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일반
[스포츠 우먼 파이터] ①손연재 "리듬체조의 생활 체육화, 내 평생 프로젝트"
각 종목에서 한 획을 그은 여성 스포츠인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애환을 나누고, 먹성 좋은 개그우먼이 다이어트 대신 타고난 운동 능력으로 화제를 모으는 시대가 왔다. 중앙일보는 대한체육회와 함께 3회에 걸쳐 '스포츠 우먼 파이터'를 연재한다. '몸매'가 아닌 '몸'을 위해 땀을 흘리는 여성들의 현실과 변화, 희망을 짚어보는 시리즈다. 첫 번째로 만난 사람은 리듬체조 국가대표 출신인 손연재(27) 리프 스튜디오 대표. 한국 리듬체조 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올린 그는 은퇴 후 '생활 체육'으로서의 리듬체조를 널리 알리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손연재 대표는 2019년 초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리듬체조 아카데미 '리프 스튜디오'를 열었다. 처음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리듬체조 학원'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성인 클래스와 지도자 과정까지 프로그램의 폭을 넓혔다. 손 대표는 "리듬체조도 충분히 더 많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생활 운동'이라는 확신이 들어 2년 전부터 성인들을 위한 클래스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발단은 아이의 손을 잡고 온 '어머니'들의 푸념이었다. 손 대표는 "어머니들과 면담을 하다 보면, '어릴 때 리듬체조를 해보고 싶었다. 이제 나는 하기 어려우니 우리 아이라도 시켜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오신 분이 많았다"며 "어렵지 않고 어머니들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운동인데, 왜 배울 곳이 없을까 싶어 안타까웠다. 그래서 내가 한번 해보기로 마음먹었다"고 털어놨다.최근 성인 여성에게 가장 친숙한 운동은 요가, 필라테스, 발레 등이다. 손 대표는 이 리스트에 '리듬체조'가 추가되기를 바랐다. "요가와 필라테스는 꽤 오래전 대중화됐지만, 성인이 발레를 일상에서 접하게 된 건 몇 년 되지 않았다"며 "리듬체조도 지금은 '올림픽에서나 볼 수 있는 종목'으로 여겨지는데, 언젠가는 발레처럼 활성화될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보는 운동'이라는 선입견을 깨는 게 나의 숙제"라고 강조했다.서서히 늘어가는 성인 클래스 회원을 보며 보람도 느낀다. 손 대표는 "회원분들이 자연스럽게 리듬체조 슈즈를 신고, 가방 속에 리본을 넣어 다니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 마음이 참 좋았다"고 했다. 리듬체조 선수 출신인 리프 스튜디오 김민지(21) 강사도 "저녁에는 퇴근하고 오는 직장인 수강생이 많지만, 오전 시간에는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낸 뒤 리듬체조를 배우러 오시는 어머니 수강생이 주를 이룬다"며 "처음에는 다들 쭈뼛쭈뼛 어색하게 수업을 시작하시지만, 4주 정도 배우고 나면 '생각보다 재밌고 쉽다'며 주변 친구들에게 추천하시기도 한다"고 귀띔했다.손 대표도 이런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어린이반만 운영하던 다른 리듬체조 학원들이 성인반 수업을 하나둘 도입하는 모습을 보면 더 그렇다. 손 대표는 "30대 중후반 이후의 여성들이 20대보다 더 많이 리듬체조를 배우고 있고, 아이와 함께 와서 성인과 키즈 클래스를 나란히 수강하는 모녀도 늘었다"고 했다. 김민지 강사도 "6~7명이 한 클래스에서 한 달간 하나의 안무를 완성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친해지고, 그다음 클래스 음악을 적극적으로 제안하시기도 한다"며 "비인기 종목인 리듬체조를 생활 스포츠로 즐기는 분이 많아지는 걸 보면 기분이 좋다"며 웃었다.손 대표는 리듬체조가 "내 몸을 알아가고, 내 몸의 선을 찾을 수 있는 운동"이라 많은 여성에게 권하고 싶다고 했다. "근력도 좋아지고, 다이어트도 되고, 스트레칭을 통해 유연성을 키우는 점도 중요하겠지만, 리듬체조를 하는 그 시간 자체도 의미 있는 것 같다"며 "거울로 내 모습을 보면서 바른 자세를 살피고, 내 손끝과 발끝까지 모두 신경 쓰는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온전하게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했다.'손연재'는 한국 리듬체조를 상징하는 이름이다. 한국 선수 최초로 2014 인천아시안게임 개인종합 금메달을 땄고, 2016 리우올림픽 개인종합 4위에 올라 한국 선수 역대 올림픽 최고 성적을 냈다. 그래서 손 대표의 어깨가 더 무겁다. 그는 "리듬체조는 비인기 종목이라 선수 때 종종 '너무 작은 세상에 머무는 느낌'을 받았다"며 "많은 사람에게 인기 있는 종목은 대부분 '내가 할 줄 아는' 스포츠다. 어른과 어린이 모두 리듬체조를 직접 해보면, 자연스럽게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내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리프 스튜디오가 전문 선수 육성에 나서지 않고 '리듬체조 인구 확대'에 집중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손 대표는 "엘리트 선수 한 명을 키우는 것보다 리듬체조 저변을 더 넓히는 게 내 진짜 목표다. 시간은 아주 오래 걸리겠지만, 나의 '평생의 프로젝트'로 삼았다"며 눈을 반짝였다. 배영은 기자 bae.youngeun@joongang.co.kr
2021.11.24 08:04