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단독인터뷰] "승격 기다린 2주, 축구인생 가장 긴 시간이었죠"…성남 일으킨 '호랑이 감독' 남기일
"승격 확정 소식에 선수와 코칭스태프를 불러 조촐하게 맥주 한잔했습니다. 경기 직후에 승격이 결정된 것처럼 기뻐하더라고요. 이제야 한숨 돌립니다."그 어느 때보다 긴 2주를 보낸 성남 FC 남기일(44) 감독을 K리그1(1부리그)로 승격이 확정된 다음 날 아침 성남 야탑동의 탄천종합운동장에서 만났다. 올 시즌 아산 무궁화에 이어 K리그2(2부리그) 2위를 차지한 성남은 지난 19일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아산의 승격 자격을 박탈하면서 자동 승격이 결정됐다. 오랜만에 두 다리를 쭉 뻗고 잤다는 그는 곧바로 새 시즌 준비 작업에 돌입할 예정이라고 했다. 한 시즌을 쉴 새 없이 달려온 만큼 피곤해 보였지만 웃음을 잃지 않았다. "지금부터는 새 시즌을 준비해야 한다. 내가 경험한 1부리그는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다. 팀을 재정비하고, 내년에 맞춰 선수단을 구성할 예정이다. 사실 선수 구상은 이미 마무리 단계다. 시즌은 끝났지만, 쉴 시간이 많지 않다.(웃음)" 남 감독은 '무너진 명가' 성남을 강등된 지 2년 만에 1부리그에 올린 구세주다. 2016년 강등된 성남은 이후 시의회로부터 예산이 삭감되며 어려운 시기에 접어들었다. 2017년 박경훈 감독을 영입해 분위기 반전을 노렸지만, 4위에 그쳤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예산 압박까지 더해져 황의조(감바 오사카) 김두현(네그리 셈빌란) 등 간판선수들을 줄줄이 내보냈다. K리그 최다 우승(7회) 기록을 보유한 전신 일화 시절의 위상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남 감독은 2017년 12월 날개 없이 추락하는 성남의 지휘봉을 넘겨받았다. 남 감독은 일화 시절인 2005~2008년 선수로 뛰며 87경기에서 17골 11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전성기를 함께한 스타 출신이다. "감독 제의를 받을 때 구단으로부터 팀을 리빌딩할 수 있도록 시간을 두고 기다려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하지만 어디 감독 마음이 '편하게 하라'고 한다고 편하게 되나. 오히려 부담감이 많았다. 성적에 욕심이 없는 지도자가 어디 있겠나. 지난 시즌보다 높은 순위에 오르자는 목표를 세웠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잘할 줄은 몰랐다. 선수들과 팬들에게 고맙다." 승격하는 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당초 프로축구연맹은 지난 5일 열린 이사회에서 신규 선수 모집을 중지하기로 한 아산의 승격권을 2위 팀에 넘겨주는 것으로 결정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19일까지 결정을 유예하기로 했다. 경찰청이 선수 충원 중단 계획을 철회할 시간을 더 준 것이다. 남 감독에게 승격이 확정되기까지 2주간의 기다림은 피를 말리는 시간이었다. 2~5위 팀이 벌이는 승격 플레이오프를 대비해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가장 마음이 복잡했던 2주다. 아산은 존폐 위기였으니, 연맹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했다. 동시에 플레이오프도 생각해야 했다. 선수단 훈련부터 시작해서 심리적인 부분까지 고려하느라 하루하루를 고민 속에 보냈다. 경기에서 이기고 있을 때 시간이 안 가는 것만큼이나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하루에도 수차례 인터넷으로 새로운 소식이 없나 찾아봤다.(웃음)" 흔들리는 조직력을 단단하게 다진 것도 남 감독의 성과다. 그는 국가대표 출신 센터백 윤영선과 임채민을 중심으로 강력한 전방 압박을 펼친 뒤, 에델과 정성민을 앞세운 빠르고 날카로운 공격으로 상대를 제압했다. 성남은 4월 중순 1위에 오른 뒤 줄곧 아산과 선두 싸움을 벌였다. 비결은 철저한 '카리스마 리더십'이다. 남 감독은 선수들 사이에서 '호랑이 감독'으로 통한다. 젊은 지도자지만, 감독과 선수 사이에는 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흔히 볼 수 있는 감독과 선수 사이의 '단체 톡방'도 없다. 팀이 잘될 때는 '형님 리더십'이 좋지만, 어려울 땐 그 관계 때문에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찬규 성남 홍보팀장은 "감독님은 강력한 카리스마로 팀을 이끄는 분"이라면서 "평소 선수들에게 어려운 존재"라고 말했다.대신 미팅을 통해 선수들과 '스킨십'한다. 시즌 중 보통 일주일에 3~4번이나 미팅 자리를 갖는다. 20~30분간 선수들과 상대를 분석하고 부족한 부분을 논의한다. "선수들에겐 힘들 수 있지만, 미팅을 통해 선수들과 소통한다. 미팅하는 횟수가 줄면 잘하고 있다는 뜻이고, 늘어나면 지적할 일이 많다는 뜻이다. 효과는 좋다. 득점 장면 중 상당수는 미팅에서 오간 부분을 보완해서 이뤄졌다." 딱 한 번 '형님'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바로 '티타임' 때다. "선수들이 말 못 할 고민이 있다는 게 감지되면, 개인적으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들어 주는 편이다. 단체로 있을 땐 무서울지 몰라도 둘이 마주하면 친형처럼 부드럽다.(웃음)" 광주 FC 감독으로 1부리그 승격을 일궈 낸 경험은 큰 도움이 됐다. 남 감독은 2014년 K리그2 4위를 이끌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강원 FC와 안산을 차례로 격파하고 K리그1에 오르는 기적을 썼다. "2부 리그는 1부에 비해 선수들의 경기력에 기복이 크다. 그래서 심리적인 부분에 중점을 둬야 했다. 나는 광주 시절부터 훈련이나 경기를 앞두고 '우리는 하나다'를 외쳤다. 너무 평범한 구호라서 선수들이 처음엔 웃었다.하지만 이 간단하면서 평범한 한마디는 힘든 상황에서 선수들을 똘똘 뭉치게 하는 힘이 있다. 그런 상황이 오면 선수들이 먼저 '하나'를 외치더라. 성남에서도 선수들의 심리를 안정시키고 동기부여를 돕는 게 우선이었다. 승격은 두 번째였다. 처음부터 승격에 대한 이야기는 아예 꺼내지도 않았다. 그 덕분에 올 시즌 크고 작은 위기가 있었지만, '우리는 하나다'라는 끈끈함으로 넘겼다. 이 말에 특별한 힘이 있다고 믿는다." 남 감독은 공부하는 지도자다. 그는 현역 시절이던 2009년 경희대 스포츠경영대학원에서 ‘프로축구 지도자의 리더십 유형에 따른 조직유효성 결정요인에 관한 연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축구로 머리가 복잡할 땐 책을 통해 영감을 얻는다고 했다. "주로 '역사'나 '결정'에 관련된 책을 읽는다. 감독은 축구 한 가지 생각에만 매몰되기 쉬운데, 여러 권을 동시에 읽으면서 다방면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다." 남 감독은 올 시즌 승격팀으로 K리그1 2위까지 오른 경남 FC의 돌풍을 재연하겠다는 각오다. "경남의 2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동화 같은 일이죠. 나도 경남의 경기를 자주 보며 연구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더 큰 꿈을 꾸고 있어요. 좋은 성적은 물론이고 뜨거운 응원을 보내 주시는 우리 팬들로 탄천경기장을 가득 채워 보고 싶습니다. 1부 리그에서 팬들과 함께 호흡하는 성남의 2019년, 기대하세요." 성남=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2018.11.21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