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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츠 비싸게 파는 토트넘, 구장 이름은 왜 안 팔릴까 [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1899년부터 2017년까지 토트넘의 홈구장은 ‘화이트 하트 레인(White Hart Lane)’이었다. 토트넘은 이 구장에서 118년 동안 2533경기를 치렀다. 2차 세계대전 때는 아스널의 홈구장이었던 하이베리가 공습예방 센터로 변모했기 때문에, 전시에 두 라이벌 클럽은 화이트 하트 레인을 공유한 적도 있다. 이외에도 1935년 잉글랜드와 나치 독일대표팀의 경기가 이곳에서 열렸을 때는, 토트넘의 전통적인 지지기반인 유대인들이 거센 항의를 하기도 했다.21세기 들어 토트넘은 더 많은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최신식 구장 건설에 박차를 가한다. 2017년 5월 토트넘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를 상대로 한 마지막 홈경기에서 2-1로 이겼다. 그 후 화이트 하트 레인은 철거됐고, 그 자리에 토트넘의 새 홈구장이 들어선다. 토트넘은 새 홈구장을 건설하기 위해 무려 12억 파운드(1조 8340억원)를 투자하며 막대한 빚을 졌다. 클럽은 새 구장의 ‘네이밍 라이트(naming rights, 경기장 명명권)’를 판매해 적자를 메울 계획이었다. 2019년 토트넘의 다니엘 레비 회장은 ‘B2B(Business-to-Business, 기업과 기업 사이의 거래가 기반인 모델) 브랜드보다는, 일반 소비자를 상대하는 평판이 좋은 브랜드와 적절한 가격에 계약하고 싶다고 밝혔다. 레비는 이러한 기준이 충족 안 되면 명명권을 판매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여기서 퀴즈를 하나 내고 싶다. EPL의 20개 팀 중 시즌 티켓이 가장 비싼 클럽은 어디일까? 토트넘이다. 2022~23시즌 토트넘의 시즌 티켓 가격은 최저 807, 최고 2025파운드를 기록해 1위에 올랐다. 2위 아스널의 티켓 가격은 927~1839파운드다. 토트넘, 아스널과 비교하면 맨체스터 시티(350~980파운드), 맨유(532~950파운드), 리버풀(685~869파운드)의 시즌 티켓 가격은 착하게 보일 정도다. 아스널과 토트넘의 비싼 티켓 가격은 2006년과 2019년에 각각 개장한 그들의 새 홈구장과도 연관이 깊다. 물론 런던의 비싼 물가도 영향을 미쳤다.다시 한번 퀴즈를 내겠다. EPL에서 가장 비싼 가격에 레플리카 셔츠를 파는 클럽은? 역시 토트넘이다. 토트넘은 EPL에서 ‘빅 6’의 한 팀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다른 5개 클럽이 이룩한 성과에 비해 토트넘의 성적은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초라하다. 토트넘의 마지막 1부 리그 우승은 1961년이다. 1부 리그 우승 횟수도 두 번에 불과하다. FA컵은 통산 8번 정상에 올랐지만, 1991년 이후로 우승한 적이 없다. 토트넘은 21세기 들어서도 트로피를 단 한 번 들어 올렸을 뿐이다. 토트넘은 새 구장의 명명권 판매로 연간 2500만 파운드(405억원)가 넘는 금액을 원한다. 계약 기간도 10년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까지 ‘구글’, ‘아마존’, ‘나이키’, ‘애플, ‘HSBC’, ‘페덱스(FedEx)’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토트넘과 협상을 벌였으나, 모두 결렬됐다. 구장을 개장한 지 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명명권 계약에는 진전이 없다. 명명권을 팔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값어치는 하락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러한 시간이 지속될수록 새 구장의 이름은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으로 고착될 것이고, 이렇게 되면 명명권 판매는 더욱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명명권 계약이 성사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토트넘과 시장이 생각하는 가격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토트넘은 런던에 위치한 이점과 최신식 구장임을 내세워 역대급 계약을 노리고 있다. 하지만 구매자인 기업 입장에서는 토트넘이라는 브랜드가 고가의 계약을 체결할 정도로 매력적이지 않다. 다시 말해 맨유나 리버풀 같은 브랜드가 창출하는 가치를 토트넘은 제공하지 못한다.클럽은 브랜딩을 통해 자신만의 정체성을 만들어 경쟁자들 사이에서 돋보여야 한다. 강력한 브랜드를 구축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팬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팬은 클럽의 중심이기에, 그들이 팀에서 무엇을 보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토트넘 팬들은 ‘실버웨어(silverware, 영국 영어 속어로 트로피를 의미)’를 갈망한다. 하지만 팬들은 우승에 대한 야망이 크지 않은 클럽의 현 경영진을 보며 절망하고 있다. 토트넘은 최신식 구장과 최고의 트레이닝 시설을 갖고 있다. 게다가 팬들은 EPL에서 가장 비싼 티켓 가격을 지불하고 있으며, 최고가로 매겨진 셔츠를 산다. 그러나 이렇게 모든 것이 최고이고 제일 비싼 데도 불구하고, 거기에 상응하는 축구를 볼 수 없다는 사실에 팬들은 좌절한다. 이들을 더욱 짜증 나게 만드는 것은 클럽이 마지막 우승을 차지한 2008년 이후 총 61명(선수 57명, 감독 4명)이 토트넘을 떠난 이후 우승했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획득한 트로피 숫자만 무려 189개다.토트넘의 레비 회장은 축구보다 비즈니스를 우선시한다. UEFA(유럽축구연맹)이 2024년 2월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토트넘은 경기당 560만 유로(82억원)을 벌어, EPL에서 1위를 차지했다. 유럽축구리그 전체를 통틀어도 바르셀로나(760만 유로), PSG(660만 유로)에 이어 토트넘은 3위에 올랐다. 4위부터 8위까지는 바이에른 뮌헨(520만 유로), 아스널(490만 유로), 레알 마드리드(480만 유로), 맨유(380만 유로), 리버풀(370만 유로)이 차지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된 클럽들보다 토트넘이 성공했다고 평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판매나 시장 점유율이 올라간 것으로 성공 여부를 평가하는 대부분의 산업과는 달리, 축구 클럽의 성공 여부는 성적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부진한 성적을 거둔 클럽의 브랜드 가치는 하락한다. 또한 성적이 뒷받침되지 않는 클럽이 펼치는 부수적인 마케팅은 성공하기 힘들다. 따라서 토트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들의 ‘중요 제품(core product)’인 축구에서 성적을 내는 것이다.경희대 테크노경영대학원 객원교수 2024.03.2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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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축구대표팀 유니폼은 왜 국기 색상과 다를까 [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축구 국가대표팀의 유니폼 색상은 주로 자국의 국기로부터 따 온다. 물론 예외도 있다. 전통적인 축구 강국 중에는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가 대표적이다. 신흥 강국 중에는 일본과 호주가 있다. 최근의 독일대표팀은 2018, 2022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에 연달아 실패하며 부진에 빠졌지만, 전통적으로 이들은 꾸준함의 대명사였다. 독일은 월드컵에 19번 출전해 8강 이상을 16번 기록했고, 결승전 최다 진출국(우승 4번, 준우승 4번)이다. 뛰어난 축구 실력과 더불어 독일대표팀은 아름다운 셔츠를 종종 선보이며, 글로벌 축구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독일대표팀의 홈 셔츠는 흰색이다. 국기 색상인 검정, 빨강, 금색(노랑색이 아님)과 연관이 없다. 예전에 이에 관한 주제를 다룬 적이 있지만, 필자의 글을 처음 접하는 분들을 위해 간략히 소개한다.키트 색상의 역사는 11세기 말에 시작한 십자군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성지 예루살렘을 무슬림으로부터 되찾기 위해 많은 가톨릭 수도회가 생겼다. 수도회에 속한 이들은 수도자이자 기사였다. 이 중 대표적인 기사단이 구호기사단, 성전기사단, 튜튼기사단(독일기사단)이다. 튜튼기사단은 예루살렘이 위치한 레반트 지역과 발트해의 기독교인을 보호했다. 튜튼기사단은 13세기 초반 발트해 남동쪽에 독일 기사단국을 세웠다. 16세기 초반 기사단국은 세속 국가로 전환하며 프로이센 공국이 되었다. 1701년 왕국으로 승격한 프로이센은 1871년 분열된 독일 민족을 통일하며 독일 제국을 출범시켰다.독일 축구대표팀 키트의 색상은 1926년 이후부터 흰색 셔츠, 검은색 바지에 흰색 양말이 되었다. 블랙과 화이트로 구성된 프로이센 국기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이다. 또한 프로이센의 국기는 튜튼기사단의 상징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독일팀의 홈 키트 색상은 십자군 전쟁에서 유래했다.195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TV에서 축구가 중계되었다. 경기장의 관중들은 한 팀이 파란색 다른 팀이 빨간색 혹은 검은색 셔츠를 입어도, 두 팀을 구분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흑백 TV를 통해 경기를 보는 시청자들에게는 혼란을 일으켰다. ‘두 번째 색상(second color)’을 가진 어웨이 셔츠가 본격적으로 나오게 된 계기다.1954 스위스 월드컵에 참가한 서독대표팀의 어웨이 셔츠는 녹색이었다. 이후 2000년까지 녹색이 짙어지거나 다른 색상과 혼합될 때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녹색은 이들의 어웨이 셔츠 칼라였다. 축구 팬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독일대표팀은 자신들과 별 상관없이 보이는 녹색을 생뚱맞게 택했기 때문이다. 이에 그럴듯한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2차대전 후 전범국이 된 서독과 축구를 하고 싶은 유럽 국가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때 아일랜드가 곤경에 빠진 서독에 손을 내밀어 경기를 갖게 된다. 이후 서독축구협회는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아일랜드의 상징 색상인 녹색으로 어웨이 셔츠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낭만적인 스토리는 오랫동안 사실처럼 축구팬들 사이에 떠돌았다. 심지어 현재 구글에서 검색을 해도 이렇게 설명이 된 경우가 꽤 있다. 하지만 현실은 주로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팩트를 얘기하면, 아일랜드는 서독과 축구를 처음 한 국가가 아니다. 전쟁 후 서독과 맞대결한 첫 번째 나라는 스위스였다. 1950년 11월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서독과 스위스의 친선 경기에는 무려 10만 2000여 명의 관중이 모일 정도로 큰 관심을 끌었다. 1942년 11월 슬로바키아전을 마지막으로 8년 만에 열리는 국가대표팀 경기였기 때문이다. 결과는 서독의 1-0 승리. 서독팀은 1951년 4월 스위스와 리턴 매치를 했고, 6월 베를린에서 터키와 경기를 가졌다. 9만여 명의 관중이 모인 터키와의 경기 때 서독은 처음으로 녹색 셔츠를 착용했는데, 1-2로 패했다. 이후 서독은 오스트리아와 경기를 했고, 같은 해 10월 더블린에서 마침내 아일랜드와 대결해 2-3으로 졌다.그렇다면 녹색의 기원은 도대체 어디일까? 나치 시절의 독일축구협회(DFB)는 이니셜 D, F, B를 검은색, 흰색, 빨간색으로 표시했다. 흑-백-적은 독일 제국의 국기색으로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의 상징이었고, 1933년 히틀러의 나치당이 바이마르 공화국을 해체하며 부활시킨 색상이다. 종전 후 1949년 DFB가 재조직되면서 새 로고가 만들어졌다. 축구장의 피치를 상징하는 녹색이 협회의 시그니처 칼러가 되었고, 그린 색상의 어웨이 셔츠는 이렇게 탄생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독일 국기의 색상인 검-적-금이 DFB의 로고에 추가되면서, 어웨이 셔츠도 녹색 일변도에서 변하기 시작했다. 독일팀은 2002 월드컵에는 ‘두 가지 색으로 된 회색(two-tone grey)’, 2004 유로에는 검은색 어웨이 셔츠를 선보였다. 2006년 자국에서 개최한 월드컵 때는 당시 감독이었던 위르겐 클린스만의 강력한 제안으로 빨간색을 어웨이 색상으로 정했다. 많은 팬들이 익숙한 녹색으로 돌아오길 바랐지만, 클린스만은 “적색 셔츠가 팀에게 심리적 우위를 주고, 행운을 가져오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클린스만의 기대와는 달리 월드컵을 앞두고 열린 평가전에서 적색 셔츠를 입은 독일팀은 1승 3패로 저조했다. 그나마 거둔 1승의 상대도 약체인 남아공이었다. 클린스만은 “월드컵 본선에서 가능한 자주 적색 셔츠를 입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독일대표팀은 2006 대회 때 치른 모든 경기에서 흰색 셔츠를 입었다. 참고로 독일이 월드컵과 유로에서 각각 4번, 3번 우승했을 때 그들은 언제나 흰색 홈 셔츠를 착용했다.경희대 테크노경영대학원 객원교수 2024.03.0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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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재의 다음 감독은 ‘UCL 3연패’ 명장? “아우라와 경험 갖춰”

토마스 투헬 바이에른 뮌헨 감독이 연일 경질설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가운데, 현지에선 후임 감독으로 지네딘 지단 전 감독을 언급해 눈길을 끈다. 스카이스포츠 독일판은 20일(한국시간) 투헬의 자리를 대신할 후임 감독 3명을 언급했다. 매체는 “뮌헨이 다가오는 여름 투헬과의 결별을 확정할 경우, 리버풀(잉글랜드)의 타깃인 사비 알론소 레버쿠젠 감독이 유력한 후임으로 거론되고 있다. 지단, 올레 군나르 솔샤르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투헬 감독은 지난 2022~23시즌 막바지 율리안 나겔스만 현 독일대표팀 감독을 대신해 뮌헨 지휘봉을 잡았다. 그는 직전 첼시에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우승을 거뒀으나, 보드진과의 마찰로 팀을 떠났다. 선수단 관리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도 있었지만, 탁월한 전술가라는 시선도 공존한 터라 기대감은 컸다.투헬 감독은 지난 시즌 뮌헨 부임 후 공식전 12경기 6승 2무 4패에 그쳤다. 특히 독일축구협회(DFB) 포칼, UCL 등 컵대회에서 모두 탈락하는 쓴맛을 봤다. 리그에서도 최종 라운드 간신히 우승을 거머쥐며 체면치레했다.2023~24시즌을 앞둔 뮌헨은 해리 케인을 비롯해 김민재, 콘라드 라이머, 라파엘 게레이로 등 전 포지션을 보강했다. 겨울 이적시장에서도 에릭 다이어, 사샤 보이 등을 품으며 투헬 감독에게 적극적인 지원을 했다.하지만 올 시즌 투헬 감독의 성적은 기대 이하다. 뮌헨은 지난 19일 독일 보훔의 보누비아 루스타디온에서 열린 VfL 보훔과의 2023~24 분데스리가 22라운드에서 2-3으로 지며 최근 공식전 3연패에 빠졌다. 리그 1위 레버쿠젠(승점 58)과의 격차는 어느덧 승점 8에 달한다. UCL 16강 1차전에서도 라치오(이탈리아)에 0-1로 져 먹구름이 꼈다.뮌헨이 3연패를 기록한 건 지난 2015년 이후 9년 만이다. 독일 매체 N-TV에 따르면, 투헬은 위르겐 클린스만 전 한국 대표팀 감독 시절 이후 최악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매체가 주목한 부분은 바로 경기 당 승점 부문. 매체는 “투헬 감독은 통계적으로 지난 15년 중 최악의 감독이다.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 2008~09시즌 경기당 1.95점에 그쳤다. 루이스 판 할 전 감독은 2.03점이었다”라고 전했다. 투헬 감독은 올 시즌 경기당 2.02점을 올리는 데 그쳤다. 현지에서 투헬 감독의 경질을 요구하는 이유다.다만 뮌헨은 시즌 중 경질 대신, 종료 뒤에 판단을 내릴 전망이다. 매체는 “뮌헨은 투헬 감독과 시즌을 끝까지 완주하고, 상황을 정직하게 평가하는 것이 주요 계획”이라면서도 “내부적으로 알론소가 후임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으며, 논의가 진행 중이다”라고 짚었다. 뒤이어 언급된 것이 ‘UCL 3연패’ 지단 감독이다. 매체는 “구체적으로 결정된 건 없지만, 뮌헨이 지단 감독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그의 아우라와 경험 때문이다. 즉시 부임할 수도 있다는 장점도 있다”라고 주장했다.지단 감독은 지난 2015~16시즌 레알의 사령탑으로 부임, 당해 UCL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화려한 출발을 끊었다. 이어 2016~17, 2017~18시즌 유럽 왕좌를 차지하며 UCL 3연패 위업을 썼다. 다만 2020~21시즌 리그 준우승을 이끈 뒤 팀을 떠났고, 지금까지 ‘무직’ 상태다.투헬 감독은 뮌헨과 2025년 6월까지 계약돼 있다. 성적에 따라 충분히 이른 결별을 택할 가능성도 상당하다.김우중 기자 2024.02.20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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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 아웃’ 바르샤의 화려한 차기 감독 후보군…플릭·모리뉴·엔리케·클롭·펩

FC바르셀로나(스페인)가 올 시즌을 끝으로 사비 에르난데스 감독과 결별하게 되면서, 일찌감치 차기 사령탑에 대한 루머가 쏟아지고 있다. 이에 한 매체는 바르셀로나의 차기 사령탑 후보군을 추렸는데, 유럽에서 정평 난 감독들이 언급돼 시선을 끌었다.유럽 축구 통계 매체 트랜스퍼마르크트는 지난 29일(한국시간) 소셜 미디어(SNS)를 통해 바르셀로나의 다가오는 여름 사령탑 후보군을 공개했다. 매체가 소개한 후보군은 한지 플릭 전 독일대표팀 감독·조세 모리뉴 전 AS로마 감독·루이스 엔리케 파리 생제르맹 감독·위르겐 클롭 리버풀 감독·펩 과르디올라 맨체스터 시티 감독이다. 모두 유럽에서 손꼽히는 명장이자, 리그 우승은 물론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우승까지 거머쥔 사령탑들이다. 이들이 커리어 동안 기록한 경기당 승점 역시 매우 높은 편이다. 이들 중 소속팀이 없는 건 플릭과 모리뉴 감독뿐이다.매체가 이같이 후보군을 소개한 이유는 사비 감독의 향후 거취 탓이다. 바르셀로나는 지난 28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사비 감독이 오는 6월 30일 구단을 떠난다고 발표했다”라고 전했다. 사비 감독 역시 같은 날 열린 비야레알과의 홈 경기에서 3-5로 역전패한 뒤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사임 사실을 전했다. 당시 사비 감독은 “며칠 전부터 고민했지만, 오늘이 발표할 순간이었다”라고 설명하며 즉흥적인 결정은 아님을 분명히 했다. 이어 “문제가 되고 싶지 않다. 2년 전과 마찬가지로, 바르셀로나의 해결책이 되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남은 4개월 동안 모든 것을 바칠 것이다. 리그 우승을 위해서 말이다. 여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끝으로 팀이 우승하더라도, 이 결정을 번복하지 않을 것이라 덧붙였다. 이미 클롭 감독 역시 이번 시즌을 끝으로 리버풀을 떠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사령탑의 연쇄 이동이 점쳐지는 배경이다. 공교롭게도 명단 중 엔리케 감독과 과르디올라 감독은 바르셀로나를 이끈 경험이 있다. 선수 시절을 거쳐 감독 자리에 오르며 유로피언 트레블을 이뤄낸 명장이기도 하다. 두 감독 모두 현 소속팀과 2025년까지 계약돼 있는 만큼, 위약금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다만 현지에선 감독 선임 과정이 빠르게 결정 나지 않을 것이라 내다봤다. 특히 유럽 축구 이적시장에 정통한 파브리치오 로마노 기자는 최근 축구 매체 888sports를 통해 “현재 시점에서 바르셀로나는 그 어떤 인물과도 가까운 상태가 아니다. 새 감독 선임을 위해, 바르셀로나는 많은 시간을 투자할 것”이라고 내다봤다.김우중 기자 2024.01.30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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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 2024 조 편성 완료…FIFA 랭킹 8~10위가 한 조

스페인·크로아티아·이탈리아로 이어지는 ‘죽음의 조’가 탄생했다. 다가오는 2024 유럽축구연맹(UEFA)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24) 본선에서다.UEFA는 3일(한국시간) 독일 함부르크에서 유로 2024 본선 조 추첨을 진행했다. 이날 예선 21개국과 플레이오프(PO) 3개국을 포함한 6개 조가 편성됐다. 눈길을 끈 건 단연 ‘죽음의 조’다. B조에는 스페인·크로아티아·이탈리아·알바니아로 이어지는 살벌한 편성이 완성됐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기준, 세 나라는 8~10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이 대회 ‘디펜딩 챔피언’이고, 스페인은 3회 우승을 기록한 강국이다. 크로이티아는 최근 FIFA 월드컵에서 2차례 연속 4강 이상을 기록한 바 있다. 한편 개최국인 독일은 스코틀랜드·헝가리·스위스로 이어지는 무난한 편성을 받았다. 율리안 나겔스만 독일대표팀 감독은 독일축구협회(DFB)를 통해 “아주 좋은 편성”이라며 “상대를 잘 알고 있으며, 스코틀랜드와의 개막전을 잘 치르기 위해 노력했다”라고 반겼다.이어 C조는 슬로베니아·덴마크·세르비아·잉글랜드로 치열한 2위권 다툼이 전망된다. D조 역시 네덜란드·오스트리아·프랑스로 이어지는 만만치 않은 대진이다. PO A 자리에는 웨일스·핀란드·폴란드·에스토니아 중 1개국이 편성된다.벨기에는 슬로바키아·루마니아와 함께 E조로 묶였다. PO B 자리에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우크라이나·이스라엘·아이슬란드 중 한 팀이 올라온다.끝으로 F조에는 튀르키예·PO C·포르투갈·체코로 편성됐다. PO C에는 조지아·룩셈부르크·그리스·카자흐스탄 중 1개국이 올라온다.각 조 1, 2위가 16강에 오르며, 조 3위 팀 중 성적이 좋은 4개 팀이 토너먼트를 향한다. 유로 2024 개막전은 현지 시간 기준 내년 6월 14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다. 개막전은 독일과 스코틀랜드의 A조 1차전이다.김우중 기자 2023.12.03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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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독일대표팀 유니폼이 십자군 복장에서 유래했다고?

각국의 축구대표팀은 다양한 색상이 들어간 셔츠를 입는다. 이들이 착용하는 셔츠 색깔은 주로 대표하는 나라의 국기에서 따 온다. 물론 예외인 경우도 있다. 전통적인 축구 강국 중에서는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가 여기에 속한다. 일본도 그들의 국기에 없는 파란색이 홈 셔츠에 단골로 들어간다. 축구팬이라면 3가지 색이 가로선으로 이루어진 독일 국기에 익숙할 것이다. 잠깐,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보통 외국인들은 독일 국기의 검정, 빨강 밑에 있는 색깔이 노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노랑처럼 보이는 이 색은 사실 금색이다. 독일에서는 금색이 아니라 노랑이라고 표기할 경우 명예훼손으로 기소되어 형사처벌 받을 수도 있다. 흑-적-금인 삼색기는 1848년 3월 혁명 때 처음 등장했고, 1919년 출범한 바이마르 공화국의 국기이기도 했다. 자유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이 삼색기는 2차 대전 이후 독일 국기로 재지정되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독일축구대표팀의 셔츠는 자국의 국기 색상과는 다르게 흰색이다. 무슨 연유로 이들은 흰색에 검은색이 보조로 들어가는 셔츠를 입게 됐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천 년 전 역사로 돌아가야 한다. 11세기 말에서 13세기 말까지 200여 년 동안 서유럽의 기독교인들은 성지 예루살렘을 이슬람교도로부터 탈환하기 위해 8번에 걸쳐 원정을 갔다. 이 전쟁에 참여한 기사들은 갑옷과 방패에 십자가 표시를 했기 때문에 십자군이라고 불렸다. 십자군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많은 가톨릭 수도회가 생겨났다. 이들은 수도자이자 군사적 의무를 맡은 기사였다. 대표적인 기사단으로는 성전 기사단(템플 기사단), 성요한 기사단(구호 기사단, 몰타 기사단)과 튜튼 기사단(독일 기사단)을 꼽을 수 있다. 1099년 1차 십자군 원정을 통해 기사단은 레반트 지역에서 무슬림을 격퇴하고 그리스도교 국가인 예루살렘 왕국을 세운다. 성모 마리아를 위한 독일 형제수도회는 1190년 왕국의 수도인 아크레에서 성지 순례를 하는 기독교인을 돕고 병원을 설립하기 위해 결성되었다. 이 조직원들이 바로 튜튼 기사단이다. 이들은 성지인 레반트 남쪽 지역과 발트해의 기독교인을 보호하기 위해 십자군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튜튼 기사단은 검은색 십자가가 그려진 흰색 옷과 가운을 입었고, 이러한 디자인과 색상이 그들의 상징으로 자리잡는다. 예루살렘 왕국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국가를 세우기로 결심한 튜튼 기사단은 1230년 발트해 남동쪽 지역에 독일 기사단국을 세운다. 튜튼 기사단의 37대 기사단장인 알브레히트는 가톨릭에 회의를 느껴 신교인 루터교로 개종했고, 기사단국을 세속 국가로 전환시킨다. 이로서 알브레히트를 초대 공작으로 한 프로이센 공국이 1525년 세워졌다. 프로이센 공국과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은 1618년 연합했고, 1701년 프로이센 왕국을 형성한다. 프로이센(Preußen)의 영어 표기가 프러시아(Prussia)다. 프러시아는 러시아와 국명이 비슷하지만, 실제로 관련은 없다. 1806년 나폴레옹에 의해 신성로마제국이 해체된다. 분열된 독일 민족을 두고 프로이센 왕국과 오스트리아 제국은 서로의 주도하에 독일을 통일하고자 했다. 재상 비스마르크가 이끄는 프로이센 왕국은 오스트리아, 프랑스와 차례로 전쟁을 벌였고, 결국 1871년 통일을 이룩하며 독일 제국이 출범했다. 독일 제국의 국기는 검은색-흰색-빨간색으로 이루어진 삼색기였다. 현 독일 국기인 흑-적-금인 삼색기가 자유와 민주주의를 상징한다면, 흑-백-적 국기는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의 상징이다. 1933년 바이마르 공화국을 해체한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당은 흑-백-적 국기를 부활시킨다. 1935년부터는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를 국기로 지정하는데, 이 깃발에도 흑-백-적 색상이 들어있다. 독일축구협회는 1900년 설립됐고, 대표팀은 1908년 스위스와 첫 번째 공식 경기를 가졌다. 당시 대표팀이 입었던 셔츠는 독일 제국의 중심적 역할을 한 프로이센 왕국의 깃발을 본떠 셔츠 소매는 흰색이고 몸통은 검은색이었다. 셔츠 가슴에는 흰색을 바탕으로 한 검은색 독수리도 들어갔다. 1926년 이후 독일대표팀 유니폼의 전형적인 색상은 흰색 셔츠, 검은색 바지에 흰색 양말로 자리 잡는다. 이 배색 조합 역시 프로이센 국기에서 영감을 받았다. 또한 프로이센 국기는 튜튼 기사단의 상징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따라서 독일축구대표팀의 유니폼 색상은 12세기 십자군 전쟁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3.04.12 08:00
국가대표

클린스만 선임 이유, "동기부여와 인간적 면모...코치진 구성은 아직" [일문일답]

위르겐 클린스만 전 독일대표팀 감독이 한국 축구대표팀 새 사령탑으로 부임한다.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27일 클린스만 감독이 대표팀의 새 감독이 된다고 발표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다음달 열리는 평가전에서 처음 지휘봉을 잡게 되며, 계약 기간은 2026년 북중미 월드컵까지 3년 5개월이다. 미하엘 뮐러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장은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클린스만 감독 선임에 대한 궁금증에 대해 답했다. 뮐러 위원장에 따르면,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1월 총 61명의 새 감독 후보군을 추린 후 이를 다시 23명으로 좁히고, 1월 26일에는 최종 5명의 후보를 골라냈다. 5명에 대해서는 2월 초까지 화상 면담을 통해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이후 최종 후보는 두 명으로 좁혀졌다. 둘 중 우선협상 대상자였던 클린스만 감독과 협상이 성사됐고, 전력강화위원들의 동의를 얻어 27일 최종 발표가 있었다. 다음은 뮐러 위원장의 기자회견 일문일답. -감독 선임 과정에서 전력강화위원들과 소통이 잘 안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제(27일) 위원회 관련해서 광화문에서 2차 회의를 했다.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회의장소에서 모두 긍정적인 반응이었고 충분히 내용을 공유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어제 회의에서는 지난 과정에 대해 공유했고, 마지막으로 위원회 구성원 모두가 동의했다.” -전력강화위원들과는 새 감독이 오기까지 전체 과정을 함께 논의한 게 아니라던데. 그렇다면 선임 과정은 누구와 논의한 것인지. “물론 감독 선임이 나 혼자만의 결정은 아니다. 첫 회의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절차와 기준, 어떻게 새 감독을 선임하기 위한 전체 아이디어 공유했고, 동의한 상황에서 시작했다. 앞서 밝혔듯 전문성, 경험, 동기부여, 팀워크, 환경적 요인 등 5가지 기준을 먼저 세웠다. 감독 선임은 백지 상태에서 시작했다. 전력강화위원들과 논의한 과정이 분명히 있었다.”-클린스만 감독으로 결정되기까지 일련의 과정이 궁금하다. “내가 알기로는 2018년에도 클린스만 감독은 한국 대표팀 감독 후보군에 있었다. 클린스만 감독은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경험도 많았다. 그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독일의 해설자로 한국에 왔다. 2017년 한국이 20세 이하 월드컵을 개최했을 때는 클린스만의 아들이 독일 대표로 뛰어서 그때도 아들을 보기 위해 한국에 왔다. 2004년 독일대표팀이 한국과 평가전을 할 때도 방한했고, 당시 독일이 한국에 졌는데 한국 축구에 대한 생각이 크게 바뀌었다고 한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때는 독일 대표선수로 한국과 조별리그 경기를 치렀다. 당시 클린스만은 한국 축구의 투지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2022 카타르 월드컵 때는 TSG(기술연구그룹)에 포함됐다. 차두리 역시 TSG 일원이었다. 클린스만 감독 선임에 차두리 코치의 역할이 있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내가 알기로는 둘은 축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고, 클린스만 감독이 차두리에게 한국에 대한 관심을 표시한 정도가 전부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클린스만 감독이 적임자라 판단했나? “인터뷰를 통해 감독 후보들에 대해 어떻게 팀워크를 만들고 대표팀을 이끌 수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다. 그 과정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 대표팀 스태프 간의 소통이나 협회 정책을 도우려는 마음이 있는지도 확인했다. 한국에 상주할 수 있는지도 체크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너무나 긍정적인 대답을 했고, 스스로 동기부여가 되어 있어 적임자라고 생각했다.”-앞서 밝힌 대표팀 감독의 5가지 기준에서 클린스만 감독은 어떤 면이 뛰어났나. “5가지 기준은 당연히 중요한 기준이다. 그런데 검토 전에 인간적인 부분을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사람은 다양한 경험을 하기 때문에 이런 부분 중점적으로 봐야 한다 생각한다. 사람 대 사람으로 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클린스만 감독은 매력적인 부분이 많았고, 가장 중요한 건 그가 한국 대표팀 감독을 강하게 원하고 있었다는 부분이다. 축구 코치로서, 그리고 관리자 역할까지 상당한 동기부여가 있었다. 큰 그림을 갖고 전체 상황을 콘트롤할 수 있는 능력, 코칭스태프와 협업하는 과정을 모두 봤다.”-5명까지 후보를 줄일 때 그 중 한국인 지도자도 있었나.“5명 후보군에는 한국인 코치가 없었다. 처음 추린 61명 중에는 있었다.”-클린스만 감독은 지도자 공백기가 3년 정도 있다. 과거 감독 시절에 전술에 대해 지적받은 적도 있다. 이 부분은 어떻게 검증했나. “축구는 전술이 전부가 아니다. 선수 개개인 개성 살려야 되는 부분 있고, 어떻게 스타 플레이어 살려야 하나 하는 부분이 중요하다. 여러 요소 살려서 팀워크 이뤄야 한다. 경기장 안에서 보여주는 선수들의 다이내믹한 부분과 정신력에 대한 부분도 상당히 중요하다. 일련의 요소들이 하모니 이뤘을 때 팀으로서 퍼포먼스가 발휘된다. 클린스만은 국제축구연맹(FIFA)의 TSG로 월드컵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전술적 부분 외에도 현대적인 다양한 기술적 부분과 접목된 데이터 활용하는 부분에서 유능하다. 축구는 크게 봤을 때 네 가지 국면 이야기할 수 있는데, 국면마다 선수가 마주했을 때 선수가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도 중요하다. 단순한 전술적인 부분 외에도 클린스만이 갖고 있는 개성과 스타 플레이어를 살리고 개성 살리고 동기부여가 되는 부분을 봤다. 이게 리더라 생각했기 때문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클린스만 감독과 함께 할 코치진은 어떻게 구성하나. “수석코치가 누구인지, 한국인 코치가 포함될지 등은 지금 구상 중이고 확인 중이다. 감독과 이야기하면서 결정할 부분이라 지금 말하긴 어렵다. 전체적인 스태프 구성과 관련해서는 목요일에 클린스만 감독과 더 논의할 예정이다. 전체적인 프로세스가 아직 완료된 것 아니기 때문에 디테일 말하긴 어렵고,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공유하겠다.” -클린스만 감독이 한국 축구의 어떤 부분을 발전시킬 거라는 기대가 구체적으로 있다면.“좀 더 득점 찬스를 많이 만들고 득점 많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단순하게 기억하자면, 카타르 월드컵 포르투갈전을 떠올려 보자. 한국은 카운터 어택으로 득점했다. 쉽고 단순하고 빠른 속도로 득점할 수 있는 부분을 기대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또 다른 부분은 공 뺏겨 수비로 전환할 때 즉각적인 압박을 하고 콤팩트한 수비로 내려설 지를 기대할 수 있다. 추후 감독 인터뷰 때 더 세부적인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이다.”이은경 기자 2023.02.28 16:10
프로축구

차두리, 벵거가 이끄는 TSG 멤버 발탁...카타르 월드컵 분석 전문가 됐다

차두리 FC서울 강화실장이 국제축구연맹(FIFA) 기술 연구 그룹(TSG)의 일원이 되어 2022 카타르 월드컵에 참여한다. FIFA는 19일(현지시간) 카타르 월드컵의 TSG 멤버를 발표했다. 차두리를 비롯해 위르겐 클린스만 전 독일대표팀 감독, 알베르토 자케로니(이탈리아), 선데이 올리세(나이지리아), 파이드 몬드라곤(콜롬비아), 파스칼 주베르뷜러(스위스) 등 모두 6명이다. TSG를 이끄는 주인공은 아르센 벵커 FIFA 글로벌 발전 책임자다. 벵거 감독과 함께 TSG는 월드컵의 전 경기를 분석하고 보고서를 만들어 대회 최우수선수와 개인 수상자를 선정한다. 경기마다 분석리포트를 해당팀에 제공하는 역할도 한다. 도하(카타르)=이은경 기자 2022.11.20 20:17
해외축구

"훌륭한 선수" GK 노이어가 경계한 日 대표팀의 '키맨'

립서비스일까, 진짜 경계일까. 독일 축구대표팀의 마누엘 노이어(36·바이에른 뮌헨)가 꼽은 일본의 경계 대상 1호는 미드필더 가마다 다이치(26·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였다. 일본 닛칸스포츠를 비롯한 현지 언론에 따르면 카타르 월드컵에 출전하는 독일대표팀은 20일(한국시간) 15분 정도 연습을 공개했다. 훈련을 마친 뒤 열린 기자회견에는 골키퍼 노이어가 참석해 질문을 받았다. 노이어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뛰는 가마다는 훌륭한 선수"라며 "일본에 중요한 선수고 우리에겐 위험한 선수가 될 수 있다. 가마다는 공간을 잘 파고들고 기술적으로 뛰어나다"고 경계했다. 노이어와 가마다는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함께 뛰어 서로를 잘 안다. 카마다는 일본 축구대표팀의 키플레이어다. 올 시즌 분데스리가에서 13경기 출전해 7득점, 4도움을 기록했다. 공격 흐름을 조율하면서 한 방을 때릴 수 있는 능력까지 갖췄다. 일본은 이번 대회에서 8강 이상의 성적을 기대한다. 미나미노 타쿠미(AS 모나코) 도안 리츠(SC 프라이부르크) 쿠보 다케후사(레알 소시에다드)를 비롯해 '역대급 황금 세대'를 구축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유럽 최강' 독일·스페인은 물론이고 북중미 복병 코스타리카와 E조에 이름을 올려 조별리그 통과가 쉽지 않다. 일본은 오는 23일 오후 10시 독일과 조별리그 첫 경기를 치른다. 노이어는 "일본과의 첫 경기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배중현 기자 bjh1025@edaily.co.kr 2022.11.20 16:48
해외축구

[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전차군단' 독일대표팀은 왜 국가 부르는데 소극적인가?

유로(유럽축구선수권대회)나 월드컵 같은 국제대회를 통해 축구 팬들은 외국 국가를 들을 기회가 꽤 많다. 잉글랜드의 '하느님, 국왕을 지켜주소서(God Save the King/Queen)’, 프랑스의 ‘라 마르세예즈’ 이탈리아의 ‘마멜리 찬가’는 국내 축구 팬에게도 익숙한 노래다. 여기에 하나 더. 독일 국가인 ‘독일의 노래(Song of Germany, Deutschlandlied)’도 빼놓을 수 없다. 축구에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도 독일 국가의 멜로디는 상당히 익숙하게 들릴 수 있다.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오스트리아 작곡가 요제프 하이든의 현악 4중주 ‘황제 찬가’에 가사를 붙였기 때문이다. 찬송가 ‘시온성과 같은 교회’와 멜로디가 같기 때문에, 교회에서 들어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시온성과 같은 교회는 ‘어메이징 그레이스’의 작사가로 유명한 존 뉴턴이 하이든의 곡에 가사를 붙여 만들었다.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는 부를 만한 찬송가가 부족했다고 한다. 이에 널리 알려진 곡조나 민요 가락에 노랫말을 바꿔 붙여 찬송가를 만들었다. 이를 콘트라팍툼(contrafactum) 찬송가라 칭했고, 현행 찬송가의 모체가 된다. 하이든의 곡에 황제를 칭송하는 가사가 붙여져 ‘신이여 프란츠 황제를 보우하소서'라는 이름으로 신성 로마 제국과 오스트리아 황실의 국가였던 이 노래는 19세기 중반에 새 가사가 붙여진다. 시인 팔러슬레벤이 같은 멜로디에 황제 대신 독일을 찬양하는 가사를 붙여 ‘독일의 노래’를 만든 것이다. 1차 세계대전 패배 후 독일에서 등장한 바이마르 공화국은 1922년 독일의 노래를 국가로 지정했다. 하지만 1933년 등장한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정부는 독일의 노래 1절을 제창한 후 나치당의 노래였던 ‘호르스트베셀의 노래(Horst-Wessel-Lied)’를 이어 부르게 했다. 기존 독일 국가에 나치 당가가 합쳐진 혼합 국가가 탄생한 것이다. 2차 대전 패망 후 연합군 군정 기간에는 ‘나는 헌신했도다’가 독일에서 임시 국가로 쓰였다. 이 곡은 어여쁜 장미라는 이름으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독일 민요이자 찬송가이기도 하다. 1949년 출범한 서독 정부는 예전에 사용했던 독일의 노래를 계속 국가로 사용하고 싶었다. 하지만 1, 2절의 가사 때문에 골머리를 앓게 된다.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 패배로 영토를 많이 잃은 독일은 1절 가사에 나오는 지명 상당수가 더 이상 자신의 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1절은 나치 독일을 연상시켜 터부시되는 분위기였다. 2절은 1절만큼 심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남성 중심의 가사와 술을 권하는 구절 등으로 인해 국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았다. 결국 서독 정부는 1952년부터 3절만 공식 국가로 인정했다. 한편 동독은 ‘폐허에서 부활하여’란 이름으로 알려진 새 국가를 채택한다. 동독은 그들의 마지막 올림픽이었던 1988 서울올림픽에서 메달 순위 2위를 기록했고, 당시 서울에서는 동독 국가가 여러 번 울려 퍼졌다. 1990년 마침내 독일은 통일했다. 논의 끝에 통일 독일의 국가는 서독의 국가였던 독일의 노래로 결정된다. 독일의 노래는 19세기부터 널리 불린 역사적인 노래였기 때문에, 동독 지역 주민들도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가 월드컵 같은 국제행사에서 듣는 독일 국가는 ‘독일의 노래 3절’이다. 하지만 네오나치 같은 극우 단체들은 집회에서 1절을 제창할 때도 있다. 독일대표팀은 그들의 국가가 연주될 때 어떤 모습을 보일까? 전통적으로 독일팀은 국가 제창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다. 입을 다물고 있는 선수도 있고, 국가를 제창해도 나지막이 부르는 정도다. 이유가 있다.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인 독일은 1950 브라질 월드컵에 출전금지 됐다. 동서로 분열된 가운데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 서독이 우승했지만, 그들은 기쁨을 맘껏 누릴 수 없었다. 전범국이라는 과거 때문에 서독에서는 애국심 표현이 자제됐기 때문이다. 통일 전 서독에서는 공공건물과 군복을 제외하면 국기를 볼 수 없었다고 한다. 다른 유럽국가들과는 다르게 국기가 새겨진 자동차 스티커나 티셔츠도 없었다. 심지어는 1990년대에도 학교의 깃대에는 국기가 없었고, 학생들은 국가를 배우지 못했다. 이러한 독일이 2006 월드컵을 개최하면서 이들의 애국심 표현에도 변화가 시작된다. 특히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통일 독일이 첫 우승을 거두자, 감격한 독일인들은 자동차 경적을 울리고 국기를 흔드는 등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세계는 아직 독일의 과거를 기억하고 있었다. 독일이 준결승전에서 브라질을 7-1로 대파한 후 트위터에는 ‘나치’ ‘히틀러’ 같은 독일과 관계된 부정적인 단어가 급증했다고 한다. 역사에 덜 얽매이는 젊은 세대와는 다르게 나이든 독일인들은 과거의 무게를 지금도 짊어지고 있다. 월드컵이 불러온 민족주의 쇼에 거부감을 느낀 사람들은 거리에 만연한 독일 국기의 철거를 요구했고, 국가도 제창하지 않았다. 독일을 두 번이나 세계대전에 휩싸이게 한 국가적 자존심이나 민족주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많은 독일인은 애국심을 보여주기 위해 공개적으로 국가를 부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유산 때문에 이들은 영국이나 미국과는 다른 방식으로 애국심을 표현할 뿐이다.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2.10.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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