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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IS] "부족함은 나의 몫"…'나랏말싸미' 감독, 진심에 담은 '진심'
완성된 영화에 대한 해석은 다양할 수 있다. 예상보다 더 잘 통해 놀라움을 자아내는 경우가 있다면, 의도치 못한 반응에 생채기가 날 때도 있다. 이를 미리 파악해 '성공할만한' 작품을 만들고, 손해를 최소화 시키는 것이 전문가들이 할 일이다. 하지만 영화 '나랏말싸미(조철현 감독)'는 안타깝게도 후자의 상황을 맞이하게 됐고, 감독은 펜을 들어 처음부터 끝까지 변치 않았던 '진심'을 다시 한번 꺼내들었다.개봉 전부터 후까지 단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던 '나랏말싸미'다. 개봉 전 전미선의 갑작스러운 사망과 상영금지가처분신청 논쟁을 겪으며 힘든 개봉을 맞이 했지만, 더 큰 산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영화를 완성하는 마지막 주인공. 바로 관객이다.'나랏말싸미'는 모든 것을 걸고 한글을 만든 세종과 불굴의 신념으로 함께한 사람들을 중심에 두고 역사가 담지 못한 한글 창제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소개된다. 한글 창제의 과정 속 여러 가지 '설' 중 하나에 '영화적 상상력'을 가미해 만들었다. 역대 국내 개봉작 흥행 1위에 빛나는 영화 '명량(김한민 감독·2014)'의 이순신 장군에 이어 5000만 국민 팬덤을 이끌 것으로 예측됐던 세종대왕의 '나랏말싸미'는 잇단 악재 속 관객들과 최종 소통에 실패했다. 개봉 첫주 "역사를 왜곡한 영화"라는 프레임이 단단하게 짜이면서 그 외 의견은 비집고 들어갈 틈새 조차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에 조철현 감독은 29일 장문의 글을 통해 '나랏말싸미'를 둘러싼 다양한 이슈에 대해 해명했고, 반성했고, 또 미안해 했다. 비슷한 이슈에 휩싸였던 여느 영화들처럼 '내가 맞다, 나는 이런 의도였다'고 기싸움을 하겠다는 마음이 아니다. '관객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진심을 바탕으로 '세종대왕 폄하는 결코 아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부족함은 저의 몫"이라고 단언한 조철현 감독은 "'나랏말싸미'는 고뇌와 상처, 번민을 딛고 남은 목숨까지 바꿔가며 백성을 위해 문자를 만들어 낸 세종대왕의 애민정신과, 세상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드는 군주로서 위대해져 가는 과정을 극화한 영화다.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일의 어려움과 가치를 생각해보자는 것이 이 영화의 취지다"고 설명했다.이어 "저는 수십 년간 세종대왕과 한글을 마음에 품고 살아왔다. 그렇기에 이 영화에 대해 반감을 표하는 분들의 마음을 안다. 그러나 제작진의 마음과 뜻은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을 폄훼하고자 한 것이 결코 아니다. 그의 위대함이 어떤 희생을 딛고 나온 것인지, 그렇기에 한글이 얼마나 위대한 업적인지 그리고자 했다"고 밝혔다.또 "진심을 전달하고자 하는 소통과 노력의 부족으로 이런 점이 충분히 전달되지 못했던 점을 너무나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다만 혼신의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고생했던 스태프들은 이 영화가 세종대왕과 한글의 위대함을 영화적으로 그리는 작품이라 믿고 함께 했다. 것이 저와 그들의 진심이다. 그분들의 뜻까지 오해받고 있어서 무척 아픈 지점이다"고 덧붙였다.이와 관련 '나랏말싸미' 측 관계자는 "감독님이 진심을 담아 쓴 글이다. 글 하나로 영화에 대한 분위기와 관객들의 생각을 바꿀 수 없다는건 잘 알고 있다. 다만 '세종대왕을 폄하했다'는 관객들의 노여움 만큼은 조금이나마 풀고자 한다. 만약 그런 의도였다면 '나랏말싸미'는 아예 제작되지 못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랏말싸미'가 전달하려 했던 뜻과 관객의 뜻이 일치되지는 못했지만, 영화인이기 전 한글을 쓰고 살아가는 국민으로서 세종대왕의 위대함과 남기신 업적에 대한 존경심은 결코 다르지 않고, 다를 수 없다"고 전했다.관객들이 분노한 포인트는 다양하다. 결과적으로 '팩션'으로 치부하기엔 '왜곡'의 의도가 더 부각된다는 것. 건드려서는 안 될 역사적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세종대왕이 주요 소재로서 '활용'이 아닌 '이용' 된 것처럼 여겨지면서 5000만 국민 팬덤은 순식간에 마음을 돌렸다. 지난 5일간 수 많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나랏말싸미' 스토리와 감독 인터뷰, 관련 역사 기록과 기사까지 줄줄이 올라왔다. 관객들의 의견과 반응은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 그러한 계기를 마련해 준 것 자체가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때문에 합리적 비판과 비난은 받아 들여야 마땅하다. 하지만 다수에 의해, 선동에 의해 아닌 것까지 사실로 낙인 찍고 '그게 맞잖아'라고 강요한다면 그 또한 왜곡이고 곡해다. '나랏말싸미'는 이미 흥행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랏말싸미' 측은 진심에 대한 오해 만큼은 풀고자 한다. 그것이 '나랏말싸미'의 진심에 담은 진심이다.영화계 관계자는 "관객은 이런 영화를 기대했는데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면 그 실망감은 더 클 수 밖에 없다. 알려진 과거가 스포가 되는 예민한 역사물은 더욱 그렇다"며 "문제는 한번 미운털이 박히고, 그것이 기정사실화 되는 분위기로 흐르면 이를 풀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아무리 진심을 외쳐도 곡해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비단 '나랏말싸미' 뿐만 아니라 최근 외적인 이슈들로 곤욕을 치른 영화들이 대부분 그랬다. 다양한 의견은 좋지만 유연함은 필요하다"고 참담해 했다.다음은 '나랏말싸미' 조철현 감독 글 전문 <나랏말싸미>를 연출한 조철현입니다. 이 영화는 세종대왕이 문자를 만드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영화입니다. 고뇌와 상처, 번민을 딛고 남은 목숨까지 바꿔가며 백성을 위해 문자를 만들어 낸 그의 애민정신과, 세상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드는 군주로서 위대해져 가는 과정을 극화한 것입니다. 그리고 세종대왕께서 직접 쓴 훈민정음 서문에 있는 ‘맹가노니’라는 구절로 압축되듯이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일의 어려움과 가치를 생각해보자는 것이 이 영화의 취지입니다.우리는 실존했지만 역사 속에 감춰져 있던 신미라는 인물을 발굴하여 훈민정음 창제의 주역으로 조명하려고 이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세종대왕께서 혼자 한글을 만드셨다 하더라도 그 내면에서 벌어졌을 갈등과 고민을 드라마화하려면 이를 외면화하고 인격화한 영화적 인물이 필요한데, 마침 신미라는 실존 인물이 그런 조건을 상당히 가지고 있었기에 채택하였던 것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1443년 12월 30일 임금이 친히 새 문자를 만들었다는 기록 이전에 아무것도 없는, 훈민정음의 창제 과정의 역사적 공백을 영화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신미는 그 공백을 활용한 드라마 전개에서 세종대왕의 상대역으로 도입된 캐릭터입니다. 이 과정에서 신미는 완전히 새롭게 탈바꿈했습니다. 물론 실존 인물 신미는 세종대왕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인물입니다. 신미의 동생이자 집현전 학사이기도 했던 김수온의 문집[식우기] 중 ‘복천사기’에 세종대왕께서 신미를 산속 절로부터 불러내 긴밀한 대화를 나눴다는 기록이 있고, 실록만 보더라도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이 스승처럼 모셨으며 세종대왕이 돌아가시기 두 달 전 신미를 침실로 불러 법사(法事)를 베풀었다는 기사들이 있습니다. 세종대왕의 유언으로 그에게 ‘선교종 도총섭 밀전정법 비지쌍운 우국이세 원융무애 혜각존자’라는 칭호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우국이세(祐國利世)는 ‘나라를 돕고 세상을 이롭게 한 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몇 년 뒤, 세조가 불경을 새 문자로 번역하기 위해 세운 간경도감의 책임자가 되어 학열, 학조 등 제자들과 함께 <능엄경언해>를 비롯한 언해불경(불경을 ‘언문’ 즉, 훈민정음으로 옮기는 일)에 서문과 이름을 남겼습니다. 이런 근거 위에, 신미가 범어를 비롯한 외국어에 능통했고 대장경을 깊이 공부했다고 언급한 실록 기사들까지 감안하면 1443년 12월 이전의 역사 공백을 개연성 있는 영화적 서사로 드라마화할 만한 근거는 되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저는 수십 년간 세종대왕과 한글을 마음에 품고 살아왔습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에 대해 반감을 표하는 분들의 마음을 압니다. 그러나 제작진의 마음과 뜻은,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을 폄훼하고자 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위대한 문자인 한글을 탄생시키기까지, 가장 과학적인 원리로 만들고자 했으며, 가장 배우기 쉬운 문자를 만들기 위해 직접 글자의 디자인 원칙을 제시하고 디자인 과정을 주도했으며, 누구나 배우기 쉬운 글자를 만들기 위해 글자 수까지 줄이고자 했던 세종대왕의 모습과, 신분과 신념의 차이에 연연해하지 않고, 제왕의 권위까지 버리면서 백성을 위해 처절하게 고민했던 세종대왕의 인간적인 면모를 그리고자 했습니다. 그의 위대함이 어떤 희생을 딛고 나온 것인지, 그렇기에 한글이 얼마나 위대한 업적인지 그리고자 했습니다. 진심을 전달하고자 하는 소통과 노력의 부족으로 이런 점이 충분히 전달되지 못했던 점을 너무나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혼신의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고생했던 스태프들은 이 영화가 세종대왕과 한글의 위대함을 영화적으로 그리는 작품이라 믿고 함께 하였습니다. 그것이 저와 그들의 진심입니다. 그분들의 뜻까지 오해받고 있어서 무척 아픈 지점입니다. 부족함은 저의 몫입니다. 끝으로 관객 여러분의 마음을 존중하고 많은 관심에 감사드립니다.조연경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2019.07.30 1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