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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한복판 등장한 '시스루 화장실', 들어가는 순간 '반전'
최근 일본 도쿄 번화가인 시부야 한복판에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 화장실'이 설치됐다. 투명 화장실이 설치된 곳은 시부야구 내 요요기 후카마치 소공원과 하루노오카와 공원 2곳. 각각 남·여 회장실과 장애인 포함 멀티 유즈 화장실 등 3개가 나란히 자리한 이곳은 외벽이 유리로 돼 있어 밖에서 변기와 세면대 등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그러나 이 화장실은 사람이 들어가는 순간 '반전'이 일어난다. 이용객이 화장실에 들어간 뒤 문을 잠그는 순간, 투명 유리 벽은 순식간에 '불투명'으로 바뀐다. 이를 설계한 사람은 일본의 유명 건축가 시게루 반(63). 2014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다. 도쿄 시내 곳곳에 독특한 공중 화장실을 설계하고 나선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안도 다다오(79), 이토 도요(79), 겐고 쿠마(66), 후지모토 소우(49), 마키 후미히코(92) 등 내로라하는 일본의 건축가들이 한 프로젝트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이른바 '도쿄 화장실 프로젝트(Tokyo Toilet Project)'다. 이 프로젝트는 도쿄재단(Tokyo Foundation)이 시부야 구와 손잡고 기획·추진한 것으로, 16명의 건축가와 디자이너 등 세계적인 크리에이터의 참신한 아이디어로 시부야 일대에 있는 17개의 공중 화장실을 새로 짓는 프로그램이다. 이는 본래 도쿄 2020 하계 올림픽 때 공개될 예정이었으나 올림픽이 연기되면서 별도로 공개 일정을 잡았다. 일본 최대 주택 건설업체인 다이와하우스그룹, 일본 유명 화장실 제조업체 토토(TOTO)등이 후원했다. 도쿄재단은 홈페이지에서 "공중 화장실은 어둡고 냄새나고 무섭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성별·나이·장애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이용하는 것을 목표로 추진했다"며 "화장실 프로젝트를 통해 포용적인 사회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현재 5개가 완성돼 일반에 공개됐으며, 오는 9월 7일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화장실이 준공되는 것을 포함해 내년 여름까지 나머지 11개가 줄줄이 공개된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이들 중 프리츠커상을 받은 건축가는 시게루 반, 마키 후미히코, 이토도요 등 3명이다. 시게루 반이 설계한 화장실이 공개되자 영국의 라이프스타일 매체 '더 스페이시스(The Spaces)'는 "시게루 반의 급진적 접근"이라는 제목으로 화장실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CNN은 "안에 들어갔을 때 유리벽이 충분히 불투명해졌는지 알 수 없다"며 "벽엔 유리가 설치돼 있어 이용객이 마치 디스플레이된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고 전했다. 이어 "가장 중요한 것은 안에 들어갔을 때 문이 제대로 잠겨 있는지 체크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기자가 직접 방문했을 때 어떤 사람이 문을 제대로 잠그지 않아 현장에서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고 전했다. 에비스 동부공원의 화장실을 설계한 후미히코는 홈페이지에서 "우리는 여기에 만드는 시설이 공중화장실뿐만 아니라 휴식공간을 갖춘 공원정자 역할을 하는 공공공간이 되기를 원했다"고 밝혔다. 이어 "설계에 앞서 어린이부터 출근길에 오르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용자를 생각했다"며 "특히 경쾌하게 디자인된 지붕을 통해 공기와 빛이 잘 통할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시부야 히가시 지역의 작은 삼각형 부지를 맡은 디자이너 나오 타무라는 일본의 전통적 장식 포장 방식인 오리가타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을 선보였다. 그는 "화장실은 우리가 나이, 성 정체성, 국적, 종교, 피부색과 관계없이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인 신체적 욕구를 다루는 곳"이라며 "이 공중화장실은 성 소수자까지 포용하는 공간이 되길 희망했다"고 밝혔다. 에비스 공원의 화장실을 맡은 인테리어 디자이너 마사미치 가타야마는 15개의 콘크리트 벽이 서로 엇갈리는 형태로 디자인했다. 가타야마는 "우리는 화장실이라는 개념에 묶여 있기 보다는 마치 놀이터 장비나 벤치, 나무처럼 공원에 무심코 서 있는 물체를 염두에 두었다"며 "과거의 원시적인 카와야(화장실의 기원)의 모습과 분위기를 상상하기 위해 콘크리트 벽 15개를 무작위로 조합했다"고 밝혔다. 도쿄 화장실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는 시간이 지나야 제대로 평가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한 가지 면에서 중요한 효과는 이미 보장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프로젝트가 작은 공공 시설을 통해 일본의 대표적인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용객들은 생활에서 친근하게 경험하는 소규모 건축물을 통해 디자인의 무한한 가능성을 직접 체험하고 평가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셈이다. 도쿄재단은 "어쨌든 공중 화장실은 시간의 검증을 견뎌야 한다"면서 "설계뿐만 아니라 청소와 정비를 통해 사용자에게 좋은 경험을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 앞으로 시부야 구와 시부야관광협회 등과 협력해 지속해서 관리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의 다른 기사 “코로나19 속, 전시는 끝내 이루지 못할 꿈 같았다” [이은주의 아트&디자인] 달리기하는 소설가, 수영하는 화가 담백한 아름다움...구본창의 달항아리 시드니에 뜬다 부산을 읽고 보고 듣고 느껴라, "이것은 부산에 바치는 오마주" 지금 세계서 주목 받는 젊은 추상화가 3인은 누구? 파도 품안에 뛰어든다, 서울 한복판에 생긴 바다의 정체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2020.08.30 16: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