔습니다. 가족이 다같이 자장면이 맛있다고 해서 간 것이 아니라 특별한 날의 가족 외식으로 갈 만한 한식집이나 양식집이 별로 없어서 중국집에 가서 자장면을 먹었습니다.자장면 먹는 날은 원래 기분이 좋은 날이고, 기분이 좋은 날에 자장면을 먹게 되니까, 나중에는 자장면을 먹으면 자동으로 기분이 좋아지게끔 우리 몸이 세팅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당구를 좋아하는 직장 동료가 있었는데, 그는 점심에 “우리 당구 치자”를 “우리 자장면 먹자”로 바꾸어서 말을 하곤 했습니다. 그의 추억도 저의 추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당구장 출입도 한때입니다. 중년을 넘기면서 당구장에 출입을 하는 것이 멋쩍어졌습니다. 실내 금연으로 당구장의 담배 연기가 사라졌고 덩달아 성인 남자들만의 공간이라는 분위기도 사라졌습니다. 소년에서 청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의 반항적 정서가 당구장에는 이제 없습니다.며칠 전에 제 또래의 술자리에서 당구장에서 먹었던 자장면 이야기를 했더니 자장면 먹는 공간이 바뀐 줄 모르냐는 핀잔을 들었습니다. “요즘은 자장면을 골프장에서 먹잖아. 스크린 골프장에서도 먹고.” 제가 골프를 안 치니까 몰랐습니다.당구장에는 안 가도 두어 달에 한 번은 자장면을 배달하여 먹습니다. 잘하는 중국집 같은 거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일 가까운 중국집이 제일 맛있는 중국집이라는 개똥철학을 저는 믿습니다. 간자장이 아니라 그냥 자장면이어야 합니다. 설탕을 듬뿍 넣어서 들척지근하고 심지어 과도한 MSG 때문에 닝닝한 맛이 나는 자장면이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막 청년이 되려던 소년 황교익이 시내 당구장에서 맛세이 겁나게 잘 찍던 동네 형과 함께 먹었던 그 자장면 맛이 나야 합니다. 추억이 맛의 전부입니다. 2024.03.21 07:00
연예일반

박수홍 친형, PC방·당구장에 법카 사용…“가족기업이라서 가능한 줄”

횡령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방송인 박수홍의 친형 박모 씨가 횡령·법인카드 유용 등의 혐의를 부인했다.10일 오후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합의11부에서 박수홍 친형 부부의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횡령) 위반 혐의 10번째 공판이 열렸다.이날 박모 씨는 자신이 사내이사로 있었던 소속사 라엘의 법인카드 내역 중 PC방 소액결제 항목에 대해 해명했다. 박모 씨는 “사무실이 없어 주로 PC방 가서 일을 하고 게임도 하고 그랬다”며 “자료 검색도 하고 워드로 하나하나 작업했다”고 해명했다. 이 외에 미용실, 당구장, 키즈 카페, 학원 교습비용 등 개인 용도로 사용한 내역에 대해서는 “가족기업이기 때문에 그렇게 사용해도 되는 걸로 알고 있다. 임직원의 복리후생이라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반면 상품권을 구입한 내역에 대해서는 “다 박수홍 지인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구입한 것”이라며 “명절에 사용한 내역이 많이 있다”고 말했다. 개인 변호사 비용을 법인에서 지불한 내역에 대해서는 “세무사가 그렇게 하라고 해서 한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박모 씨는 박수홍의 요청으로 법인 자금을 상가 분양비, 생활비 등 용도로 사용한 것일 뿐 돈을 빼돌린 게 아니라고 혐의를 부인했다.또한 박모 씨는 계속되는 검찰 심문에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버벅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감옥 다녀온 후 가슴이 떨린다. 우울증 증세, 간 수치가 높다”면서 “귀에서 윙윙 울리는 소리가 들린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러면서 “(구치소에) 수감됐던 이후 불안 증세와 우울증이 커졌다. (검찰과의) 대질신문 때도 쉽지 않았다”라고 토로했다. 한편 박수홍은 지난 2021년 4월 횡령 혐의로 친형 부부를 고소했다. 친형 부부는 지난 2011년부터 2020년까지 박수홍의 매니지먼트를 전담하는 과정에서 회삿돈과 박수홍의 개인자금 61억 7000만 원가량을 횡령한 혐의를 받는다.권혜미 기자 emily00a@edaily.co.kr 2024.01.10 16:00
스포츠일반

당구장 알바에서 프로당구 우승까지…최혜미 ‘LPBA 새 역사’ 썼다

“카운터에 앉아서 손님들이 당구 치는 걸 구경하는데 재미있어 보이더라고요.”최혜미(29·웰컴저축은행)가 당구와 처음 인연을 맺은 건 스무 살 때였다. 친구가 추천한 당구장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처음 당구를 접했다. 당시 김세연 프로의 경기를 보면서 ‘여자도 당구를 치는구나’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당구와는 인연이 없었다.그때 시작했던 당구장 아르바이트가 최혜미의 인생을 바꿨다. “누구에게 당구를 배웠다고 하기도 애매하다”고 할 정도로 전문적으로 배울 기회는 없었지만, 흥미를 갖고 시작해 실력을 키웠다. 학창 시절 유도 선수로 활동했던 운동에 대한 재능은 당구대에서도 금세 꽃을 피웠다.아마추어 전문 선수의 길을 걸은 건 아니었다. 동호인으로만 당구를 이어가다 2019년 동호인을 대상으로 열린 여자프로당구(LPBA) 오픈 챌린지를 통해 프로 자격을 얻었다. 당시 최혜미는 7.3대1의 경쟁률을 뚫고 2019~20시즌부터 프로무대에 입성했다. 동호인 출신의 프로 선수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랬던 최혜미가 LPBA 최정상의 자리까지 우뚝 섰다. 그는 지난 8일 고양 킨텍스 PBA 스타디움에서 열린 NH 농협카드 LPBA 챔피언십 결승에서 팀 동료 김예은에 4-2 역전승을 거두고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프로 데뷔 다섯 번째 시즌, 34번째 대회 만에 누린 감격의 우승이었다.첫 세트를 4-11로 내줄 당시만 해도 이번이 다섯 번째 결승 무대인 김예은의 경험이 더 앞서는 듯 보였다. 그러나 최혜미는 흔들리지 않았다. 2세트에서 하이런 4득점 등을 앞세워 11-4로 승리에 균형을 맞췄다.기세가 오른 최혜미는 집중력을 이어갔다. 3세트에서 1-2로 뒤지다 6-2로 역전에 성공한 뒤 11이닝 만에 11-5로 승부를 뒤집었다. 4세트에서는 김예은이 9이닝 동안 공타에 그치는 사이 차곡차곡 점수를 쌓아 11-5로 또 따냈다. 우승까지 단 한 세트가 남았다.최혜미는 궁지에 몰린 김예은의 반격에 5세트를 6-11로 내주며 추격을 허용했다. 그러나 최혜미는 6세트에서 승부를 끝냈다. 7-8로 뒤지던 8이닝, 원뱅크샷을 포함해 4점을 내리 따낸 뒤 두 손을 들고 환하게 웃었다. 우승상금은 3000만원.시드 없이 PPQ(1차예선) 라운드부터 참가해 정상까지 올랐다는 점에서 더욱 값진 여정이었다. 사상 처음 동호인 출신의 우승이라는 프로당구 새 역사도 썼다. LPBA에서 우승을 경험한 14번째 선수이자 한국 선수로는 12번째로 여왕의 자리에 올랐다. 최혜미는 “우승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낯선 기분이고, 실감이 나지 않는다. 김예은 선수가 저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구력과 실력에서는 월등히 앞선다. 우승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 속 오직 배운다는 생각으로 결승에 임했다”며 “‘자신 있게 치자’는 생각을 많이 되뇌었다. 어떤 경기든 자신 있게 치지 못했을 때 후회하는 순간이 꼭 왔다. 첫 결승이었기 때문에 즐기자는 생각이 더 컸다. (김)예은 선수보다 부담이 좀 덜했던 것 같다”며 웃어 보였다.처음 당구를 시작하게 됐던 여정도 돌아봤다. 그는 “친구가 소위 꿀알바로 추천을 해줬다. 그래서 당구장 알바를 시작했는데 정말 편했다. 공을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데, 성인 이후 운동을 체계적으로 하는 건 아니라 일을 하면서 흥미를 갖고 시작하게 됐다”며 “국제식 대대 입문 후에 16점으로 시작했다. 삼촌들이 치는 걸 어깨너머로 보며 터득한 게 16점이었다. 그때부터 일을 하면서 당구를 배워 조금씩 점수를 올려갔다. 여러 선배들께 자세나 포인트 등을 조금씩 배웠다”고 설명했다.이날 경기장을 찾은 아버지를 향해서도 고마움을 전했다. 이날 우승 직후 시상식에서 최혜미는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고, 아버지 역시 그런 최혜미를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최혜미는 “아빠를 보면 항상 눈물이 난다. 1세트 땐 아빠의 응원 소리를 듣고 온 신경이 가는 바람에 경기력이 좋지 않았다. 1세트 끝나고 조용히 하라고 했다(웃음). 2세트부터는 자제하시더라. 그래서 집중력을 다시 찾았다. 어찌 됐든 우승은 아빠 덕이다. 오늘 배드민턴 가방 같은 걸 들고 오셨던데, 우승 상금으로 우선 아빠 가방부터 사드려야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이어 최혜미는 “(소속팀) 남자 선수들 모두 좋다. 오빠들이 색깔이 다 다르다. (서)현민 오빠, 비롤 (위마즈) 오빠, (김)임권 오빠, (이)상대 오빠 각각 배울 점이 모두 다르다. 저희 여자 선수들에게는 정말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다. 워낙 잘 알려주시고 팀리그 경기 때도 부드럽게 토닥여주시고, 늘 응원해 주신다. 정말 감사하다”며 앞으로 “‘시원시원’하게 치는 당구 선수가 되고 싶다. 예전부터 시원하게 치는 것을 좋아했고, 인터뷰에서도 ‘빵빵치기’라고 표현을 했는데 그만큼 시원시원하게 치는 선수가 되고 싶다. 그리고 늘 파이팅이 넘치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각오를 밝혔다. 한편 지난 2020~21시즌 만 21세 7개월의 나이로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웠던 김예은은 결승 문턱에서 아쉽게 고배를 마셔 통산 3번째 우승 기회를 놓쳤다. 준우승 상금은 1000만원. 가장 높은 애버리지를 기록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웰뱅톱랭킹(상금 200만원)은 64강에서 1.923을 기록한 용현지에게 돌아갔다. LPBA 6번째 시즌을 마친 프로당구는 9일 남자부 PBA 128강에 돌입한다.김명석 기자 2023.11.09 09:58
스포츠일반

타지에서 데뷔 첫 '눈물의 우승'…日사카이 "가족들에게 가장 고맙죠"

“일본에 돌아가면, 찐하게 포옹을 해주고 싶어요.”프로 데뷔 4년 만에 여자 프로당구(LPBA) 정상에 오른 일본 사카이 아야코(하나카드)는 우승 직후 가족들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남편은 일본에서 홀로 두 아리를 돌봐주고 있고, 아이들도 유튜브를 통해서나 자신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사카이는 “일본에 돌아가면 맛있는 밥을 만들어서 먹이고 싶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자, 가장 하고 싶은 일”이라며 웃었다.사카이는 전날 경기도 고양 킨텍스 PBA 스타디움에서 열린 에스와이 LPBA 챔피언십 결승에서 김민아(NH농협카드)에 4-2(8-11, 11-10, 4-11, 11-0, 11-8, 11-6) 역전승을 거두고 22개 투어 만에 처음 정상에 올랐다. 우승 상금은 3000만원. 지난 2019년 5차전 데뷔 후 약 4년 만에 맛본 챔피언의 자리다. LPBA 역대 13번째 ‘여왕’이 됐다. 일본 국적 선수의 우승은 히다 오리에(SK렌터카) 히가시우치 나츠미(웰컴저축은행)에 이어 세 번째다.결승답게 경기는 치열하게 펼쳐졌다. 김민아가 먼저 한 세트를 따내면, 사카이가 곧장 균형을 맞추는 양상으로 전개됐다. 첫 세트는 김민아가 기선을 제압했다. 첫 4이닝 만에 8-1로 크게 앞섰다. 사카이가 8-8 동률을 이뤘지만, 김민아가 행운의 뱅크샷을 포함해 3점을 채워 1세트를 11-8로 따냈다.사카이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2세트 9이닝 8-10으로 밀려 패색이 짙었지만, 10이닝에 동점을 만든 뒤 행운의 뒤돌리기 득점으로 극적으로 균형을 맞췄다. 이후 김민아가 3세트를 따내자, 이번엔 사카이가 4세트에서 11-0 완승을 거두고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사카이가 5세트에서 치열했던 승부를 뒤집었다. 7이닝째 3-1 역전에 성공한 것을 시작으로 3·2·3득점을 몰아치며 단숨에 11점을 채웠다. 8-8 동점인 상황에서 걸어치키 원뱅크샷으로 분위기를 잡은 뒤 마지막 남은 한 점을 채웠다. 이날 처음으로 리드를 잡는 순간이었다.우승을 확정지을 수 있었던 마지막 6세트 집중력에서도 사카이가 앞섰다. 무려 17이닝까지 가는 장기전 끝에 활짝 미소를 지었다. 8-6으로 앞서던 16이닝에 1득점 이후 뱅크샷으로 경기를 마쳤다.사카이는 위기 때마다 뱅크샷으로 돌파쿠를 만들었다. 결승전에서도 김민아보다 4개 많은 9개의 뱅크샷을 성공시켰다. 뱅크샷률은(총 득점 중 뱅크샷 비율)은 32.1%로 대회 평균(28.5%)보다 높았다. 이번 대회에서만 6경기 동안 48개의 뱅크샷을 성공시켰다. 대회 내내 끈질긴 집념도 빛났다. 첫 경기 한지은(에스와이)과의 맞대결에서 23-23으로 경기를 마친 후 하이런까지 비교하는 힘겨운 승부를 펼쳤다. 이후 임정숙(크라운해태·16강), 김보미(NH농협카드·8강), 박다솜(4강), 결승까지 모두 첫 세트를 내주고 경기를 뒤집는 진기록도 남겼다.사카이는 “우승하게 돼 너무 기쁘다. 결승전 경기를 너무 이기고 싶었는데, 응원해 주는 많은 분들이 있었기에 이길 수 있었던 것 같다. 올 시즌 하나카드 팀에 들어와 동료들로부터 많은 응원을 받았고, 경기장에 직접 와서 응원도 해줘서 우승할 수 있었던 것 같다”며 팀 동료들에게 공을 돌렸다.이어 “우승 순간 가장 먼저 가족이 생각났다. 또 일본에서 응원해 주는 많은 분들이 생각났다. 히다 오리에(일본) 선수가 오늘 뿐만 아니라 어제도 직접 와서 응원해 줘 마음이 든든했다”며 “일본으로는 개인투어가 끝나고 돌아간 뒤, 팀리그 연습이 시작되기 전에 다시 한국에 오는 루틴이 반복되고 있다. 개인투어에서 일찍 탈락하면 바로 일본으로 돌아가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 일본에 있을 때는 남편과 함께 하는 당구장에서 연습을 한다”고 덧붙였다.사카이는 “LPBA 투어는 유일한 여자대회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대회다. 정말 훌륭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경기 환경도 너무 좋다. 심판도 최고의 심판들로 갖춰져 있다. 선수 레벨이 점점 올라가고 있어 이기는 게 점점 힘들어지는데, 그만큼 저를 성장시키기 위한 가장 좋은 환경이라고 본다”며 “가족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감사하다는 말 밖에 없다. 일본에 돌아가면 찐하게 포옹을 해주고 싶다. 아이들에게도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한편 시즌 개막전 우승에 이어 3개월 만에 두 번째 우승이자 통산 3회 우승에 도전한 김민아는 우승 문턱에서 아쉽게 고배를 마셨다. 김민아는 “4강에서 김가영 선수를 이기고 올라왔는데도 우승을 못해 아쉽다. 4세트 후반부, 5세트 초반부터 체력이 많이 부족해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개막전 우승에 이어 또 결승 무대를 밟아 기쁘다”는 소감을 밝혔다.대회 한 경기에 가장 높은 애버리지를 기록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웰뱅톱랭킹 64강전에서 박수향을 상대로 2.273을 기록한 스롱 피아비(캄보디아·블루원리조트)에게 주어졌다. 상금은 200만원. 남자 프로당구는 5일부터 128강전을 시작해 7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막을 올린다. 우승상금 1억원의 주인공을 가리는 결승전은 11일 오후 9시에 열린다.김명석 기자 2023.09.05 10:17
생활문화

델피노 리조트, 복합 멀티플렉스 '더 몰' 리뉴얼 오픈

대명소노그룹 소노인터내셔널은 강원도 고성 델피노 리조트의 복합 편의시설 '더 몰'을 리뉴얼 오픈했다고 27일 밝혔다.소노문 델피노 지하 1층의 더 몰은 레스토랑과 디저트카페 등의 식음 시설과 키즈클럽, 노래방, 당구장 등 다양한 편의 시설을 갖춘 복합 멀티플렉스다.주요 시설인 BBQ팩토리앤가든은 공장을 연상케하는 인테리어의 실내 공간과 자연 속 바비큐파티 콘셉트의 가든을 함께 운영한다.실내에서 셰프가 조리한 토마호크·우대갈비·양갈비 등 프리미엄 메뉴를 맛볼 수 있다면, 실외에서는 프리미엄 그릴을 갖춘 넓은 야외가든에서 고기를 직접 골라 굽는 방식으로 바비큐를 즐길 수 있다. 한식 레스토랑 '미시령 테이블'은 강원도 속초의 로컬시장 푸드를 재해석했다.속초해물파전·속초오징어순대·동해안회무침 등 막걸리와 함께 즐기기 좋은 안주는 물론, 해초면묵사발과 장터소고기무국, 속초오징어, 새우튀김 등 식사와 튀김류까지 준비했다.아이들을 위한 공간인 '델피노 키즈클럽'은 면적이 736㎡로 최대 14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트램펄린과 슬라이딩, 클라이밍, 편백칩놀이 등을 경험할 수 있다.이색 포토존도 마련했다.소노문 델피노 1층에서 지하로 연결되는 계단에 30년간 이어지고 있는 델피노의 이야기를 담았다. 계단을 내려오면 영화 '인터스텔라' 속 책장처럼 꾸민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소노인터내셔널 관계자는 "더 몰 리뉴얼 오픈으로 단순한 숙박 목적의 리조트를 넘어 내부에서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는 체류형 리조트로 거듭났다"고 했다.정길준 기자 kjkj@edaily.co.kr 2023.07.27 16:46
스포츠일반

[IS기고] 체육시설업 설치에 관하여

체육이란, 운동 경기나 야외 운동 등 신체 활동을 통하여 건전한 신체와 정신을 기르고 여가를 선용하는 것을 말한다(국민체육진흥법 제2조 제1호). 점점 사람들의 건강과 레저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면서, 체육을 즐길 수 있는 시설 역시 확대되고 있다. 위와 같은 체육 활동에 지속적으로 이용되는 시설과 그 부대시설을 체육시설이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가상의 운동경기 환경에서 실제 운동경기를 하는 것처럼 체험하는 시설(예를 들어 스크린 골프, 스크린 야구 등)도 포함된다(체육시설법 제2조 제1호). 이러한 체육시설을 영리를 목적으로 설치·경영하거나 이를 이용한 교습하는 사업을 하기 위하여는,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사전에 사업계획의 승인을 받은 후 등록을 하거나(등록 체육시설업), 단순 신고를 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신고 체육시설업). 등록 체육시설업에 해당하는 것은, 골프장업, 스키장업, 자동차 경주장업이 있다. 등록 체육시설업의 경우, 토지이용계획서, 토지명세서, 자금 조달방법, 운영계획서 등을 첨부한 사업계획을 승인받은 후 시·도지사에게 등록하여야 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체육시설법 제19조). 신고 체육시설업에 해당하는 것은, 요트장업, 조정장업, 카누장업, 빙상장업, 승마장업, 종합 체육시설업, 수영장업, 체육도장업, 골프 연습장업, 체력단련장업, 당구장업, 썰매장업, 무도학원업, 무도장업, 야구장업, 가상체험 체육시설업, 체육교습업, 인공암벽장업이 있다. 신고 체육시설업은 등록 체육시설업보다 절차가 간소화되어 있는데, 법에서 정한 기준에 맞는 시설을 갖추어 특별자치시장·특별자치도지사·시장·군수 또는 구청장에게 신고하여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체육시설법 제20조). 또한 골프장업, 스키장업, 요트장업, 조정장업, 카누장업, 빙상장업, 승마장업, 수영장업, 체육도장업, 골프연습장업, 체력단련장업, 체육교습업의 경우, 일정 인원 이상의 체육지도자를 배치하여야 한다(체육시설법 제23조). 이를 어길 경우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체육시설법 제40조 제3호). 한편 필라테스, 요가, 점핑, 댄스, 태보, 줌바, 에어로빅, 스피닝 등 체육시설법에서 정하지 않은 체육시설은 사실상 자유업에 해당한다. 이러한 자유업은 지방자치단체장에게 등록 또는 신고 의무가 없으며, 시설기준 없이 세무서에 사업자등록만으로도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자유업에 해당하는 체육시설의 경우, 제대로 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체육지도자의 부재로 안전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고, 이를 악용하여 운영하다가 이른바 ‘먹튀’ 사태로 회원들의 피해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어서 법률 개정 등 개선방안이 필요하다.양태정 변호사(대한체육회 고문변호사, 한국필라테스연맹 회장) 2023.07.2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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