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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일반

국립스포츠박물관, ‘체육기자 이길용’으로 광복을 기억하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은 제78회 광복절을 맞이해 2026년 개관 예정인 국립스포츠박물관에서 체육기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이길용의 유품을 소장하고 있다고 16일 밝혔다.이길용은 1922년부터 체육기자로 활동하며 조선 체육 발전의 과정을 기록해 조선 체육의 정체성과 대한민국의 위대함을 세계에 알리고자 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1936년 8월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 가슴에 새겨진 일장기를 지우고 전국에 기사를 배포한 '일장기 말살사건'의 주인공이다.이에 따라 이길용은 옥고를 치르게 되고 기사를 게재한 신문사는 약 11개월간 정간하게 된다. 이는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상 가장 극적인 사건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이러한 업적을 인정받아 1990년 광복절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아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았으며 한국체육기자연맹에서는 그의 뜻을 이어 매년 ‘이길용체육기자상’을 제정해 시상하고 있다.국립스포츠박물관은 대를 이어 스포츠기자로 활동한 그의 아들 이태영으로부터 이길용의 유품 33점을 포함한 총 303점의 유물을 기증받아 보존 및 관리하고 있다.배중현 기자 bjh1025@edaily.co.kr 2023.08.16 12:05
연예일반

‘더 글로리’ 김은숙 작가, 재난피해 지역 아동 위해 ‘특별한 선물’ [공식]

아동양육시설 아이들의 행복한 어린이날을 위해 김은숙 작가와 윤하림 화앤담픽쳐스 대표, 방송인 이승윤이 나섰다.3일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는 2022년 동해안 산불과 태풍 등 재난으로 피해를 본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아동양육시설 10개 기관, 약 350명의 아이들에게 어린이날을 맞이해 아이들이 각자 고른 축구공, 장난감, 의류, 신발 등 특별한 선물을 전달했다고 밝혔다.특히 강원도 원주의 한 시설에서는 트러플 머쉬룸 크림스프, 소불고기 볶음, 버팔로윙, 훈제오리, 파스타, 각종 과일 등 뷔페를 비롯해 에어바운스, 바나나 시소와 같은 놀이기구를 즐기는 시간을 마련, 아이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줬다.희망브리지 김정희 사무총장은 “재난이 지나간 이후 지속적으로 회복을 돕는 중요한 프로그램에 이번에도 기부해 주신 윤하림 대표, 김은숙 작가, 이승윤 님께 깊이 감사드린다”며 “어린이날을 맞아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재난 구호모금 전문기관인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는 1961년 전국의 신문사와 방송사, 사회단체가 힘을 모아 설립한 순수 민간단체이자 국내 자연재해 피해 구호금을 지원할 수 있는 유일한 법정 구호단체다.권혜미 기자 emily00a@edaily.co.kr 2023.05.03 18:42
스포츠일반

[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더 선(The Sun)을 아십니까?

2022년 9월 26일은 본 칼럼이 연재되고 있는 일간스포츠가 창간한 지 53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종합지의 스포츠 섹션은 분량이 한정적인데 반해, 스포츠신문은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를 중점적으로 보도한다. 국내 스포츠는 1980년대 들어 전환점을 맞이한다. 프로야구(KBO리그)와 프로축구(K리그)가 출범한데 이어, 1986 아시안게임과 1988 올림픽이 서울에서 연달아 개최됐다. 축구대표팀은 1986 멕시코 월드컵부터 꾸준하게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아울러 1994년 박찬호의 메이저리그(MLB) 계약은 국내 팬들이 해외 스포츠에도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스포츠의 인기 상승과 함께 스포츠서울(1985년)과 스포츠조선(1990년)도 연달아 창간했다. 스포츠신문의 전성시대였다. 1990년대 서울 지하철의 풍경을 기억하는 독자분이 있다면 그 당시 스포츠신문이 얼마나 인기가 많았는지 알 것이다. 프리미어리그(EPL)의 인기와 함께 국내에도 영국 스포츠에 관심을 갖는 팬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에 반해 그들의 스포츠신문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필자는 영국 스포츠신문의 어제와 오늘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 17세기 영국에는 뉴스와 가십(gossip, 소문·잡담)을 다루는 정기 간행물이 출현했다. 17세기 후반에는 영국 정부의 검열 완화와 더불어 더욱더 많은 출판물이 나타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일간 신문 더 타임스(The Times)는 1785년 창간했다. 19세기 초반 선도적인 신문의 자리에 오른 더 타임스의 영향으로 세계의 많은 신문사는 ‘타임스’란 이름을 차용하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의 뉴욕타임스다. 1896년에는 데일리 메일(Daily Mail)이라는 신문이 런던에서 창간했다. 데일리 메일은 중산층 이하의 독자를 겨냥한 영국 최초의 일간 신문이었다. 여성 독자를 겨냥한 첫번째 신문이기도 했던 데일리 메일은 큰 인기를 얻어, 하루에 백만 부 이상을 판매한 영국 최초의 신문으로 자리 잡았다. 전통적으로 영국 신문은 3가지 형태로 나뉜다. 첫번째 형태는 품질을 중시하고 정치, 경제, 문화 등의 뉴스와 사설, 논평 등을 심층적으로 보도하는 ‘퀄리티(quality)’ 신문이다. 이들은 브로드시트(broadsheets)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커다란 신문 크기에서 이러한 이름이 유래했다. 브로드시트는 보통 57cm 정도의 긴 세로 면을 가지고 있다. 더 타임스, 더 가디언 등이 영국을 대표하는 퀄리티 신문이다. 두 번째 유형은 ‘인기 있는(popular)’ 신문이다. 브로드시트보다 작은 크기로 발행되는 관계로 이들을 타블로이드(tabloid)라고 부른다. 타블로이드는 중요한 사건의 객관적인 기사보다는 주로 대중의 흥미를 끄는 보도를 중요시한다. 황색 언론과 같은 의미로 쓰일 때도 있다. 역사적으로 타블로이드는 신문의 대중화에 크게 공헌했다. 브로드시트보다 저렴한 가격에 대중적인 내용을 담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더 선, 데일리 미러, 데일리 스타가 여기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퀄리티’와 ‘인기 있는’ 신문의 중간 역할을 하는 이들을 ‘중간 시장 신문(middle-market newspaper)’이라고 부른다. 이 신문은 중요한 뉴스를 보도할 뿐만 아니라 엔터테인먼트를 좋아하는 독자를 위해서 존재한다. 이들은 타블로이드 형태로 발행되고, 데일리 메일과 데일리 익스프레스가 여기에 속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의 자료를 보면 영국민들은 심각한 뉴스를 다루는 퀄리티 신문보다 가볍게 볼 수 있는 타블로이드를 훨씬 더 선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가운데 더 선은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하던 신문이었다. 1980~90년대 이 신문의 하루 평균 발행 부수는 400만 부에 가까웠다. 2000~2010년대에도 300만 부 이상을 꾸준히 발행했다. 서민과 노동자 계층을 주 고객으로 하는 더 선은 스포츠와 연예계 뉴스 및 유명 인사들의 스캔들 같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주제를 중점으로 보도한다. 더 선의 전신은 1964년 창간된 브로드시트 신문인 데일리 헤럴드였다. 하지만 1969년 호주의 유명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이 인수한 후 더 선이라는 타블로이드 신문으로 재탄생한다. 한국의 일간스포츠와 영국의 더 선은 1969년 창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더 선의 3번째 페이지(Page 3)는 초창기 신문이 인기를 얻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70년 11월 더 선은 영국 타블로이드 최초로 페이지 3에 토플리스(topless, 상의를 입지 않은) 차림의 매력적인 여성 모델 사진을 실었다. ‘Page 3 girl’이라 불리는 이들 덕분에 다음해 더 선의 판매량은 두 배로 뛰었다. 결국 1978년 더 선은 데일리 미러를 제치고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신문이 된다. 이러자 다른 타블로이드도 경쟁적으로 페이지 3에 토플리스 차림의 여성 모델 사진을 올리게 된다. 페이지 3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다양했다. 오락의 한 요소로 이를 좋아한 독자가 있는데 반해, 보수적인 이들은 전국 신문에 올리기에는 부적절한 ‘소프트 포르노’라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페미니스트들은 이러한 사진이 여성을 비하하고, 성차별을 지속시킨다며 반대했다. 정치권도 상반되는 반응을 보였다. 페이지 3의 사진을 없애자는 주장과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선 것이다. 결국 의회에서 페이지 3에 반대하는 법안은 제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2012년부터 ‘No More Page 3(페이지 3는 이제 그만)’ 캠페인이 활발히 전개됐고, 여기에 찬성하는 국회의원이 140명에 이르렀다. 아울러 많은 대학과 노동조합도 이에 가세했다. 결국 더 선은 토플리스 여성 모델 사진을 사용한 지 44년만인 2015년 1월 페이지 3를 중단했다. 다른 타블로이드도 더 선의 결정을 따랐고, 2019년 4월 데일리 스타를 마지막으로 타블로이드 일간지에서 페이지 3 사진은 사라졌다.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2.09.28 07:00
해외축구

[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영국 여왕이 사랑한 클럽은?

영국 왕실은 오랫동안 스포츠에 열성적으로 참여해 왔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딸인 앤 공주는 유럽 승마대회에서 두각을 보인 데 이어 1976 몬트리올 올림픽에 영국 대표로 참가했다. 앤 공주의 딸 자라는 2012 런던 올림픽 종합마술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획득, 영국 왕실 인사로서는 처음으로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되었다. 당시 시상식에서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이자 어머니인 앤 공주가 딸 자라에게 메달을 수여하는 진귀한 장면을 보여주었다. 승마 외에도 왕실 인사들은 테니스, 폴로, 럭비, 스키, 크리켓, 축구 등 다양한 스포츠 종목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하노버 왕조의 빅토리아 여왕은 사촌이자 독일인 앨버트 공과 결혼해 영국 왕실은 작센코부르크고타 왕조 시대를 맞이한다. 이로써 영국 왕실은 친가와 외가 모두 독일계 왕조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이 1914년에 발발하면서, 영국 내에서 반(反) 독일 감정이 일어난다. 곤경에 빠진 당시 영국 왕 조지 5세는 독일계 가문명을더 이상 유지할 수 없었다. 이에 생존을 위해 영국 왕실은 왕조의 문장에서 작센 가문의 흔적을 지우는 등 독일과의 관계를 끊었다. 이때 가문명도 왕실의 오랜 터전이었던 윈저 성의 이름을 따 ‘윈저 왕조(House of Windsor)’로 바뀐다. 해군 장교 출신이었던 조지 5세는 유럽에서 군주제가 몰락하고 공산주의와 파시즘이 설치던 시절 영국 왕으로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다. 대영제국은 그의 재임 시절 가장 넓은 영토를 지배했다. 즉 세계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다스린 군주가 조지 5세였다. 조지 5세는 검소한 삶을 살았고, 자식들 교육에도 엄격했다. 하지만 그의 장남 에드워드는 파티를 즐기고, 기혼 여성들과 불륜을 저지르는 말썽꾸러기였다. 장남에 실망한 조지 5세는 차남인 앨버트와 손녀인 엘리자베스가 왕위를 잇기를 희망했기에 “에드워드가 절대 결혼하지 말고 아이를 갖지 않기를 바란다”는 기도까지 했다고 한다. 아울러 조지 5세는 “내가 죽은 후 에드워드가 왕이 되면 12개월 안에 망할 것”이라는 예측까지 했다. 1936년 조지 5세가 서거하자 장남은 왕위를 물려받아 에드워드 8세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2번의 이혼 경험을 가진 미국인 심프슨 부인과 사랑하는 세기의 로맨스를 벌이며, 왕에 오른 지 10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난다. 아버지 조지 5세의 예측이 정확히 맞아떨어진 것이다. 결국 공석이 된 왕 자리에 에드워드의 동생 앨버트가 오르며 조지 6세가 된다. 소심한 성격의 조지 6세는 사실 왕이 되고 싶지 않았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특히 그는 말을 더듬는 치명적인 버릇이 있었는데, 이 약점을 극복하는 과정이 영화 ‘킹스 스피치(The King's Speech, 콜린 퍼스가 조지 6세를 연기해 8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에 감동스럽게 그려져 있다. 한편 조지 5세 시절인 1927년 잉글랜드축구협회(FA)가 주관하는 FA컵에는 새로운 전통이 생긴다. 당시 축구협회 회장이었던 알프레드 월은 조지 5세의 사랑을 받던 찬송가 ‘나와 함께 하소서(Abide with Me)’를 결승전 식전 행사에 도입했다. 이 찬송가는 삶과 죽음을 통틀어 하나님이 화자와 함께 계시기를 바라는 기도로, 1912년 타이타닉 호가 대서양에서 침몰하던 당시 선상 밴드가 연주한 곡이기도 하다. 이후 ‘나와 함께 하소서’는 지금까지 매년 FA컵 결승전에서 불리고 있다. 밴드의 연주와 함께 초대 가수가 선창하면 관중은 이를 따라 부르는데, 신앙심이 깊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이 시간만은 특별한 믿음의 순간이라고 한다. 럭비 리그도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아 1929년부터 지금까지 챌린지컵 결승전에서 이 곡을 연주하고 있다. 왕의 자리가 버거웠고 2차 세계대전 중 국왕으로서 막중한 임무를 치르면서 건강이 악화한 조지 6세는 1952년 56세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왕위를 이어받은 그의 장녀가 현 국왕인 엘리자베스 2세다. 결국 조지 5세의 소원대로 차남에 이어 손녀가 왕위에 앉은 것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FA컵 결승전을 여러 차례 직접 관람하는 등 축구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국가의 수장으로서 중립을 지키기 위해 여왕은 자신이 응원하는 클럽에 대해 오랫동안 침묵했다. 여왕은 아스널 FC가 2006년 새 홈구장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을 개장할 때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남편 필립 공작을 대신 보냈다.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그녀는 이듬해 아스널을 버킹엄 궁전으로 초대해 다과를 가졌고, 당시 감독이었던 아르센 벵거와 미드필더 세스크 파브레가스에게서 특히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후에 파브레가스는 언론에 여왕이 아스널 팬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영국 신문사 데일리 미러의 2009년 보도에 의하면 여왕이 오랫동안 사랑한 팀은 해머스(The Hammers)라는 닉네임으로 알려진 동런던 클럽 웨스트 햄이다. 여왕은 왕실 직원들이 밀월FC에 대해 얘기하는 걸 우연히 듣고, 자신은 밀월과 앙숙 관계인 해머스의 팬이라고 살짝 밝혔다는 것이다. 여왕의 뜻밖의 고백에 직원들은 깜짝 놀랐다고 한다. 여왕의 평소 이미지와 과격한 팬을 많이 거느린 웨스트 햄과는 너무나 큰 간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웨스트 햄의 본거지인 업튼 파크(Upton Park)에서 생활한 적 있는 필자 입장에서도 여왕의 발언은 정말 뜻밖이었다. 필자가 런던 전역에서 살아봤지만 업튼 파크만큼 살벌하고 밤에 혼자 나가기 싫은 지역도 없었다. 여왕의 웨스트 햄 사랑은 클럽의 가장 성공적인 감독이었던 론 그린우드에 대한 존경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여왕은 해머스를 1965년 유럽피언 컵 위너스 컵 정상에 올려놓은 그린우드 감독을 여러 번 만났고, 그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아울러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 공군의 집중적인 폭격에도 굴하지 않았던 ‘동런던 시민(East Enders)’에 대한 여왕의 존경심도 해머스를 응원하게 만든 계기였다.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2.06.22 05:20
연예

복지TV, 가을 맞아 '향기가 있는 음악 사인사색' 10일 첫 방송

복지TV(사장 김선우)가 가을을 맞이해 준비한 교양 프로그램 ‘향기가 있는 음악 사인사색(四人四色)'이 오는 10일(금) 오후 7시 첫 방송된다.'향기가 있는 음악 사인사색'은 각 분야의 전통문화 예술인들이 바라보는 '연결'과 '잇는다'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즉 계승 발전이란 어떤 것인지 참뜻을 알게 하는 안성맞춤의 프로그램이다. 또한 전통문화예술계의 새로운 시도 '통통통 튀는 산조'도 방송된다. 기존의 프로그램 방식이 아닌 '통통통' 튀는 방송을 만들기 위해, 각 분야 전문가들이 6개월간 여러가지를 구성했다.'향기가 있는 음악 사인사색’과 ‘통통통 튀는 산조’의 MC는 현 안성경서남잡가 조수교육조교, 국악신문사 한국음악전문 기자인 전미선, GDNTV 아나운서 황성규가 맡는다.'향기가 있는 음악 사인사색’은 총 4편으로 나누어 제작된다. 첫째 주 방송은 톡톡 튀는 토크 쇼 형태로 진행되며, 둘째 주는 젊은 전통문화예술인들을 위한 프로그램, 셋째 주는 차세대 명인명창 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며 마지막 주는 국악가요로 마무리될 예정이다. 특히 첫째 주 토크쇼가 잘 진행되면 '통통통 튀는 산조-초산 산(酸), 잡을 조(操)', 즉 ‘상큼함을 잡는다’라는 의미로 진행될 예정이다. 다만 방송 초기여서, 프로그램 순서가 바뀌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복지TV 김선우 사장은 "소리통, 웃음통, 소식통을 의미하는 '통통통' 튀는 진행자들의 입담과 재담으로 구성하였으나 기나긴 코로나19로 인해 현장 취재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비대면 녹화 방식으로 ‘향기가 있는 음악 사인사색’으로 안방을 찾아갈 예정이다. 가을 밤 우리 전통문화 예술계와 전통예술 마니아층에 ‘깜짝 선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이어 김선우 사장은 "전통문화 예술계에서는 처음 시도하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약간의 시행착오가 생길 수도 있지만, 제작팀, 출연진들이 상호 협조하여 최상의 프로그램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하겠다"라고 덧붙였다.‘향기가 있는 음악 사인사색’ 방송은 KT올레TV ch.219, LG ch.255, SK ch.293, SkyLife ch.188, CMB ch.144,166, 지역유선방송 ch.99 등에서 만날 수 있다.이지수 디지털뉴스팀 기자 2021.09.08 20:31
연예

태국 배우 겸 가수 '뮤 수파싯'의 데뷔 1주년 맞이 신문사 전면 광고

한국의 팬들은 8월 1일 뮤 수파싯의 가수 데뷔 1주년에 맞춰 국내 최고 일간지인 일간스포츠에 지면 광고를 전격 진행했다. 뮤 수파싯은 올해 2월 생일을 맞아 한국 언론사에 광고가 올라간 최초의 태국 연예인이며 이번이 두 번째 언론 광고이다. 뮤의 팬덤은 "오랫동안 가졌던 가수의 꿈을 이룬 뮤 수파싯이 너무도 자랑스럽고 그의 앞날에 계속해서 사랑과 응원을 보내고 싶은 마음으로 신문 광고를 준비했습니다."라고 전했다. 전 세계에 다양한 국적의 글로벌 팬덤을 보유한 사실이 자국에 알려지며 더욱 유명해진 뮤 수파싯은 배우겸 가수로서 2020년 8월 1일 가수 데뷔 후에 1년 동안 싱글 5개를 발매하며 가수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가장 최근 싱글인 'Summer Fireworks'는 세상을 먼저 떠난 팬에게 바치는 그의 첫 자작곡으로 전 세계의 청취자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태국의 얼굴 천재'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현재 태국의 최고 명문대인 쭐라롱컨 대학교 산업공학 박사과정 중에 있으며 기획사 '뮤 수파싯 스튜디오'의 CEO이기도 하다. 이처럼 뮤 수파싯은 여러 분야에서 활동을 해나가면서 동시에 교육분야와 자선 활동 등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많은 팬들의 귀감을 사고 있다. 현재 활발한 가수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데뷔 1주년을 맞아 첫 정규앨범인 '365' 을 발매하였으며 올해 하반기에는 자신이 직접 제작한 첫 드라마 시리즈 'The Ocean Eyes' 에서 제작자이자 주연배우로서 촬영에 돌입할 예정이다. 'The Ocean Eyes' 는 아시아 최초로 제작되는 해양 수의학 드라마 시리즈로 태국. 중국, 미국의 합작 투자를 받아 제작되며 올해 말에 방영을 앞두고 있다. 온라인 일간스포츠 2021.08.02 08:00
게임

코로나 덮친 2020년 게이머 위로한 최고 게임은 ‘V4’

코로나19가 덮친 2020년 최고의 게임 영예는 넷게임즈의 ‘V4’에게 돌아갔다. 18일 부산광역시 서면에 위치한 ‘부산 이스포츠경기장’에서 2020 대한민국 게임대상‘ 시상식이 열렸다. 올해 최고의 게임에서 주어지는 게임대상(대통령상)은 넷게임즈의 모바일 게임 ‘V4’가 수상했다. V4는 기술창작상 사운드와 그래픽, 우수개발자상(이재섭 넷게임즈 실장)까지 받으며 4관왕을 차지했다. 최우수상(국무총리상)은 클로버게임즈의 모바일게임 ‘로드 오브 히어로즈’에게 돌아갔다. 우수상(문체부 장관상) 부문(총 4점)은 ‘에이(A)3: 스틸얼라이브’ , ‘랜덤다이스’ , ‘베리드 스타즈’ , ‘플레비 퀘스트: 더 크루세이즈’가 차지했다. e스포츠발전상은 피파온라인4 e스포츠 대회를 진행해온 넥슨코리아 피파퍼블리싱그룹에게 주어졌다. 유저들의 투표로 결정되는 인기 게임상은 넥슨의 ‘바람의 나라: 연’(국내)과 카카오게임즈의 ‘가디언 테일즈’(해외)에게 돌아갔다. 선데이토즈는 국내 기부문화 선도, 지역사회 취약계층 구호에 대한 공헌 활동을 인정받아 사회공헌우수상(문체부 장관 표창)을 수상했다. 올해로 25회를 맞이한 ‘대한민국 게임대상’은 올 한 해를 빛낸 국내 게임의 성과를 축하하고, 게임산업 발전에 이바지한 게임인의 공로에 감사를 전하는 자리이다. 이날 시상식에 문체부 오영우 제1차관과 국회 이헌승 의원, 조승래 의원 등이 참석했다. 이날 게임대상 시상식에 앞서 이스포츠 상설경기장인 ‘부산이스포츠경기장’이 문을 열었다. 부산이스포츠경기장은 문체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역 이스포츠 발전을 위해 지난해부터 지원한 ‘이스포츠 상설경기장 구축 사업’ 3개 지역 중 가장 먼저 개관한 곳이다. 문체부와 부산시가 각 30억 원씩 모두 60억 원을 투입해 부산진구(서면) 삼정타워(15~16층)에 경기장을 조성했다. 경기장은 관람석 330개를 갖춘 주경기장과 128석 규모의 보조경기장, 선수 및 관람객 편의를 위한 각종 부대시설들로 구성돼 있다. ◇다음은 2020 대한민국 게임대상 분야별 수상작(자) ▲대상 : “V4” / ㈜넷게임즈 (대통령상, 상금 1천5백만원) ▲최우수상 : “로드 오브 히어로즈” / 클로버게임즈㈜ (국무총리상, 상금 1천만원) ▲우수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 (공동수상) : “A3: 스틸얼라이브” / 이데아게임즈 “랜덤다이스” / 111퍼센트 주식회사 “베리드 스타즈” / 라인게임즈(주) “플레비 퀘스트: 더 크루세이즈” / ㈜네오위즈 ▲기술․창작상 · 기획․시나리오 분야 : “베리드 스타즈” / 라인게임즈㈜ · 사운드 분야 : “V4” / ㈜넷게임즈(스포츠조선사장상) · 그래픽 분야 : “V4” / ㈜넷게임즈 · 캐릭터 분야 : “엑소스 히어로즈” / ㈜우주(전자신문사장상) ▲우수개발자상 (기획/디자인) : “이재섭” / ㈜넷게임즈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사회공헌우수상 : “(주)선데이토즈” (문화체육관광부장관표창) ▲이스포츠발전상 : “넥슨코리아 피파퍼블리싱그룹”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차세대 게임 콘텐츠상 : “흉가 VR Ep. 3 : 곤지암” / ㈜에이아이엑스랩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인기게임상 · 국내 : “바람의나라: 연” / ㈜슈퍼캣 · 해외 : “가디언 테일즈” / Kong Studios, Inc.(한국게임산업협회장상) ▲스타트업 기업상 : “(주)슈퍼캣” (한국콘텐츠진흥원장상, 상금 5백만원) ▲인디 게임상 : “스컬 : 더 히어로 슬레이어” / 사우스포게임즈(주) (한국콘텐츠진흥원장상) ▲바른게임환경조성 기업상 : “(주)카카오게임즈” (게임물관리위원회위원장상) ▲굿게임상 : “MazM : 페치카” / ㈜자라나는씨앗 (게임문화재단이사장상) 권오용 기자 kwon.ohyong@joongang.co.kr 2020.11.18 18:57
야구

[창간50 SUN스토리②] "양키스 유학, 야구 교류와 전파 위해"

유독 팔이 길던 까까머리 야구 선수는 어느덧 이마 경계에 흰머리를 감출 수 없는 중년이 됐다. 일간스포츠는 그동안 이 남자의 사진과 이름 그리고 이야기로 꾸준히 지면을 채웠다. 그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알려야 할 가치가 있었다. 반세기를 이어온 스포츠 매체가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다가올 50년을 준비하고 있다. 그 의미를 함께 되새길 수 있는 유일한 인물. 바로 선동열(56) 감독이다. 스포츠계를 대표하는 아이콘은 꾸준히 등장했다. 해외 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였고, 불모지에서 기적을 일궜다. 범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종목에서 정상급 플레이어로 평가받으며 자부심을 주는 선수도 있었다. 선 감독을 이 시대의 아이콘으로 볼 순 없다. 현재 야구계의 바통은 메이저리거 류현진(LA다저스)이 쥐고 있다. 그러나 선 감독은 반 세기의 아이콘이자 일간스포츠의 아이콘이다. 중학생이던 1977년에 유망주로 지면 한 쪽에 소개된 그는 40년이 지난 2019년에도 1면의 주인공으로 나선다. 가장 긴 시간 동안 줄지 않은 영향력을 갖췄다. 그사이 신분과 입장이 달라졌고, 성공만큼 좌절을 겪었다. 모두 조명됐고 주목을 받았다. 일간스포츠도 칭찬만큼 질타도 했다. 창간 50주년을 맞이해 선동열 감독을 만났다. 그는 미디어 환경 변화를 몸소 겪은 산증인이다. 가장 친밀한 동반자이자 누구보다 어려운 취재원이었다. 잠시지만 '글'을 쓰는 공통점까지 생겼다. 서로의 역사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현재를 직시했다. 그리고 미래를 바라봤다. [창간 50 선스토리①]"만루 홈런 맞았다고 1면, 민망했죠" 에 이어... 『 휴대폰 카메라로 매 순간 추억을 만들고 공유할 수 있는 시대다. 그러나 여전히 필름 카메라를 들고 출사에 나서는 이들이 있다. 아날로그 감성도 사랑받는다. 빛바랜 사진 한 장은 정겹다. 선동열 감독도 옛날 사진을 보며 그 시절을 떠올린다. 글러브 색깔만 봐도 언제였는지 알 수 있었다 』 - 과거 기사에서는 사진에서도 취재원과 매체의 친밀감이 전해진다."(한참을 웃은 뒤)새해 첫날에 새벽부터 무등산에 올라갔었다. 웃통을 벗고 일출에 맞춰 만세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었다. 사실 나는 정말 창피했다. 나만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해외 전지 훈련을 가면 공식처럼 야자수를 배경으로 찍어야 했다. 정겨운 연출이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 얼음물 입수나 통나무를 드는 사진도 봤다."지금은 그런 취재가 되겠는가. 그러나 당시에는 '에이 그런 건 안한다'며 빼지 않았다. 거부감이 없었다. 오히려 서슴없이 했다. 그게 동업자 정신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사진 기자들은 나보다 먼저 나서 장소 헌팅을 하지 않는가. 그런 파트너십이 선수와 기자 후배들에게도 이어지며 좋은 친분을 유지한 것 같다." - 도대체 명절에 가족끼리 찍은 사진은 어떻게 신문에 게재된 것인가."신문사에서 요청한 사진이 많았다. 빌려줬다. 참고로 명절 때는 직접 집에 찾아와서 찍은 것이다. 아들이 2살 때인 것 같으니 1991년이다. 그때는 그랬다." - 올드팬이 떠올리는 가장 유명한 장면이 있다."내가 포수던 장채근 (홍익대)감독에게 안긴 모습 말인가. 1989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확정한 직후로 기억한다. 장 감독 정도 되니까 내 덩치마저 작아 보이더라." - 투구 순간을 담은 사진은 가장 흔하고 많다. 그러나 새삼 감탄한다.(공을 손에서 놓기 전, 굽혀진 오른 무릎과 정강이가 지면에서 불과 2~3cm 밖에 떨어지지 않은 투구 자세를 선 감독에게 보여줬다)"최동원, 김시진 선배와의 공통점이다. (오른손)투수의 투구 자세를 보면 왼 다리가 떨어진 뒤 착지를 할 때까지의 시간이 길다. 하체의 중심 이동을 최대한 끌고 간 뒤 공을 놓는다는 얘기다. 그 시간 짧을수록 상체에 불필요한 움직임이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 종속이 떨어진다. 그 사진은 가장 몸이 좋았던 시절이기에 왼발을 길게 뻗으면서 오른발은 지면에 닿을 만큼 굽혀졌을 것이다." - 과거에는 기술적인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완벽한 밸런스의 투구자세가 연속 사진으로 남아 있지 않은 게 안타깝다."나뿐만 아니라 역대 좋은 투수들의 투구폼과 현역 투수들의 그것을 비교해보고 싶긴 하다."- 지금은 재연할 수 없나."지금은 도저히 할 수가 없지요." - 라이벌이던 (故)최동원 투수와 함께 찍은 사진은 많이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1986시즌 올스타전과 이듬해 선발 맞대결 뒤 악수를 하는 장면 정도가 현재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사진이 아닐까. 그러나 매체를 통해 한 번도 게재되지 않은 사진도 있더라." - 어떤 사진인가."라이벌 관계로 더 많이 알려졌지만, 그 전에 각별한 선후배 사이다. 안 그래도 최근까지 집필에 매진한 야구 경영서에 담기 위해서 내게 남은 앨범과 스크랩을 꺼내 봤고 (최)동원이 형과 찍은 사진이 있나 살폈다. 있더라. 우연히 호텔에서 웃고 떠들다가 분위기가 잡혀서 찍었다. 얼마나 앳된지 모른다. 옛날 생각이 나더라." - 사진은 타임머신이다."그렇다. 한 장에 담겨 있는 사람들, 포즈, 표정, 물건 모두 개인의 역사다. 일간스포츠 사진 기자들이 찍어준 과거 사진을 보고 있으니 생각나는 게 많다. 가령 (최)동원이 형과 풍선을 들고 찍은 사진은 모자에 새겨긴 로고와 입고 있던 언더 셔츠를 보고 연도를 떠올렸다. (이)종범이와 주니치 유니폼을 함께 입고 찍은 사진을 보니 전훈지에서 운동하던 때가 기억난다. 앞서 언급한 투구폼은 1988년 아니면 1989년이다. 그때 썼던 글러브다. 보통 한, 두 시즌을 쓰면 바꾼다. 색깔을 보니 그때다. 정겹다." 『 글을 쓰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고 한다. 새삼 기자의 입장을 경험했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반성도 했다. 아쉬움도 있다. 그 많던 과거 사진과 일기가 너무 많이 사라졌다. 선 감독을 그 시절로 이끌어 줄 매개체가 더 있었더라면 알려지지 않은 국보의 이야기가 더 많아질 수 있었다 』- 야구 인생을 담은 자서전을 낸다고 들었다."자서전이라는 거창한 단어로 표현되면 부담스럽다. 그저 선동열이라는 야구인을 중간 점검하는 시간이었다. 그동안은 앞만 보고 달려왔다. 뒤를 돌아볼 수 있던 계기다. 50년 가까이 야구를 하면서 보고 느낀 것을 담았다. 선·후배들 조언도 두루 들었고, 나만의 철학도 녹이려고 했다. 내 얘기가 담긴 야구 경영서로 볼 수 있다." - 글을 쓰는 일은 어땠나."정말 어렵더라. 발간은 10월 말이다. 원고를 마감해야 할 시점이 있지 않은가. 8월 중순까지도 전체 이야기의 70%를 채우지 못했다. 약속 자리가 많이 줄었다. 이 인터뷰도 스스로 딱 부여한 휴식이다. 그만큼 바쁘고 시간이 모자랐다. 분량을 맞추는 것도 쉽지 않더라. 처음에는 250~270페이지를 예상했는데, 300페이지를 넘어갈 것 같다. 무엇보다 글로 표현을 하는 자체가 어려웠다. (9월19일 현재)제목도 아직 정하지 못했다. 가장 고심하는 부분이다."- 자신을 돌아본 감회를 전한다면."사진, 일기, 기사, 기록들을 보면서 나조차도 한동안 잊었던 시간으로 돌아갔다. 정겨웠다. 그리고 반성도 했다.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채워 가야할지 고민하게 됐다.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머릿속에 그리는 계기도 됐다. 성공담이 아니다. 실패한 얘기가 더 많다."- 집필 과정에서 아쉬운 부분은 없었나."지난 시간을 돌아볼 수 있는 매개체가 더 많아야 했다. 소재를 알 수 없는 자료가 너무 많더라. 소개가 되면 올드 야구팬도 그 시절을 돌아보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지점은 아쉽다." - 소재를 알 수 없다는 말의 의미는."개인 (사진)앨범에 빈 공간이 많다. 건립 예정인 야구박물관에 기증한 사진도 있다. 과거 언론사의 취재 요청에 잠시 맡긴 사진 대부분을 돌려받지 못했다. 수소문을 해보기도 했지만 찾기 어렵더라. 고등학교 시절부터 쓴 일기장은 이제 한 권은 남아 있다. 그 한 권보다 더 두꺼운 분량으로 최소 5권은 더 있어야 맞다. 몇 장에 불과한 유년기 사진도 돌려받지 못했다." - 언론이 크게 반성할 일이다. '국보' 투수의 자료는 야구팬 모두의 것이다. 그저 보도용이 아니다. 온전히 보전됐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회수가 이뤄져야 한다."탓을 하는 건 아니다. 그 시절 독자들을 위해서였다. 1980~90년 대 자료는 원래 남아 있기 어렵다. 그저 갖고 있었다면, 기억에 의존해 과거를 돌아보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뿐이다." - 명확한 기록이 남아 있다면 과거 일화도 더 수월하게 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그렇다. 안 그래도 야구계에 오래 계셨던 분을 통해 어렵게 의미 있는 경기의 기록지를 찾았다. (고려대 재학 중이던)1981년도에 나선 건국대전이다. 6-1로 이긴 경기에 노히트 투구를 했다. 점수는 줬지만 안타를 맞지 않은 경기도 드물지 않나. 그렇게 건너고 건너서 찾은 자료도 많다. 사진은 가장 긴 시간을 걸어온 일간스포츠 사진팀 도움을 받았다." - 故 최동원 투수와의 통산 맞대결 전적도 알려진 바와 다른 것으로 알고 있다."과거 기록지까지 어렵게 찾아서 재정리했다. 실제로는 다섯 번이다. 선발 맞대결은 알려진 대로 세 번이다. '사실상' 선발이라는 부연이 붙는 대결이 한 번 더 있다. 1987년 4월 12일 경기다. (최)동원이 형이 등판한 경기였는데 우리 팀(해태) 김대현 투수가 한 타자만 상대한 뒤 바로 내가 등판해서 나머지 8⅔이닝을 막았다. 2점을 내줬지만 승리투수가 됐다. 다른 구원 등판은 1985년 7월에 3회부터 나선 경기다. (최)동원이 형이 2실점 완투승을 했다."- 영화 퍼펙트게임도 실제와 다르지 않나.(이 영화는 1987년 5월 16일 두 전설이 선발투수로 나서 200구 이상 던지며 15이닝을 소화한 경기를 바탕으로 제작됐다)"일단 첫 번째 포수는 김무종 선배였다. 2회 수비가 끝나고 갑자기 복통으로 교체되면서 투입된 게 장채근(현 홍익대 감독)이다. 영화에서 가상 인물인 박만수(마동석 역)의 모델로 볼 수 있다. 박만수가 동점 홈런을 친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1-2로 뒤진 9회초에 김일환이 2루타를 쳤다. 연장전에서는 포수가 아니었던 백인호(개명 뒤 백인수)가 마스크를 썼다. 13회에 마운드에 올라와서 '형, 내가 변화구 못 잡는다고 원망하지 말아라'고 한 기억이 난다. (백)인호가 11회에 발 빠른 주자를 송구로 아웃 시킨 기억도 난다." - 영화는 사실에 허구를 더한 팩션이다. 그래도 과거 기록과 자료가 제대로 남아 있다면 이야기가 더 풍부해졌을 것 같다."같은 생각이다. (영화)감독님이 당시를 기억하는 야구계 여러 관계자를 찾아다니며 취재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당시 현장에서 지도자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 이야기를 소재로 만드는 영화였지만 모든 얘기를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다. 메이저리그 명문 구단 뉴욕 양키스로 '야구 유학'을 떠난다는 소식을 알렸다."내년 1월 20~25일 사이에 출국한다. 스프링캠프에 참가하는 일정이지만 길게는 1년 동안 있을 계획이다. 구단에 '마이너리그에서도 좋으니까 두루 배워보고 싶다'고 전했고 긍정적인 답변을 들은 상황이다. 현장과 프런트가 진행하는 회의에도 참석할 수 있다. 선진 야구 시스템을 보고 배우려고 한다." - 교류와 전파를 하는 역할도 하게 됐다."양키스 뛰었던 마쓰이 히데키에 이어 동양인으로는 두 번째 초청이라고 한다. 이 과정에서 도움을 준 스티브 윌슨 국제 총괄 스카우트 과거 국제대회에서 내가 투구하는 모습을 보기도 하셨다. 구단 고위층에서 '선동열 같은 선수를 스카우트 하라'는 지시도 있었다고 한다. 배우기도 하겠지만 한국 야구를 알리는 일도 하겠다." - 양키스에서 보내는 시간은 자료와 기록이 제대로 남아야 하지 않을까."한국 야구의 발전을 위해서 이번에는 잘 정리해서 잘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 진정한 의미에 2막이 시작됐다. 1차 목표를 전한다면."메이저리그 경기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다. 야구팬의 눈은 높아졌다. 여름을 보내는 KBO 리그 투수들을 보면 내가 야구팬에 미안해진다. 꼭 프로 야구가 아니더라도 좋다. 선진 야구를 공부해서 더 좋은 투수가 나올 수 있는 훈련 시스템을 만드는데 기여하고 있다. 아마추어 선수나 지도자를 위해 도움을 주고 싶다. 누구든 해야 할 일이다. " 안희수 기자 An.heesoo@joongang.co.kr 2019.09.27 11:00
스포츠일반

24번째 하림배 프로여자국수전 개막

여자 바둑대회 하림배 프로여자국수전이 28일 개막식 및 예선 1회전을 시작으로 4개월의 장정에 돌입했다.올해로 24번째 대회를 맞이하는 프로여자국수전은 그동안 10명의 여자국수를 배출했다. 44명이 참가하는 이번 대회 예선은 본선 티켓 13장을 놓고 3.38 대 1의 경쟁을 펼친다. 올해 여자국수는 11월 열릴 결승 3번기에서 탄생한다.하림이 후원하고 한국경제신문사가 주최하는 제24기 하림배 프로여자국수전의 우승상금은 1500만원, 준우승상금은 700만원이다. 제한시간은 각자 1시간에 1분 초읽기 1회씩이다.피주영 기자 2019.06.29 15:25
연예

'미스터션샤인' 이병헌이 지킨 김태리, 만주서 조국 지켰다 [종합]

"굿바이 미스터 션샤인. 독립된 조국에서 씨유 어게인."30일 방송된 tvN 토일극 '미스터 션샤인'에서는 유연석(구동매) 변요한(김희성) 이병헌(유진 초이)이 사망했다. 김태리(고애신)는 만주로 가 의병 양성에 힘썼다.이정은(함안댁)의 죽음을 안 김태리는 오열했다. 시민들은 김태리를 지키기 위해 인간 바리케이드를 만들었다. 일본군은 총을 발사하려다가 학당의 미국인 교사를 발견하고 멈췄다. 이병헌은 팔짱을 낀 조선인을 보면서 신미양요 당시에도 약한 병력으로 절대 포기하지 않았던 이들을 떠올렸다.일본은 의병들의 용모파기를 저자에 뿌리고 거액의 현상금을 걸었다. 의병들은 경계를 더욱 강화했다. 이때 한 외신 종군기자가 이병헌을 찾아와 도움을 구했다. 이병헌은 의병들을 소개해줬다. 의병들은 조선의 아픔을 외국에 알려달라고 인터뷰에 응하고 사진을 남겼다.유연석은 일본 자객들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다. 낭인은 윤주만(유조)의 시신을 보여줬다. 유연석은 자객들에게 맞서 싸웠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유연석은 김태리를 떠올리며 눈물 흘렸다. 김태리는 유연석에게 "호강에 겨운 양반 계집이라는 말이 나를 얼마나 괴롭혔는지 아는가"라고 말했던바, 유연석은 그 말을 떠올리며 "아가씨 생에 한순간이라도 가졌다면 이놈은 그걸로 된 거 같다"고 읊조렸다.의병들은 거점을 옮겨 다녔다. 김갑수(황은산)는 어린아이들과 여자들, 젊은 사람들을 먼저 만주로 보내기로 했다. 이병헌에게 평양가는 기차표를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또 의병 4소대의 소대장을 맡게 됐다. 작전 당일, 김태리와 장동윤(이준영) 등은 변복하고 평양가는 기차를 기다렸다.변요한은 신문을 발행한다는 사실을 들킬 위기에 처했다. 이 사실을 눈치챈 변요한은 황급히 신문사를 정리했지만 결국 체포됐다. 의병들이 평양행 기차를 탄다는 사실도 발각됐다. 김태리는 이병헌이 기차에 안 탔다는 걸 알고 갈등했지만, 기차를 당장 출발시켰다. 이병헌은 간신히 기차를 탈 수 있었다. 이병헌은 "훌륭한 대처였다"고 말했고 김태리는 "훌륭한 미국인의 아내라"라고 답했다.기차 안의 일본군은 김태리를 찾고 있었다. 거점에 남은 의병들은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 변요한은 김태리, 김갑수 등의 사진과 명단을 내놓으라고 고문을 당했고 결국 숨을 거뒀다. 김태리는 모자를 벗고 자신이 그 폭도라고 밝혔다. 이병헌은 일본인을 인질로 삼고 일본군에 맞섰다. 이병헌은 "그대는 나아가시오. 나는 한걸음 물러나니"라며 자신을 희생해 김태리를 지켰다. 김태리는 이병헌의 한국 이름을 부르며 오열했다.2년 후 만주. 김태리는 의병들을 훈련시키고 있었다. 김태리는 "눈부신 날이었다. 우리 모두는 불꽃이었고 모두가 뜨겁게 피었다. 또 다시 타오르려 한다. 동지들이 남긴 불씨로. 나의 영혼은 늙지 않아서 작별 인사는 짧았다. 잘가요 동지들, 독립된 조국에서 씨 유 어게인"이라고 읊조렸다. 시간은 1919년으로 흘렀다. 김민재(도미)는 이병헌의 묘 앞에서 "멈추지 않고 가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이아영 기자 lee.ayoung@jtbc.co.kr 2018.09.30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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