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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정전 60주년…마사회는 6.25를 어떻게 겪었을까
올해로 한국전쟁이 정전 60주년을 맞았다. 1950년 6월25일 새벽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한 한국전쟁은 3년 1개월 간 계속되다가 1953년 7월27일 휴전 협정을 맺으며 일단락됐다. 6·25같은 전쟁이 또 한번 발발한다면 1500마리의 경주마가 생활하고 있는 서울경마공원은 어떻게 될까. 전쟁 발발과 동시에 마사회 직원들은 충무계획에 의거 비상소집, 전시 마필보호, 직장 민방위대 운영 등 일련의 조치에 들어간다. 경마는 중단되고 경주마와 관련 장비들은 군수 물자로 소집되게 된다. 마사회는 이런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비상계획팀’이라는 조직도 운영하고 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인민군은 38선 전역에서 기습남침을 감행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했지만 신설동 경마장에서는 일요경마를 평상시와 다름없이 시행했다. 불안한 조짐이 보인 것은 4경주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정체불명의 프로펠러 비행기 한 대가 경마장 상공에 나타나 전단을 살포하고 사라졌다. 전단을 주워 읽어본 사람들은 그제야 비행기가 북한군의 정찰기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북한의 대남선전 전단이었던 것이다. 확성기를 단 군용 지프가 휴가 중인 장병들의 즉시 귀대를 종용하고 시민들은 동요하지 말라고 방송을 했다. 그 후 남침한 북한 인민군은 신설동 경마장에 탱크와 차량 등 군 장비를 은닉했고, 신설동 경마장은 미 공군의 집중 폭격을 받아 크게 부서졌다. 신설동 경마장에 있던 경주마 200여두도 인민군에게 끌려가 군수물자를 수송하다가 한미 연합군의 포탄 세례를 받고 대부분 죽고 말았다. 9·15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뒤집은 연합군이 수도 서울을 수복한 후 마사회 임직원들이 신설동 경마장을 찾았을 때는 말들이 전부 사라지고 금고는 텅 비고 건물은 참혹하게 부서져 폐허로 변해 있었다. 마사회는 그 해 10월 30일 이사회를 열고 경마를 재개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10월 중순께 중공군 개입으로 전세가 악화되어 1·4 후퇴를 맞으며 경마장에 잔류했던 임직원들은 또 다시 피난길에 올랐고 경마는 긴 공백기에 접어들었다. 신설동 서울경마장은 1951년 서울 재탈환 후 4월부터 미공군의 비행장으로 징발됐고 부산경마장은 해방 직후부터 미군 부산 기지사령부가 됐으며 연지동에 신설한 부산 제2경마장도 전쟁 발발 직후 미군에게 징발됐다. 해방 후 유일하게 남아있던 대구경마장도 1950년 7월부터 미군이 주둔했고 경주목장은 건물과 토지를 UN군이 차지했다. 군산경마장은 미군의 폭발사고로 건물이 소실된 채 방치되다가 인근 주민들이 무단 개간하여 농사를 짓는 바람에 농지로 탈바꿈했다. 경마사업이 유일한 사업소득인 마사회로서는 생존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새로운 경마장의 건설만이 유일한 활로였던 한국마사회는 1953년 초부터 뚝섬경마장 건설을 다시 추진하여 그해 7월 28일 착공했다. 휴전협정이 맺어진 다음 날이었다. 마사회는 불용토지와 사택을 매각하여 공사비를 마련했으나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계속하여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렸다. 1954년 5월 8일, 뚝섬 서울경마장이 개장하며 1950년 6월 25일 전쟁으로 중단된 경마가 만 3년 11개월 만에 재개됐다. 마사회 비상계획팀 정찬권 팀장은 “마사회는 전쟁 발발 시에 말과 시설을 보호하여 종전 후에 경마를 정상적으로 복원하기 위한 ·체계적인 매뉴얼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다. 세계 역사를 보면 전쟁은 경마산업을 붕괴시키고 말과 인간 모두에게 크나큰 고통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소은 기자 luckysso@joongang.co.kr
2013.06.28 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