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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맨발이다-114] 베를린에서 생긴 일
신성일이 1973년 6월 베를린영화제 기간 중 김지미·신일룡과 함께 본 성애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파리 에펠탑을 배경으로 남자주인공 말론 브란도가 여자에게 접근하는 장면이다. 베를린영화제 참가는 내 시야를 넓혀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1973년 6월 신상옥 감독은 신필름이 운영하고 있는 허리우드극장 사무실로 나를 호출했다. "베를린영화제 영화제에 참가하자. 영화제 끝나고 파리에 가서 영화 하나 찍자고. 제목은 '이별'이다." 유럽에 가본 적이 없던 나는 그 말에 혹했다. '이별'은 베를린영화제에 우리나라 작품이 출품되면서 영화인들이 참가하게 되자, 신 감독이 파리 로케이션을 염두에 두고 기획한 작품이었다. 영화제 시작일은 73년 6월 22일이었다. 문화공보부(이하 문공부)가 베를린영화제에 출품하기로 한 작품은 정진우 감독의 '섬개구리 만세'다. 낙도 어린이들이 고생 끝에 상경해 농구 대회에서 준우승한 실화를 영화화했다. 신 감독은 나와 윤정희 주연의 68년작 '내시'를 출품작으로 희망했지만, 문공부 측은 외설 시비가 있는 '내시'를 우리나라 대표작으로 낼 수 없다면서 비경쟁 부문 옵서버 작품으로 결정했다. 베를린영화제에 참가한 우리 대표단은 김재연 영화진흥공사 사장을 단장으로 영화진흥공사 진흥이사인 정진우 감독·신상옥 감독·'이별'의 남녀주연인 나와 김지미·'섬개구리 만세'의 주인공 신일룡 등 6명이었다. 서베를린은 동독 안에 있어 한국인이 육로로 왕래하는 것이 수월하지 않았다. 항공편을 이용해야 했다. 우리는 서베를린에 도착한 오후 베를린힐튼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나는 일행과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서둘러 주머니에 200달러만 넣고 나갔다. 나머지 2800달러는 방에 놓아둔 가방 속에 들어 있었다. 저녁을 먹고 돌아오니 가방이 열려 있었고, 돈이 깜쪽같이 사라졌다. 큰 돈을 잃어버린 나는 망연자실했다. 내 경북고 선배인 김형배 영사가 호텔 측 지배인에게 이 사건을 강력 항의했고, 지배인은 난색을 표했다. 호텔 잡부로 아랍계가 독일에 많이 유입되던 시절이었다. 귀중품은 호텔 프런트에 맡겨야 했는데 그렇게 못한 내 잘못이었다. 경험 부족으로 벌어진 일이다. 난감한 김 영사는 체류 중 쓰라며 개인 돈으로 2000달러를 주었다. 나는 귀국해 여러 번 식사 때마다 돌려드리겠다고 했다. 그것을 사양한 김 영사는 고마운 선배다. 베를린영화제 경쟁 부문에 나선 '섬개구리 만세'의 기자 회견이 열렸다. 외국 기자들은 영화 속의 혹독한 훈련 장면이 아동학대이며, 전체적으로 정부 홍보성 성격이 짙다며 질책했다. 신 감독의 옵서버 출품작 '내시'는 호평과 함께 현지 영화 수입업자들의 러브콜을 받았다. 그러나 문공부가 허가를 내주지 않아 수출은 무산됐다. 영화제 기간 중 말론 브란도 주연의 성애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가 노컷 버전으로 상영됐다. 김지미가 나와 신일룡의 사이에 앉아 이 영화를 보았다. 자유분방한 섹스를 추구하는 성애 영화지만 철저하게 자본주의를 비판한 작품이었다. 격렬한 정사 후 여배우가 돌아누울 때 음모가 다 드러났다. 당황한 김지미는 그 장면에서 고개를 확 숙였다. 베를린 체류 이틀 째에 신 감독이 재독 작곡가 윤이상을 만나러 가자고 했다. 김 영사가 우리의 방문을 도왔다. 그의 집은 호반의 숲에 자리해 동화 속 집처럼 아름다웠다. 부인이 뜻밖에 참기름으로 버무린 고사리 무침을 내왔다. 우동발처럼 살이 통통한 고사리 맛이 기막혔다. 부인은 "뒷산에 고사리 천지인데 지금이 한창 맛있을 때에요"라고 귀띔해주었다. 그 날 윤이상의 수제자인 강석희도 만났다. 신 감독과 윤이상은 소름끼칠 정도로 실랄하게 정부의 문화예술 정책을 비난했다. 베를린의 밤이 저물고 있었다. 정리=장상용 기자 [enisei@joongang.co.kr]
2011.10.03 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