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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③] 엄지원 "남편 못챙길 때, 죄책감 드는 나에게 놀라"
엄지원(38) 하면 떠오르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여리여리한 비주얼에 간드러진 목소리는 같은 말을 해도 애교가 뚝뚝 묻어나고, 보면 볼 수록 기분 좋아지는 눈웃음은 엄지원의 트레이드 마크다. 여기에 은근한 예민미(美)를 동반한 똑부러진 성격은 배우 엄지원, 여자 엄지원을 완성한다. 타고난 매력이 남심은 물론 여심까지 설레게 만든다.엄지원의 분위기는 작품과 캐릭터를 만났을 때 더욱 빛난다. 멜로·스릴러·액션·코미디에 미스터리까지. 여배우가 선택할 만한 작품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충무로에서 틈새를 파고들며 다양한 장르를 선택하는데 탁월한 재주가 있다. 캐릭터에 따라 변하는 얼굴과 연기도 배우 엄지원의 가치를 높이기 충분하다.개봉을 앞둔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이언희 감독)' 그리고 지선 캐릭터는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이해영 감목)'에 이어 엄지원이 두 번째 선택한 미스터리 여성 영화이자 '소원(이준익 감독)'에 이어 또 한 번 선택한 엄마 역할이다. 물론 스토리와 캐릭터 설정은 전혀 다르기에 비교해 보는 맛도 쏠쏠하다.절친한 사이로 잘 알려진 공효진과 한 작품에서 만났고, 어느 때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눴으며, 누구보다 의지했다 영화 속 지선으로서, 또 배우로서 극심한 외로움을 느꼈다는 엄지원은 "의외로 무딘 구석이 있는지 다음 작품을 촬영하면서 '아, 나 그 때 엄청 힘들었구나'라는 것을 느꼈다"며 미소지었다. 최고의 경쟁작은 '박근혜 대통령'과 'JTBC'라고 콕 집어 언급하면서도 "어머, 이거 그대로 나가면 안되는거 아니에요?"라며 호탕하고 털털하게 쏟아낸 입담은 여리게만 봤던 엄지원의 내공을 새삼 엿보이게 한 순간이었다. ※인터뷰 ②에서 이어집니다. - 캐릭터에 어느 정도 공감했나."내 실제 삶과 연결지어 생각하게 되더라. 아직 아이는 없지만 남편도 일을 하고 나도 일을 하다 보니까 일주일에 세 번씩 도우미 아주머니를 부른다. 지선과 한매의 관계를 봐도 난 잘한다고 하는데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같은 마음이 아닐 수 있다. 지선처럼 선물도 드리고 맛있는 것도 드리면서 '난 이 사람을 편하게 대하고 있고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는데 이모는 과연 내가 편할까?' 싶을 때가 있다."- 각자의 목적이 있고 친구 관계는 아니니까."어떻게 보면 사회 속 갑을관계로 보일 수 있지 않나. 난 내 마음을 다 털어 놓는데 결국 가가 사회 생활을 하는 입장에서 친구 관계는 될 수 없으니까. '미씽'은 '관계의 우위에 있어서 상대방은 나와 같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 작품이다."- 많은 여성들이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다."모두가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일을 해야하는 도시 여성들은 비슷한 고민을 해 봤을 것이라 생각한다. 솔직히 극중 지선이도 잘못한 것은 없다. 나에게 아주 당연한 일이었던 행동들이, 악의없이 행한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본인도 모른 채 지나간 것이다. 그 후 고난을 통해 사실을 파악 했을 때 얼마나 슬펐을까 싶다."- 공효진과 캐릭터를 바꿔 연기해 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었나."효진 씨가 한매를 하기로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린 후에 지선 역할을 제안 받았다. 한매는 배우로서 재미있게 풀어낼 수 있는 여지가 높은 인물이다. '역시, 공효진 눈 좋네? 똑똑하게 잘 캐치했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난 지선으로 '미씽'을 읽었기 때문인지 지선이 나와 더 잘 맞는 것 같다. 도회적이고 차가워 보이기도 하고. 주변을 돌아볼 시간도 없이 정신없이 일하고. 어느 면에서는 나를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한매는 굉장히 기구한 여자다."한매의 모든 상황과 사정이 스포일러라 언급할 수 없지만 사회가 여성에게 얼마나 많은 린치를 가하고 있는지 대표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캐릭터다. 기가 막히다. 단 하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지만 마음과 뜻대로 안 된다. 지선도 마찬가지다. 이혼을 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차가운 시선을 받고, '이래서 애 있는 엄마랑은 일을 하면 안돼'라는 괄시를 받는다. 굉장한 편견에 휩싸이기도 한다. 남편은 의사고 시어머니는 번쩍거리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있으니까 경찰도 지선 보다는 그들의 말을 더 믿어준다. 웃기는 세상이다." - 연기지만 간접 경험을 통해 울컥한 순간도 많았을 것 같다."남편은 번듯한 직업을 가졌다는 이유로 아이를 잘 돌보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데, 나는 아이를 키우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 아이를 잘 보는 것 또한 여자의 몫이라는 시선이 팽배하다. 나 같은 여자가 얼마나 많은 차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여성 관객들은 더 잘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찾아간 경찰서에서 조차 경찰들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니까. 막말로 최순실 딸이 찾아갔다면 그렇게 대했겠냐. 하던 일 멈추고 난리가 났겠지. 평범한 여자에게 어떤 폭력을 가하고 있는지 보란듯이 드러냈다고 본다."- 그들은 본인들이 폭력을 행사하는지 모른다는게 문제다."너무 자연스러운 일상이 돼 심지어 당하는 여자들까지 무뎌지는 것 같다. 한 가지 에피소드를 털어 놓자면 결혼을 하니까 바쁘고 피곤한데 남편 밥은 꼭 차려줘야 할 것 같더라. 그래서 나름 잘 챙겨줬는데 최근에는 영화 홍보 등 스케줄이 너무 많아 챙겨주지 못했다. 얼마 전 한의원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아침식사는 챙기세요?'라고 묻더라. 근데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남편이 '아니요'라고 답해 좀 놀라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했다. 하던 것을 몇 번 안 하면 그 안 한 것이 크게 다가올 때가 있지 않나. 남편도 그러지 않았나 싶다. 웃긴건 그 상황에 내가 죄책감을 느껴야 할 것 같았다는 것이다. 사실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왜 내가 죄책감을 느껴야 하나. 막말로 꼭 차려줘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게 법으로 정해진 것도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한국에서 자라고 성장한 여자라서 그런지 그 땐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더라. 그런 나에게도 놀랐던 순간이다."- 현장에서는 공효진에게 의지를 많이 했다고."우리 둘 다 대화를 정말 많이 했다. 내가 출연한 모든 영화를 통틀어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눈 파트너가 아닐까 싶다. 일대일 호흡은 많이 맞추지 못했다. 붙는 신이 별로 없다. 하지만 지방 촬영을 하면서 숙소 생활을 했고 각자의 촬영이 끝나면 붙어 앉아 현장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난 이랬고, 오늘 어떤 장면을 찍었고, 감정 조절을 이렇게 했으니까 너는 저렇게 하면 어떨까?'라는 식이었다."- 마음과 대화가 잘 통해야 가능한 일 아닌가."정말 잘 맞았다. 사실 배우의 레벨이나 상대방의 연기에 대해서까지 언급하는 것은 실례가 될 수 있고, 어떻게 보면 선을 넘었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들도 있는데 우리는 모든 것을 오픈하고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영화를 잘 만들어 보자'는 첫 번째 목표가 같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기분 나쁘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건너 뛰어도 되니까 좋았다. 감탄했을 땐 '너무 좋아. 대단하다'고 솔직하게 응원도 해줬다."인터뷰 ④로 이어집니다.조연경 기자사진=메가박스(주)플러스엠 [인터뷰①] 엄지원 "'미씽' 좋다면서 투자안해…오기 생기더라" [인터뷰②] 엄지원 "육아 vs 일 양자택일? 고민되는 파트" [인터뷰③] 엄지원 "남편 못챙길 때, 죄책감 드는 나에게 놀라" [인터뷰④] "경쟁작? 영화 아닌 대통령" 엄지원의 한방
2016.11.29 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