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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일반

[경마] 호국영웅 레클리스, 고향 제주에 돌아온다

한국마사회(정기환 회장)는 오는 26일 한국전쟁에서 활약한 호국영웅 제주마 레클리스 동상 설립 기념하는 ‘레클리스 제막식’행사를 개최한다.호국영웅이 ‘레클리스’는 해방 이후 서울 신설동 경마장에서 활동을 준비하던 예비경주마였다고 전해진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해병대는 1952년 ‘레클리스’를 군마로 매입했고, 차량 진입이 어려운 산악지역에 물자를 운반하는 임무에 투입했다.청각에 예민한 일반 말들과 달리 ‘레클리스’는 전장의 포화소리에도 놀라지 않고 묵묵히 자기 임무를 수행하였다. 한번 갔던 길은 혼자 찾아갔고, 전장에서 부상당한 병사들을 업고 스스로 복귀할 정도로 영리해 미 해병의 신임과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1953년 3월, 경기도 연천지역에서 벌어진 ‘네바다 전투’에서 최전선을 하루 51회 왕복하며 약 4톤의 탄약을 운반하며 활약을 펼친 승리의 일등 공신이 되었다. 이에 미해병대는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다’는 뜻의 ‘레클리스(Reckless)’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또한 일반적인 군마가 아닌 병사로 진급시키고 특급대우를 제공했다.정전 협정 후 미해병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레클리스는 1959년 말(馬)로서는 최초로 미 해병대 하사에 임명되는 등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다.이후 퍼플하트 훈장, 대통령표장 등 다양한 훈장을 받았고, 1997년에는 미국 라이프(LIFE)지가 선정한 미국 100대 영웅에 조지 워싱턴, 링컨 등과 함께 선정되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2013년 미국 버지니아주 국립해병대박물관을 시작으로 6개의 동상이 미국 전역에 세워졌고, 2016년에는 경기도 연천군에서도 레클리스를 기념하는 동상이 들어섰다. 그리고 오는 26일 말산업육성전담기관인 한국마사회도 말의 고장 제주의 경마공원에 ‘레클리스’의 동상을 새롭게 선보인다.한국마사회 제주본부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부대에서 활약한 제주마 레클리스의 업적을 기리는 상징물을 조성하여 제주마의 우수성을 알리겠다”고 전했다.한편, 렛츠런파크 제주에서는 제주마축제가 진행되는 10월 26일부터 27일까지 레클리스 동상 제막식뿐만 아니라, 제주특별자치도지사배 대상경주, 드론라이트쇼, 슈퍼콘서트(위댐보이즈, 포레스텔라)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될 예정이다.안희수 기자 2024.10.18 11:00
생활문화

말박물관서 '한국경마 100년 신바람 100선' 개최

20일 경마의 날을 맞아 말박물관이 특별전 ‘한국경마 100년 신바람 100선’을 개최한다. 말박물관은 지난 100년간 한국경마에 보내준 국민의 성원에 감사하며 한국경마가 가져왔던 새로운 바람, 즐거운 바람 백여 장면을 선정해 한 자리에 모아 추억하는 자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전시되는 자료를 보면 신설동부터 뚝섬을 거쳐 지금의 과천까지 경마장을 찾았던 수많은 고객과의 추억, 그리운 명마와 기수의 모습, 신기록 탄생과 환희의 순간 등이 올드팬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할머니 손을 잡고 경마장을 찾은 어린아이의 모습이 담긴 흑백사진부터 10원짜리 입장권과 마권, 영화관에서 흘러나오던 대한뉴스, 미스코리아배 경주 시상식, 논밭이 펼쳐진 주로 안 풍경, 컬러TV가 경품으로 걸린 행운권 추첨, 유명 가수와 코미디언이 출연한다는 축하공연 광고 등 그 시절에나 볼 수 있었던 경마장의 흥겨운 분위기가 고스란히 전달된다. 이번 특별전을 기념해 고객들이 전시 관람 후 개인 SNS에 후기를 남기면 추억의 간식인 말 모양 달고나를 증정하는 재미있는 이벤트도 진행된다. 특별전은 20일부터 6월 26일까지 서울경마공원 말박물관 기획전시실과 럭키빌 1층 로비에서 열리고, 6월 29일부터는 서울 종로구 인사아트센터 1층 전시실로 옮겨 7월 11일까지 이어진다. 김두용 기자 kim.duyong@joongang.co.kr 2022.05.20 07:00
스포츠일반

경마 시행 100주년, 잃어버린 반쪽 뿌리를 찾아

2022년 한국경마 시행 100주년을 맞아 대규모 경마사 자료 수집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 3일 도서출판 열화당의 이기웅 대표가 소장하던 근대 경마 유물 2점을 마사회 말박물관에 기증했다. 이 유물은 함경남도 함흥경마구락부와 함경북도 웅기경마구락부 춘계경마에서 1939년과 1940년에 수여된 우승 기념 동기다. 매병 크기의 작은 항아리에 꽃과 말이 각각 양각돼 있는데 시기·경마장·시상자 등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부조로 ‘상’이라는 글자가 문양처럼 들어가 있어 시상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해방 후 신설동 경마장을 찾은 백범 김구 선생이나 미군정기 주한사령관이었던 하지 준장의 시상식 사진에서도 종이로 된 상장과 함께 이와 유사한 형태의 기물이 확인된다. 일본 양식인 화병 형태의 동기가 꽤 오랜 시간 지금의 트로피 같은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22년 조선경마구락부의 설립을 기점으로 공인 경마 100주년을 앞둔 한국 경마는 해방 전 경성과 평양, 군산, 대구, 부산, 신의주를 비롯해 청진 웅기, 함흥 등 9개의 공인 경마장에서 봄과 가을, 매년 전국 순회 경마를 시행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말에는 2차 세계대전의 심화로 대부분의 경마장이 기능을 잃었으며 해방 후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신설동 경마장을 끝으로 꺼져가던 한국 경마의 명맥은 1954년 뚝섬 경마장의 개장으로 다시 이어졌고, 1989년 과천 서울경마공원으로 이전하면서 경주 영상을 해외에 수출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지금은 제주와 부산경남에 지방경마장도 운영 중이다. 그러나 100년이라는 긴 역사를 갖고 있음에도 한국경마의 역사는 아쉽게도 반쪽짜리다. 한국경마 초기인 해방 전부터 경기도 과천으로 이전하기 전 자료는 대부분 유실됐기 때문이다. 전쟁의 포화와 잦은 수해로 과거 종이 기록물이 대부분이었던 1920~1970년대 자료는 불타거나 물에 휩쓸려가 마필과 경주기록 등도 단편적인 기사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수집 대상은 희박한 1970년대 이전 경마사 자료가 중심이 될 전망이다. 마권과 각종 홍보물을 비롯해 과거 경마장에서 근무했던 직원들의 물품과 기록물, 마필 관계 자료, 상장과 트로피, 사진 등이 포함된다. 이렇게 수집, 선정된 자료는 2022년 5월 한국경마 100주년 기념 특별전에서 대중에게 소개될 예정이다. 말박물관 관계자는 “특별전은 온라인으로도 공개해 역경을 딛고 성장한 한국경마의 역사와 의미를 대중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라며 “당장은 기증이나 전시 기간 중 기탁, 임대 등의 방법으로 자료를 수집하지만 추후 경영 여건이 정상화되면 전시품 중 근대 문화재 지정 가능성이 있는 자료의 경우 구매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경마사 자료 수집 기간은 다음 달 10월 1일부터 2022년 12월 31일까지다. 김두용 기자 kim.duyong@joongang.co.kr 2021.09.17 07:00
스포츠일반

내년 한국 경마 100주년…최초 공인 경주로는 군산경마장에

2022년은 우리 땅에서 경마가 시행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한국 경마의 시작은 학생 체육대회 수준의 나귀 경주, 기병 경주에서 시작됐다. 본격적으로 근대 경마가 등장한 것은 1922년 서울에 사단법인 경마구락부(클럽)가 발족하면서부터다. 이어 평양·대구·신의주·부산·군산 등에 차례로 법인이 인가됐다. 1933년 조선경마령이 시행되고 전국 경마구락부를 총괄하는 사단법인 조선경마협회가 발족하면서 전국에 난립했던 경마 단체들이 정리됐다. 여기에 함흥·청진·웅기 세 곳에 경마장이 추가로 증설되며 전국 9개 경마장에서 순회경마의 시대가 1941년까지 지속한다. 당시 기수들과 참가 말들은 봄과 가을 시즌에 맞춰 전국을 순회하며 경기에 참여했다. 전북 군산경마장은 한반도 최초로 공인 경주로가 설치된 곳이다. 현재 군산경마장의 흔적은 구불구불 흐르던 경포천을 일직선으로 정리하면서 사라진 도랑들만큼이나 찾기 어렵다. 기록에 따르면 옛 군산경마장은 지금의 군산 동부시장을 중심으로 한 경암동 지역에 위치했고 타원형 주로가 경포천을 따라 금강 방향으로 길게 놓여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 경마장 부지에서 경포천 건너편을 바라보면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있는데, 그 뒤쪽이 바로 순회경마에 참가하는 말들이 기차에 타고 내렸을 옛 군산역 터다. 역사는 철거되고 철로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상태이지만 백여 년 전 수십 두의 경주마들은 기차에서 내려 군산시가로 퍼레이드했다. 현재 남아있는 ‘경마교’는 1987년 팔마광장 근처에서 경마장 터로 다리를 놓으면서 관청에서 이름을 붙였다. 경암동 내에 있는 ‘경마경로당’도 마찬가지다. 유형의 자취는 아쉽게도 사라졌으나 이름으로나마 한국 경마의 발자취를 찾을 수 있었다. 군산은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에서 수확한 쌀의 수출항구로 일본인 거주자들이 많았다. 사람이 모이니 유희를 즐기려는 사람들 역시 이곳으로 모였다. 1923년 해안매립지에서 경마가 시행되다가 당시 경장리(지금의 경암동)에 2만1000평, 즉 7만㎡ 면적의 경마장을 조성했다. 국내에서 공인 규격의 고정 경마장이 가장 먼저 설치된 곳이 서울과 군산이었다. 군산이 1927년 10월 준공기념 대회를 5일 동안 개최했고, 서울 신설동경마장이 1928년 9월에 첫 대회를 열었으니 군산이 1년이나 앞섰다고 할 수 있다. 이후 군산 경마장은 1928년 첫해에 87두를 시작으로 1929년 147두, 1930년 161두가 경기에 출전했다. 1930년도 마권 발매는 총 4만9577매, 매출은 9만9354원으로 이는 현재 원화가치로 12억2000만원 수준에 달한다. 1년을 기준으로 봄과 가을을 합쳐 약 10일 간 경주가 펼쳐졌고, 하루 평균 5000장 정도의 마권이 팔릴 정도로 인기 있던 스포츠였다. 군산시 인구가 10만명도 되지 않았다. 1941년 일본이 미국 항공기의 착륙을 막기 위해 주로를 폭파하면서 경마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김두용 기자 kim.duyong@joongang.co.kr 2021.08.13 07:00
생활/문화

링컨과 함께 100대 영웅에…한국전쟁 누빈 군마 '아침해'

1997년 미국의 라이프지는 100대 영웅을 선정했다. 조지 워싱턴·아브라함 링컨·마틴 루터 킹·마더 테레사 등 역사 속 위인들과 함께 사람이 아닌 군마 ‘레클리스’가 선정돼 화제가 됐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 해병대 소속인 이 군마는 서울 신설동 경마장에서 경주를 준비하는 경주마 ‘아침해’다. 산악지역이 대부분인 한반도의 지리적 특성상 신속히 고지를 점령하는 쪽이 전략적으로 우세하다. 한국전쟁에 투입된 미군이 산길로 물자를 이동하기에는 지프차는 무용지물이었다. 미군은 물자 이동을 위해 군마를 활용키로 한다. 이를 위해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52년 10월 미군 해병대 소속 프레더슨은 군마 수급을 위해 신설동 경마장에서 경주마 아침해를 만나게 된다. 몽골계 혈통을 이어받은 암말 아침해는 140cm의 작고 단단한 체구로 산길을 다니기에 적합한 체형이었다. 당시 아침해의 마주는 김학문이라는 어린 소년이었다고 전해진다. 지뢰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은 여동생의 의족이 필요했기 때문에 정든 말을 눈물로 떠나보냈다. 구입 가격은 250달러에 달했다. 당시 1인 연평균 소득이 67달러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총탄과 포성이 빗발치는 전장에 투입된 아침해는 고지대로 탄약과 물자, 부상병을 수송하는 임무를 맡았다. 청각 발달로 큰 소리에 지레 겁을 먹는 다른 말들과는 달리 아침해는 우렁찬 포성 소리와 여러 번의 총상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산길을 오를 때에는 탄약을, 내려올 땐 다친 병사들을 실어 날랐다. 포탄이 날아올 때는 몸을 바싹 눕기도 하며 철조망도 피해 다닐 수 있었던 아침해는 사람의 동행 없이도 완벽하게 단독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특히 53년 3월 연천지역에서 중공군과 치른 대규모 전투인 일명 ‘네바다 전투’에서는 닷새간 하루 평균 51차례나 물자를 옮기며 승리의 일등 공신이 됐다. 미 해병대는 아침해의 공로를 인정해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다’는 뜻의 레클리스로 이름을 붙였고, 1954년에는 병장으로 진급시켰다. 레클리스는 한국전쟁 종전 후 1954년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송환됐다. 성대하게 치러진 환영식에서도 레클리스는 단연 스타 대우를 받았다. 무공훈장 등 5개의 훈장을 수여받고 1959년 하사관으로 진급한 레클리스는 이듬해인 60년 공식 은퇴하며 퇴직금을 대신해 평생 동안의 먹이를 보장받았다. 은퇴 후에도 동료 전우들의 가정을 방문하는 등 활발한 퇴역군인 활동을 하며 지내던 레클리스는 1968년 노환과 부상으로 세상을 떠났다. 성대하게 치러진 레클리스의 장례식은 미국 전역의 언론에서 대서특필하며 용맹함의 아이콘이 된 영웅을 기렸다. 2013년 버지니아주 국립 해병대 박물관 및 2018년 켄터키 경마공원에 레클리스의 동상이 건립됐다. 한국에서는 2016년 경기도 연천군에 레클리스 공원이 조성됐다. 한국마사회는 전쟁 영웅이 된 한국의 경주마 아침해의 용기와 호국정신을 기억하기 위해 2015년부터 말과 함께하는 뮤지컬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김두용 기자 kim.duyong@joongang.co.kr 2020.06.05 07:00
연예

[경마] 일제강점기 일왕배를 제패한 한국인 기수 김자근봉

한국마사회가 우리나라의 말 문화를 빛낸 12월의 인물로 우리나라 1세대 기수인 김자근봉(후에 김승배로 개명·1903∼1969)을 선정했다. 우리나라의 경마는 일제강점기 군마조달을 위해 시작됐으며 마주와 기수들 역시 대부분 일본인이었다. 이렇게 암울한 시기에도 우리나라 기수의 우월함을 보여준 기수 1세대들로 김용백, 김자근봉, 이복남 기수 등이 있었다. 그 중 김자근봉은 목장의 마부로 일하다가 신설동경마장의 기수가 되었다. 이후 일본에 건너가 정식 기수 면허를 취득해 1938년 제2회 일왕배 대상경주에서 전적이 뛰어나지 않았던 경주마 ‘하세파크’를 타고 우승을 차지했다. 기수와 조교사를 겸했던 그는 해방 후에도 국내에서 경마 발전을 위해 노력하였다. 한국마사회는 2014년 한 해 동안 말의 해를 기념해 매월 한국 역사상 예술, 무예, 마의학, 기마전, 경마 등 여러 분야에서 말 문화를 빛낸 위인을 선정해 업적을 재조명하고 홍보해왔다.[레이싱긱 안드로이드 다운 받기] [레이싱긱 아이폰 다운 받기] 2014.12.04 14:02
연예

경주마 ‘아침해’ 이야기, 어린이 연극으로 재탄생

한국전쟁 당시 미 해병대 수송마로 이름을 알린 ‘아침해’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어린이 연극으로 재탄생한다. 극단 ‘모시는 사람들’은 전쟁 속에 피어난 ‘아침해’와 7살 순이의 우정을 그린 연극 ‘내꺼야’를 오는 10~11일 매일 2회(오후 1시, 4시)에 걸쳐 과천 시민회관 소극장에서 선보인다. 극장 로비에서는 과천문화원과 함께 1950년~1970년대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전도 함께 열린다. ‘내꺼야’는 ‘아침해’에 얽힌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아침해’는 1950년대 서울 신설동 경마장에서 활동하던 경주마였다. 소년 마주 김흑문은 ‘아침해’를 무척 아꼈지만 지뢰를 밟아 장애인이 된 누이 김정순의 의족 마련을 위해 250달러를 받고 미 해병대에 ‘아침해’를 팔면서 ‘아침해’는 1952년 미 해병대에 입대하게 된다. 400kg 밖에 안 되는 이 작은 암말은 총알과 포탄이 난무하는 전쟁터에서 수백차례 무기와 탄약을 운반하는 임무를 맡았다. ‘무모하도록’ 용감하다하여 ‘레클리스(reckless)’라는 영어 이름도 얻었다. 1959년 미군 최초의 말 하사관이 된 ‘아침해’는 ‘라이프’지 선정 세계 100대 영웅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7월 美 버지니아주 국립 해병대 박물관에는 ‘아침해’를 기리는 기념관과 동상까지 세워졌다. 이 연극보다 더 연극 같은 실화는 연극 ‘내꺼야’에서 7살 소녀 순이와 ‘아침해’의 이야기로 각색된다. 전쟁으로 가족과 뿔뿔이 흩어진 순이는 유일한 친구인 ‘아침해’마저 미군에게 팔리며 이별하게 된다. ‘내꺼야’는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루면서 전쟁이라는 배경 속에서 인간과 동물의 우정, 동물의 인간을 향한 이타심을 이야기 한다. 연극 ‘내꺼야’의 최대 매력은 어린이들에게 낯선 ‘한국전쟁’ 이야기를 ‘아침해’라는 말을 통해 할머니가 이야기 들려주듯 쉽고 재미있게 전달한다는 점이다. 특히 전쟁 씬의 경우 한국전쟁 당시 영상을 활용하는 다큐멘터리 기법을 적용해 극적 사실감을 높였다. 극단 ‘모시는사람들’ 김정숙 대표는 “과천의 대표 브랜드인 ‘경마’와 ‘말’을 주제로 만든 작품이라 더욱 애착을 가지고 제작했다”면서 “‘내꺼야’는 배우들의 연기에 사진, 영상, 50년대 동요 등 다양한 요소를 접목시켜 어린이들이 한국전쟁을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전쟁을 겪은 세대와 정전 후 세대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는 연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문의:극단 모시는사람들 02-507-6487).채준 기자 doorian@joongang,co,kr 2014.01.0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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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마] 한국군 참전 경주마 ‘아침해’에 美 해병대 동상 헌정

올해 한국전쟁 정전 협정 60주년 행사가 한국과 미국에서 대규모로 열린 가운데 한국전에서 활약한 전설적인 경주마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정전 60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달 26일(현지 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콴티코 해병대 본부 내에 있는 국립해병대 박물관에서 미국 해병대 군마(軍馬)로 참전해 큰 공로를 세운 말 ‘아침해’를 기리는 동상 헌정식이 열렸다. 경주마 출신‘아침해’는 1952년 10월 입대해 전쟁터를 누비며 수 백차례 무기와 탄약을 운반하는 군마로 활동하며 '레클리스(Reckless·무모한)'라는 미국 이름을 얻었고, 부상까지 입으며 자신의 임무를 완수해 미 해병대 최초로 하사 계급장과 훈장까지 받았다. ‘아침해’는 서울 신설동 경마장에서 활동했던 경주마였다. 소년마주 김흑문은 아침해를 무척 아꼈지만 지뢰를 밟아 장애인이 된 누이 김정순을 위해 말을 팔기로 결심한다. 누이에게 의족을 사주어야 했던 것이다. 마침 수송용 마필을 구하고 있던 미 해병 1사단 5연대 무반동화기소대 에릭 피터슨 중위는 소년에게 250달러를 주고 ‘아침해’를 샀다. 이때가 1952년 10월이었다. 미 해병은 이 시점을 아침해가 해병에 ‘입대’한 날로 본다. 400kg 밖에 안 되는 이 작은 암말은 총알과 포탄이 날아다니는 전장에서 무거운 탄약더미를 386차례나 나르며 동료해병들을 도왔다. 사람의 도움 없이 혼자 총탄을 뚫고 포탄을 져 나른 것만 51 차례다. 이름처럼 ‘무모하도록’용감했다. 아침해는 쏟아지는 총알 속에서 두 번이나 부상을 입었지만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임무를 완수했다.정전협정이 체결되자 ‘아침해’는 미국으로 건너와 캘리포니아 해병대 1사단 본부에서 편히 지냈다. ‘아침해’의 용맹함은 마침내 랜돌프 해병대 1사단장에게도 알려져 1959년 하사로 진급했고, 다음해 성대한 전역식을 치르고 은퇴했다. ‘아침해’는 생전에 퍼플 하트 훈장(미국에서 전투 중 부상을 입은 군인에게 주는 훈장), 미국 대통령 표창장,미 국방부 종군기장, 유엔 종군기장, 한국 대통령 표창장 등 각종 훈장과 상을 무더기로 받았다. 특히 라이프 매거진은 1997년 특별호에서 세계 100대 영웅에 레클리스를 선정했다. 당시 세계 100대 영웅에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과 토머스 제퍼슨, 흑인 노예 해방의 주역 에이브러햄 링컨, 영화배우 존 웨인, 성녀 마더 테레사 등이 포함됐다. 채준 기자 2013.08.0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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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 60주년’ 마사회는 6.25 어떻게 겪었나

올해로 한국전쟁이 정전 60주년을 맞았다. 1950년 6월25일 새벽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한 한국전쟁은 3년 1개월 간 계속되다가 1953년 7월27일 휴전 협정을 맺으며 일단락됐다. 6·25같은 전쟁이 또 한번 발발한다면 1500마리의 경주마가 생활하고 있는 서울경마공원은 어떻게 될까. 전쟁 발발과 동시에 마사회 직원들은 충무계획에 의거 비상소집, 전시 마필보호, 직장 민방위대 운영 등 일련의 조치에 들어간다. 경마는 중단되고 경주마와 관련 장비들은 군수 물자로 소집되게 된다. 마사회는 이런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비상계획팀’이라는 조직도 운영하고 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인민군은 38선 전역에서 기습남침을 감행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했지만 신설동 경마장에서는 일요경마를 평상시와 다름없이 시행했다. 불안한 조짐이 보인 것은 4경주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정체불명의 프로펠러 비행기 한 대가 경마장 상공에 나타나 전단을 살포하고 사라졌다. 전단을 주워 읽어본 사람들은 그제야 비행기가 북한군의 정찰기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북한의 대남선전 전단이었던 것이다. 확성기를 단 군용 지프가 휴가 중인 장병들의 즉시 귀대를 종용하고 시민들은 동요하지 말라고 방송을 했다. 그 후 남침한 북한 인민군은 신설동 경마장에 탱크와 차량 등 군 장비를 은닉했고, 신설동 경마장은 미 공군의 집중 폭격을 받아 크게 부서졌다. 신설동 경마장에 있던 경주마 200여두도 인민군에게 끌려가 군수물자를 수송하다가 한미 연합군의 포탄 세례를 받고 대부분 죽고 말았다. 9·15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뒤집은 연합군이 수도 서울을 수복한 후 마사회 임직원들이 신설동 경마장을 찾았을 때는 말들이 전부 사라지고 금고는 텅 비고 건물은 참혹하게 부서져 폐허로 변해 있었다. 마사회는 그 해 10월 30일 이사회를 열고 경마를 재개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10월 중순께 중공군 개입으로 전세가 악화되어 1·4 후퇴를 맞으며 경마장에 잔류했던 임직원들은 또 다시 피난길에 올랐고 경마는 긴 공백기에 접어들었다. 신설동 서울경마장은 1951년 서울 재탈환 후 4월부터 미공군의 비행장으로 징발됐고 부산경마장은 해방 직후부터 미군 부산 기지사령부가 됐으며 연지동에 신설한 부산 제2경마장도 전쟁 발발 직후 미군에게 징발됐다. 해방 후 유일하게 남아있던 대구경마장도 1950년 7월부터 미군이 주둔했고 경주목장은 건물과 토지를 UN군이 차지했다. 군산경마장은 미군의 폭발사고로 건물이 소실된 채 방치되다가 인근 주민들이 무단 개간하여 농사를 짓는 바람에 농지로 탈바꿈했다. 경마사업이 유일한 사업소득인 마사회로서는 생존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새로운 경마장의 건설만이 유일한 활로였던 한국마사회는 1953년 초부터 뚝섬경마장 건설을 다시 추진하여 그해 7월 28일 착공했다. 휴전협정이 맺어진 다음 날이었다. 마사회는 불용토지와 사택을 매각하여 공사비를 마련했으나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계속하여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렸다. 1954년 5월 8일, 뚝섬 서울경마장이 개장하며 1950년 6월 25일 전쟁으로 중단된 경마가 만 3년 11개월 만에 재개됐다. 마사회 비상계획팀 정찬권 팀장은 “마사회는 전쟁 발발 시에 말과 시설을 보호하여 종전 후에 경마를 정상적으로 복원하기 위한 ·체계적인 매뉴얼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다. 세계 역사를 보면 전쟁은 경마산업을 붕괴시키고 말과 인간 모두에게 크나큰 고통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소은 기자 luckysso@joongang.co.kr 2013.06.28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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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정전 60주년…마사회는 6.25를 어떻게 겪었을까

올해로 한국전쟁이 정전 60주년을 맞았다. 1950년 6월25일 새벽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한 한국전쟁은 3년 1개월 간 계속되다가 1953년 7월27일 휴전 협정을 맺으며 일단락됐다. 6·25같은 전쟁이 또 한번 발발한다면 1500마리의 경주마가 생활하고 있는 서울경마공원은 어떻게 될까. 전쟁 발발과 동시에 마사회 직원들은 충무계획에 의거 비상소집, 전시 마필보호, 직장 민방위대 운영 등 일련의 조치에 들어간다. 경마는 중단되고 경주마와 관련 장비들은 군수 물자로 소집되게 된다. 마사회는 이런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비상계획팀’이라는 조직도 운영하고 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인민군은 38선 전역에서 기습남침을 감행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했지만 신설동 경마장에서는 일요경마를 평상시와 다름없이 시행했다. 불안한 조짐이 보인 것은 4경주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정체불명의 프로펠러 비행기 한 대가 경마장 상공에 나타나 전단을 살포하고 사라졌다. 전단을 주워 읽어본 사람들은 그제야 비행기가 북한군의 정찰기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북한의 대남선전 전단이었던 것이다. 확성기를 단 군용 지프가 휴가 중인 장병들의 즉시 귀대를 종용하고 시민들은 동요하지 말라고 방송을 했다. 그 후 남침한 북한 인민군은 신설동 경마장에 탱크와 차량 등 군 장비를 은닉했고, 신설동 경마장은 미 공군의 집중 폭격을 받아 크게 부서졌다. 신설동 경마장에 있던 경주마 200여두도 인민군에게 끌려가 군수물자를 수송하다가 한미 연합군의 포탄 세례를 받고 대부분 죽고 말았다. 9·15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뒤집은 연합군이 수도 서울을 수복한 후 마사회 임직원들이 신설동 경마장을 찾았을 때는 말들이 전부 사라지고 금고는 텅 비고 건물은 참혹하게 부서져 폐허로 변해 있었다. 마사회는 그 해 10월 30일 이사회를 열고 경마를 재개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10월 중순께 중공군 개입으로 전세가 악화되어 1·4 후퇴를 맞으며 경마장에 잔류했던 임직원들은 또 다시 피난길에 올랐고 경마는 긴 공백기에 접어들었다. 신설동 서울경마장은 1951년 서울 재탈환 후 4월부터 미공군의 비행장으로 징발됐고 부산경마장은 해방 직후부터 미군 부산 기지사령부가 됐으며 연지동에 신설한 부산 제2경마장도 전쟁 발발 직후 미군에게 징발됐다. 해방 후 유일하게 남아있던 대구경마장도 1950년 7월부터 미군이 주둔했고 경주목장은 건물과 토지를 UN군이 차지했다. 군산경마장은 미군의 폭발사고로 건물이 소실된 채 방치되다가 인근 주민들이 무단 개간하여 농사를 짓는 바람에 농지로 탈바꿈했다. 경마사업이 유일한 사업소득인 마사회로서는 생존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새로운 경마장의 건설만이 유일한 활로였던 한국마사회는 1953년 초부터 뚝섬경마장 건설을 다시 추진하여 그해 7월 28일 착공했다. 휴전협정이 맺어진 다음 날이었다. 마사회는 불용토지와 사택을 매각하여 공사비를 마련했으나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계속하여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렸다. 1954년 5월 8일, 뚝섬 서울경마장이 개장하며 1950년 6월 25일 전쟁으로 중단된 경마가 만 3년 11개월 만에 재개됐다. 마사회 비상계획팀 정찬권 팀장은 “마사회는 전쟁 발발 시에 말과 시설을 보호하여 종전 후에 경마를 정상적으로 복원하기 위한 ·체계적인 매뉴얼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다. 세계 역사를 보면 전쟁은 경마산업을 붕괴시키고 말과 인간 모두에게 크나큰 고통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소은 기자 luckysso@joongang.co.kr 2013.06.2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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