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콘테의 '징그러운 잔소리와 뚝心'… EPL 우승의 숨은 힘
귀에 못이 박이도록 잔소리를 한다. 상대가 팀 핵심 '에이스'일지라도 상관없다. 통역을 붙여 주겠다는데도 마다하고 영어를 쓴다. '토종' 이탈리아인의 사투리와 단조로운 영어 단어가 뒤섞여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지만 당당하다. 한마디로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소신대로 걷는 사람. 그는 안토니오 콘테(48) 첼시 감독이다.2016~2017시즌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는 사실상 콘테 감독이 지배했다. EPL 사무국은 23일(한국시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콘테 감독이 리그감독협회(LMA)로부터 '올해의 EPL 감독상'을 수상했다고 밝혔다. 예정된 결과였다. 이번 시즌에 앞서 첼시의 지휘봉을 잡은 그는 첼시를 단일 시즌 최다인 13연승에 올려놓는 등 '이달의 감독상'만 총 세 차례나 받았다. 콘테 감독은 EPL 우승컵까지 거머쥐며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흔히 콘테의 첼시 하면 스리백부터 떠올린다. 첼시는 올 시즌 초반만 해도 포백 중심의 전술을 썼다. 그러나 팀 성적이 신통치 않자 과감하게 스리백 전환을 선언했다. 수비를 강화하는 동시에 역습을 통해 득점을 노리는 콘테의 스리백은 첼시를 FA컵 결승과 리그 우승에 올려놨다. EPL 사무국은 "콘테 감독이 포백과 스리백을 고루 사용하는 전술적 능력을 자랑하며 리그 우승을 이뤄 냈다"고 평가했다. ◇ '콘테표' 징그러운 잔소리첼시가 우승컵을 거머쥘 수 있었던 이유는 스리백 말고도 더 있다. 징그러울 정도로 반복되는 콘테 감독의 잔소리다.첼시 선수단은 콘테 감독이 다가오면 진절머리를 치곤 한다. 하루 종일 계속되는 잔소리 때문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팀 내 최다 도움 1위(11개)에 빛나는 세스크 파브레가스(30)다. 파브레가스는 "콘테는 선수들에게 '이겨라' '고쳐라'고 끊임없이 말한다"며 "굉장히 섬세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달성할 때까지 훈련을 중단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상대가 누구든 '잔소리총'을 쏘아 댄다. 콘테 감독은 "우리 모두 파브레가스가 환상적인 선수라는 건 다 알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수비 부분에서 개선할 부분이 있다. 이런 식으로 계속한다면 미드필더로 그를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그는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 틈날 때마다 협박성 멘트를 날려 왔다.심지어 선수들의 식습관까지 참견한다. 영국 매체 미러는 지난 2월 "콘테가 첼시 선수들의 식습관까지 바꿔 놨다"고 소개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콘테 감독은 선수들이 경기장에 나오기 전에 어떤 음식을 먹는지까지 신경 쓰고, 그 음식의 변화까지도 끊임없이 요구한다는 것이다. '식습관에 따라 경기 결과가 달라진다'는 철학 때문이다. 결국 첼시 구단은 토마토케첩과 브라운소스, 일부 청량음료를 메뉴에서 빼야 했다. 그나마 첼시에서는 나은 편이라고 한다. 평소 해산물과 생선류를 좋아한다는 콘테 감독은 유벤투스를 이끌 당시 클럽하우스 벽면에 '식단이 승리와 패배를 가른다'는 구호까지 적어 놨다. 잔소리는 퇴근 뒤에도 멈추지 않는다. 콘테 감독은 "경기 뒤 콜라나 맥주를 한 잔 정도 마시는 건 괜찮다. 수분을 보충할 수 있고 컨디션도 회복된다"면서도 "그러나 어디까지나 경기 종료 뒤 한 시간 내에 해당한다. 이후에는 안 된다"며 선을 그었다.EPL은 철저한 프로의 세계다. 술이나 음식 섭취는 선수 개인의 몫으로 돌린다. 하지만 콘테 감독은 마치 초등학교 선생님처럼 하나씩 짚어 가면서 가르친다.아무렴 어떤가. 그의 극성은 결국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을 말이다. 처음에는 콘테 감독만 봐도 손사래 치던 파브레가스도 리그 우승 뒤에는 "콘테는 정말 특별한 인물이다. 내가 만난 감독 중 가장 전술적인 사람"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 콘테의 뚝심콘테 감독은 이탈리아 남부 지역에서도 시골에 해당하는 풀리아 출신이다. 현지인도 귀를 기울여야 알아듣는 악센트와 사투리로 유명한 곳이다.첼시 구단은 콘테 감독이 부임하자 "통역관을 붙여 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는 "공식 석상에 서거나 선수들과 훈련장에서 대화할 때는 영어를 쓰겠다"며 거절했다. 실제로 그는 경기 전후에 열리는 공식 회견에서 영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탈리아인 특유의 어눌한 영어 발음과 쉬운 단어로 범벅돼 있지만, 올 시즌 내내 영어 사용 원칙을 고수했다.그런 콘테 감독도 이탈리아어를 쓰는 순간이 있다. 몇몇 이탈리아 출신 1군 코치들과 전술이나 선수 영입 등 중요 사항에 대한 의견을 나눌 때다. 첼시 구단은 "콘테 감독의 열정에 감복했다"며 감사의 표현을 했다. 콘테 감독만의 독특한 소신은 선수 영입과 코칭스태프 구성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첼시 구단은 지난해 FC 바르셀로나의 공격수 네이마르(25)의 영입을 추진했다. 보통의 사령탑이라면 네이마르가 온다고 하면 쌍수를 들고 환영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콘테 감독은 "네이마르는 필요 없다. 대신 나와 같은 이탈리아 국적의 수석 코치를 구해 달라"고 구단에 요구했다. 그를 보좌해 온 스티브 홀랜드(47) 수석 코치가 잉글랜드 국가 대표팀으로 자리를 옮기기로 결정됐기 때문이다.수석 코치는 사실상 감독의 뜻을 선수단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감독이 얼마나 '내 편'인 수석 코치를 데리고 있느냐 여부에 따라 사령탑의 리더십이 달라진다. '영리한' 콘테 감독은 네이마르 대신 말이 잘 통하고 자신의 축구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이탈리아인 코치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뚝심을 보여 줬다. 일관되게 소신을 밀어붙이는 성격이 또 한 번 고스란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처럼 완벽한 사령탑이 인기가 없을 리 없다. 콘테 감독이 EPL 우승을 일구자 이탈리아 세리에 A는 물론 각국의 명문팀이 그를 향해 러브콜을 보냈다. 그러나 콘테 감독은 이번에도 한 방에 부인했다."나는 내년에도 런던에 남는다. 곧 아홉 살 난 딸과 아내가 이사를 온다. 좋은 학교가 많이 있어서 딸에게도 좋을 것이다."서지영 기자
2017.05.25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