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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다시, 홍콩④] "아뵤~" 이소룡의 노란 운동복 고이 모셔둔 헤리티지 박물관

'네온사인의 도시' 홍콩이 엔데믹(풍토병화)을 거치며 새로운 매력으로 여행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비행기가 날개를 접었던 코로나19 이전의 54% 수준으로 여행 수요를 회복했다. 한국에서 비행기로 서너 시간이면 닿는 홍콩에 다시금 여행객들의 발길이 몰리는 이유는 뭘까. 3박 4일간 중국인 듯 영국 아닌 홍콩을 짧으면서도 알차게 즐기는 방법을 살펴봤다. 지난 6일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조금이라도 홍콩을 더 느끼기 위해 샤틴으로 이동했다. 여행객들로 붐비는 구룡반도와 홍콩 섬을 벗어나니 산 너머에 또 다른 홍콩이 고개를 들었다.샤틴은 어업과 농업에 기반을 둔 시골이었지만 1970년대를 지나며 신도시로 탈바꿈했다. 궂은 날씨 속 고층 아파트들이 흐린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산으로 둘러싸인 샤틴을 관광 명소로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곳을 지날 때 꼭 들러야 하는 곳이 있다. 바로 홍콩과 남중국의 문화·예술 역사를 한데 모은 '홍콩 헤리티지 박물관'이다.홍콩을 넘어 세계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배우 이소룡의 팬이라면 필히 목적지로 추가해야 한다. 본격적인 전시 관람에 앞서 전날처럼 식사에 차를 곁들이는 차찬텡으로 간단히 허기를 채운다.일찍 일어난 탓에 이번에도 밀크티 대신 진한 블랙커피를 시켰다. 커피의 양과 색은 비슷하지만 식당에 따라 맛이 다르다. 적당하다고 느꼈던 전과 달리 훨씬 진해 정신이 번쩍 들었다.햄 오믈렛은 조금은 싱거운 수프에 담긴 마카로니와 함께 나왔다. 한국의 비슷한 음식과 비교해 맛의 차이는 없지만 따뜻하게 속을 달래기에 충분했다. 곧장 발길을 옮긴 헤리티지 박물관 입구 앞에는 실제보다 커 보이는 이소룡의 동상이 범상치 않은 자세로 관람객들을 맞이한다.글로벌 액션스타 이소룡은 1940년 미국에서 태어나 생후 3개월 홍콩으로 이주해 어린 시절을 보내며 23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18세에 다시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TV 시리즈에서 현지 시청자들에게 중국의 무술을 소개했다.1971년에는 홍콩에서 '당산대형', '정무문', '맹룡과강', '용쟁호투', '사망유희' 등 5편의 명작을 탄생시켰다. 이소룡은 절권도를 창시한 무술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1973년 33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해 팬들의 슬픔을 샀다. '평범함을 넘어선 남자: 브루스 리(이소룡)' 전시관 안에 들어간 이후에는 아쉽게도 사진 촬영을 할 수 없다. 하지만 덕분에 두 눈으로 이소룡의 발자취를 온전히 따라갈 수 있다.이소룡이 즐겨 입었던 옷과 안경, 가방, 워싱턴대 연극학과 수료증 등은 물론 영춘권으로 이름을 떨친 엽문의 제자이자 절친인 장탁경에게 보낸 자필 편지 등 쉽게 볼 수 없는 전시품 400여 점을 만나볼 수 있다.또 이소룡이 썼던 줄넘기와 펀칭백, 헤드기어를 비롯해 아내 린다와 아들 브랜든, 딸 섀넌과 오붓하게 찍은 가족사진을 감상할 수 있다.하이라이트는 전시장 끝자락에서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이소룡의 노란색 운동복이다. 사망유희에서 입었던 의상이다.대다수 팬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이소룡은 이 옷을 입고 있다. 나도 모르게 엄지손가락으로 코를 튕기며 속으로 '아뵤~'를 외치게 만든다. 헤리티지 박물관에는 12개의 전시관이 있는데, 제대로 살펴보려면 충분한 시간을 들여야 한다.출국까지 시간이 모자라 다음으로 관심이 가는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지금의 한류 콘텐츠처럼 아시아에서 최고로 꼽혔던 추억의 홍콩 영화와 가요를 모은 '홍콩 팝 60+' 전시관으로 들어갔다.이 전시회는 2차 세계대전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홍콩의 대중음악과 영화, TV, 라디오 프로그램, 만화, 장난감 등의 변화에 초점을 맞췄다. 1000개 이상의 전시품은 홍콩이 어떻게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는지 보여준다. '영웅본색', '첨밀밀', '무간도', '황비홍', '취권' 등 명작들의 포스트 앞에 서면 잠시 동안 특유의 감성에 젖는다. 곳곳에 설치된 옛날 브라운관 TV에서 명장면들이 스쳐 지나간다.투명 케이스 안에 소중하게 모신 홍콩의 국민 가수 허관걸의 어쿠스틱 기타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2004년 사스(SARS, 급성호흡기증후군) 확산으로 경제적·심리적으로 힘들었던 국민의 아픔을 노래로 치유해 줬다는 설명이다.홍콩 여행 첫날 방문한 엠플러스 뮤지엄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었다면, 헤리티지 박물관에서는 우리가 익히 아는 홍콩의 얼굴을 보며 추억을 되새길 수 있다. 홍콩과의 아쉬운 작별을 차분하게 정리하기에 최적인 공간이다.홍콩=정길준 기자 kjkj@edaily.co.kr 2024.04.11 07:00
해외축구

셔츠 비싸게 파는 토트넘, 구장 이름은 왜 안 팔릴까 [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1899년부터 2017년까지 토트넘의 홈구장은 ‘화이트 하트 레인(White Hart Lane)’이었다. 토트넘은 이 구장에서 118년 동안 2533경기를 치렀다. 2차 세계대전 때는 아스널의 홈구장이었던 하이베리가 공습예방 센터로 변모했기 때문에, 전시에 두 라이벌 클럽은 화이트 하트 레인을 공유한 적도 있다. 이외에도 1935년 잉글랜드와 나치 독일대표팀의 경기가 이곳에서 열렸을 때는, 토트넘의 전통적인 지지기반인 유대인들이 거센 항의를 하기도 했다.21세기 들어 토트넘은 더 많은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최신식 구장 건설에 박차를 가한다. 2017년 5월 토트넘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를 상대로 한 마지막 홈경기에서 2-1로 이겼다. 그 후 화이트 하트 레인은 철거됐고, 그 자리에 토트넘의 새 홈구장이 들어선다. 토트넘은 새 홈구장을 건설하기 위해 무려 12억 파운드(1조 8340억원)를 투자하며 막대한 빚을 졌다. 클럽은 새 구장의 ‘네이밍 라이트(naming rights, 경기장 명명권)’를 판매해 적자를 메울 계획이었다. 2019년 토트넘의 다니엘 레비 회장은 ‘B2B(Business-to-Business, 기업과 기업 사이의 거래가 기반인 모델) 브랜드보다는, 일반 소비자를 상대하는 평판이 좋은 브랜드와 적절한 가격에 계약하고 싶다고 밝혔다. 레비는 이러한 기준이 충족 안 되면 명명권을 판매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여기서 퀴즈를 하나 내고 싶다. EPL의 20개 팀 중 시즌 티켓이 가장 비싼 클럽은 어디일까? 토트넘이다. 2022~23시즌 토트넘의 시즌 티켓 가격은 최저 807, 최고 2025파운드를 기록해 1위에 올랐다. 2위 아스널의 티켓 가격은 927~1839파운드다. 토트넘, 아스널과 비교하면 맨체스터 시티(350~980파운드), 맨유(532~950파운드), 리버풀(685~869파운드)의 시즌 티켓 가격은 착하게 보일 정도다. 아스널과 토트넘의 비싼 티켓 가격은 2006년과 2019년에 각각 개장한 그들의 새 홈구장과도 연관이 깊다. 물론 런던의 비싼 물가도 영향을 미쳤다.다시 한번 퀴즈를 내겠다. EPL에서 가장 비싼 가격에 레플리카 셔츠를 파는 클럽은? 역시 토트넘이다. 토트넘은 EPL에서 ‘빅 6’의 한 팀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다른 5개 클럽이 이룩한 성과에 비해 토트넘의 성적은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초라하다. 토트넘의 마지막 1부 리그 우승은 1961년이다. 1부 리그 우승 횟수도 두 번에 불과하다. FA컵은 통산 8번 정상에 올랐지만, 1991년 이후로 우승한 적이 없다. 토트넘은 21세기 들어서도 트로피를 단 한 번 들어 올렸을 뿐이다. 토트넘은 새 구장의 명명권 판매로 연간 2500만 파운드(405억원)가 넘는 금액을 원한다. 계약 기간도 10년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까지 ‘구글’, ‘아마존’, ‘나이키’, ‘애플, ‘HSBC’, ‘페덱스(FedEx)’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토트넘과 협상을 벌였으나, 모두 결렬됐다. 구장을 개장한 지 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명명권 계약에는 진전이 없다. 명명권을 팔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값어치는 하락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러한 시간이 지속될수록 새 구장의 이름은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으로 고착될 것이고, 이렇게 되면 명명권 판매는 더욱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명명권 계약이 성사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토트넘과 시장이 생각하는 가격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토트넘은 런던에 위치한 이점과 최신식 구장임을 내세워 역대급 계약을 노리고 있다. 하지만 구매자인 기업 입장에서는 토트넘이라는 브랜드가 고가의 계약을 체결할 정도로 매력적이지 않다. 다시 말해 맨유나 리버풀 같은 브랜드가 창출하는 가치를 토트넘은 제공하지 못한다.클럽은 브랜딩을 통해 자신만의 정체성을 만들어 경쟁자들 사이에서 돋보여야 한다. 강력한 브랜드를 구축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팬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팬은 클럽의 중심이기에, 그들이 팀에서 무엇을 보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토트넘 팬들은 ‘실버웨어(silverware, 영국 영어 속어로 트로피를 의미)’를 갈망한다. 하지만 팬들은 우승에 대한 야망이 크지 않은 클럽의 현 경영진을 보며 절망하고 있다. 토트넘은 최신식 구장과 최고의 트레이닝 시설을 갖고 있다. 게다가 팬들은 EPL에서 가장 비싼 티켓 가격을 지불하고 있으며, 최고가로 매겨진 셔츠를 산다. 그러나 이렇게 모든 것이 최고이고 제일 비싼 데도 불구하고, 거기에 상응하는 축구를 볼 수 없다는 사실에 팬들은 좌절한다. 이들을 더욱 짜증 나게 만드는 것은 클럽이 마지막 우승을 차지한 2008년 이후 총 61명(선수 57명, 감독 4명)이 토트넘을 떠난 이후 우승했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획득한 트로피 숫자만 무려 189개다.토트넘의 레비 회장은 축구보다 비즈니스를 우선시한다. UEFA(유럽축구연맹)이 2024년 2월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토트넘은 경기당 560만 유로(82억원)을 벌어, EPL에서 1위를 차지했다. 유럽축구리그 전체를 통틀어도 바르셀로나(760만 유로), PSG(660만 유로)에 이어 토트넘은 3위에 올랐다. 4위부터 8위까지는 바이에른 뮌헨(520만 유로), 아스널(490만 유로), 레알 마드리드(480만 유로), 맨유(380만 유로), 리버풀(370만 유로)이 차지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된 클럽들보다 토트넘이 성공했다고 평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판매나 시장 점유율이 올라간 것으로 성공 여부를 평가하는 대부분의 산업과는 달리, 축구 클럽의 성공 여부는 성적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부진한 성적을 거둔 클럽의 브랜드 가치는 하락한다. 또한 성적이 뒷받침되지 않는 클럽이 펼치는 부수적인 마케팅은 성공하기 힘들다. 따라서 토트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들의 ‘중요 제품(core product)’인 축구에서 성적을 내는 것이다.경희대 테크노경영대학원 객원교수 2024.03.22 18:00
해외축구

축구를 ‘사커’로 불러도 발끈하지 말자 [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2022 카타르 월드컵 B조에서 만난 잉글랜드와 미국은 경기를 하기 전부터 으르렁거렸다. 축구의 명칭을 두고 ‘풋볼(football)’과 ‘사커(soccer)’로 대립한 것이다. 이 경기를 전후해 소셜미디어(SNS)에서 풋볼이란 명칭을 지지하는 팬들은 “이 경기는 사커가 아니다”는 주장을 끊임없이 제기했다. 반면 미국 팬들은 “이것은 사커”라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조 2위로 16강에 진출한 미국의 다음 상대는 네덜란드였다. 경기에 앞서 트위터 영상에 등장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대표팀을 응원하며 ‘풋볼’과 ‘사커’라는 호칭에 관한 해묵은 논란을 재개했다. 영상 속의 대표팀 주장 타일러 아담스는 카타르 축구장에서 7000마일 떨어진 백악관으로 공을 찼다. 백악관에서 축구공을 집어 든 바이든은 카메라를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It’s called soccer, GO USA(이것은 사커라고 불린다. 미국 파이팅)”이라고 말한 것이다.16강전 승자는 미국을 3-1로 이긴 네덜란드였다. 이에 네덜란드 총리 마르크 뤼터는 트위터에 “Sorry Joe, football won(조, 미안하지만 풋볼이 이겼다)”고 적고 윙크 이모티콘을 덧붙였다. 그러자 바이든은 축하를 보내면서 “Strictly speaking, shouldn't it be 'voetbal’(엄밀히 말하면 voetbal 아닌가요?)”라는 농담을 건넸다. Voetbal은 축구를 뜻하는 네덜란드어로 발음은 풋볼과 비슷하다.미국인들은 자국에서 풋볼로 불리는 미식축구와 구분하기 위해 축구를 사커라고 부른다. 이에 사커는 ‘더러운 미국주의(filthy Americanism)’의 산물이라고 말하는 축구팬들이 많다. 또한 사커를 미국의 스포츠 문화를 대표하는 ‘치어리딩(Cheerleading)’, ‘동물의 이름을 딴 팀 이름’과 동일시하는 경향도 있다. 실제로 잉글랜드 축구팬을 짜증 나게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풋볼을 사커라고 부르는 것이다. 하지만 풋볼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런 인식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알 수 있다. 공을 차고 손으로 잡는 형태의 운동은 고대 그리스, 중국의 송나라, 중앙아시아, 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 대륙의 원주민이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그럼에도 FIFA(국제축구연맹)는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 고대에 행해진 어떠한 유사한 경기도 축구와 역사적인 연관성이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중세 시대 유럽의 여러 국가와 특히 잉글랜드에서 인기를 얻은 공놀이가 있었다. ‘몹(mob, 군중)’ 풋볼이라고 불렸던 중세 경기는 선수 숫자 제한이 없어 많은 사람들의 참여가 가능했고, 규칙도 거의 없었다. 당시 풋볼은 공을 이동시키기 위해서 과실치사나 살인으로 이어지지만 않으면, 모든 수단이 용납됐다고 한다. 그러나 몹 풋볼로 인해 인명, 재산에 피해를 입히는 사례가 지속되자 이를 금지하는 법이 잉글랜드에서 여러 번 만들어졌다.19세기 영국의 ‘퍼블릭 스쿨(public school, 사립학교를 의미)’은 현대 풋볼의 탄생에 중요한 토대를 쌓았다. 퍼블릭 스쿨은 풋볼을 ‘키킹(kicking, 발차기)’과 ‘캐링(carrying, 손으로 나르기)’이라는 2개의 코드로 명확하게 구분했다.럭비 풋볼은 캐링 코드를 대표한다. 1845년 럭비 풋볼의 규칙이 처음으로 성문화된 곳이 잉글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퍼블릭 스쿨인 럭비 스쿨이다. 키킹 코드에 속하는 풋볼은 1863년 ‘Laws of the Game’으로 불리는 규칙을 만들었고, 세계 최초의 축구협회인 ‘The FA(The Football Association)’를 창설했다. 협회의 규칙에 따라 진행된 풋볼에는 ‘어소시에이션 풋볼(Association Football)’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아는 축구다. 사커란 명칭은 어소시에이션 풋볼에서 유래했다. 1870년대 옥스포드 대학교 학생들은 “association”을 줄이고 “-er”을 합쳐 “어사커(assoccer, 영국식 발음은 어소커)”를 만들었고, 같은 방식으로 럭비 풋볼은 “러거(rugger)”로 칭했다. 2차 세계대전 무렵 어사커는 더 축약되어 현재의 사커가 됐다.그저 그런 팀이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명문 클럽으로 만든 버스비의 자서전 제목에 사커와 풋볼이 동시에 쓰였다. 월드 사커는 1960년에 개간해 현재까지 발행되는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축구 잡지인데, 잡지명이 풋볼이 아닌 사커다. 이외에도 1959년 데일리 미러 신문사가 발행한 기사에도 축구를 사커로 표시했다. 1964년에 첫 방송을 한 BBC의 유명 축구프로그램인 ‘매치 오브 더 데이(Match of the Day)’도 1970년대 후반까지는 사커를 즐겨 썼다. 이렇게 오랫동안 널리 쓰였던 사커라는 단어가 1980년대 이후 영국에서 점차 모습을 감춘다. 미국의 프로축구리그인 ‘NASL(North American Soccer League)’이 70년대 후반부터 축구 스타 펠레, 베켄바워, 크루이프, 유세비오, 조지 베스트 등을 영입하며 큰 인기를 끌자, 미국인들이 사커라는 단어를 본격적으로 썼기 때문이다. 즉 미국에서 일시적으로 사커가 인기를 얻게 되자, 이 단어는 영국에서 불결한 것이 됐다. 아일랜드의 한 신문사는 이를 가리켜 영국인의 ‘집단적 언어 기억상실증(collective linguistic amnesia)’이라고 비꼰 적도 있다. 따라서 사커라는 호칭은 축구에 대한 배신이 절대 아니다. 잉글랜드의 축구팬들이 사커라는 단어에 보이는 ‘짜증’도 무지의 산물이다.경희대 테크노경영대학원 객원교수 2024.03.15 15:00
영화

[IS포커스] ‘70주년’ 왜 다시 고질라에 주목해야 하는가

탄생한 지 70년이나 된 캐릭터(IP)를 다시 꺼내는 게 지루할 수 있다. 재탕, 삼탕을 넘어 삼십탕은 끓인 곰탕을 다시 끓여 먹는 기분. 어쩌면 ‘고질라 마이너스 원’이 나오기 전까지 고질라를 보는 세간의 시선이 그랬을지도.1954년 세상에 태어난 ‘고질라’가 올해로 70주년을 맞았다. 신을 뜻하는 영어단어 ‘갓’(God)과 일본영화 원제인 ‘고지라’를 덧붙여 만든 ‘고질라’(Godzilla). 마치 신처럼 어마무시한 힘을 가진 고질라는 일본을 대표하는 괴수다. 주목할 건 ‘괴수 영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았던 ‘고질라’가 이번에 그야말로 세계에 파란을 일으켰다는 점이다.◇‘고질라 마이너스 원’ 할리우드를 삼키다11일(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96회 아카데미 시상식.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전유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시각효과상 부문에서 ‘고질라 마이너스 원’이 호명됐을 때, 수상자는 물론 이를 지켜보는 이들까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카데미 시상식 시각효과상 부문에서 아시아 영화가 수상을 한 건 96회 만에 이번이 처음이었다. 국내에서 정식 개봉을 하지 않아 다소 뜬금없을 수 있겠지만 사실 ‘고질라 마이너스 원’은 지난해 말부터 할리우드에서 떠들썩했다. NBC 등 많은 미국 현지 매체들이 작년 한 해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깜짝 성공을 거둔 네 작품을 ‘바비’, ‘오펜하이머’, ‘사운드 오브 프리덤’, 그리고 ‘고질라 마이너스 원’으로 꼽았을 정도.영화를 만든 야마자키 다카시 감독은 약 20년 전 ‘스타워즈’ 등의 외주 작업을 하며 꾸준히 필모그래피를 쌓았는데, 이 같은 역량이 이번 ‘고질라 마이너스 원’에서 폭발했다는 평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본을 배경으로 서사를 그리는 데 충분한 시간을 쏟으며 약 1000만 달러(약 131억 원) 가량의 제작비로 전 세계적으로 약 7500만 달러(약 986억 원)를 벌여들었다. 지난해 개봉해 1억 9700만 달러(한화 약 2561억 원)를 벌어들인 마블 스튜디오의 ‘더 마블스’는 제작비가 2억 7480만 달러에 달한다. ‘고질라 마이너스 원’이 얼마나 엄청난 성공을 거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야마자키 다카시 감독은 수상 소감으로 “할리우드 밖에서도 일하는 많은 아티스트들이 있다. 우리가 이 상을 받는 것은 누구에게나 기회가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10분의 1밖에 안 되는 제작비로 돈이 전부라고 생각되는 시각효과상 부문에서 오스카 수상을 이뤘다는 점에서 “누구에게나 기회가 있다”는 야마자키 감독의 말이 실감된다. ◇할리우드에서도 익숙한 IP… “하지만 반복하지 않았다”‘고질라 마이너스 원’은 ‘고질라’ 프랜차이즈의 33번째 작품이다. 일본 관객 뿐 아니라 전 세계 관객이 고질라를 볼만큼 봤다. 무서운 고질라, 귀여운 고질라, 영웅적인 고질라 등 성격도 다양하게 변주됐다. 할리우드에서는 고질라의 영웅적인 면을 많이 부각시켰다.토호 픽쳐스는 1990년대 초반부터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고지라’라는 IP를 할리우드에 진출시키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렇게 1998년 처음으로 할리우드에서 ‘고질라’가 탄생했지만 혹평을 얻으며 약 20년 동안 더 이상의 고질라가 나오지 못 하다가 2014년 리부트된 ‘고질라’가 탄생했다. 다행히 좋은 성적을 거둔 ‘고질라’에 힘입어 2019년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 2021년 ‘고질라 vs 콩’이 속속 공개됐으며, 오는 27일 ‘고질라 X 콩: 뉴 엠파이어’가 개봉한다.야마자키 감독은 할리우드의 ‘영웅적 고질라’가 아닌 토호 픽쳐스에서 처음 설계했던 고질라의 원형인 ‘무서움’을 강조하려 했다. 우울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던 전쟁 후 일본이 배경인 ‘고질라 마이너스 원’에서의 고질라는 전쟁의 트라우마 그 자체를 상징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야마자키 감독의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겠다는 역발상은 먹혀 들었고, ‘고질라 마이너스 원’은 일본에서만 이미 제작비의 세 배 이상을 회수했고, 월드와이드에선 10배 가량의 수익을 거뒀다. 특히 ‘고질라 마이너스 원’은 토호 픽쳐스가 미국에서 직접 배급한 영화라는 데서 의미가 크다. 토호 픽쳐스가 그간 미국 시장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미국에서도 ‘고질라 마이너스 원’이 왜 그렇게 인기가 높은지에 대해 여러 이야기가 나온다. 현지 영화 관객들은 “어떻게 제작비가 저렇게 적은데 저 정도 퀄리티를 가진 블록버스터가 나올 수 있느냐”며 놀라는 분위기다. 영화 전문 사이트인 로튼토마토에서 평론가와 관객의 신선도 모두 98%에 달한다. 만점에 가까운 수치다.미국의 미디어 분석가 겸 박스오피스 전문가 폴 데어가라베디안은 ‘고질라 마이너스 원’이 “독특한 관점을 가지고 있으며 이전에 성공했던 것을 단순히 복제하려 하지 않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려 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그러면서 “관객은 ‘액션 영화’ 자체에 피로감을 느끼는 게 아니라는 것을 ‘고질라 마이너스 원’이 보여줬다. 오래된 작품이고 많이 재활용된 캐릭터라 할지라도 전통적인 통념에서 벗어나면 관객은 충분히 신선함을 느낄 수 있다. 할리우드 밖에서 대중이 ‘신선하다’고 느낄만한 콘텐츠가 나올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일본과 미국 시장을 강타한 ‘고질라 마이너스 원’이지만 한국에서 개봉은 쉽지 않을 듯 하다. ‘고질라 마이너스 원’에 일제 자살특공대 가미카제 등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탓이다. 때문에 국내에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붐이 일고 있지만 수입사들이 선뜻 택하지 못하고 있다. 정진영 기자 afreeca@edaily.co.kr 2024.03.14 05:55
연예일반

‘국뽕도 웰메이드면 조크든여’… ‘파묘’ 삼일절 연휴에 600만 간다

영화 ‘파묘’가 지난해 ‘서울의 봄’에 이어 또 한 번 한국 영화계에 단비를 뿌리고 있다. 지난 22일 개봉 이후 파죽지세로 누적 관객 수 100만, 200만, 300만을 넘어선 ‘파묘’는 이 속도대로라면 이번 주말 500만 돌파는 확실시된다. 운이 좋을 경우 600만까지도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29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파묘’는 개봉 7일째인 28일 누적 관객 수 300만을 넘겼다. 200만을 돌파한 지 고작 3일만이다. ‘파묘’는 개봉 당일 33만, 개봉주 주말 18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3일 만에 100만, 4일 만에 200만 고지를 넘었다. 개봉 4일째에 100만, 6일째에 200만, 10일째에 300만을 넘겼던 ‘서울의 봄’과 비교했을 때 ‘파묘’가 관객을 쌓아가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짐작할 수 있다.◇항일코드 담은 영화, 삼일절 특수 기대‘파묘’는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를 잇는 장재현 감독의 새로운 오컬트 작품이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있다. 영화 중후반부부터 본격적으로 풀려나가기 시작하는 또 다른 이야기가 그 주인공. 배급사 등 영화 관계자들은 이 부분이 관객들에게 스포일러로 작용할까 싶어 시사회 및 인터뷰 이후 기자들에게 수차례 영화 속 등장인물이나 캐릭터 등을 너무 직접적으로 쓰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바꿔 말하면 바로 이 부분이야 말로 ‘파묘’의 백미라는 의미다. 그냥 귀신 나오는 재미있는 영화가 아닌 ‘파묘’를 통해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었다던 장재현 감독은 ‘파묘’의 중후반부부터 갑자기 장르적 색을 바꾸는 과감한 연출을 했다. 이 중후반부에서 중요한 건 ‘항일’이다. 영화는 ‘땅’이라는, 민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요소를 활용해 땅 속에 스며든 민족의 트라우마를 정화한다. 개봉 이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0815’, ‘1945’ 등 주인공들이 타는 자동차의 번호, 독립운동가들에게서 따온 캐릭터의 이름 등 ‘파묘’ 속에 숨겨진 각종 항일코드를 찾아 공유하는 게시물이 올라왔다.박현민 대중문화평론가는 “어떻게 보면 ‘파묘’는 오컬트의 외피를 쓴 시대극, 혹은 크리처물로 볼 수도 있다”며 “오컬트라는 장르 속에 민족의 트라우마를 ‘파묘’한다는 감독의 의도를 숨겨놨다. 이는 결과적으로 관객에게 숨겨진 것을 직접 발굴하는 느낌을 안겼다”고 짚었다.이어 “‘파묘’ 스토리에서 ‘첩장’이 중요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 역시 오컬트로 교묘하게 시대극과 크리처 장르를 숨겨둔 모양새와 맞닿는다”면서 “이렇게 다른 이야기를 숨겨둘 경우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 경우도 많은데 ‘파묘’는 그렇지 않다. 그만큼 대중성과 만듦새가 훌륭하다는 것을 인정받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항일코드가 삼일절 연휴와 만난 게 특수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그 기간이 지나면 누적 관객 600만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게 영화계의 기대다.앞서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영화 ‘오펜하이머’는 광복절인 지난해 8월 15일 개봉해 무려 55만 명이란 역대급 오프닝 스코어를 썼다. 12.12 군사반란을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은 지난해 12월 12일 전후로 관객들 사이에서 누적 관객 수 1212만 명 만들기 운동이 자발적으로 일어나기도 했다. 최근 국내 극장가는 단순히 연휴가 길다고 흥한다기 보다는 이렇게 시의적으로 맞는 작품들이 나올 경우 관객들의 지지를 더 받는 경향성을 보였다. ◇국뽕? 중요한 건 ‘만듦새’평론가들이 입을 모아 말한 건 바로 영화의 만듦새다. 영화 자체가 재미있게 잘 만들어졌기 때문에 영화 속에 숨겨진 여러 코드들도 주목을 받는 것이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단순히 항일코드가 있고 삼일절이니까 영화를 보러 가지는 않겠지만, 영화를 재미있게 보는 와중에 일제강점기에 대해 알게 되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 싶다. 가족끼리 볼 수 있는 영화라는 것도 이번 연휴 스코어를 기대하게 만드는 이유”라고 밝혔다.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오펜하이머’도 그렇고 ‘서울의 봄’도 그렇고 단순히 때를 잘만나서 흥행했다기 보다는 작품이 가진 재미와 완성도가 높았기 때문에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들인 것이라고 본다”며 “당연히 삼일절 영향이 ‘파묘’에도 있겠고 호재인 건 맞지만, 그건 어쩌면 부수적인 부분”이라고 설명했다.정 평론가는 “결국은 작품이 좋다는 거다. 오컬트라는 게 마이너성이 있고, 싫어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오컬트를 ‘무섭다’고 느낀다. 그런데 ‘파묘’는 네 명이 팀을 모아 다니기 때문에 무서움이 덜하고 마치 캐릭터 무비인 것처럼 느껴진다”면서 “그렇게 영화를 재미있게 보고났을 때 마지막 즈음 일제 잔재가 가지는 의미가 관개들에게 스며들게 된다. 이런 흐름이 관객들에게 만족감을 주는 것이라 생각된다”고 말했다.이어 “게다가 삼일절이라는 연휴는 관객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계속 퍼져나갈 시간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히 호재라 할 만하다”고 덧붙였다.‘파묘’는 거액의 의뢰를 받은 무당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이 기이한 병이 대물림되는 집안의 장손을 만난 뒤 조상의 묫자리가 화근임을 알아채고 풍수사 상덕(최민식), 장의사 영근(유해진)과 함께 파묘에 나서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정진영 기자 afreeca@edaily.co.kr 2024.02.29 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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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틱은 추모의 상징 ‘포피’를 왜 거부할까? [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지난 11월 11일은 영국의 현충일인 ‘리멤브런스 데이(Remembrance day)’였다. 이날 저녁 런던의 로열 앨버트홀에서는 참전용사를 추모하는 ‘페스티벌 오브 리멤브런스’가 열렸다. 찰스 3세, 윌리엄 왕세자 부부 등 왕실 인사와 리시 수낵 총리를 비롯해 주요 정치인이 참석한 이 국가적인 행사를 BBC가 생중계했다. 특히 올해는 정전 70주년을 맞은 한국전쟁의 전사자들을 가장 먼저 추모했다. 또한 한국전의 참전용사이자 영국의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인 ‘브리튼스 갓 탤런트’에서 2019년 우승한 콜린 새커리(93세)가 아리랑을 한국어로 불러 눈길을 끌었다. 지난 칼럼에서 언급했듯이 영국은 1921년부터 참전 장병을 추모하기 위해 포피를 다는 전통이 생겼다. 1, 2차 세계대전에서 희생된 군인들을 기리기 위해 시작한 포피는 규모가 커져 현재는 세계대전 이후 영국군이 참전한 모든 전투에서 희생한 이들을 추모하는 행사로 자리 잡았다. 포피를 둘러싼 갈등도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를 구성하는 브리튼 바로 옆에는 아일랜드라고 불리는 섬이 있다. 12세기부터 무려 700여년간 영국의 지배를 받은 아일랜드는 1922년에 독립, 아일랜드 공화국으로 탄생했다. 하지만 아일랜드의 총 32개 카운티 중 26개만 독립에 성공했다. 17세기 초 북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남부에서 이주한 신교도가 많은 아일랜드 북쪽에 위치한 얼스터 지방의 6개 카운티는 지금도 영국이 지배하고 있다. 여기가 바로 북아일랜드다.북아일랜드는 아일랜드와 영국의 영향을 받은 가톨릭교도와 신교도 간의 갈등이 뿌리 깊은 지역이다. 가톨릭교도는 아일랜드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공화주의자들로, 남북이 합쳐진 통일 아일랜드를 꿈꾼다. 그에 반해 신교도들은 자신을 영국인(British)과 연합주의자(unionist)로 인식한다. 영국 왕에 충성하는 이들은 북아일랜드가 영국(UK)에 남기를 희망한다.1960년대 말부터 1998년까지 이들이 벌인 갈등을 ‘The Troubles(북아일랜드 분쟁)’이라고 부른다. 남북 아일랜드의 통일을 목표로 하는 아일랜드공화국군(IRA), 왕당파의 군사조직인 얼스터 의용군과 영국 정부군 등이 분쟁에 참여했다. 분쟁은 주로 북아일랜드와 수도인 벨파스트에서 벌어졌으나, 잉글랜드와 유럽 대륙으로 확산된 적도 있다. 특히 필자가 학부 공부를 하던 1990년대에는 IRA가 런던에서 폭탄 테러를 종종 일으켰다. 한번은 수업 시간에 발표를 해야 하는데, 테러로 인해 지하철역이 폐쇄되어 지각한 적도 있었다. 당시 필자가 사과와 함께 IRA 핑계를 대니, 교수님과 동료 학생들이 모두 너그럽게 이해해 준 기억도 난다.분쟁 기간 중 1972년 1월 30일 북아일랜드의 데리(Derry)에서 벌어진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 사건이 특히 유명하다. 영국 공수부대원의 일부가 시위 중이던 비무장 가톨릭교도를 항해 사격을 한 것이다. 이로 인해 14명이 사망했고 십수 명이 다쳤다. 이 사건 이후 북아일랜드 분쟁은 더욱더 격화된다. 전설적인 밴드 비틀즈의 멤버 4명은 모두 아일랜드 혈통을 갖고 있는데, 이 중 특히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는 각각 이 사건을 다룬 노래를 발표해 분노를 표출했다. 1998년 벨파스트 협정이 체결되며 북아일랜드 분쟁은 종결됐지만, 30여 년에 걸친 무력 충돌의 결과로 3500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했다. 선덜랜드, 위건, 웨스트 브로미치 등에서 뛰었던 미드필더 제임스 맥클린은 피의 일요일 사건이 벌어진 북아일랜드의 데리 출신이다. 맥클린은 “포피가 단순히 1, 2차 대전 희생자들에 관한 것이라면 (포피 셔츠를) 매일 입을 수도 있다. 하지만 포피는 영국군이 관여해온 모든 갈등에 관한 것”이라며 포피 셔츠 착용을 거부했다. 그는 북아일랜드 분쟁에 참여한 영국군을 지지할 수 없다는 아일랜드인의 마음을 대변한 것이다. 일부 영국인들은 맥클린의 이러한 소신을 지지했다. 하지만 포피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그는 상대팀 서포터스뿐만 아니라 일부 홈 팬들로부터도 오랫동안 야유를 받았다. 심지어 맥클린은 살해 위협을 받은 적도 있다.리멤버런스 데이 행사는 북아일랜드에서도 매년 열리지만, 현재도 대부분의 아일랜드 민족주의자와 공화당원은 추모 행사에 참여하지 않는다. 한편 아일랜드 공화국은 두 번의 세계대전에서 희생된 아일랜드인을 추모하기 위해 매년 7월 자체적인 국가 기념일을 가진다. 영국의 주요 축구팀 중 유일하게 포피 셔츠를 거부하는 클럽이 있다. 바로 스코틀랜드의 명문 클럽 셀틱이다. 아일랜드의 가톨릭 유산을 바탕으로 설립된 셀틱은 전쟁에서 희생된 군인들을 존중하지만, 어떠한 정치적 또는 종교적 논란을 피하기 위해 중립적인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맥클린과 달리 포피 착용에 거부감을 보이지 않는 아일랜드 출신 선수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북아일랜드 출신의 마틴 오닐 감독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일랜드 대표팀에서 주장을 맡았던 로이 킨이다. 특히 킨은 지도자에서 물러난 후 스카이 스포츠 방송팀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포피를 꾸준히 착용해 고향 팬들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포피는 영국을 포함해 많은 나라에서 존경과 기억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복잡한 역사와 정치적 요인으로 인해 지역과 사람에 따라 포피는 다르게 해석될 수밖에 없다. 이에 빨간색 포피 대신 평화를 상징하는 하얀색 포피를 다는 이들도 최근 늘어나고 있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진정한 추모는 ‘강요’나 ‘의무’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참여할 때 포피는 비로소 추모의 상징으로 의미를 가질 수 있다.경희대 테크노경영대학원 객원교수 2023.11.1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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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EPL 셔츠에 새겨진 양귀비꽃. 설마 ‘아편’은 아니겠지?

1990년대 영국 런던에서 학부 과정에 있던 필자에게 11월이 되면 눈에 띄는 게 있었다. 학교, 길거리 등에서 마주치는 영국인들 중 상당수가 가슴에 조그마한 빨간색 꽃을 달고 있는 것이다. TV에 등장하는 뉴스 앵커, 정치인 등도 거의 모두가 그러한 꽃을 달았다. “도대체 저게 뭘까?”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궁금증은 곧 풀렸다. 빨간색 꽃은 ‘포피(poppy, 양귀비꽃)’였고, 영국이 참여한 전쟁에서 전사한 병사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포피를 착용한 것을 보며 당시 필자는 고민에 빠졌었다. “나도 달아야 하나? 아니 영국인도 아닌 내가 포피를 달면 오바 같은데?”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답은 쉽게 나왔다. 영국은 한국전쟁 때 미국 다음으로 많은 군대를 파견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먼 나라인 한국까지 와서 목숨을 바친 1200여 명의 영국 군인들을 추모하고 싶었다. 당시 포피를 참 열심히 달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포피는 보통 장애가 있는 전직 영국 군인 50명이 만든다고 한다. 이렇게 생산된 포피는 영국재향군인회(RBL, Royal British Legion)에 속한 자원봉사자들을 통해 영국 전역에서 판매된다. 포피는 정해진 가격이 없다. 보통 구매자가 임의로 정한 액수를 기부하는 방식으로 구매는 이루어진다. 90년대 필자는 포피 하나당 2 파운드를 기부했다. 이렇게 모인 수익금은 참전용사와 그들의 가족을 위해 쓰인다. 그렇다면 왜 11월일까? 영국, 프랑스 등이 주축이 된 연합국과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을 사실상 종결하는 휴전협정을 1918년 11월 11일에 체결했기 때문이다. 이에 영국, 캐나다 등의 영연방 국가와 프랑스는 매년 11월 11일을 ‘리멤브런스 데이(Remembrance day, 한국의 현충일에 해당)’라는 이름으로 추모한다.리멤브런스 데이는 ‘포피 데이(Poppy Day)’라고도 불린다. 양귀비꽃을 가슴에 달고 전몰장병을 추모한데서 유래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수많은 꽃 중에서 왜 양귀비일까? 1차 세계대전은 참혹한 전쟁이었다. 특히 참호전이 벌어진 서부전선이 그랬다. 당시 영국, 프랑스와 독일군은 상대방이 참호 옆으로 돌파 공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참호를 계속 이어지게 팠다. 참호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공군의 효과적인 지원이나 전차 같은 기계화 부대가 필요했으나, 당시에는 그러한 무기가 없었다. 따라서 공격할 때는 언제나 보병이 앞장서야 했고, 이들에게는 무자비한 기관총탄 세례가 퍼부어졌다. 이에 전투 한번 할 때마다 엄청난 인명피해가 나왔다.참호와 참호 사이에는 무인지대(no-man's land)가 있다. 수많은 이의 목숨을 앗아간 황량한 땅인 무인지대에도 봄이 되면 언제나 피는 꽃이 있었다. 바로 포피였다. 포피는 유럽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이지만, 특히 벨기에와 프랑스 북부지역에서 대량으로 자란다. 1915년 5월 캐나다군의 군의관 존 맥크레이 중령은 치열한 참호전이 벌어졌던 벨기에 플란더스 지방에 핀 수많은 포피를 바라보며 "In Flanders Fields(플란더스 들판에서)"라는 유명한 시를 짓는다. 이 시는 전사한 군인들의 관점에서 써졌다. “며칠 전만 해도 살아서 새벽을 느꼈고, 석양을 바라보았지 (중략) 지금 우리는 플란더스 들판에 이렇게 누워 있다네. (중략) 우리와의 신의를 그대들이 저버린다면, 우리는 영영 잠들지 못하리. 설사 플란더스 들판에 양귀비꽃이 자란다 하여도.” 이렇게 시는 마지막 구절에서 살아있는 이들에게 끝까지 싸워달라고 부탁한다. 포피는 어디에서나 자랄 수 있는 강인한 꽃이지만 섬세함도 지녔다. 따라서 이 꽃은 전사한 군인들을 기억하기에 적합한 상징이었다. 시에서 영감을 받은 사람들은 참전 용사들을 추모하기 위해 포피를 달게 된다. 이후 포피는 미국, 캐나다를 거쳐 영국에 전파된다. 1921년 포피는 영국에서 정전기념일에 착용할 추모의 꽃이 되었다. 양귀비하면 떠오르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마약이다. 양귀비는 헤로인의 원료인 아편 성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참전 용사를 추모하자는 취지는 좋지만, 아편이 갖는 이미지 때문에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드는 독자도 분명 있을 것이다. 사실 포피의 종류는 굉장히 다양하다. 양귀비과(Papaver)에만 120종 이상이 존재한다고 한다. 이 중 ‘Papaver somniferum’란 학명을 가진 양귀비가 마약 성분을 가지고 있다. 영어로 ‘오피움(opium, 아편)’ 포피라고 불리는 이 꽃은 모르핀을 함유하고 있어 부상당한 군인들의 진통제로 쓰였다. 이에 반해 ‘Papaver rhoeas’란 학명을 가진 양귀비는 영어로 보통 ‘콘 포피(corn poppy, 개양귀비)’라고 칭한다. 리멤브런스 데이와 연관된 양귀비가 바로 아편 성분이 없는 콘 포피다. 콘 포피는 전쟁의 고통과 슬픔을 기억하고 반성하는 용도로 당시 사람들에게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을 줬다.2000년대 들어 포피는 영국 사회에서 논쟁의 중심에 여러 번 오른다. 포피는 정치적으로 변했고,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쓰인다는 것이다. 또한 유명 인사들에게 포피 착용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고, 의무화되었다는 불편한 진실도 밝혀진다. 2006년 영국의 지상파 방송인 채널 4 뉴스의 유명 앵커 존 스노우는 포피 착용에 대한 압력을 ‘포피 파시즘’에 비유했다. 일종의 포피 파시즘은 잉글랜드 축구에도 등장한다. 국내 많은 팬들의 추측과는 달리, 잉글랜드 축구 셔츠에 포피를 새기는 것은 오랜 전통의 산물이 아니다. EPL에 속한 모든 클럽의 선수들이 포피 셔츠를 입기 시작한 때는 불과 11년 전인 2012년이다. 다음 칼럼에서 포피가 영국 축구에서 일으킨 논쟁에 대해 알아보자.경희대 테크노경영대학원 객원교수 2023.11.1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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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아름다움에 감춰진 유체이탈 화법 [정진영의 독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전쟁에 대해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면 지나치게 관조적인 자세다. 특히 그 말이 전범국의 입에서 나온다면 차원이 달라진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신작이자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인 지브리에서 나온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도무지 곱게 보이지 않는 이유다.오해를 피하기 위해 이것부터 확실히 한다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메시지는 반전(反戰)에 가깝다. 인류가 전쟁으로 쌓아온 지난 과오를 소년 마히토는 짧은 시간 동안 체감하고, 악의가 없는 새로운 돌을 쌓고자 한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은 인류는 이토록 어리석은 선택과 행동을 반복해왔는데, 후손인 당신들이 정말 또 그것을 반복하겠는가라는 의미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인류가 계속해서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는 점에서 이 물음은 회의적이지만, 전쟁과 제국주의가 초래한 결과가 처참함을 극에서 계속 보여줬다는 점에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는 당부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가해국가의 국민으로서 자기연민에 빠지지 말라거나 자신의 서사를 이야기하지 말라는 오래된 이야기를 반복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전쟁의 화살은 전범국의 민간인을 비껴가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의 사망자로 추정되는 7500만 여명 가운데 대부분은 민간인이었다. 민간인은 전쟁을 일으킨 주체가 아니다. 전쟁으로 일본의 민간인들 역시 다수 세상을 떠나거나 그 후유증으로 고통받았다. 당연히 전쟁을 일으켰던 당시 일본 국민에게도 꿈이 있었을 것이며(‘바람이 분다’), 일본인 가운데도 자국의 제국주의나 전쟁에 대한 회의를 느끼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붉은 돼지’).1941년생으로 어린 시절 제2차 세계대전을 관통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여러 작품을 통해 전쟁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을 드러냈다. 개봉 당시 일본 애니메이션의 흥행 신기록을 세웠던 ‘하울의 움직이는 성’ 역시 전쟁이 남긴 상처를 그렸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이 같은 작품들과 궤를 같이 하는 것 같지만, 한 가지 확연한 차이점이 있다. ‘전쟁의 시작’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다. 영화는 초반부터 이 작품의 배경이 언제인가를 명확히 알려준다. 전쟁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엄마를 잃은 마히토는 아빠와 함께 시골로 내려간다. 그곳엔 엄마와 꼭닮은 엄마의 동생, 즉 이모가 있다. 뱃속엔 자신의 동생을 임신한 채다.그곳에서 마히토는 미스터리한 건물을 하나 발견하는데, 집에서 일하는 할머니들에 따르면 그것은 메이지유신이 일어나기 바로 얼마 전 마히토의 조상이 세운 것이다. 그 조상은 학문을 무척 사랑한 인물로 그려지는데, 그래서 탑 안이 모두 책으로 가득 차 있다. 사실 이 탑은 하늘에서 느닷없이 떨어진 어떤 돌탑을 가려놓은 것이다. 하늘에서 떨어진 돌탑과 학문에 조예가 깊은 할아버지가 세운 책으로 가득한 건물.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일본을 덮친 서구 제국주의의 물결을 받아들인 일본이 서구의 사상을 배움으로써 그들을 따라가고 나라를 개혁하고자 하며 메이지유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상징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집 안에 걸려 있던 할아버지의 얼굴이 흡사 서구인으로 보인다는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여러 차원의 레이어로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전쟁에서 엄마를 잃은 마히토라는 소년의 시각에서 본 전쟁을 판타지적으로 그려냈다고도, 삶과 죽음에 대한 동화적인 성찰이라고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분석과 전쟁에 대한 생각을 담아냈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마지막 세 번째 관점에서 보면 영 찝찝하다.미스터리한 건물로 들어간 이후 마히토는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혹은 작품 속에선 할아버지)이 일으킨 제국주의에 대해 살펴보게 된다. 마히토가 건물 안에서 마주치는 앵무새는 2차대전 당시 마지막 몇 개월 동안 활동했던 독일 공군 최정예 전투비행단인 제44전투단을 떠올리게 하며, 태어나기 위해 날아가는 와라와라를 잡아먹는 펠리컨을 히미가 불로 태우는 장면은 2차대전을 종식시킨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을 떠올리게 한다. 히미의 불길은 펠리컨 뿐 아니라 와라와라들까지 불태워 죽이는데, 이는 원자폭탄 투하로 수많은 민간인들 역시 참혹하게 살해당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비슷한 대사가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도 나온다. 하울은 “적이야? 아니면 우리 편?”이라고 묻는 소피에게 “어느 쪽이든 마찬가지”라고 답한다. 이 불길 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펠리컨 한 마리는 “그러게 와라와라를 잡아먹지 않았으면 될 것 아니냐”는 마히토에게 “우리는 와라와라를 잡아먹기 위해 이 섬에 끌려온 것이다. 이 섬엔 먹을 게 없다. 우리는 더 높은 곳으로 날아봤지만 계속해서 이 지옥 같은 섬으로 떨어지고 말았다”고 한다. 이는 마치 1939년의 일본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육지로 뻗어나갈 수밖에 없었으며, 그 과정에서 한국을 식민통치한 것과 같은 제국주의의 횡포는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으로 들린다.어쩌면 선택지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다른 선택을 했더라도 비슷한 참상이 반복되거나, 다른 사람들이 희생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배와 피지배, 제국주의와 전쟁을 그 같이 관조적인 시선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피해자여야 한다. 올 초 개봉했던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볼륨3’에서 진화를 위해 처참한 신체 개조를 당한 라일라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로켓에게 이 같이 말한다. “우리를 이렇게 만든 이들에겐 그들을 이곳으로 이끈 더 큰 섭리가 있어”라고. 이 말이 울컥하게 다가오는 건 그러한 끔찍한 고통 속에서 몸부림친 피해자 라일라가 얻어낸 해답이기 때문이다. 그 말을 타인의 신체를 대의라는 명분으로 훼손한 하이 에볼루셔너리(츠쿠디 이우지)가 했다면 결코 그런 감동은 없었을 것이다.‘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전쟁의 참상과 그것을 반복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으면서도,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이란 끔찍한 선택은 언제나 반복됐으며(전 시간대를 통틀어서 악의가 없는 돌은 13개 밖에 없었다는 마지막 대사에서 확실히 알 수 있다), 죄 없는 생명을 앗아가는 행위에도 이유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바로 그 지점이 이 영화를 불편하게 만든다. 아날로그 작업방식으로 만들어진 영화의 영상미가 시각을 압도하고 섬세한 효과음이 귀를 자극할수록 불쾌해진다. ‘그런 빛나는 재능을 쏟아부어 고작 이런 제3자 화법의 납작한 이야기를 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가시지 않기 때문이다.물론 이 같은 해석이 잘못됐을지도 모른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은 언제나 그랬듯 어떤 한 시점에서 명쾌하게 떨어지진 않으니까. 다만 영화의 어떤 부분이 마치 제국주의를 변명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면, 그것에 대한 오해는 직접 풀어야 하는 것 아닐까. “인생의 창조적 시간은 10년이지. 예술가나 설계자나 똑같아.” 미야자키 하야오의 전작 ‘바람이 분다’에서 지로는 자신의 롤모델인 비행기 설계사로부터 이 같은 말을 듣는다. 어쩌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창조적 시간은 이미 끝난 게 아닐까. 지금껏 수많은 작품으로 감각적 쾌감과 뭉클한 여운을 준 거장의 은퇴 복귀작이 고작 ‘전쟁은 나쁘지만 모든 전쟁은 당시로선 어쩔 수 없는 이유에서 발발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너무나 큰 실망이다. 어쩔 수 없이 때렸더라도 폭력은 폭력이고, 폭력은 나쁜 것이다. 전쟁이 끝난 지 80년이 가까이 되지만 여전히 한국과 일본이 앙금을 풀지 못 하는 건 이런 유체이탈 화법 때문일지 모른다.역시 2차대전의 전범국인 독일이 자신들이 일으킨 전쟁 속에서 고통 받는 한 민간인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독일, 창백한 어머니’를 내놓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그 영화 안에서도 자신들이 겪은 고통을 납득시키기 위해 얼마나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정진영 기자 afreeca@edaily.co.kr 2023.11.01 05:48
프로야구

[김종문 진심 합심] 오펜하이머의 ‘핫플’과 합숙의 조건

로스 앨러모스의 과학자들에겐 심리적 탈출구가 필요했습니다. 연구소 과학자들은 고립감과 압박감, 그리고 감시 속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보다 원자폭탄을 먼저 개발해야 전쟁에서 이긴다는 극도의 경쟁적인 상황에 숨이 막혔다고 합니다. 게다가 과학의 진보가 결국은 인류의 생명을 뺏는 거대 폭탄을 만드는 것인가라는 도덕적 회의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해결책의 하나로, 연구소장인 로버트 오펜하이머 박사는 연구소 언덕 아래 어느 가정집을 과학자들을 위한 레스토랑으로 바꿉니다. 오펜하이머 자신이 파티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예전부터 친분 있던 그곳 여주인 (이디스 워너·Edith Warner)에게 부탁해 과학자들과 가족들이 오붓하게 외식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는 아이디어를 냈던 겁니다. 외딴 뉴 멕시코의 작은 시골, 거기서도 군사시설로 급조된 연구소 안에서 비밀 연구로 갇혀 지낸 과학자들이 합법적으로 콧바람을 쐬러 나오는 곳이 거기였습니다. 노벨상 수상자인 닐스 보어, 홀리 콤프턴, 엔리코 페르미도 이곳을 즐겼다고 합니다. 어느 과학자는 그녀에게 남긴 편지에 "정성스럽게 차린 식탁, 조심스럽게 만든 장작불 등 강가의 당신 집에서 했던 저녁 식사는 우리를 안심시켰고, 우리를 보듬어 안았으며 우리를 녹색 가건물로부터 잠시 떠나 있게 해줬습니다. 우리는 잊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씁니다. 양고기 스튜와 신선한 샐러드로 차려진 현지 가정식이 푸짐하게 제공됐고, 초콜릿 케이크는 워낙 인기여서 전쟁 이후 과학자들이 떠날 때 레시피를 받아 갔을 정도였습니다. 그 레시피는 지금도 연구소 웹사이트에 남아 있습니다.최근 개봉한 영화 '오펜하이머'를 감명 깊게 본 뒤 그의 평전을 읽다가 과학자들의 ‘핫플(인기있는 방문지)'이 된 진흙 벽돌집 이야기에 꽂혔습니다. 앞서 과학자의 편지를 보며 분위기를 바꾼다는 의미와 효과를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전혀 생각지 못한 장소에서 고민거리에 대한 영감을 얻고, 동료애와 팀워크를 자극하는 신선한 자극이 생긴 그런 경우 말입니다. 공간과 분위기의 변화를 잘 조율하면 심리적 안정감을 얻고, 동료나 가족과 관계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비슷한 경험이 있으신가요.큰일을 앞두고 늘 하던 대로, 평소처럼 습관과 루틴을 이어가는 것도 필요하지만 적절하게 색다른 경험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입니다. 지금의 내가 이뤄야 할 사명을 다른 관점에서 보게 해주는 효과도 있습니다.'가을야구'를 앞둔 몇몇 팀의 준비에도 이 이야기가 참고가 되겠다 싶네요. 일부 팀은 합숙훈련을 선택하고, 준비 기간 동안 여러 이벤트를 마련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단순히 함께 지내기로 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남은 시간을 훈련과 컨디션 관리에 온전히 쏟기 위해서만은 아닐 겁니다.결기를 다지고,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줄이고,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를 차단하고, 목표에 온전히 집중하자는 의도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현실은 다양하고 복잡한 변수의 조합입니다. 사람의 환경을 바꾸는 것이 습관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몇 해 전 어느 야구팀의 포스트시즌 합숙은 패착이 됐습니다. 홈구장과 멀지 않은 고급 호텔서 숙박했는데 일부 선수들이 집에 다녀오거나 자주 외출하면서 합심을 기대한 합숙은 실패합니다. 당시 분위기가 어수선했다는 말을 저는 들었습니다. 결과도 나빴습니다.2018년 가을, 메이저리그(MLB) 팀 보스턴 레드삭스는 LA 다저스와의 월드시리즈 3차전에서 연장 18회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패합니다. 다음날 오전, 레드삭스는 모든 선수와 그 가족을 초청해 근사한 아침식사를 대접합니다. 레드삭스 감독은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삶의 균형이 중요하다. 온종일 야구만 한다면 재미도, 효율도 없다"라고 말합니다. 당시 레드삭스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예입니다. 팀과 개인의 목적이 불일치하고 준비가 부실한 합숙보다는 의미를 느낄 수 있는 풍성한 한 번의 식사 자리가 팀워크에 도움 되는 건 당연합니다. 행동과학에선 새로운 환경 변화가 삶의 전환점이 된다고 설명합니다.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설계해 보시겠어요. 한국코치협회 인증코치 김종문 coachjmoon 지메일김종문은 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2011~2021년 NC 다이노스 야구단 프런트로 활동했다. 2018년 말 '꼴찌'팀 단장을 맡아 2년 뒤 창단 첫 우승팀으로 이끌었다. 현재 한국코치협회 인증코치(KPC)다. 2023.10.10 07:30
연예일반

[오동진 영화만사] ‘1947 보스톤’ 영화감독 강제규의 귀환

강제규 감독은 세상에 알려진 것에 비하면 작품 연출 편수가 그리 많지 않아 놀라게 되는 감독이다. 1996년에 ‘은행나무 침대’로 데뷔한 그는 이번 ‘1947 보스톤’까지 지난 27년간 총 6편의 영화만을 연출했다. 거의 4년에 한 번씩 영화를 찍었다. 이번 영화가 사실상 3년 전에 찍은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4년마다 방점을 찍은 게 맞긴 맞는 얘기가 된다. ‘올림픽 감독’이라는 얘기다. 특히 이번 영화는 코로나 때문에 개봉이 늦춰져 ‘장수상회’ 이후 햇수로 물경 8년만에 만나는 셈이 됐다. 그 사이 젊은 관객들 사이에서 강제규 감독은 ‘원로’ 감독(?) 취급을 받는 나이가 됐다. 하기사 요즘 기준으로 보면 영화 한 편을 기획하고 촬영하고 편집하고 극장에 걸기까지 족히 4년은 걸린다. 옛날처럼 후딱후딱, 대충대충, 그래서 늘 아쉬운 대로 빨리빨리 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까 어찌 보면 강제규는 영화 만들기에 정상의 호흡과 간격 대로 영화를 만들어 온 셈이다.그런데 꼭 작품 편수를 그렇게만 따지면 안된다. 강제규의 필모그래피는 사실 20편이 넘는다. 감독만이 아니라 제작자로도 활동 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기억 속에서 사라진 고대(古代) 소재의 블록버스터 ‘단적비연수’가 그가 제작한 영화 중 하나이다. 이미숙 주연의 ‘베사메무초’도 2001년 개봉 당시 나름 화제를 모았던 그의 프로듀서 작품이었다.강제규는 1999년 ‘쉬리’로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문을 열었다는 평가를 얻고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뉴 코리언 시네마의 한 축에서 한국영화도 대중적이고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 준 첫 사례였다. ‘쉬리’ 이후부터 한국영화계에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가 열렸다고도 볼 수 있다. 뉴 코리언 시네마가 시작됐다.강제규 영화의 특징은 주로 역사, 전쟁, 분단, 이념 같은 거대담론의 얘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쉬리’는 북한 무장 침투조와 남한 첩보 조직의 대결을 다루는 내용이었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국군과 인민군을 사이를 오가는 형제의 얘기였다. 6.25 전쟁 영화였는데 이때 처음으로 한국 전쟁영화는 전투씬에서 개각도 촬영(일명 셔터 스피드 촬영을 말하는 것으로 이미지의 특정적인 잔상을 강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총알이나 포탄이 튀는 장면 같은 것)이란 것을 시도했을 정도로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현대영화였다. 흥행에 실패했던 대작영화 ‘마이 웨이’는 일본 학도병으로 끌려가 중국과 소련, 프랑스 노르망디 상륙작전까지 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한 남자의 일생을 그린다. ‘장수상회’는 노년 세대가 겪은 전쟁의 아픔을, 단편 ‘민우씨 오는 날’은 이산가족의 문제를 비교적 정면으로 다룬다. 강제규는 대놓고 ‘국뽕 영화’를 만든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더욱 더 남다른 것은 그의 ‘국뽕’은 조직이나 이념에 충성하자는 식의, 다소 경직된 국가주의와는 다르다는 점이다. 강제규 국뽕의 특징은 인간주의이다. 품격을 갖춘 국뽕이며 생각과 고민이 들어 간 국뽕이다. 그의 국뽕에는 진심이 담겨 있다. 그게 강제규가 지난 20여녀간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동력이다. 전쟁과 가난, 이념의 간극과 그 분기점에서 인간은 늘 실존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며(‘태극기 휘날리며’의 형, ‘마이 웨이’의 주인공)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해서는 늘 평가가 엇갈릴 수밖에 없음을 얘기한다. 강제규의 영화가 늘 울컥하게 만드는 이유이다. 다 지나간 얘기이니 이제는 괜찮지 않냐는 아픈 정서가 담겨져 있다.새영화 ‘1947 보스톤’은 공개되기 전까지 그렇고 그런 옛날 영웅담일 거라 생각됐다. 영화가 늦게 공개된 후, 기이하게도 오히려, 시대의 분위기와 그 싱크로율이 척척 들어맞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사람들, 국민들, 민중들은 다 자신 나름대로 애국과 국익을 위해 살아왔음을 보여 준다. 손기정과 남승룡과 서윤복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1947년에 나라도 없을 때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1948년에 이르러서였다) 그들을 응원하고 지원했던 무수한 사람들이 다 그랬다는 것이다. 이 영화 ‘1947 보스톤’은 서윤복이 최고 기록을 갱신하며 1위를 하는 장면보다 먼 이국 땅, 세계 사람들은 있는지도 몰랐던 조선의 사람들이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다 환호의 절규를 내지를 때 살짝, 같이 눈시울을 적시게 되는 영화이다.강제규가 비중 있는 인물이라는 것은, 한국 영화계가 역사적으로 자꾸 쪼그라들고 오므려 들 때, 줄기차고 일관되게 역사와 사람, 정치와 이념의 문제를 소재로 영화를 찍는, 그것도 상업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는 점이다. 그런 감독은 한 나라의 영화계에서 한 명쯤은 데리고 있어야 한다. 그가 새로 준비하고 있는 두 편의 영화, 방송 6부작 다큐멘터리 한편과 장편 극영화 한편은 모두 실로 거대한 이야기이다. 이 두 편의 영화에 또 4년, 4년 씩 도합 8년이 걸릴 것인가. 이제는 조금 서두르기를 바랄 뿐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2023.09.21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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