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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일반

파리로 모인 전설들...마르샹, 조코비치, 리네르, 빛난 '신·구 스타' [2024 파리 결산]

올림픽은 세계 스포츠 최대의 축제다. 대한민국 선수단이 주는 감독과 함께 전세계 스포츠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개최국 프랑스는 이번 대회 자국의 슈퍼스타를 전면에 내세웠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직접 경기장을 나서 선수들을 만날 정도였다. 대표적인 게 수영 레옹 마르샹이다. 마르샹은 수영 경영 종목에서 금메달을 총 4개를 쓉쓸며 이번 대회 최다관왕을 예약했다. 게다가 4개 종목 모두 올림픽 기록을 새로 썼다. 지난달 29일에는 개인혼영 400m에서는 4분02초95를 기록, 은퇴한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미국)의 올림픽 기록(4분04초84)을 경신했다. 이어 1일 남자 접영 200m에서는 1분 51초21, 평영 200m에서는 2분05초85를 기록해 올림픽 신기록들을 연이어 경신했다. 3일 마크롱 대통령이 방문한 날에는 개인혼영 200m에서 1분54초06을 기록, 올림픽 기존 기록(1분54초23)을 0.17초 단축했다.개회식에서 지네딘 지단을 제치고 성화 최종 점화자로 나선 유도 영웅 테디 리네르 역시 자국에서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리네르는 유도 남자 최중량급에서 한국의 김민종을 제치고 정상에 섰다. 이어 혼성 단체전에서는 종주국 일본을 꺾고 금메달을 수확하는 데 앞장섰다. 일본이 앞서던 때 자신의 경기를 잡아 흐름을 바꿨고, 3-3 동률에서 치러진 재경기 때는 그의 체급이 추첨 끝에 결정돼 다시 한 번 승리하는 해결사까지 됐다. 이번 대회를 포함해 올림픽에서 개인전 금메달 3개, 단체전 포함하면 5개째를 수확했다. 프랑스 외에도 각 종목을 대표하는 스타들은 이번 대회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최고는 역시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다. 24번의 메이저대회 우승으로 남녀 테니스를 통틀어 역대 공동 1위에 올라 있는 그는 테니스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유독 올림픽에서만 고전했다. 4번이나 출전했으나 금메달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2008 베이징 대회에서 받은 동메달이 최고 성적이었다.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남자 단식 종목 결승에서 카를로스 알카라스(스페인)을 꺾으며 마침내 염원하던 우승을 이뤘다. 기존 메이저대회에서 이룬 그랜드슬램에 올림픽 금메달을 더한 커리어 골든 그랜드슬램이 완성된 순간이다. 조코비치는 우승이 확정된 후 코트에 누워 감격을 표현했다. 남자 농구에서는 르브론 제임스를 중심으로 스테픈 커리, 케빈 듀란트, 조엘 엠비드 등 미국프로농구(NBA) 중심 선수들이 모인 미국의 드림팀이 5연속 우승을 이뤘다. 개최국이자 NBA 신인왕인 빅토르 웸반야마를 보유한 프랑스, 또 다른 NBA 간판 스타 니콜라 요키치를 보유한 세르비아가 맞섰으나 드림팀을 이기진 못했다.제임스는 우승 후 말로 또 한 번 화제를 모았다. 그는 자국 개최 대회이자 그의 현 소속팀인 LA 레이커스의 연고지 LA에서 열리는 다음 대회에 참가할 의사를 묻자 단칼에 "안 간다"고 답했다. 불혹을 넘긴 나이까지 억지로 코트 위에 남지 않겠다는 의사를 드러낸 셈이다.체조 스타 시몬 바일스(미국)의 부활도 화제였다. 2016년 리우 대회 4관왕인 바일스는 파리에서도 기계체조 여자 단체전, 개인종합, 도마 종목을 제패해 금메달 3개를 수집했다. 바일스는 리우 대회 활약을 앞세워 3년 전 도쿄 대회 때도 다관왕 유력 후보로 꼽혔다.하지만 압박감을 견디지 못해 단체전에서 중도 기권했고, 개인 종합 결선 출전도 포기하면서 전성기를 마감하는 듯했다. 그러나 마지막 올림픽이 될 이번 파리 대회에서 화려하게 부활, 명성에 맞는 성적을 남기고 올림픽 커리어를 마감하게 됐다. 레슬링 레전드 미하인 로페스도 매트 위에서 안녕을 고했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개인 단일종목 5연패의 금자탑을 쌓았다. 레슬링 남자 그레코로만형 130㎏급에 출전한 로페스는 결승에서 칠레의 야스마니 아코스타를 6-0으로 누르고 우승했다. 토너먼트에서 굴지의 젊은 랭커들을 만났으나 모두 제압한 후 결승까지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였다.이로써 로페스는 마흔두 살의 나이에 5연속 우승을 이뤘다. 2008 베이징 대회 때 첫 우승을 기록한 그는 2012 런던(이상 남자 그레코로만형 120㎏급)에서도 정상에 섰다. 이어 2016 리우데자네이루, 2020 도쿄(이상 남자 그레코로만형 130㎏급) 대회에 이어 이번 대회 우승으로 역대 최초 올림픽 5연패에 성공했다.이전까지 올림픽 역대 단일 종목 최다 연패 기록은 4연패였다. 로페스를 비롯해 육상 남자 멀리뛰기 칼 루이스, 수영 경영 남자 개인혼영 200m 펠프스, 여자 자유형 800m 케이티 러데키(미국), 육상 남자 원반던지기 앨 오터(이상 미국), 요트 파울 엘스트룀(덴마크), 레슬링 여자 자유형 63㎏급 이초 가오리(일본)가 달성했다.본래 로페스는 도쿄 대회 이후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파리 올림픽에서 역사를 쓰겠다며 현역 복귀했고, 완벽한 몸 상태로 젊은 선수들을 제압하며 절정의 경기력을 증명했다.로페스는 미련 없이 매트를 떠났다. 결승전 경기를 마친 로페스는 매트에 입 맞춘 뒤 레슬링화를 매트에 벗어두고 내려왔다. 더 이상 매트 위에 서지 않겠다는 마무리였다.파리(프랑스)=차승윤 기자 2024.08.12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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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OC, 선수위원 최종 후보 32명 발표...박인비, 육상 스타 펠릭스와 경쟁

박인비(35)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도전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IOC는 30일(한국시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2024년 파리 올림픽에서 선수위원에 도전할 선수들의 명단을 공개했다. 대회에 출전한 1만여 명 선수들이 투표권을 행사해 선정, 최종 후보 32명 가운데 4명이 선정된다. 현재 한국은 유승민 대한탁구협회장이 IOC 선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임기는 2024년 파리 올림픽에서 끝난다. 대한체육회는 지난 8월, 국내 후보자 면접을 통해 박인비를 결정한 바 있다. '배구 여제' 김연경, '사격 황제' 진종오 등 기라성 같은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자신이 적임자라는 것을 증명했다. 박인비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메이저 대화ㅣ 7승을 포함해 통산 21승을 거둔 레전드 선수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한국의 금메달을 안긴 주역이기도 하다. 이날 IOC가 발표한 후보 중에서는 박인비와 함께 세계적인 육상 스타 앨리슨 펠릭스(38)가 눈길을 끈다. 그는 올림픽에서만 금메달 7개를 획득한 선수다. 2008년 베이징·2012년 런던·2016년 리우 그리고 2021년 열린 도쿄 대회까지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 밖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 후보는 아론 실라지(펜싱·헝가리) 마리아나 파혼(사이클·콜롬비아) 발렌트 신코비치(조정·크로아티아) 카헤나 쿤츠(요트·브라질) 셰이크 살라 시세(태권도·코트티부아르) 제시카 폭스(카누·호주) 파울라 파레토(유도·아르헨티나) 등이 이름을 올렸다.안희수 기자 anheesoo@edaily.co.kr 2023.11.30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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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엄마’ 펠릭스, 루이스 기록 깨며 新 육상 전설 등극

육아 휴직, 출산 벼슬. 아직도 출산과 육아는 여성의 커리어에서 경력 단절을 이끌고 사회 속 유리천장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스포츠계에서 결혼과 출산은 여성 선수의 경력 단절, 은퇴 선언을 이끌곤 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 통념을 보란 듯 깨트린 이가 있다. 미국 육상 앨리슨 펠릭스(35)다. 펠릭스가 포함된 미국 육상 계주팀은 7일(한국시간) 일본 도쿄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육상 여자 4x400m 계주 결선에서 3분 16초 85를 기록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 6일 여자 400m 결선에서 동메달을 따내 미국 여자 육상 역사에서 가장 많은 메달을 따낸 지 하루만이다. 이로써 펠릭스는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메달 2개를 추가로 획득해 미국 육상 레전드 칼 루이스의 ‘10개 메달(금메달 9개, 은메달 1개)’ 기록을 깼다. 그는 개인 통산 11개 메달을 수확하며 미국 육상 최다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됐다. 펠릭스는 여태 자신이 출전한 올림픽에서 2004 아테네 올림픽 200m 은메달, 2008 베이징 올림픽 4x400m 금메달, 200m 은메달, 2012 런던올림픽 200m 금메달, 4x100m 금메달, 4x400m 금메달, 2016 리우올림픽 4x100m 금메달, 4x400m 금메달, 400m 은메달, 2020 도쿄올림픽 4x400m 금메달, 400m 동메달을 획득했다. 외신은 “엄마의 저력”이라며 미국 육상계 새 전설의 도래를 반겼다. AP 통신은 펠릭스가 자신의 기록으로 여성들, 특히 아이들의 엄마를 위해 적극적 목소리를 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도쿄올림픽은 펠릭스에게 있어서 아주 특별한 올림픽이다. 그녀가 2018년 자신의 아이를 출산한 후 뛴 첫 올림픽이기 때문이다. 당시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는 출산한 펠릭스에게 임신 전보다 낮은 후원금을 제시했다. 펠릭스는 이를 고발하며 여성과 출산 문제에 적극적 목소리를 낸 바 있다. 목소리로 부당함과 맞서 싸우던 그는 이번 대회에선 실력으로 자신의 기량을 입증했다. 펠릭스가 경기가 끝난 후 “후회 없다. 나는 육상에서 모든 것을 바쳤다.”고 한 말엔 그동안 그녀가 짊어졌을 많은 일이 담겨있었다. 펠릭스는 “마음이 편하다. 나는 놀라운 잠재력을 가진 여성들에게 자신감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을 보여줬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해보고 싶었고, 이번 대회는 내게 특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스포츠에서나 스포츠 밖에서나 여자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는 말도 했다. 세상이 가진 편견에 맞서 자신의 실력을 입증한 펠릭스. 펠릭스의 육상 대기록은 육상과 미국의 한 부분을 넘어 전 세계 수많은 분야에 울림을 주고 있다. 육상계는 펠릭스가 획득한 수많은 메달과 이번 대회에서 얻은 두 개의 메달이 그 무엇보다 값지다며 그녀의 도전과 울림을 뜻깊게 바라보는 중이다. 서지수 인턴기자 2021.08.08 12:58
스포츠일반

美 육상 계주 예선 탈락에 육상 레전드, “어이없고 용납 불가” 맹비난

미국 육상 남자 400m 계주팀이 예선에 탈락했다. 2019 도하 세계 육상선수권대회 4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거머쥔 미국 대표팀으로선 실망스러운 성적이다. 이에 미국 육상 레전드 칼 루이스(50·미국)는 미국 대표팀을 맹렬히 비판하며 실망스러움을 감추지 않았다. 미국 육상 남자 400m 계주 대표팀은 5일(한국시간) 일본 도쿄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육상 남자 400m 계주 예선 2조에서 38초 10을 기록하며 6위에 그쳤다. 육상 계주는 1, 2 조로 나눠 각 조의 상위 3팀과 상위 팀 이외의 기록이 좋은 2팀 등 총 8팀이 결선에 진출하기 때문에 미국 대표팀은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미국 대표팀은 본래 이번 계주 우승 후보로 기대를 모았지만, 각 선수끼리 배턴을 넘길 때 호흡이 맞지 않았고, 결국 평소보다 부진한 기록으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이날 루이스는 미국 대표팀을 맹렬히 비판했다. 영국 BBC에 따르면 루이스는 미국 대표팀의 예선 탈락이 “완전히 어이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루이스는 “미국 계주팀은 이번 대회에서 모든 것을 잘못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선수들이 상대에 배턴을 넘기는 것이 너무도 어색했고, 이러한 문제는 리더십의 부재에서 나온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면서 “미국 팀은 아마추어와 다르지 않다. 아니 더 나쁘다. 이번 패배는 같은 미국 육상 선수로서 완전히 어이가 없고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또 다른 레전드 마이클 존슨 역시 미국 대표팀을 비판했다. 그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대표팀의 행동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했다. 존슨은 “계주에서 배턴을 교환하고 전속력으로 뛰려면 연습이 필요하다. 대표팀의 행동은 연습이 없었음을 보여준다. 부끄럽고 우스꽝스럽다”며 부족했던 계주 훈련을 꼬집었다. 서지수 인턴기자 2021.08.05 19:14
야구

[야구로읽다]쿠바, 야구, 그리고 피델 카스트로

"내가 공을 좀 던지냐고요? 내 커브는 아주 위협적입니다. 그래서 생명의 위협을 느낀 타자들은 타석에서 벗어나면서까지 내 공을 피하죠.(웃음)" 피델 카스트로가 1991년 어느 인터뷰에서 한 농담이다. 1959년 쿠바혁명 전에 피델이 메이저리그 워싱턴 세네터스의 트라이아웃에 참여했다는 소문은 그 자신이 밝힌 대로 사실이 아니다.비록 야구 실력은 프로가 아니었지만 피델의 야구 사랑은 어떤 야구팬보다 뜨거웠다. 피델뿐 아니다. 쿠바 사람들의 야구 사랑은 신앙 수준이다. 시가를 안 피우는 쿠바인은 봤어도 야구를 싫어하는 쿠바인은 보지 못했다. 심지어 아바나 도심 공원에는 야구광들이 매일 나와 열띤 토론을 벌이는 ‘뜨거운 모서리’라는 명소가 따로 있을 정도다.“댁은 어디서 왔소? 차이나?” 한 노인이 내게 물었다.“한국요.”“북한? 남한?”“남한요.”“그래? 반갑네. 거기도 펠로타(야구) 좀 하지?”“씨. 도스밀우초 베이힝 올림피코!”(네, 2008 베이징올림픽!)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2008년 김경문 감독이 이끈 올림픽 대표팀이 결승전에서 쿠바를 꺾고 금메달을 딴 일을 나만 기억하고 있는 것 같진 않았다.19세기 중반 미국에서 들어와 오늘날까지 국민 스포츠로 사랑받는 야구를 쿠바인들은 스페인어로 ‘베이스볼’(Beisbol)이 아닌 ‘펠로타’(Pelota·공)라고 부른다. 마치 미국인들이 야구 경기를 ‘볼 게임’, 그리고 야구장을 ‘볼 파크’라고 부르듯이.쿠바의 첫 프로팀은 1872년에 창단됐고, 6년 뒤에는 쿠바리그가 탄생했다. 빠르게 성장한 쿠바 야구는 1881년 이미 미국팀과 친선경기를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카리브해의 기후상 가을에 시작해 봄에 끝나는 정규 리그는 현재 18개 구단으로 이뤄져 있다. 수도 아바나에는 두 개 팀이 있다. 혁명 전까지만 해도 ‘겨울리그’에서 몸을 풀기 위해 베이브 루스, 윌리 메이스, 토미 라소다 같은 메이저리그 ‘레전드’들이 쿠바에서 야구를 했다. 20세기 초부터 쿠바 선수들은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쿠바 출신 스타 역시 한둘이 아니다. 혁명정부가 들어선 이후 피델과 파르티잔 동지들은 자기들끼리 ‘수염 달린 사내들’이라는 팀을 만들 정도로 야구를 좋아했다. 1957년 바티스타 정권과 무력 투쟁이 막바지로 치달은 가을, 그들은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마지막 경기 중계를 듣기 위해 공세를 잠시 중단하기도 했다.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따로 있다. 피델은 은퇴 후에도 아디다스 체육복만 입을 정도로 골수 반미주의자였다. 그가 반세기 이상 통치한 공산주의 국가에서 어떻게 야구가 성행할 수 있었을까? 일부 미국 야구사학자들은 '피델이 미국이 만들어 낸 스포츠로 미국을 제압하고 싶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합리적인 이유들이 있다.첫째, 피델은 스포츠를 훌륭한 선전 도구로 활용했다. 혁명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스포츠 정책을 우선순위에 두고, 모든 인민이 스포츠를 부담 없이 즐기고 참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냈다. 개개인의 재능과 열정만 있다면 쿠바에서는 누구나 세계적인 운동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다.쿠바는 야구 외에도 권투, 배구, 육상 등 분야에서도 세계 정상급 선수들을 배출해 냈다. 역대 팬암게임 메달 수를 집계해 보면 미국 다음이 쿠바다. 캐나다·브라질·아르헨티나·멕시코와 베네수엘라가 그 뒤를 따른다. 쿠바의 인구와 경제력을 고려하면 실로 엄청난 결과다. 역대 하계올림픽 성적 역시 놀랍다. 1992년부터 2000년까지 쿠바는 메달 순위 10위권에 꾸준히 진입했다.이런 결실은 쿠바의 국위 선양에 크게 기여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국가 이미지를 개선한 것은 물론이고 기량이 뛰어난 운동선수들을 통해 쿠바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국제적으로 알릴 수 있었다. 세계인들은 쿠바의 예술과 더불어 스포츠를 통해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를 매력적인 문화 강국으로 인식하게 됐다. 둘째, 혁명정부가 들어섰을 때 야구는 이미 100년 정도 뿌리내려 쿠바의 전통문화로 자리 잡고 있었다.1990년대 소련이 붕괴하자 쿠바는 극심한 경제난에 빠졌다. 쿠바의 수출입은 5분의 1로 줄고 GDP는 3분의 2로 줄었다. 그 고난의 시기에도 쿠바인들은 야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전기가 부족해 야간 경기가 사라졌고, 선수들은 글러브를 나눠 써야 했다. 관중은 파울볼은 물론, 홈런볼까지 경기 진행을 위해 다시 구장 안으로 던져 줘야 했다. 2000년 올림픽에서 준우승을 한 쿠바 대표팀 선수들이 그 시절에 성장했다.셋째, 쿠바인들은 정부와 국가를, 또 국가와 국민을 분리해서 생각할 줄 아는 현명한 사람들이다. 반세기 이상 이어진 미국과 정치적 대립과는 무관하게 미국을 향한 적개심이나 증오심은 크지 않다. 이는 야구를 포함한 문화적 교류가 두 나라 간에 오랫동안 밀접하게 이어져 왔기 때문이기도 하다.비록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야구는 미국인들만의 스포츠가 아니다. 어차피 문화란 흐르고 진화한다. 문화적 교류는 단순한 소통을 넘어 정치적 갈등을 치유하기도 한다. 1999년 피델은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초청해 친선경기를 치렀고, 2002년 지미 카터 전직 미국 대통령이 쿠바를 방문했을 때도 야구가 큰 역할을 했다. 카터는 쿠바인들에게 생중계된 연설에서 미국 정부는 대(對)쿠바 금수 조치를 풀어야 하고, 쿠바 정부는 인민에 언론과 집회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예상치 못한 카터의 발언에 쿠바 정부는 난감해했다. 피델은 이런 돌발 상황을 일체 언급 않고 카터를 야구 경기에 초대했다. 그리고 카터에게 경호원 없이 내야로 들어가 시구를 던져 달라고 부탁했다. 당연히 미국 측은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피델은 카터에게 쿠바 인민을 향한 신뢰를 보여 달라고 다시 청했고, 카터는 이를 받아들였다. 피델과 단둘이 마운드로 걸어 나와 시구를 던졌다. 그러자 쿠바인들은 열렬한 환호로 답했다. 피델은 트레이드마크인 '장시간 연설'처럼 시간의 제약을 전혀 받지 않는 야구를 ‘진짜로’ 좋아했다. 혁명가이자 사상가였던 피델은 방망이를 적에게 휘두르지 않고, 돌이 아닌 공을 던져서 공정한 승부를 겨루는 경기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었다.11월 25일 피델 카스트로가 향년 90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젊은 시절 내란죄로 법정에 선 그는 "역사가 나를 용서할 것이다!"고 외쳤다. 피델 카스트로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아직 분분하다. 역사적 심판이 내려지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러나 적어도 야구를 사랑하는 여러 세계인들은 오래전에 그를 ‘용서’한 것 같다. 정승구 영화감독·작가.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하버드대에서 정책학을 공부했다. 을 썼다. 2016.12.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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