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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쿠팡거지·배달거지·당근거지…급성장 IT 플랫폼에 쏟아지는 거지들

최근 '거지'라는 단어를 조합한 신조어가 난립하고 있다. '쿠팡거지' '배달거지' '당근거지' '벼락거지'가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경제·사회 현상이 일상 삶에 파고들면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분노가 이 신조어 속에 녹아 있다고 입을 모은다. 동시에 극복할 수 없는 사회적 격차에 대한 자조와 우울감도 섞여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넘쳐나는 ○○거지들 쿠팡이츠는 지난달말 쿠리어(쿠팡이츠 라이더)들이 배달을 마친 뒤 배달 파트너 앱으로 사진촬영을 해 올리는 기능을 테스트하겠다고 밝혔다. 갈수록 늘어나는 이른바 '쿠팡거지'를 막기 위해 짜낸 고육지책이다. 쿠팡거지란 음식을 고의로 다른 장소에 시키고 음식을 못 받았다고 항의한 뒤 환불받고, 해당 장소에서 음식을 찾아가 공짜로 밥을 먹는 블랙컨슈머를 일컫는 신조어다. 코로나19로 비대면 배달이 늘어나면서 쿠팡거지때문에 피해를 보는 라이더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쿠팡거지라는 단어가 만들어지고 널리 퍼지기 시작한 배경이다. '배달거지'도 등장했다. 배달거지는 치킨 등 음식을 배달하는 라이더가 중간에 음식 일부를 취식하고 남은 것을 소비자에게 전하는 배달원을 뜻한다. 지난해 온라인 게시판에는 일부 라이더들이 음식을 배달하다 말고 닭 다리 몇점을 집어 먹는 CCTV 영상이 공개되면서 파문이 일었다. 배달거지가 논란이 되자 국내 대표 배달 음식인 치킨 프랜차이즈들은 치킨이 담긴 포장을 테이핑하거나 봉인하는 방안을 내놨다. 인기 중고거래 앱 당근마켓에서도 '당근거지'라는 단어가 유행 중이다. 당근에 무료로 나온 물건을 받은 뒤, 이를 비싼 가격에 되파는 이용자들을 일컫는다. 이밖에도 아파트 가격이 단기간에 수억 이상 오르면서 생겨난 '벼락거지', 비트코인 가격 급등으로 재테크를 하지 않은 사람만 바보가 됐다는 의미의 '코인거지'라는 신조어도 있다. 거지의 사전적 정의는 '남에게 빌어먹고 사는 사람', 즉 걸인이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남에게 얻어먹어야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진짜 거지'는 줄어드는 추세다. 그런데 최근 온라인에는 이런 새로운 형태의 거지들이 수없이 등장하고 이슈의 중심에 서는 추세다. 비난·자조 섞인 거지들 전문가들은 '○○거지'라는 신조어에 분노와 극복하기 힘든 격차로 인한 자조가 담겼다고 설명한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거지라는 표현은 타인의 잘못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비난을 온라인 신조어 특유의 자극적인 단어로 드러낸 것이다"고 분석했다. 앱을 통한 배달문화나 중고거래와 같은 신종 온라인 플랫폼은 최근 수년 사이에 일상에 스며들었다. 그러면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부정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이를 '거지'라는 센 표현으로 표출한다는 것이다. 정 문화평론가는 "거지란 단어 속에는 남을 향한 비난과 함께 스스로에 대한 비하나 자조도 섞여 있다. 비대면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라이더'를 직업으로 삼은 이가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19로 경기도 어려워지면서 언제든 나도 쿠팡거지·배달거지·당근거지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고 했다. 거지를 섞은 신조어가 많이 생겨날수록 '나도 너희와 다를 바 없거나 비슷하다' '나 역시 그런 일을 겪을 수 있다'는 자기 비하도 저변에 깔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거지가 모두 나쁜 건 아니다. 거지를 붙인 신조어가 이슈로 떠오르면서 비로서 자정안이 마련되기도 한다. 정 문화평론가는 "과거 '파워블로거지'란 신조어가 화두가 됐다. 포털사이트에서 블로그를 운영하는 파워블로거들이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리뷰를 써준다면서 음식값을 지불하지 않자 등장한 단어다. 인기 파워블로거들이 상당수 추락하는 계기가 됐다"고 지적했다. 파워블로그를 통해 유입 숫자를 늘리던 포털사이트도 단속을 시작했다. 협찬을 받은 물품을 소개할 경우 반드시 이 사실을 명시하도록 한다거나, 광고성이 짙은 글을 반복해 올리는 파워블로거를 퇴출했다. 쿠팡이츠가 쿠팡거지 문제가 되자 사진 촬영 기능을 도입 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정 문화평론가는 "거지라는 단어는 우리 삶에 큰 영향력을 뻗치기 시작한 이커머스 등 신규 플랫폼에서 자주 표현된다는 특징이 있다. 신조어에는 우리의 현실이 반영된다"고 말했다. 서지영 기자 seo.jiyeong@joongang.co.kr 2021.05.1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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