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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맨발이다-83] 남양주종합촬영소 건립의 내막(하)
1970년대 초 TBC가 주최한 행사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이병철 삼성그룹회장·JP·영화배우 신성일·하나 건너 패티김(오른쪽부터). 신성일은 젊은 시절부터 명사들과 잦은 교류를 가졌다. 내가 몸 바치고 있는 영화계를 위한 일이었기에 물러설 수 없었다. 종합촬영소 건립 과정에서 큰 걸림돌이 있었다. 종합촬영소 건립 반대를 주장하는 영화제작자협회를 중심으로 이름 있는 일부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를 합쳐 100여 명의 진정서를 쥔 장병조 청와대 사회교육문화 비서관이 내게 마음을 열어보인 것은 새벽 1시 무렵이다. 장 비서관은 경북고 1년 후배다. "진정서가 들어왔는데, 어떻게 할 지 아직 결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정서의 내용은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당시 영화진흥공사 사장)으로부터 들어 잘 알고 있었다. 장 비서관은 다시 한 번 물었다. "선배님, 절대 사적인 일이나 이해관계가 있는 건 아니죠?""이건 영화계 백년대계의 사업이야." "알겠습니다. 선배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장 비서관은 우리 편이 됐다. 노태우가 집권하는 88년 13대 국회는 여소야대 정국이었다. 200억원이나 되는 종합촬영소 예산을 확보하려면 국회 통과와 경제기획원 승인이 필요했다. 먼저 호형호제하는 민주당 정대철 국회 문광위원장과 만났다. 정 위원장은 내 이야기를 자세히 듣더니 물었다. "형,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국회 문광위에 안건 올라오면 찬반 논의하지 말고 그냥 묵인만 해줘." 김동호 위원장이 코치해준 대로 한 대답이다. 나는 여당인 민자당 간사를 맡고 있는 함종한 의원을 찾아갔다. 종합촬영소 건립 안건을 상임위에 상정해달라고 하자, 그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야당 쪽에서 반대하지 않을까요?" 야당인 민주당 간사를 맡고 있는 강삼재 의원에게도 낙점을 받아 놓았기에 나는 자신있게 말했다. "야당 쪽에서는 아무 말 안하기로 했어요." 종합촬영소 건립 안은 국회에서 아주 순조롭게 통과됐다. 그 무렵 나는 뉴욕액팅아카데미 설립 문제로 뉴욕행 비행기를 탔다. 그 비행기가 알래스카를 경유하는 동안, 승객들은 한 시간 가량 앵커리지 공항에서 대기해야 했다. 박준규 국회의장의 비서실장인 김천 출신 박정수 의원(부인 이범준 박사)이 마침 거기 있는 것 아닌가. 박 의원은 박 의장을 모시고 뉴욕에 간다고 했다. 알고 보니 나는 1층 비즈니스석에, 박 의원과 박 의장은 2층 퍼스트 클래스석에 타고 있던 것이다. '이 때다' 싶어 박 의원에게 간곡히 부탁을 해 박 의장 옆좌석에 앉게 됐다. 뉴욕에 가는 기내에서 박 의장에게 영화계의 현황과 종합촬영소 건립의 필요성을 설명드렸다. 경북고 총동문회장인 박 의장은 7선 국회의원으로 파워가 막강했다. "알았어, 내 도와줄께." 박 의장은 경제기획원에서 승인이 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신영균의 민자당 성동 갑구 지구당 개편대회에서 박 의장이 축사 중 종합촬영소 건립 예산 20억원이 결정됐다는 사실을 직접 발표했다. 정부는 이 20억원을 발판으로 종합촬영소 건립에 필요한 200억원을 지속적으로 투자했다. 남양주종합촬영소는 아날로그 시스템에서 디지털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위해 450억원 가까운 돈이 투자되어야 했다. 남양주종합촬영소 소장인 김덕행의 요구를 들은 나는 16대 국회 문광위 시절엔 남양주종합촬영소 디지털 시스템을 완성시켰다. 20여년이 흐른 지금, 남양주종합촬영소는1200억원대의 큰 자산이 됐다. 원래 종합촬영소 터로는 용인 민속촌이 물망에 올랐다. 당시 인수가격이 예산과 꼭 같은 200억이었다. 그러나 민속촌이 비행기 항로여서 동시 녹음을 할 수 없는 점 때문에 남양주로 결정됐다. 정리=장상용 기자 [enisei@joongang.co.kr]
2011.08.17 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