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3건
연예일반

액션배우 신일룡 타계

과거 액션배우로 이름을 날린 신일룡(본명 조수현)이 향년 74세를 일기로 26일 오전 별세했다. 유족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해 간암 발병 이후 투병해오다 이날 오전 영원한 작별을 고했다. 신일룡은 1948년 출생해 1970년 신상옥 감독의 영화 ‘이조괴담’을 통해 배우로 첫 발을 내딛었다. 큰 키에 서구적인 마스크로 액션 연기를 두각을 보였고 멜로물에도 출연했다. 이소룡이 숨지자 그의 대역으로 홍콩 영화에도 출연하기도 했다. 1973년 ‘섬개구리 만세’로 청룡영화상 신인연기상을, 1976년 ‘아라비아의 열풍’으로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고인의 출연작인 이두용 감독의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1984년)는 칸국제영화제에 첫 초청된 한국영화이기도 하다. 신일룡은 1980년대 중반 이후 배우 생활을 접고 마지노 등 사업을 벌였다. 말년에는 호두파이 체인을 시작했다. 빈소는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이며, 발인은 28일 오전이다. 장지는 분당메모리얼파크로 정해졌다. 이현아 기자 lee.hyunah1@joongang.co.kr 2022.05.26 15:21
연예

[청춘은 맨발이다-114] 베를린에서 생긴 일

신성일이 1973년 6월 베를린영화제 기간 중 김지미·신일룡과 함께 본 성애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파리 에펠탑을 배경으로 남자주인공 말론 브란도가 여자에게 접근하는 장면이다. 베를린영화제 참가는 내 시야를 넓혀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1973년 6월 신상옥 감독은 신필름이 운영하고 있는 허리우드극장 사무실로 나를 호출했다. "베를린영화제 영화제에 참가하자. 영화제 끝나고 파리에 가서 영화 하나 찍자고. 제목은 '이별'이다." 유럽에 가본 적이 없던 나는 그 말에 혹했다. '이별'은 베를린영화제에 우리나라 작품이 출품되면서 영화인들이 참가하게 되자, 신 감독이 파리 로케이션을 염두에 두고 기획한 작품이었다. 영화제 시작일은 73년 6월 22일이었다. 문화공보부(이하 문공부)가 베를린영화제에 출품하기로 한 작품은 정진우 감독의 '섬개구리 만세'다. 낙도 어린이들이 고생 끝에 상경해 농구 대회에서 준우승한 실화를 영화화했다. 신 감독은 나와 윤정희 주연의 68년작 '내시'를 출품작으로 희망했지만, 문공부 측은 외설 시비가 있는 '내시'를 우리나라 대표작으로 낼 수 없다면서 비경쟁 부문 옵서버 작품으로 결정했다. 베를린영화제에 참가한 우리 대표단은 김재연 영화진흥공사 사장을 단장으로 영화진흥공사 진흥이사인 정진우 감독·신상옥 감독·'이별'의 남녀주연인 나와 김지미·'섬개구리 만세'의 주인공 신일룡 등 6명이었다. 서베를린은 동독 안에 있어 한국인이 육로로 왕래하는 것이 수월하지 않았다. 항공편을 이용해야 했다. 우리는 서베를린에 도착한 오후 베를린힐튼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나는 일행과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서둘러 주머니에 200달러만 넣고 나갔다. 나머지 2800달러는 방에 놓아둔 가방 속에 들어 있었다. 저녁을 먹고 돌아오니 가방이 열려 있었고, 돈이 깜쪽같이 사라졌다. 큰 돈을 잃어버린 나는 망연자실했다. 내 경북고 선배인 김형배 영사가 호텔 측 지배인에게 이 사건을 강력 항의했고, 지배인은 난색을 표했다. 호텔 잡부로 아랍계가 독일에 많이 유입되던 시절이었다. 귀중품은 호텔 프런트에 맡겨야 했는데 그렇게 못한 내 잘못이었다. 경험 부족으로 벌어진 일이다. 난감한 김 영사는 체류 중 쓰라며 개인 돈으로 2000달러를 주었다. 나는 귀국해 여러 번 식사 때마다 돌려드리겠다고 했다. 그것을 사양한 김 영사는 고마운 선배다. 베를린영화제 경쟁 부문에 나선 '섬개구리 만세'의 기자 회견이 열렸다. 외국 기자들은 영화 속의 혹독한 훈련 장면이 아동학대이며, 전체적으로 정부 홍보성 성격이 짙다며 질책했다. 신 감독의 옵서버 출품작 '내시'는 호평과 함께 현지 영화 수입업자들의 러브콜을 받았다. 그러나 문공부가 허가를 내주지 않아 수출은 무산됐다. 영화제 기간 중 말론 브란도 주연의 성애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가 노컷 버전으로 상영됐다. 김지미가 나와 신일룡의 사이에 앉아 이 영화를 보았다. 자유분방한 섹스를 추구하는 성애 영화지만 철저하게 자본주의를 비판한 작품이었다. 격렬한 정사 후 여배우가 돌아누울 때 음모가 다 드러났다. 당황한 김지미는 그 장면에서 고개를 확 숙였다. 베를린 체류 이틀 째에 신 감독이 재독 작곡가 윤이상을 만나러 가자고 했다. 김 영사가 우리의 방문을 도왔다. 그의 집은 호반의 숲에 자리해 동화 속 집처럼 아름다웠다. 부인이 뜻밖에 참기름으로 버무린 고사리 무침을 내왔다. 우동발처럼 살이 통통한 고사리 맛이 기막혔다. 부인은 "뒷산에 고사리 천지인데 지금이 한창 맛있을 때에요"라고 귀띔해주었다. 그 날 윤이상의 수제자인 강석희도 만났다. 신 감독과 윤이상은 소름끼칠 정도로 실랄하게 정부의 문화예술 정책을 비난했다. 베를린의 밤이 저물고 있었다. 정리=장상용 기자 [enisei@joongang.co.kr] 2011.10.03 07:00
연예

[청춘은 맨발이다-106] 운명적인 만남(상)

영화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1971년)의 주연 남궁원(왼쪽)과 윤일봉. 이 작품의 감독을 맡은 신성일은 절친한 선배 신영균·윤일봉·남궁원을 모두 출연시켰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1970년 여름 한 여인을 만났다. 그 여인의 이야기다. 당시 멋부리는 젊은이는 모두 볼링장에 모였다. 60년대 미8군볼링장·워커힐볼링장을 필두로 남산볼링장·충무로3가 오성볼링장·명동1가 신스볼링장·한국일보가 운영하는 한강볼링장 등이 잇따라 문을 열었다. 남산볼링장은 레인을 깐 바닥이 훌륭했고, 후에 남산체육관으로 변모했다. 명동1가 라데팡스빌딩 2층에 자리한 신스볼링장은 선배 신영균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라데팡스빌딩 1층은 증권사였고, 지하는 선배 최무룡이 밤무대에 출연한 클럽이었다. 나를 비롯해 신영균·윤일봉·남궁원 등 사인방은 종종 저녁 시간 신스볼링장에서 어울렸다. 그 중에서는 내가 가장 잘 쳤다. 에버리지가 180을 넘었으니 말이다. 영화배우 중에선 후배 신일룡이 최고였다. 힘을 앞세워 퍼펙트 게임을 하는 실력자였다. 어느날 늦게 갔더니 세 분이 코너에 있는 스낵에 모여있었다. 신영균이 날 보더니 "저기 잘 치는 사람 있다"며 눈짓을 했다. 한 여인이 저쪽 레인에서 볼링을 하고 있는데 어딘가 낯이 굉장히 익었다. 서로 인사를 하게 됐다. 그 여인은 날 살피더니 "절 아시겠어요?"라며 미소 지었다. 난 우물쭈물 했다. 여인은 "절 닮은 분을 생각하고 계시죠. 김경오씨 아시죠?"라고 물었다. 김경오는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파일럿으로 유명한 미모의 여류 인사였다. 세계여류비행사 모임의 회장직도 맡는 등 국제적인 활동도 했다. 큰 행사마다 유명인들 모일 때 인사를 해서 나 역시 잘 알고 있었다. 특히 내 셋째 형이 파일럿이어서 더욱 각별한 느낌이 있었다. 그 여인이 김경오의 여동생이라니. 이름은 김영애라고 했다. 그 날 신영균을 빼고 남자 셋이 김영애와 어울려 볼링을 했다. 게임이 끝난 다음, 신영균이 "밥 먹으러 가자"고 제안했다. 김영애는 밥 먹으면서 자기 소개를 했다. 그 자리를 통해 김영애가 미국 USC(남가주대) 경영대학원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이며 여름 방학을 맞아 가족을 만나러 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김영애는 자신이 머물고 있는 반도호텔(현 롯데호텔) 호수까지 공개했다. 외국 유학 생활을 하는 여인의 자유스러움이 있었다. 그녀는 미국 가기 전 동아연극상 주연상을 받기도 하고, 동아라디오 방송에서 아나운서를 한 적도 있었다. 나는 첫 눈에 반했다. 김영애는 볼링 치는 모습도 아주 예뻤다. 국내 여인들은 엄앵란 때문에 감히 내게 접근을 못했다. 그러나 김영애는 아메리카니즘으로 거침이 없었다. 우리는 며칠 동안 저녁마다 신스볼링장에 모여 볼링을 친 후 저녁을 먹었다. 하루는 내가 부산에서 촬영을 하게 됐다. 3박4일 일정으로 그 날 저녁 마지막 비행기를 타고 내려가야 했다. 신스볼링장에 들렸다. 다른 형들은 코너 스낵에서 이야기하고 있었고, 나와 김영애만 볼링을 쳤다. 세 형들 중 윤일봉의 눈빛이 김영애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듯 보였다. 내가 부산에 내려가면 그 여인을 윤일봉에게 빼앗길 것 같은 위압감을 느꼈다. 나는 조용히 그녀에게 말했다. "미스 김." "네." "오늘 마지막 비행기로 부산 내려가야 해." 나는 일방적으로 내 이야기만 했다. "내일 오후 비행기 타고 5시 부산에 도착해. 극동호텔에 김영애라는 이름으로 예약해 놓을 테니 오라고." 김영애는 놀라기만 했다. "네?" 나는 그녀가 반문할 틈도 주지 않고 돌아섰다. 세 명에게 다가가 "형, 나 부산 가야해"하고 손 인사한 후 볼링장 출입구를 급하게 빠져나갔다. 그녀는 과연 올까? 난 내 운세를 시험하고 있었다. 정리=장상용 기자 [enisei@joongang.co.kr] 2011.09.21 07:01
브랜드미디어
모아보기
이코노미스트
이데일리
마켓in
팜이데일리
행사&비즈니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